Wednesday, January 29, 2025

범사에 감사하라

치매 예방 차원에서 새로 시작한 공부는 '두려움'을 안고 시작하게 되었다. '할 수 있다'는 도전심과 용기로 일단 시작은 하였지만, 두려움이 앞서 자꾸만 미루고 싶다. '이제와 공부해서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라며 주저앉는 생각과 '난 원래 모질해'란 못난 한계에 쉽게 다다르기도 한다. 그럴 때는 이러저런 핑계를 대며 '끈기'를 붙잡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집안 일을 하곤 한다. 집안 일이 이리 즐거운 일이라니~~~

지루하고 복잡하고 귀찮은 일상의 일들이 쉽고 단순하며 즐겁다! 아침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에 빨래를 집어넣고, 세수를 하고 얼굴에 크림을 바르고......'아, 공부하기 싫다~~~'며 자꾸 딴 짓을 하며 책상 앞에 앉지 않는다. 잠시 집안 일을 하면서 무조건 포기했던, 전혀 도전하지 않았던 지난 날의 열등감 많던 '나'를 떠올려본다. 드디어 삶의 '적당한 때'를 만나, 두려움을 안고도 '그냥' 덤벼든 '나'를 셀프로 칭찬해 본다.

우리우리 설날이니, '새해 슬로건'에 대한 생각을 해봤다. '근육부자', '마음부자'가 올해의 사자성어였다면, 마음 부자가 되기위한, 올 한해의 행복 슬로건은 '범사에 감사하라'로 정하고 싶다. '링컨'님께서 '마음먹은만큼만 행복하다.'란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행복해지기위해 훈련이 필요한 것으로, 단 너무 '행복행복'하며 집착을 하면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다한다. 일상의 소소한 일부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구체적으로 감사할 거리를 찾아 기뻐하다보면, 어느새 행복을 누리고 살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실천해 볼 가치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행복해 질 수 있는 훈련을 더 심화해야 할 아주 적당한 때이다.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라~~~'

'적정 체중'을 한달간 잘 유지 하고 있음을 감사하고, 맛있는 음식에 노출되는 명절 시간에도 체중을 잘 유지하고 있음도 감사하고,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바삐 몸과 마음을 움직여 맛있는 음식을 해서 식구들과 먹은 것을 감사하고, '행복'에 대한 지수를 과하게 잡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타인에 대한 기대를 높이 잡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아프다는 말 자주 하지 않은 것 감사하고, 타인에 대한 거슬리고 불편한 감정을 물처럼 흘려 보내거나 훌훌 털어 버린 것을 감사하며......

인생 후반전은 순전히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건강'을 지키며,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즐겁게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다...... '선물'처럼 주어진 삶을 살다 가면 되는 것이다. 오늘도 즐겁고 범사에 감사하며 잘 살아볼 것이다. 


 

Monday, January 27, 2025

Very You

 'Night Bitch'(2024)란 공포 코미디 영화를 보았다. '슈퍼맨'의 여자친구역으로 나왔던 '에이미 아담스'가 아주 살찌고 망가진 상태로 영화에 나와서 깜짝 놀랬다. '예술'을 하는 것을 기꺼이 멈추고, 아이에게 나름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는 '예술가 출신 엄마'로 나온다. 자신을 내려놓고  아기만 바라보고 남편 오기를 기다리는 삶이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지만 '자신을 자신답게' 하는 것을 잃은 것이다. 결혼을 하면 아이들을 낳고......당연한(?) 것들이지만(지금은 당연하지 않고 당연한 것은 없다) 그 두 역할로  행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불행한 자신의 모습과 불행했던 엄마의 모습이 닮았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감 없이 자신의 '분노'와 '화'를 이해하려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겠고, 밤이면 동물적인 야생이 미처날뛰는 느낌을 알 것 같다.   

예술은 자기 좋자고 하는 이기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고, 아무런 유용감 없어 보이는 무용한 일일 수 있다. 아무리 자발적으로 '희생'을 감내하는 선택을 하였다치드라도, 때로는 뭔지 모를 분노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어찌 할 것인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지지 받지 못할 때 맨날 환경탓을 할 수도 없고 자신을 갉아먹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쉽게 얻어지는 것은 출렁이는 뱃살과 무기력 그리고 이상한 성질머리!  살다보면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는데 자꾸 불행할 때가 있다. 

영화를 보며 여러 장면에서 공감하며 웃음이 나왔다. 지금이야 지난 날을 돌아보며 웃을 수 있지만서도. 아이들이 좀 자라고, 밖으로 나가 '자기계발'도 하고 사회생활도 하고 그러면서 점차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주어진 조건과 타협도 하고 균형을 잡으며 행복한 '나'를 찾게 된 것 같다. 지금의 '평화롭고 조용한 나'를 말이야~~~

영화는 동물적으로, 원초적으로 두번째 애를 낳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났다. 애낳는 고통을 잊어먹고 또 다시 딸을 낳았을거라고 나같은 생각을 보태본다^^ '아이를 낳는 일'은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점차 깨닫는다. 주어진 삶을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 두 아들들을 이 세상에 내놓은 일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처음 살아 본 삶이라 서투르고 부족하였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전반전을 산 것 같다.  감사합니다~~~

Sunday, January 26, 2025

No Pain, No Gain

 눈물과 콧물로~~~ 대파를 칼질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라는 것을 해야한다. 창문을 열고 '결연한' 마음으로 도마 위에 깨끗이 씻겨진 대파를 올려 놓았지만 오늘도 결국 쓰라린 눈동자가 흘리는 눈물과 흘러내리는 콧물을 피할 길이 없다.  칼질은 후다닥거리며, 썰어진 대파는 전문적이지 않고 망가진 모습이다. 

대파를 썰면, 아주 옛날(?) 대학교정에 뿌려졌던 '최루가스'와 만난다. 

몸안에 쌓이는 중금속을 배출하고, 식이 섬유가 풍부하고, 혈관을 지켜주는 등등의 좋은 효능이 있는 식재료이지만 대파는 언제나 나를 울린다. 된장국 위의 대파, 달걀말이의 대파, 삼겹살의 대파 무침, 육개장의 대파, 북어국의 대파, 오징어 볶음의 대파, 짬뽕의 대파, 볶음밥의 대파  등등 대파가 들어가야 제 맛이 나는 음식들이 먹고 싶을 때  양파와 쪽파로 근근이 한국음식을 해먹던, 대파 없이 살던 때가 있었다. 

 대파의 '프로페닐스르펜산' 매운 성분은 '휘발성'으로 눈을 자극하고 코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선풍기를 틀어놓거나, 주방 투명 랩을 이용해 눈과 코를 가리거나, 입안에 물을 머금고 칼질을 하거나, 수영 물안경을 쓰고 대처하는 여러 방법들이 나와있지만 대파로 인한 눈물과 콧물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식구들과 대파가 들어간 떡국을 함께 먹는 일은  눈물 콧물을 흘리는 댓가를 치룰 가치가 있는 일이기에 오늘도 대파의 매운 맛을 참고 칼질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화이팅'을 보내본다. 그려, 'No Pain, No Gain' 냉동고에 잘게 썰어진 대파를 집어놓고 보니 마음이 든든하다. 

Friday, January 24, 2025

서로가 이불이 되어

 


커다란 나무들의 반그늘 아래 혹은 아파트 애매한 빈 땅을 채우고 있는 '맥문동'(Liriope)의 겨울나기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무심히 지나치곤 했는데  귀한 겨울의 초록으로 기꺼이 넘어진 맥문동의 모습에 깜짝 놀래서 발걸음을 멈췄다. 

나의 정원에 직접 땅을 파고 심었던 나의 노란빛이 섞여있는 리리오페가 생각났다.  집 현관 앞의 반그늘이 지는 땅에 심었던 리리오페는 6월과 7월에 작고 귀여운 보라색 꽃을 들어올리고, 가을이 되면 꽃이 지고 난 자리에 까만 구슬을 방울방울 달고 있었던 모습이 기억난다. 겨울이 다가오면 푸른 잎을 사정없이 쳐주었기에 맥문동의 겨울나기를 알지 못했던 모양이다. 

마트에 장을 보고 오는 길에 초록으로 모두가 누워있는 모습에 웬일이지 싶었다. 여기저기 푸른 리리오페가 겨울 추위에 쓰러져 있는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누워 쓰러져도 꺽이지는 않았다. 추운 날씨에 땅속의 뿌리가 얼지 않도록, 온 몸을 넘겨 서로를 덮어주는 맥문동의 겨울나기 모습이다.  한 방향으로 모두가 누웠구나, 서로가 이불이 되어!




Thursday, January 23, 2025

나의 주치의

 해가 떠있는 겨울의 공원이 벌써 봄기운으로 가득찬 느낌을 받았다. 벚나무의 검은 가지에 꽃눈이 보이고 미끈한 목련나무의 가지에도 꽃눈도 제법 여물었다. 아직도 산수유 주름진 붉은 열매가  땅으로 모두 내려오지 않은 시간이다. 남쪽엔 붉은 동백꽃이 한창이겠다 싶다. 

낮 시간에 공원은 부드럽고 축축한 땅을 밟고 걸을 수 있는 선물을 내어준다. 낮의 걷기는 자외선으로 인한 광노화가 염려되어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나와야 하는 귀찮음을 극복해야 하지만. '걷기'는 나를 건강하게 지켜줄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습관이다. 

겨울 밤의 땅들은 얼어서 딱딱하지만, 해가 중천에 떠있는 시간엔 땅이 말랑말랑거리며 부드럽다. 메마른 시멘트 길과 폐타이어로 만든 길을 걷는 것과 다른 자연친화적인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햇살이 내리쬐는 공원엔 광합성을 하는 사람들이 밤에 비해 훨씬 많다. 심지어 신발을 벗고 맨발로 찬기운이 도는 겨울 땅을 밟고 걷는 사람을 보고, 차디찬 찬기운을 마다하지 않고 맨발로 걷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말랑말랑한 흙위로 걷자니 신발을 야무지게 챙겨신은 나도 땅이 주는 푸근한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 든다. 나의 몸무게를 지탱하고 꼿꼿이 서서 걷게 해 줄수 있는 무릎이 덜 피곤하겠다 싶다. 몸뿐만 아니라 생각이 굳지 않고 말랑거리는 '유연성'을 갖는 것은 좋은 것이며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잠든 자는 깨울 수 있지만, 잠든 척 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는 말을 오늘의 문장으로 함께 기록해 본다. ~척 하는 사람들과는 진정한 '소통'은 하기 힘들다는 것쯤은 다들 알게되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혹은 의도적으로 여러가지의 가면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해한다지만, 가면을 쓰고 척척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냥 나도 적당한(?) 가면을 쓰고 척척하면 되는 것 아닐까 싶다. '가장 무도회'라고 생각하고 ~~~선을 넘어 가면을 벗겨 맨얼굴을 보려고 하지도 말고. 

소비 욕망을 자극하는 홈쇼핑에 걸려들지 않은 어제 하루를 보낸 것을 셀프로 칭찬해 주고 싶다. 물론 바뻐서 TV 시청할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후딱' 도망을 가야 하는 것이다. 고급지고, 가성비 좋고, 경우의 환상들을 불러 일으키는 쇼호스트들의 유혹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 의자에 앉지 말고 바삐 몸을 움직여 활동하고 볼 일이다. '좋은 생활 습관이 나의 주치의!' 구호를 외치며 오늘도 '공원 걷기'를 잠깐이라도 챙기기로 한다. 



Wednesday, January 22, 2025

껍질을 벗다

해가 있는 시간에 공원을 걷다보니 밤시간과 다르게 나무들의 겨울나기가 눈에 훤하게 들어온다. 추운 겨울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각각 각양각색의 패턴으로 겉껍질을 너덜너덜하게 벗겨내며 견디고 있는(?) 플라타너스의 겨울 모습이 들어왔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옷을 벗으며 견디는 것일까. 

눈을 들어 오래된 플라타너스를 올려 보았다. 나무의 오래된 밑둥은 피부가 너덜거리지만 하늘로 향한 가지들은 단단하고 하얀 속살로 매끈하다. 북아메리카에서(1910년경) 건너와서 속살이 하얀가? 가로수로 심겨진 나무들이 일명 '닭발'처럼 싹뚝싹뚝 가혹한 가지치기를 당하는지금, 다행히 공원의 나무는 키를 높이고 가지를 넓혀 '우람하게' 서있는 것 아닌가.  

나에게 있어 '플라타너스'는 어린시절 초등학교 뒷뜰에 웅대하게 서있던 키큰 나무로 '혐오'의 느낌을 함께하는 어린 기억에서 시작된다. 털이 많고 꿈틀거리는 벌레(쐐기)가 떨어져 따끔거리고 쓰라린 아픔을 주었기에 나무들이 만든 푸른 그늘 아래 가는 것이 두려움이었다. 한편으로는  탁구공만한 크기의 동그란 방울 열매가 달려있는 모습이 어린 시절 나에게는 신기하게 다가오기도 했던 것 같다. 

나무이파리가 유난히도 커다랗고, 커다란 갈색 나뭇잎을 밟으면 바스락거리는 가을의 소리를 주는 나무는 플라타너스 나무(platanus)양버즘나무) 이름은 '넓다'는 뜻의 그리스어 platy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나무의 껍질이 얼룩덜룩하게 벗겨진 모양이 마치 버짐(버즘)핀 것 같아 버짐나무로 불리며, 우리나라의 대부분은 '양버즘나무'라고 한다. 

 공기 정화 능력이 탁월하고, 성장 속도가 빠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자라고, 병충해에 잘 견디고,  추위에도 강한 여러 조건들은 가로수로 적격이었을 것이다. 점점 심각해지는 대기오염을 정화시키는 나무이지만 도시 안전을 위해(전선), 상가들의 간판보호 등등의 이유로 닭발 가로수 치기를 행하는모습을 종종 본다. 심지어 아파트 주변의 오래된 장성한 나무들까지 싹뚝싹뚝 심한 가지치기를 당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동네 공원에 자꾸만 '묵은 껍질'을 벗겨내며 견디며 서있는 나이 많은 우람한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있다. 김현승 시인의 '플라타너스'란 시를 적어본다. 


플라타너스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오를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음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며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출처: 문예, 1953





Tuesday, January 21, 2025

먼 빵

 종이 신문을 읽을 시간에 소중한 친구의 전화로 수다를 떨었다. 치루어야 할 댓가(?)는 어제의 구문과 오늘의 신문을 바삐 읽어내야 한다. 푹신한 쇼파에 드러누워 신문을 보다 잠깐 낮잠을 자는 것을 좋아하는데......조금 더 피곤해지는 것이다. 나를 지탱하는 소소한 루틴을 깨면서까지 친구의 전화를 선택한 것이다. 친구는 소중하니까!

미세먼지 주의 문자를 받고 보니 바깥 출입이 부담스럽긴 하였지만 안경과 마스크를 쓰고 공원 걷기를 다녀왔다. 두 팔을 적극적으로 흔들며 걸음의 보폭을 넓혀 빨리 걷고 들어오는 것으로 하루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공원을 가기위해 꼭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에서 따스한 조명 아래 고소하고 달달하고 맛있는 빵을 고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아, 먹고싶다~~~' 아는 맛이 무섭다더니 자동적으로 침이 꼴깍 삼켜진다.  달달한 팥앙갱과 짧짤한 치즈와 크림이 들어있는 마약빵(?)과  짧짤하지만 겉바 촉촉한 소금빵, 산딸기쨈과 부드러운 크림이 들어있는 겉바촉촉의 바게트......결별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소중하니까!'

 몸에 좋지 않다는 것쯤은 일찌기 알았지만 거부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어서 내 몸속으로 집어 넣었던 빵들과의 결별 후 나의 삶은 생각보다 괜찮다. 빵을 만들기 위해 첨가하는 버터와 설탕 그리고 정제된 밀가루를 섭취하지 않은 것은 내가 행할 수 있는 '절제'로 내게 유익한 결단이다. 그러나 빵집 앞 횡단보도에서 눈을 힐끗거리며, 침을 꼴깍거리며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빵들을 바라본다. 지금 여기의 나에게 허할 수 없는  '빵'점자리 식품이다!

바삐 손과 발을 움직여 동네 공원에 도착하였다. 며칠 따스한 기온으로 인해 응달의 미끌거리던 빙판이 녹아 없어졌다. 바삐 걷다보니 몸의 발열 현상으로 인해 마스크가 축축해진다. 마스크를 벗었다가, 안경을 벗었다가 결국엔 둘 다 벗고 초미세먼지를 받아 들이고 만다. 이것은 어쩔 수 없다! 초미세 먼지의 해악은 잠시 잊기로 하고 걷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겨울 밤에 공원은 다른 계절에 비해 사람들이 뜸한 편인데, 빨간 새마을 모자로 기억되는 할아버지가 초미세먼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원 운동기구를 붙잡고 근육 운동을 하고 계신다. 노년의 시간은 근육의 유무로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빨간 모자의 할아버지는 현명하시다. 

걸으며 '마냥 자유로우면' 행복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내게 주어진 한계 혹은 조건 속에서 행복할 수 있으려면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여전히 다다른다. 우선 조건과 한계들이 주는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할 것이고, 혹은 한계를 벗어나려는 과정속에서 만나게 될 가르침과 어떤 의미가 내 삶의 자화상으로서 풍경화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 나에겐 맞는 말이다. 겉바촉촉의 고소한 빵들을 허할 수 없는 조건이지만 삶은 그런대로 괜찮다~~~



  

Monday, January 20, 2025

미안하다

  '실수'도 하고 수시로 연약하고 게다가 '완벽하지 않은 삶의 모습'이 인생의 기본값이다. 하지만 실상은 나름의 최선의 선택을 하며 최선을 다해 정신줄 잡고 인간적인 미완성을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그저 부질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에 휘둘리는 순간에 봉착하게 되면, 그 불행감은 바로 질 좋은 수면의 기쁨과 배출의 즐거움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이 '초민감함'을 어찌해야 하는가. '마음을 비우고, 심호흡을 하고, '그럴 수 있지'하며 마음부터 다스릴까 아니면 무작정 바깥으로 나가 '걷기'부터 할까......

그래, 지구가 멸망하는 일도 아니고 극단으로 치닫는 감정을 '별 일 아니다'하며 방향을 못잡고 울퉁불퉁 뾰족거리며 튀어나오는 감정들을 다둑거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꾹꾹 눌러 놓았던 부정적인 감정이 스프링의 반동처럼 누른 힘을 받아 한꺼번에 팝콘처럼 터져 나와 마침내 나의 정원은 침몰당하고 만다.ㅠ

 심호흡을 하며 각성한 마음과 몸을 진정시켜야 하는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주체적으로 최선을 다해 마음 속 정원을 지켜낼 수 있는 긍정의 에너지 밧테리가 아직도 용량부족이다. 침대에서 뒤척거리다 결국엔 수면의 도움을 준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별 효험이 없는, 수면 보조제를 먹고 말았다.  

'잠과 시간은  격한 감정을 가라 앉힐 수 있다......' 그래서 한정없이 드러누워 지내던 무기력한 시간도 내게 있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그건 그렇고, 실내 자전거를 타면서 감상한 '아버지의 세딸들(His Three Daughters.2023))이란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잔잔하지만  쌉싸름한 맛이 있는 가족영화로 오랜만에 눈물을 나게 만든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눈물이 난다! 왜지?'

나이가 들면서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고 옛날 추억만 공유하는 한때는 같은 밥상에서 같은 잔소리를 들었던 '식구'였던 형제자매가 내게도 있다. 서로가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가 의지할 필요없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각자의 가정에 최선을 다하며 '적당히' 멀리 사는, 한때는 부대끼며 살었던 식구였던 사람들 생각......

누구나에게 당연히 찾아오는 삶의 최종 마무리 단어, 입밖으로 말하기 불편한 '죽음'이란 단어는 더 이상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존재의 '부재감'으로 실감될 것이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딸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 중에서, '미안하다'란 말은 나를 눈물짓게 하였다. 

 '결핍'과 '상처'를 받지 않은 어린 시절이 없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싶다. 나의 아들들도 내가 그랬듯이 어린시절 갖게 되었던 결핍과 상처를 '사랑'대신에 어느 정도 안고 살 것이다 나처럼. '내 삶의 무게에 지쳐 네 그림자를 살피지 못했고, 신경쓰지 못해서......'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 초보 엄마라서......미안함으로 아들들의 결핍과 상처가 치유되길 바래본다. 있을 때 잘하자~~~


Sunday, January 19, 2025

참 잘했어요

 냄비에 물을 조금 채우고 작은 다리가 있는 구멍난 스텐리스 채반을 앉히고, 씻어 놓은 작고 귀여운 붉은 고구마를 올린다. 그 다음 냄비 뚜껑을 닫고 파란 가스 불을 켜면 부글부글 끓어올린 하얀 수증기에 고구마가 말랑말랑하게 변신한다. 서둘러 찐고구마를 만들 필요가 없었는데 '그냥' 몸을 움직이고 말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맛있는 붉고 작은 한국 고구마를 하루에 한 두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리 고소하고 달콤한 기쁨의 맛이라는 것을 몰랐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작고 귀여운 붉은 고구마는 즐거움이다. 조금은 부담스럽고 낯선(?) 월요일 아침을 고소하고 달달한 고구마로  행복의 마중물을 만들었나 보다.  

건조한 공기를 생각해 고구마를 삶아낸 물을 버리지 않고 일부러 뚜껑을 열어 뜨거운 고구마 공기가 집안에 퍼지도록 허하고 한참이나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이리저리 살펴본다.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뉴스에 그만 기분이 불안해진다. 리모컨을 들고 이리저리 심란한 뉴스를 피하다 걸리는 홈쇼핑의 정보 또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건강 보조제를 먹어야 한단 말인가. 후딱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 벗어나야 한다!

인간의 기본 감정을 여섯 가지로 추린다면, 기쁨, 슬픔, 분노, 놀람, 혐오, 공포라고 한다. 긍정적인 감정인 '기쁨'을 제외한 다섯 가지의 감정은 부정적이라서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불행해진다는 글을 읽게 되었다. 위험과 부정적인 일에 민감성을 갖게 된 것은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것( 심리학자, 존 카치오포)이라고 한다. 때때로 시시탐탐 찾아드는 우울감과 무기력이 이해되는 정보이다. 

'그러니까, 누구든 삶이 힘들었던 것이야, 물론 나까지 포함하고 행복해 보이는 너까지도.'

'고의적'으로라도 자신을 행복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재미와 즐거움으로 행복의 꽃이 만발한 정원을 갖느냐일 것인데, '앨버트 엘리스(임상 심리학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이 찾아온다'는 믿음이 가장 '비합리적인 생각'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시간이 내게도 있었는데......'

쉽게 우울과 불안 그리고 무기력에  빠져들 수 있는 주름진 시간으로 접어드는 지금, 난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자문해 본다. 무엇보다 정신줄 잡고 '작정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북돋을 수 있는 어떤 방법, 일상 생활에서 실천 가능한 작고도 구체적 장치들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감사하고, 음미하고, 의미를 찾고......난 귀엽고 붉은 고구마를 삶는 일로 월요일 아침의 '불안'에서 스르로를 구한 것이다.  스스로 칭찬해 본다. '참 잘했어요!'

Thursday, January 16, 2025

둥글게 둥글게

  '오징어 게임2'를 보면서 가장 잔인한 놀이로 인상깊게 기억되는 게임은 '둥글게 둥글게' 게임이였다. '둥글게 둥글게' 동요에 맞춰 함께 춤을 추다가 짝짓기를 하는 게임이다. '생존'하기 위해서 즐겁게(?) 랄라라라하며 춤을 추고 박수도 치면서 빙글빙글 돌면서(?), 속으로는 치밀한 계산과 민첩성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복잡미묘하다. 

선택받지 못할 거라는 공포와 두려움은 누구나 마음 속에 있을 것인데 어찌해야 하나. 선택이 중복되었을 때는 혹은 믿었던 친구가 다른 친구와 짝이 되었을 때는......여러 불편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잔혹상상의 드라마처럼 생과 사의 놀이게임이라면 어찌하겠는가.

교육적인 차원에서 놀이게임은 '게임의 규칙'을 준수하고 속해있는 팀과 협동하고 승리의 기쁨과 실패를 통한 깨달음과 배움을 터득하고자하는 놀이지만, 그 과정은 자칫 '승리'에 과몰입하여 슬쩍 규칙을 어기기 쉽다는 것이다. 승부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특히 게임에 승리하지 못한 패배감은 쉽게 떨쳐내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이다. 기가 죽는 무력감 외에  화와 분노로 표출되고 심지어 누구 탓을 하고 싶은 마음이 순수 열정에 비례해서 쉽게 찾아든다는 것이다. 

'게임의 결과'에 대한 승복하는 방법은 연습으로 터득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놀이게임에 임하면서 '게임은 게임일뿐'이라고 외치며 다짐했던 지난 학기 놀이 수업장면이 생각난다.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추며 '즐기는 자', 바로 네가 승리자!!

 

Wednesday, January 15, 2025

행복의 나라로

 

                                          '열린 창문', 마티즈

앙리 마티즈의 그림을 보며 '창문을 열어라~~~'로 기억되는 '한대수'님의 '행복의 나라'란 노래가 떠올랐다. 대학시절 기타를 배운다며 작은 손가락으로 힘겹게 기초 코드를 누르며 불렀던 노래 중의 노래다. 


행복의 나라

                                    -한대수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또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 주세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줘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벽의 작은 창가로 흘러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고개 숙인 그대여 눈을 떠보세

귀도 또 기울이세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 찾을 수 없이

밤과 낮 구별 없이


고개 들고서 오세

손에 손을 잡고서

청춘과 유혹의 뒷장 넘기며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푸른 청춘의 시간을 지나 새로운 인생의 제2막에 발을 내딛고 있는 지금,  다시 노랫말을 들여다 보니 가사가 참된 '용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둘러싼 장막이 드리우는 어두움을 박차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힘, 닫힌 눈과 귀를 열수 있는 힘, 좁은 우물밖을 나가 날마다 새로운 자연과 친해질 수 있는 힘, 온갖 세상만사에 휘둘리지 않고 가만히 멍때리며 공상할 수 있고 평온할 수 있는 힘, 바람 불고 천둥치는 날에도 태양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힘, 손과 손을 잡고 함께 갈 수 있는 힘, 삶은 즐겁고 행복하기에도 무지 짧다는 것을 깨닫는 힘' 

일단, 미세먼지 있어도 창문부터 열고 볼 일이다. 


 


Tuesday, January 14, 2025

뿌듯함을 맛보는 법

'쪽파(green onion)'는 파와 양파를 교잡한 품종으로 비타민A, 비타민C, 칼슘,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체내 나트륨 배출을 도와주는 식품이라고 한다. 김치 양념을 슬기롭게(?) 처리하기위해 귀찮지만 쪽파 3단과 알타리 무 3단을 구입하였다. 

쪽파를 다듬는 일은 눈이 시리는 일이다.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고 흙이 묻어있는 잔뿌리를 제거하고 하얀얼굴의 단정한 파들을 조심스럽게 살살 씻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여린 푸른색 잎줄기가 멍이 든다. 깨끗이 씻어 쪽파의 흰 부분을 까나리 액젓에 담궜다가 김치 양념을 살살 묻혀주면 되는 일이다. 

하우스에서 곱게 자란 탓인지 너무 부드러워 뚝뚝 끊어지는 연약한 겨울 하우스 쪽파! 머리가 단단하고 아담한 야무진 봄햇살 먹은 쪽파 생각이 난다. 뒤늦은 후회감이 들긴 하였지만 할 수 없다. 역시 두번 다시 맛볼 수 없는 친정 엄마의 쪽파 김치가 생각난다~~~ 붉은 양념에 둘러쌓인 파김치는 통에 담고보니 양이 아주 조금이다. 다가오는 구정에 느끼한 음식을 중화시켜줄 유용한 파김치를 담은 것이다. 시간이 살짝 익히면, 김치 냉장고에 집어 넣으면 된다. 뿌듯함!

내친 김에  총각김치를 다음날로 미루지 않기로 하고 총각무를 잡으로 향한다. 알타리, 달랑무, 총각무를 다듬는 일 역시 귀찮은 일이다. 김치 양념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이리저리 한참이나 냉장고를 뒤졌다. '그럴리가~~~' 엄습해 오는 자신에 대한 불신감은 어찌해야 하는가. '뭐 그럴 수도 있지'하며 놀랜 가슴을 가라 앉히고 손을 움직여 다시 양념을 후닥닥거리며 급하게 만든다. 문제가 발생했지만 대처할 수 있는 자신을 칭찬해본다. 하지만 치매'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어떤 노력이란 것을 해야하는 필요성을 느낀 순간이었음은 확실하다. 

한겨울에 '총각김치'를 담궈보는 것은 처음이다싶다. '단단하고 맵지 않고 아삭아삭 맛있다'는 말을 믿고 역시 3단을 쪽파와 함께 구입해 왔다. '천연소화제'라고 하는 총각무는 열량이 낮고, 총각무에 달려있는 무청은 무와 함께 풍부한 식이섬유를 제공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몸속의 노폐물 배출을 원활하게도와준다니 얼마나 좋은 식품인가. 

'귀찮은 마음'을 누르고 '성실히' 다듬은 총각무(달랑무,알타리)를 깨끗이 씻어 소금물에 절이고, 다시 씻어 물기를 빼고, 붉은 양념을 입혔다. 복잡해 보이던 김치를 담는 과정이 끝났다. 정말 총각무 맛이 단단하고 아삭거리며 맵지 않다. 뿌듯함!!

하루 종일 씽크대 앞에 서서 일한 터라 온몸이 피곤했지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충분할 휴식을 허할  필요가 있다. 뿌듯함이 김치통에서 익어가고 있다~~~기분 좋은 피곤함~~~꿀잠~~~


Monday, January 13, 2025

보물 찾기

 이웃 아파트에 장이 서는 화요일이다. 엊그제 김장을 하고 남은 김장 양념을 가지고 슬기롭게 해결하는 방법을 인터넷 검색을 해본다.  하루가 바쁜 움직임으로 가득찰 것 같다. 평소 귀찮아서 담지 않았던 쪽파와 총각 무를 사와서 다듬고 그리고 남은 김장 양념으로 버무리면 끝이다. '귀차니즘'을 극복하는 '나'를 셀프로 칭찬해주고 싶다.  오늘은 파김치와 총각김지를 담기 가장 적당한 날이다.  

'동화 읽기'와 사랑에 빠진 친구와의 따뜻한 대화가 잊혀지지 않는 아침이기도 하다. 그림과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동화를 읽으며, 생각하고 치유받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환하게 웃는 봄햇살이 내리쬐는 찬란한 그림이 순간적으로 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을. '서로를 칭찬하며 존중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랜 시간을 지나며, 서로의 장단점을 알고 있기에,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일 수 있기에, 단점보다는 장점에 촛점을 두고 서로를 지지할 수 있기에' 지금 우리는 서로의 '소중함'을 더 깨닫고 '보물'처럼 느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물은 가까이에 숨어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로 한다. 

Sunday, January 12, 2025

듣다

 날이 추워짐에 따라 확실히 바깥 활동이 줄어드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기온 차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여 약을 달고 살았던 이주일 넘는 시간은 생존본능적인 차원에서 찬공기에 대한 '민감성'을 장착하게 한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날씨이면 '저항'하지 않고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로 대체하는 것도 슬기로운 선택일 수 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난 찬 바람에 저항할 푸른 나이가 아니다!

 '한파'라는 단어 또한 지나가고 주말동안 날씨가 맑으니 얼른 동네 공원을 걷고 싶다. '해'가 있는 시간에 옷을 겹겹이 챙겨 입고 동네 공원에 나가 보니, 겨울햇살이지만 햇살의 에너지가 있고 없고에 따라 빙판 길의 여부가 갈린다. 평소 다니던 길을 들어선 후에 미끈거리는 서늘함을 발견하고 만다. 발길을 돌리지 않고 신경을 곤두세워  미끈미끈한 빙판 길을 조심조심 피해 발걸음을 내딛다보니, 초긴장감로 인해 맑고도 고요한 즐거움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공원 근처에 위치한 높은 콘크리트 아파트가 만드는 응달진 곳을 벗어나니 공원의 모습은 고요하고 맑은 햇살이 내리쬐는 겨울 풍경이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는 겨울 옷을 껴입은 댕댕이와 그 댕댕이를 옆에서 지켜보며 기다리는 나이지긋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들의 댕댕이, 촉촉한 까만 코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땀이 살짝 날 정도로 빠른 걸음을 하여 공원을 바삐 걸은 후 맛보는 상쾌한 행복감은 두 다리가 멀쩡해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몇년 동안 나에게 '걷기'는 분명 어떤 치유같은 것이었지만 무릎 연골이 닳아지는 댓가를 치루지 않았을까 걱정이 된다. 병원에 가서 소중한 무릎의 상태를 알아보야야 하는데 자꾸 게으름을 피운다.(병원 가는 것이 참 싫다) 지금 내겐  적당한 걷기와 근육운동의 병행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알게 된 사실은 행운이다 싶다. 

글을 읽다가 '그릇된 맞장구'란 단어를 발견하였다. 누군가의 관계에서 소위 '리액션'이라며 부드러운 혀로 내뱉었던 '말'의 '엉뚱한 결과(?)'는, 앞뒤 상황, 맥락은 잊혀지고 본의 아니게 상처로 남게되는 사실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나의 단어의 수는 더 적었어야 하며, 감정적이지 않았어야 했고 더 긍정적이며 장점을 칭찬해주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상호 주고 받을 수 있는 건강한 대화를 했어야 했다.'  

진실하다며 '필터'를 거치지 않고 급하게 내뱉었던 솔직했던 순간들, 친하다며 '선'을 넘었던 부끄러운 순간들을 가끔 나는 후회한다. 반면에 내안에 상처를 남긴 타인의 그릇된 리액션도 역시 자신의 책임에서 자유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기로 한다. 상대방의 말을 더 '침묵'하고 '인내심'을 갖고 잘 들어주는 리액션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침묵'하고 듣기만 하다 내 이야기는 언제할지 '조바심'이 나겠지만,  좋은 사람은 분명  좋은 귀를 갖고 나의 안부를 물어 볼 것이다. 

햇살처럼 환하고 따스한 에너지가 있는 미완성의 초상화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아침이다. 부족하고 모질하지만 천천히 나의 속도로 원하는 초상화를 그리면 되는 것이다. 기미 주근깨를 없애준다는 기적같은(?) 쿠션을 얼굴위에 토닥토닥거리다 아직도 빛나는 눈동자와 마주쳤다. '넌 무엇을 원하니?' '...'근육부자! ㅋ 그리고 마음부자!!'

Thursday, January 09, 2025

Lead me not into Temptation

 '한파'라는 단어로 얼어붙은 금요일 아침이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리모컨을 들고 한참이나 TV 채널을 여기저기 둘러보는 습관은 쉽게 버리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이른 아침 시청자는 나처럼 지긋한 나이테를 두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홈쇼핑은 '여우'처럼 슬기롭게 잘 활용한다. 힘없이 처진 머리를 짱짱하게 일으켜 세우는 샴푸와 온갖 잡티를 커버하는 화장품을 지나, 추위를 가볍게 물리칠 수 있는 헝가리 거위털 롱코트를 한참이나 째려보았다. 코뱅맹이 목소리를 가진 쇼호스트의 영리한 '유혹'은 ' '방송 최저가'란 붉은 미끼로 시작되고 있었다. 

 다행히, 세월따라 드러나는 잡티를 번질번질하게 커버할 필요를 못느끼고, 기꺼이 머리를 일으켜 세울 의지가 내 안에 간절하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옷 욕심이 아직 남아있는 나는 쉽게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한참이나 미그적거렸다. 천만다행으로 입을 기회가 없어 옷장에 걸려있는 옷들을 떠올리며 '있는 옷도 못입고 있어!' '그만그만'  '얼른' 리모컨 전원 버튼을 '꾹' 눌러버리고 벗어났다. 이른 아침부터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한 사람은 리모컨을 들고 TV를 켠 자기자신이었다. 

 새로운 희망을 품고 빠져 나갈까 질긴 섬유질 엮은 굳은 다짐의 새 시간도 빠르게 흐르고 있다.  단 음식과 기름진 음식 그리고 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든 지난 해의 시간은 축복이었다. 무엇보다 포기하고 싶은 상황에서 견디고 인내했던 순간순간은 내안에 더 단단한 내적 힘을 길러주었단 점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싶다. 먼저 모든 생활의 기반인 몸과 마음의 근육을 더 단단하고 크게 키우고,  우울감과 귀찮음이 달라붙지 않도록 더 몸을 많이 움직이고, 내적 성장을 돕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더 자주 갖고, 새로운 것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버리지 말고,  더 '열린 마음'으로 겸손하게 배우는 긍정적인 자세로 올 2025년을 살아낼 수 있기를 바래본다. 

특히나 사람과 사람관계가 가장 어려운 것으로, 그랬구나'하며 다른 사람의 말을 더 귀담아 '경청'하며 말을 자르고 내 말을 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외로워서' 아무 말이나 하는 '아무말 대잔치'를 하고 싶은 유혹에 걸려들지 않도록,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순간이 닥칠지라도, 헝클어진 마음의 풍경화를 내보이지 않도록 '내적인 힘'을 허락하게 해달라고 매우 추운 날 아침에 정신 번쩍차리고 기도해 본다. 

Wednesday, January 08, 2025

빨간 몰입

 무사히 후다닥 제2차 김장을 마쳤다. 무거운 절임배추를 옮기다 허리를 다칠 수 있는 위험요소가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하루가 지난 이 시간에도 허리는 별다른 통증을 내보이지 않는다. 제1차 김장으로 단련된 손놀림으로 전날에 미리 양념을 준비하여 절임배추가 도착하자마자 물을 한시간 정도 뺀 다음에 절임배추에 양념을 입히면 되는 것이다. 차가운 겨울의 시간을 견딘 월동배추는 묵은 지로 활용하기 적당하다.  

김치를 담을 때 사용한  커다란 스텐대야를 깨끗이 씻어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고 '정리'라는 것을 하며 마무리를 해야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장을 하기위해 먼저 구입했던 스텐대야들을 모든 것을 줄인 지금도 가지고 있다. 물론 배추 15폭을 절이기 위해 구입했던 커다란 고무 다라는 없애고 말았지만 스텐대야는 아직 갖고 있다. 편하게 김치를 구입해서 사먹고 싶지만, '아직은' 내 손으로 김치를 담고 싶은 것이다. 할 수 있으니까! 서늘한 곳에 새로 담은 김치통을 내어놓고 살짝 익으면 김치 냉장고에 집어 넣을 것이다. '발효'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단어이다. 

적적해서 습관처럼 틀어놓는 TV를 끄고 대신에 좋은 첼로 음악을 틀어 놓고 시간과 정성을 들인 나만의 김치를 만드는 동안 순수한 '몰입'의 즐거움을 누렸다.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즐거움이 빨갛게 옷입혀진 김치를 담은 날은 기분 좋은 피곤함으로 나를 일찍 잠을 들게 하였다.  

Tuesday, January 07, 2025

할까말까면

 제2차 겨울 김치 담는 날이 오늘이다. 할까말까 망성임끝에 절임배추 20키로를 주문하였다. 하, 세상이 뒤숭숭하니 김치라도 김치 냉장고에 채워져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하고 불확실한 난세(?)를 살아가는 지금의 내게 소금과 설탕으로 절인 저장 음식이 필요했던 오래된 사람들처럼.

 '지구 온난화'와 크고 작은 전쟁이 아직도 진행중이며 국내는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상태에 놓인 상황에서 '생존'이란 원초적인 단어가 앞서고 만다. 삶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것들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지금은 슬기롭고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미적거리지 않고 바로 실천해야 하는 때임에 틀림없다. 

지역'구'에서 운영하는 '텃밭'을 신청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에 주먹쥔 '용기'가 쉽게 나지 않는다. 처음이라 여러가지를 배우고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할 것인데, 아직 게으름과 귀찮음을 이겨낼  '간절함'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아파트가 아닌 '하우스'라고 명명되는 개인 소유의 땅이 있는 집에서 살아본 적이 있다. 외부 수도가 가까운 적당한 곳을 골라 '야채가든'을 만들었다. 들깨와 방울 토마토 그리고 스위트 바나나 고추 모종을 심었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어린 모종을 심었어야 했는데, 거리 조절에 실패해 다시 뿌리 내린 모종을 파서 옮겨 심느라 몸이 이중으로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식물들은 생각보다 나무처럼 자랐었다! 

 미국의 벌레들은 다행히 향이 강한 한국 들깨잎을 파먹지 않았고, 방울 토마토는 방울방울 열리는 열매들의 무게에 쓸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지대가 필요했었다. 가장 좋아했던 '스위트 바나나 고추'는 검은 땅에서 주렁주렁 달콤하게 잘도 열렸었다. 그늘을 찾아 심었던 부추도 생각난다. 물구덩이가 있는 곳에 한국 미나리도 심었었다. 봄이 되면 보약처럼 폭풍흡입했던 미나리! 정성들인 잔디밭에 노란 꽃을 내밀던 민들레의 가치를 알지 못해 그만 잔디밭 농약으로 몰살을 시켰던 기억도 생각난다. 그때는 시간과 정성 그리고 물질을 들인 푸른 잔디밭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동네 숲속에 사는 사슴들이 야채를 좋아한다하여 나의 야채들을 먹어치울까 얼마나 긴장했던가. 매운 고추가루까지 찌끄러 나의 먹거리를 지키려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엔 사슴보다 위장술에 능한 말랑거리고 꿈틀거리는 푸른 벌레들이 토마토의 모든 이파리를 뜯어 먹었지만 말이다. 눈을 부릅뜨고 원흉을 발견했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물컹거리며 꿈틀거리는 푸른 벌레는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존재였다. 농약을 칠수도 없고해서 어느 날 나는 가위를 들고 처단을 하고 말았다. 토마토를 사랑해서 최악이 된 순간이었을까. 내안에서 나오는 '혐오감'과 '폭력성'을 보았던 순간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난 나의 방울 토마토를 지켜냈던 것이다. 

이곳에서 조그만한 텃밭이 생긴다면, 다양한 종류의 상추와 향긋한 들깨 모종 두 그루 그리고 고추나무 모종도 한두개, 케일과 바질'이란 허브도 심고......이른 아침은 불가할 것 같으니 해가 진 오후에 물을 주고 잡초도 뽑아주고...... 날이 더워지면 벌레들이 꼬일 것이고 모기가 달라들어 물겠지......허리 구부려서 잡초 뽑고 있으면 허리도 아프지 않을까? 시간을 덧입어 더 슬기로워지고 있는 자신을 믿어보기로 한다. 할 수 있다! 텃밭에 관련된 정보를 스마트 폰 달력에 기입해뒀다. 이미 나의 정원에 씨를 심은 것이다. 한 가구당 세대주만 신청할 수 있고 공개추첨을 하는 모양이다. 공개추첨에 당선된다는 보장도 없지 않는가. 그래, 할까말까 망설여지면, 하는 것으로~~~

Monday, January 06, 2025

Still Soony

 '우리의 몸은 항상 다르다'란 말은 맞는 말이다. 왼쪽 눈에 살짝 불편감이 있어 거울을 보며 눈알을 요리조리 돌려도을 아무런 증상이 없다. 충혈감과 다래기도 없는데 왜 불편한 것인지 어떤 이유를 찾지 못하니 평온한 마음 속 풍경화에 불안감의 구름이 찾아든다.

엊그제 보았던 'Still Alice'란 영화의 여운이 무의식 속에 남아서인지 잠자리에서 눈을 뜨자마자, 갑작스럽게 잠에서 계시를 받은 것처럼 스마트폰에 낱말 퍼즐 앱을 설치하였다. (개인적으로 여배우 '쥴리언 무어'는 항상 '아름답다'는 느낌을 주는 배우다.)  '조발성 알츠하미어'란 병을 앓게된 저명한 언어학자, 앨리스는 단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고, 순간 멍해지는 증상으로 조발성 '알츠 하이머'란 병을 진단 받는다. 신경세포가 손상되어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의 악화'로 인한 퇴행성 뇌질환으로 알려진 알츠 하이머는 소중한 순간과 기억까지 상실하게 만드는 질병으로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발병된다고 한다. 

'내가 나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무엇을 할까. 

기억력이 딸리면서 쓸모없는 것들을 기억하고 썩 머리도 좋지 않은 나는 영화를 보며서 내심 불안했지 싶다. 게다가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도 대화도 자주 하지 않는 생활을 하는 나는 불안하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삶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하고, 봉사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고, 몸과 마음의 근육부자가 되고, 대화할 사람이 있고, 웃고, 잘 먹고 잘 자고......' 일단 낱말 퍼즐부터 설치하면서 다짐을 한 것이다. 삶이 주름질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삶을 사랑하자고!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



Sunday, January 05, 2025

겸손

 대략 이주일 동안 약을 몸안으로 집어 넣었다. '간'에 무리가 가지 않냐고 약사샘에게 문의를 드렸더니 '물'을 더 많이 마시라고 조언을 주신다. 지난 여름 시원한 에어컨을 틀고 자다 냉방병에 걸려 고생한 끝에 나름 찬바람에 대한 예의를 알게 되었는데도, 나의 예의가 부족했던지 많은 양의 티슈가 필요하다. 겨울 찬바람에 '알러지'란 말에 저항하지 않고 다시 약을 먹으며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만다.

 부드럽고 하얀 티슈에 묻어 나오는 콧물은 멈출 것 같지 않은 기세에 '신기함'이란 단어를 나의 사전에 기록한다. 훌쩍거리며 목안으로 넘기면 가래가 되어 기침을 하게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기에 아무리 '부드러운 티슈'를 사용한다고해도 코끝 주변이 붉어진다. 약없이 자연치유 어쩌고 저쩌고를 포기하고 지금 여기의 나는 '겸손하게' '얼른' 병원에 가는 것이 마땅하다. 완치는 아니지만 오늘부터는 '약'을 정지할 생각이다. '잠'을 충분히 자고 외출시 마스크를 사용하고 음식을 골고루 먹고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있으면 몸이 차차 회복할 것이다.

 새해 첫 주말동안 눈이 내렸다. 온도가 떨어지면 빙판 길이 될 것이 명확하기에 서둘러 날이 밝은 시간에 동네 공원으로 나갔다. 뿌드득뿌드득거리는 눈 밟는 소리가 즐겁고 행복하다. 물론 추위에 대한 완전무장을 하고 나간지라 껴입은 만큼 발걸음이 둔하다. 마스크에서 올라오는 뜨듯한 열기에 안경 렌즈가 뿌여졌다 맑았다를 반복해도, 행여 눈길에 넘어질까 두려움이 앞서도 뿌드득거리는 눈이 쌓인 거리를 걷는 일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아이젠을 신발 밑에 신고 나올 것을, 등산용 스틱을 가지고 나올 것을......두려움이 즐거움에 앞선 것은 사실이다. 일부러 챙겨신고 나간 발목있는 등산화는 새것이라 아직 적응이 안된 상태이다. 눈이 치워지지 않는 인도를 걷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눈사람을만들기 위해 나온 젊은 부부를 몇팀 보았다.  운동장의 흙이 섞인 누런 눈사람은 동화처럼 예쁘지 않았지만 함께 눈사람을 만드는 젊은 가족의 단란한 모습을 보며 두 아이들과의 젊었던 시간이 떠올랐다.

미국에서 눈내리는 날은 손수 차를 운전해야만 통행이 가능했던 터라, 긴장되는 날이었다. 자기 집 드라이브 웨이의 눈을 치우는 것이 법으로 정해진 일인지라 이웃들의 눈치우는 소리가 가득했었다.  아들들이 드라이브 웨이에서 삽을 들고 눈을 치우던 소리, 눈싸움을 하던 소리, 못난 눈사람의 모습..... 습기를 머금은 눈을 삽을 들고치우는 일은 땀이 나는 일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비상용으로 눈을 녹이는 염화칼슘을 구입해 저장해 놓기도 하였다.

지금 여기의 거리는 눈을 왜 치우지 않은 것일까? 알아서들 눈오는 날이면 움직이지 않고 집에 있으면 되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주말이라 시스템이 쉬고 있는 중인가. 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 돌아다니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야회활동을 서둘러 마치고 푹신한 쇼파에 앉아서 '돈워리'란 영화를 보았다. '호와킨 피닉스'가 실존인물인 '존 캘러핸'(John Callahan)역을 맡아 열연을 한다. 누구나 삶속엔 '결핍'이란 단어가 고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쯤은 알만한 나이이기에, 고통을 잊고자 선택한 '술 중독'을 이해할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들로 인한  더 악화된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찌하겠는가. 자신이 주어진 삶에 대한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밖에 없는 고독한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참으로 중요한 것을 새삼 깨닫게 된 영화이다. 솔직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직시하고 못난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안내해 준 좋은 사람.

자신을 용서하는 시간은 누구나 필요할 것 같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과거의 상처들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잊고 놓아주어야 한다. 못난 선택을 내렸던  나를 용서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겠지만 잊어야 한다.    

 '존 캘러핸'의 'Don't worry, He Won't Get Far on Foot' 


  

Thursday, January 02, 2025

어두움에 정지

 셋째날 아침은 '금요일'로 시작된다. 보조 모티터 화면에 여우가 눈밭에서 잠을 자는 모습이 평화롭게 다가온다. 눈밭에서 어떻게 잠을 자지? (아, 북극에서 온 여우들은 눈을 좋아한단다.) 며칠간 함께 연말을 지냈던  아들의 여우 닮은 댕댕이가 품안을 파고들던 따뜻함이 생각난다. 

새해 셋째날은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새 날'로 '백무산'님의 '정지의 힘'이란 시로 자축하고 싶다. 씨앗처럼 어두움에 정지하여 뿌리를 내릴 때이다. 

 

 

'정지의 힘'

                             -백무산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from 'Night Garden' 

Wednesday, January 01, 2025

푸른 결심을 심다

 푸른 뱀의 해, 2025년 첫날이 지나고 둘째 날 아침이다. 소고기가 들어있는 고소한 국물에 쫄깃거리는 흰 떡국과 대파를 넣은 따뜻하고 맛있는 떡국을 먹지 못한 새해 첫날을 보냈다. 오랜 습관처럼 굳어있는 식습관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몸이 추억과 함께 맛을 기억하고 있기때문이다.  '송구영신'을 하겠다며 감기는 두눈을 부릅뜨고 앉아있는 대신에 보약인 '잠'을 자기로 했다. 그래서 새해 첫날 일찍 잠에서 깨어나 떠오르는  새해의 첫날의 아침을 길게 누렸다.

지나간 일년 역시 삶을 힘들게 하는 '고통'이 기본값으로 동반되는 시간이었지만, 긍정의 힘으로 잘 견디고 잘 버티기도 하여 몸과 마음의 근육이 생기기도 하였고, 선물처럼 감사할 일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삶속에서 체험한 작은 기적의 하나로, 그 어려운 비만과의 전쟁에서 매번 패자로 살며 합리화를 하던  내가 '결심'을 하고 귀찮지만 열심을 내어 식단을 바꾸고 목표했던 적당한 몸무게의 숫자에 도달한 사건이다. 

또 하나의 주목할만한 작은 기적은 열등감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장 약한 부분을 공부하고 스스로 치유하고 있는 점이다. 운명이라는 것이 가끔은 얄궂고 심술맞은 얼굴을 갖고 있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터! 등을 펴고, 내 속도로 성실하게 천천히 나의 정원을 가꾸다보면 행복의 꽃들이 만발하게 될 상상을 나이탓을 하며 포기할 순 없지 않는가. 푸른 뱀의 해, 을사년 처음의 시간에 마음밭에 심은 문장은 '삶을 바꾸는 계기는 네 잎 행운이 아니라 내안의 결심에서 온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