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29, 2006

Nobody Knows

케이블에서 일본 영화 'Nobody Knows'를 보았다. 작년에 컴퓨터를 통해 본 영화였는데, 케이블에서 방영을 해서 공부도 하기 싫은 김에 들여다 보았다. 보고나니 가슴이 짠하고 사는 것이 그렇다.

각기 아빠가 같지 않는 네명의 어린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은 엄마를 기다리며, 결국은 포기하게 되었지만, 주민들 몰래 조그마한 아파트에서 생존하는 삶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연락없는 엄마, 손안에 있는 돈은 점점 없어지고, 어린 동생들은 남들 몰래 숨어 지내는 그런 그림을 잔잔하게 감독은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가방의 짐처럼 집에 숨겨 들여왔던 막내동생이 죽어 더 큰 가방에 숨겨 아무도 모르는 빈터에 매장하는 어린 주인공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동생을 묻고 흙을 덮으며 주인공 꼬마의 손가락이 떨고 있는 장면은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산다는 것이 그렇다.

Thursday, December 28, 2006

To Dancing Friend

두통의 멜이 스펨멜 처리되어 반송되었다. 음~,할 수 없이 공개 블러그에 안부를 전한다.

해가 기울자말자 뒷뜰을 나가서 한 한시간 정도 걷고 들어왔다. 핑크빛 하늘과 봄날을 기다리는 나무들과 두마리의 사슴을 보았다. 그동안의 찝찝함은 운동을 하지 않은 연유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몸으로 확인하게 되어 다행이다싶다.

스포츠 댄스를 시작하는 친구가 무지 부럽다. 몇년전 부산의 모 공동체육관에서 재즈 댄스와 스포츠 댄스를 배워 본 기억이 아득하기만 하다. 차차차 그리고 부루스를 뭐라고 했는데...그것도 단계가 있드라고. 어느 곳에선 부부아니면 받아주지 않는다는데, 부부가 함께 시작한 것이니? 생각난다. 우석이 아빠가 나의 부탁을 심하게(?) 거절하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마늘 냄시나는 남의 남편을 붙잡고(?)ㅎㅎㅎ 스탭을 밟던 기억이... 대전으로 이사를 오는 바람에 깊이 있게 배우지 못한 것 무척 속상한 일이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란 책에서 그랬나? 죽음을 앞두고 댄스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었는데, 댄스란 신사적이며, 낭만적이며,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추하지 않게 음악에 맞추어 우아한 동작으로 함께 어울리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신나는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곳에 와서 춤을 한번도 추어보지 않은 것 같다. 음~~

하나, 둘, 셋, 넷, 차차차! 아~ 부럽다! 열심히 배워서 이 친구가 귀국하는 날, 손 좀 잡아주라.

Night of Carbondale

무지막지 심심해서 '나이트 오브 뮤지엄'이란 영화를 혼자 보러갔다. 그나마 나의 영화 메이트인 우빈이가 이 영화를 다른 사람들과 봐버려서 동행없이 홀로 앉아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어색스럽고 거시기했다.

늘어나는 뱃살을 생각하면, 영화보다는 뒷뜰을 걷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말이다. 컴퓨터 그래픽을 위한 기초공부를 해야하는데 하면서 벌써 이주일이 지나버렸다. 한해를 부지런히 살았건만, 내 스스로의 약속을 못지켜서 오는 불안감에 자꾸 음식을 먹고 달래는 한심한 지경에 이르다못해 냉장고가 없는 곳으로 탈출을 했다.

이곳 극장가 흥행 일위이기도 하고, 영어가 많이 나오질 않을 것 같아 '나이트 오브 뮤지엄'이라 영화를 보기로 강행을 했건만, 한마디로 난 재미없게 보았다. 내 취향이 아니었다. 뮤지엄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보여주면 좋을 것 같은 영화였다. 이곳 사람들의 유머감각을 이해하면 영어의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이라는 말을 기억한다. 정말 난 하나도 웃기지 않는데 등치 큰 이곳 사람들은 낄낄대고 웃는다. 난 영어 못한다. 으윽! 난 그들이 웃음소리를 들으며 잠시나마 덩달아 행복해 보았다. 늘 미소지으며 인사하는 이곳 사람들이 난 좋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란 말을 자주 하는 그들이 난 좋다.

단순하고 순수한 기질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와서, 난 야참을 먹었다. 돈 버린 것 같아서...ㅎㅎㅎ 아무래도 난 영어를 배우려는 의지결여증에 걸린 것 같다. 집중이 안되고...제대로 들렸으면 재밌었을텐데...

뒷마당의 나무들이 별들과 함게 밤을 지새우고 있는 광경을 언젠가 그리워하게 되겠지싶다. 오늘밤엔 옷을 잘챙겨입고 뒷뜰을 걸어야겠다. 산장에 놀어와 잠시 산책을 나온 사람처럼 나무가지가 흔들리는 소리와 내 발자국 소리와 그리고 풀잎들이 눕는 소리를 들어야겠다.

Wednesday, December 27, 2006

Dusts in the Wind

간만에 해묵은 먼지를 털었다. 어디서 이런 먼지들이 불어오는 것일까? 우리가 원래 흙에서 와서 먼지를 잘 만드는 것인가! 깨끗하지 못한 상태에도 한해 동안 심하게 아프지 않고, 면역력 늘리며(?)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신 것 하나님께 감사드렸다.완벽하게 깨끗하게 정리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기분전환을 하게 되어 다행인 셈이다.

쓰레기 봉투를 잘들어야한다. 쓰레기 봉투 사이즈만큼 쓰레기가 나오는 것은 매번 신기한 경험이다. 이민가방 두개로 시작한 이곳 생활이 이제 가방 가지고는 해결이 되지 않을 정도로 늘어난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여행을 온것처럼 여행자처럼 타국의 낯설음을 즐기려고 했는데, 그만 하나 하나 사들이며 짐을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여행자의 마음은 어디로 간 것일까? 하긴 마흔이 넘은 나이로 타국생활을 청승맞게 궁상떠는 것도 보기 좋은 일은 아니잖는가하며 스스로 위로해본다.

짐스러운 짐들을 사들이는 일을 자제하며 가볍게 살아야겠다는, 소유하지 않고 존재하는 인간이 되도록 새해에는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Monday, December 25, 2006

730 Days-NO PAIN NO GAIN

벌써 두해가 지나가고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막막함과 그 두려움은 시간과 함께 지나가버린 일이 되었는지 비가 질척거리게 종일 내리는 성탄절에 생각하게 된다.

지나고보니 나와 남편이 선택한 결정은 두 아들의 교육을 위해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것을 감수하는 교육열 높은 극성 엄마의 대열에 서게 하였다. 자식들 교육을 위해 부부가 장기간 떨어져 지내는 것에 대해 난 얼마나 냉담하였던가! 이곳으로 향하기까지 그것은 쉬운 과정이 아니었고, 그리고 어쩌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때론 날 위로하곤 했었다.

주유소에 가서 직접 기름을 넣던 날, 체크를 처음 쓰던 날, 미국 운전 면허를 취득하던 날,...고개 넘어 고개를 넘어 강한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지도...가장 힘든 것은 외로움과 지루함을 이기는 것이다.

Rainy Christmas

비가 내리는 크리스마스다!

비가 내리는 크리스마스는 처음인 것 같은데...요즘들어 날씨가 봄날같아서 하얀 성탄절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막상 비가 내리니 마음이 질척거린다. 꼼짝 않고 우석이와 우빈이랑 텔비앞에 앉아 단란(?)하게 보내서 좋긴 하지만...

하루종일 방에 콕하고 박혀있었더니 몸도 무겁고 마음도 무겁고 해서 코에 바람을 넣고 와야겟다.

Wednesday, December 20, 2006

Happy Birthday, Ben!!!

12월 20일은 우빈이의 생일이다. 미국에서 두번째로 맞는 생일이다. 우빈이가 좋아하는 쵸코케익을 파넬라에서 주문을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촛불을 구하지 못했다. 얼마나 불편한 일인가! 한국의 케잌 문화에 비추어 본다면...

외식을 할까 물어보았더니, 사랑스런 우빈이 한다는 말씀, 엄마표 스테이크가 젤 맛있다는... 이제 우빈이를 데리고 영화를 보러간다....

영화제목이 뭣이드라...하여튼 록키 영화가 두관에서나 하길래 그래도 뭐가 있겠지 싶어 저항하는(?) 우빈이를 끌고 들어갔더니만 우빈이에게 미안하고 말았다. 빠빠빰 빠바밤...ㅎㅎㅎ 록키는 미국영화다! 우선 영어 말이 많아서 느낌이 오기가 힘들었다.ㅎㅎㅎ둘째, 실버스탤론 특유의 발음이라서 더 느낌이 오지 못했다.ㅎㅎㅎ셋째,볼거리가 없었다. 젊고 아름다운 청년이 화면에 얼쩡거리는 것도 아니고 이것은 나이든 록키가 뭐라고 중얼대기만하니... 우빈이 눈치를 몇번 보았다. 정말 미안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록키를 기억하라, 아니면, 한번 다진 체력은 영원히? 아! 록키는 영원하다! 빠바반 빠바반...디지게 두들겨 맞다가 극적인 찬스에 빠바반 빠바반! 과거를 먹고사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시 영화를 만들어 흘러가버린 시간을 건드려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가 함께 늙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록키 영화를 본지가 얼마나 오래전 일인가! 이제 내 아들과 함께 늙어버린 영웅의 뒷이야기를 보게 되다니...

빠바반 빠바반...울 우빈이도 누군가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지! 이 세상을 빛내라는 뜻으로 엄마와 아빠는 네게 '우빈'이란 이름을 주었고, 그리고 엄마 아빠의 기쁨이며 사랑이란다. 언제나 인사성 밝고, 고운 마음을 가진 나의 작은 아들, 14년전 이날 우빈이가 우리에게 왔었다.빠바반 빠바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하고, 칠전팔기의 끈기도 있어야 하고, 절대 쓰러지지 않는 굳건한 체력도 있어야 하고, 이쁜 여자도 있어야 하고...멋진 남으로 굵어져야 할텐디... 기도해야겠다.

Monday, December 18, 2006

Congratulations

교회 박집사님 졸업식이 있어서 토요일 오전엔 에스아이유 아레나에 갔다. 처음으로 참석해 보는 미국대학 졸업장이었다. 몇년 뒤엔 내가 학사 내지 석사모를 쓰고 그 자리에 서서 축하를 받을 생각을 하니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학생처럼 갖게 되었다. 겸손하고 인사 잘하는 박박사님의 졸업을 축하하며 교우님들과 한컷! 미국에서의 긴 시간을 졸업하신 것을 또한 추카추카!!!

Pursuit of Happiness

며칠전 '윌 스미스'가 나오는 영화를 보았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힘들게 펼쳐졌다. 이곳의 실정을 고려한다면 꽤 많은 미국인이 관람을 한 편이었고, 그리고 흑인들이 많이 왔던 점 또한 인상적이었다.

남자가 가난하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젊은 이들의 실업난은 하나의 사회문제이고, 그것은 불행한 우리 사회의 한 구석진 모습인 것이다. 모두가 잘살고 모두가 행복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다행히 주인공은 머리가 명석하고, 품성 또한 성실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험을 이긴 인간승리의 모범이 되었지만 말이다.

나에겐 아들이 둘있다. 과연 그들은 직업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까? 직업과 꿈이 일치하다면 행복한 일이겠지만,그들이 지닌 꿈들을 실현시켜줄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우리 아들들은 아직 모르는 것 같다......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길이라 여기며 기러기의 길을 선택한 것이 그들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었느지는 훗날 그들의 삶의 의미로 매듭지어지는 일이겠지만, 멋지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길러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누가 교육에 대해 최선의 길이 이것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인사 잘하고 예절 바르고, 몸 건강하고, 성실하게 좋은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엄마로서 가르쳐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지만 그것은 쉬우면서도 참으로 어려운 것인 것 같다. 마음에 든 사람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것은 쉽지만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에게 웃어주는 일은 참 어렵고, 가까운 사이에 예의를 지켜 주는 것 또한 어렵고, 일상의 일들에 지치지 않고 성실하다는 것은 쉽지 않다. 건강한 몸을 가꾸어 나가고 건강한 정신을 지니고 산다는 것 또한 말처럼 쉽지 않다.

아들들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을 펼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일 또한 나의 중요한 역할인데 나는 부족한 엄마임이 틀림없다. 거룩하고 고상한 엄마는 좀 어렵고,ㅎㅎㅎ 엄마로서 아프지 않고, 밥 잘해주고, 운전해주고, 그리고 감시하고(?)ㅎㅎㅎ 그렇게 해주는 것이 나로서는 최선인 것을 인정하고 행복하게 매일 매일 살아주는 것이 그들을 부담주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굵어버린 큰 아들에게 꼭 보라고 의도적으로 권유를 해야겠다.ㅎㅎㅎ

영화의 주인공은 전문적인 직업을 처음 갖게 되었을 때를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따뜻한 집에서 거할 수 있고, 단란하게 모여앉아 밥묵고, 쇼파에 앉아 함께 텔레비젼 보고...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누군가에겐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최소한 이 영화는 권할만 하다. 간만에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렸다. 흑인들이 젤로 훌쩍 훌쩍...

Friday, December 15, 2006

CHS MUSIC NIGHT


Making Memory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하면 사람들은 주부 가요 프로그램에 나가기를 가장 큰 칭찬의 모습으로 권하곤 했었다. 물론 시디를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이 가장 마음에 든 달콤한 칭찬이었지만... 젊고 싱싱한 시절엔 아이들이 어려서 시간을 내지 못했고, 직장생활을 한 후론 방송국에 가는 것이 그렇게 매력적인 일로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37의 나이가 한 숫자를 더하게 되기 전 어느 날, 저물어 가는 한 청춘의 끄트머리를 잡고 방송국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의 예선 연습곡은 '사랑 결코 시들지 않는' '서문탁'의 파우워풀한 노래였다. 노래 제목처럼 결코 시들지 않을 것 같은 열정으로 부르는 것을 난 좋아했고, 내 목소리는 운좋게 가능했었고, 사람들은 열광해 주었었다. 난 나의 경험에 힘입어 더 늙기 전에 내 얼굴을 텔레비젼 박스에서 보고 싶었다.

악보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고, 그다음 어떻게 연습을 하는 것이 문제였다. 반주가 마땅하지 않기에 할 수 없이 난 노래방을 선택해야만 했다. 며칠의 연습을 하고 용감 무식하게 난 서울로 가는 새마을호 기차를 타고 '덜커덩 덜커덩'상경을 하였다.ㅎㅎㅎ

여의도 KBS 방송국! 예선무대의 떨림!ㅎㅎㅎ 노래좀 한다는 전국의 아줌마들이 모였단다. 물론 난 예선을 무사히 통과를 했다. 하지만 기름진 피디 나에게 노래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제안이 아니라 각본이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내가 본선에 나간 주부들 중 두번째로 나이든 사람이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골고루 나이 연령층을 배려하고, 노래 스타일과 방송 횟수까지 그들의 자료에 의해 파악하고 골고루 분포시키고자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 많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그에 따라 광고 수입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그들의 전략을 난 이해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저런 이유로 나에게 다이나믹한 그 노래 대신 내가 두번째로 적어낸 노래를 본선에 나가기를 권했다. 난 그때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노래는 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왜냐면 내 노래는 잔잔해서 대상을 받을 만큼의 도전적인 노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역할을 포기할 순 없었다. 비록 들러리가 될지언정! 난 텔레비젼에 나오고 싶었다.ㅎㅎㅎ

방송 스케쥴에 의해 난 부산 모 노래방에서 연습을 하였다. 쉬운 곡으로 알았었는데, 막상 연습을 하자니 티나지 않게 어려웠다. 어떤 다이나믹한 부분이 없는 서정적인 느낌의 노래를 연습하는 것은 화끈한 노래보다 어려웠다.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이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이 노랫말을 음미했다. 악보를 구하는 동안 이 노래가 샹송 번안곡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한국 원래 고유의 유행가가 아니란 점이 아쉬웠다.

방송 녹화가 있는 날 야생적인 나의 머리는 동네 미장원 아줌마의 손길로 고상하게 풀렸고, 그냥 심심해서 나가는 나는 싱거운 정장을 입고 나가기로 했다. 차후에 의상에 관련된 젊은 녀들에게서 한소리 듣게 되었지만...그녀들은 쇼적인 것을 원했었다. 돈이 없어 의상도 협찬도 못하는 실정이었고, 더욱 웃긴 것은 속눈썹까지 하나 사오라고 했었던 것을 난 아직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부분이 후회되는 부분이다. 이왕 방송이 그런 것이라면 왜 난 의상에 더 신경을 쓰지 않았었던 것이었는지. 방송이 나간 후에 친지 친구들은 왜 그렇게 옷을 입었냐고, 왜 그렇게 머리를 했냐며, 왜 그노래를 했냐며 속상해했다.ㅎㅎㅎ

무대화장을 마치고 녹화전 리허설을 하였다. 내 번호는 일번이었다. 그때 난 내 번호를 보는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것은 야구 선수 번호가 아닌 것이다. 진정 선수는 나중에 나오는 것인데... ㅎㅎㅎ 텔비에 나가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날 진정시켰다.

무대체질인 것을 또 다시한번 깨달았지만, 난 담대했다.ㅎㅎㅎ 정말 떨리지 않았다. 일찌감치 포기해서인가? 나도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녹화전 우승자가 눈에 보였다.

그러나 방송을 앞두고 난 가슴이 떨렸다. 드디어 내 얼굴이 전국구 방송을 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내 얼굴을 보았다, 텔레비젼에서!!! 그리곤 난 더 이삐게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ㅎㅎㅎ내가 노래 부르는 모습은 참 못생겼다.ㅎㅎㅎ 내가 오디형인가보다....

Memory of TV BOX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마주보며 속삭이던 지난날의 얼굴들이 꽃잎처럼 펼쳐져 간다. 소중했던 많은 날들을 빗물처럼 흘려보내고 밀려오는 그리움에 나는 이제 돌아다본다, 가득찬 눈물 너머로.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거울을 보면 생각이 난다. 어린시절 오고가던 골목길의 추억들이 동그랗게 맴돌아간다. 가슴속에 하얀 꿈들은 어느 하루 잃어버리고, 솟아나는 아쉬움에 나는 이제 돌아다본다,가득찬 눈물너머로.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눈을 감으면 생각이 난다. 헤어지던 아픔보다 처음 만난 순간들이 잔잔하게 물결이 된다. 눈이 내린 그 겨울날 첫사랑을 묻어버리고, 젖어드는 외로움에 나는 이제 돌아다본다, 넘치는 눈물너머로."

노래방 18번이다. 소녀시절엔 라이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 멜로디가 좋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엔 노래가사가 좋았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나의 18번이 되었고, 사람들은 이 노래를 들으면 내 생각이 난다고 하였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Tuesday, December 12, 2006

Ben in Giant City Band

어리고 사랑스런 우빈이가 무대위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가슴 뭉클한 일이다. 클라리넷을 시작한 지가 5개월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법 소리를 내는 것이 자랑스럽다. 나의 아들이 굵어가고 있다.

KIMCHI

비오는 날에 김치를 담궜다. 토요일에 희멀건 배추를 사놓고선 나의 게으름은 이제서야 거사를 치루게 하였다. 한국은 지금쯤 김장철인가? 알뜰 주부답게 땅딸하고 고소한 배추를 사서 딤채에 담궜던 기억이 이제 아련하기까지 하다.

비가 오는 날이어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모처럼 맞는 한가로움 탓인지 한국에 두구온 사람들이 몹시도 그리운 날이다. 특히나 김치를 보니, 엄마 생각이 간절하다. 지금 시간은 잠들어 있을 시간이라 목소리도 들을 수 없고...

엄마의 김치가 먹고 싶다......

Sunday, December 10, 2006

Happy feet


movies.warnerbros.com/.../pages/SC19-4.html
난 이 영화를 두번 보았다. 왜냐면, 이 영화가 날 웃게 만들고 따뜻한 마음을 일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종의 왕따들을 위안 영화라고 본다.ㅎㅎㅎ

학교에서 잠시 국어교사로 있을 때, 학교현장의 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왕따의 여러 종류에 대해서 학생들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은따, 영따, 왕따,...다양한 따돌림의 형태들을 분류해 놓은 자체가 참으로 흥미로왔었고, 그리고 각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 사이엔 각 형태들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자신 보다 못한 사람과 자신 보다 잘난 사람을 무시하고 질시하며, 어떤 힘있는 세력의 그늘에 들어가 입을 맞추고 거드는 모습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왕따의 즐거움(?)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그것은 사회성이 부족하기 보다는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선 치루어야 할 댓가의 한 모습을로 그려지고 있었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나를 왕따로 만드것이냐 아니면 자신이 세상 사람들을 왕따를 만드냐에 있다. 난 목표가 있는 사람중의 하나이다. 물론 내가 이곳에 기러기의 삶을 꾸려나가는 나의 목표는 거룩하지도 거대하지도 않다. 나의 자식들의 더 낳은 미래를 현재에 심어 줄 뿐이다. 그 와중에 내가 겪는 고독을 남들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난 이곳 카본데일의 구석에 앉아, 간혹 남들을 왕따시키는 왕따란 사실을 본의 아니게 인지하게 된다.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것에 대한 댓가로, 늦은 나이에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분주함으로, 혹은 밥 먹고 차 마시며 수다떨 수 있는 조직의 결여로, 외로움과 씁쓸한 느낌이 주는 유쾌하지 못한 감정의 휘몰이에서 벗어나기 힘들 때도 있었다. 이곳의 생활이 그것이 전부가 아니기도 하지만 난 간혹 그들을 왕따시킨다.

이 즈음에 난 '해피피트'란 영화를 두번이나 보았다. 남들과 달라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ㅎㅎㅎ

DECEMBER IN LIGHTS

NOVEMBER

REEDS IN FIELD

HIS WISH...BY BEN

CUTE BIG GUY-BY BEN

Thanks...Giant City Park





Thursday, December 07, 2006

BODY+MIND=SELF?

무엇이 우리를 만드는 것인가? 먹는 음식일까 아니면 읽는 책일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어떻게 변할까?

더욱 작아진 주먹만한 얼굴에 더욱 오똑해진 콧날과 왕구슬같은 눈망울 그리고 입술은 더욱 두터워진 얼굴이 섹시하며 진보적이다고 말할까? 가슴은 더욱 풍선처럼 부풀어지고, 허리는 개미처럼 가늘어지고 팔다리가 더욱 길어져 섹시한 경쟁력있는 몸매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서적에 의하면, 앵두같은 작은 입술이 미녀도에 나오는 이상적인 입술이지만 시대가 변해 지금은 시원하게 벌어진 입사이로 보이는 큰 미소가 매력적으로 그려질 때가 많다.

인간의 한 속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난 큰 입술을 선택했다. 목소리 크고 빡빡 우기는 사람이 이긴다고 말하지 않는가! 미래에도 목소리가 큰사람이 이길 것 같기에, 큰 입술로 나의 메세지를 극대화 하고 싶었다. 그것은 영향력이 큰 입술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침묵은 금이 아니기에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제대로 표현해야 하는 것도 미래 인간이 가져야 할 능력중의 하나로 본다. 좋은 생각으로 좋은 말을 세상을 향해 내뱉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쿵 저러쿵 삼삼오오 모여앉아 할일 없이 시간죽이며 남 뒷땅 까는 인간들 또한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영향력있는 빅마우스를 가진 인간들에게 이 작품을 보낸다. 물론 나 또한 이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냐면 나 또한 남 잘되는 것 못보고, 나 보다 잘난 인간 용서못하기 때문이다. 쭉~계속해서 뒷땅을 쳐라, 할 수 있는 한!!!

Big Mouth




Wednesday, December 06, 2006

I'MPOSSIBLE


콜롬보스의 달걀을 기념하는 작품이다. 이미 '콜롬보스의 달걀'이란 작품이 있다는 사실은 내 작품이 다 끝나가는 즈음에 알게 되었지만, 난 달걀을 볼때마다 콜롬보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하곤 했었다.

직선이 없는 달걀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콜롬보스는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으로 달걀의 밑부분을 조금 깨어서 달걀을 세웠다. 시멘트처럼 굳어버린 전형적인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가 않다.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틀을 깨기엔 달걀의 밑부분의 상처가 난 것처럼, 갈등은 필수적이고, 그리고 그런 과정없인 진보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난 콜롬보스이 달걀의 밑부분에 촛점들 맞추고 싶었다. 부숴지고 상처난 환골탈퇴의 모습을 나무의 형상으로 바꾸고, 그리고 그 나무는 시간을 더하여 우리의 삶속에 자라나는 것으로 나타내고 싶었는데, 그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나의 첫 작품이 마르는 과정에서 금이 가며 부숴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기존의 것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얻는 것은 그런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영감을 뒤로 한채, 난 서둘러 다른 재료를 가지고 다시 시도를 해야했다. 이번엔 오븐에 굽는 흙으로 시도했더니 금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금이 가버린 작품이 주는 이미지만큼 강렬하지 못했다.

이번 학기의 마지막 프로젝트들을 하는고로 시간을 이것에 모두 투여할 수 없는 실정이라서 난 그냥 주저없이 한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금이 간 부분을 더 포커스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나무의 형상으로 그림을 그렸다. 청동의 이미지를 만든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지만 더욱 완벽하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크다.

잘못보면 거시기(?)처럼 보인다는 말은 속으로만 해야한다. 난 절대 그런 의도가 없었으니깐...있어도 상관없고...ㅎㅎㅎ


The Process of I'MPOSSIBLE

Monday, December 04, 2006

Soony in Lights

어두움이 없다면 밝음도 없을 것이고, 이 세상 모든 것은 빛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을 일깨운 프로젝트였다. 빛의 다양함이 표현하는 다양한 색, 그리고 그에 따른 이미지들과 실루엣을 경험하는 그룹 프로젝트였다.

이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는 등불이 되자고 습관처럼 마음 한구석에 간직했지만, 멀쩡한 두 눈을 가지고도 보아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는 장님같은 하루하루를 꾸려나갔던 사실을 고백한다. 내공을 쌓아 내 빛을 가지고자 분주한 때가 있었다. 아는 것이 힘이고, 때로는 아는 것이 병이 될 때도 있지만, 절대로 아는 것은 힘이고, 그리고 배워서 남 주자며 열심히 스스로를 깨우쳤건만,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세상 잡식의 쓰레기라 허무할 때도 있었다.

허나, 내 눈을 밝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오늘 겸손히 받아들인다. 내 자신속에 잠들어 있는 내 빛을 일깨울 때다......

Duck Hunt




Lights in Dark





Sunday, December 03, 2006

The Letter from My name

순할 "순"이로다! 어린시절 나는 내 이름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많고 많은 글자 중에 촌스러운 이 글자를 내게 주었던 사연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태어나던 시절 '순'자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으며, 왜 이 글자를 내게 주었던 것이었을까?

어떤 사연으로 시골 작은 어버님께서 내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시골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부분이다. 어린시절 시골에 가면 '순'자 돌림의 이름들이 널려있던 시절을 난 기억하고 있다. 농경사회에선 여자가 고분고분한 것이 최상의 미덕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훗날 하게 되었지만, 난 촌스러운 그 글자에 대한 자부심을 갖기엔 너무 어렸고, 무식단순했다.

아직까지 모든 것을 부드럽게 감싸고 흘러가는 물의 이미지를 닮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얼마나 위대한 힘인가! 아무 색도 없고, 아무 형태도 없는 물의 이미지를 닮는 다는 것이! 낮은 데로 흘러가는 물의 겸손함과 깊은 곳을 이루는 그 깊이를 간직하는 것이!

오늘날 나는 소망한다. 물의 유연함과 겸손함을 닮을 수 있도록!

Saturday, December 02, 2006

Someone's Bedro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