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26, 2018

Nevertheless~~~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 아침 수영을 가고 싶다~~~ 콧물 끝에 기침 그리고 휴식 다시 겨울 아침 수영을 갔더니, 바로 비염! 이걸 어찌 한다지?

요즘의 의학은 '면역력'이란 단어로 불가항력적인 병들의 원인을 기본적으로 이해할려고 한다는 말을 듣은 적이 있다. '스트레스'란 단어로 모든 병의 결론을 봤던 과정을 지난 좀더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겠다고 보는 것이다. 근간에 벌어지고 있는 신체의 노후화와 더불어 동반되는 각가지 병들의 원인은 '면역력'이란 단어로 이해되면 차라리 단순하게 받아 들여지는 것 같기도 하다.

작년엔 이러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수영을 다녀온 후엔 두손 들고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와야 할 모양이다. 40대에 항생제를 먹지 않고 살았는데 50대의 몸은 숱한(?) 항생제를 먹고 산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늙어가고 또한 길들어지며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인가.

동쪽으로 솟은 태양은 눈부시게 남쪽 창문을 빛나게 한다. 아침뉴스에 의하면 무지 추운 날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수영을 가지 않을 순 없다.

몹시도 추운 겨울날 아침수영을 가기 위해서,
'맹자'님의 인,의,예,지를 마음속에 안고 가려한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사람안에 선한 본심을 자극하는 사람이 하루 되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부끄러움을 알고 사양하는 마음을  그리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을 안고서 운동하면 넘 복잡한가?

그려, 아무생각 없이 운동 다녀올겨~~~






Wednesday, December 19, 2018

Become Myself

멍하니 몸과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지내는 것은 참으로(?) 쉬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좀 괜찮아졌다는 반증이라도 되는 것 아닐까.

미역국에 막 지은 밥 한공기를 말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좀 괜찮아졌다는 반증이라도 되는 것 아닐까.

몸과 마음을 움직이지 않아서  아니면 심하게 몸이 아픈 탓인 것인지 밥맛과 입맛이 없고 소화가 좀처럼 소화가 되지 않는 나날을 꽤 오래(?) 꾸린 것 같다.

좀 더 음식을 억지로라도 몸에 밀어넣고 장을 보러 갔다.  겨울을 이겨내고 있는 붉은 산수유 열매들이 축쳐져 있었지 싶다. 어찌 시간을 이길 수 있으랴...

군밤을 파는 트럭이 변함없이 그 똑같은 자리에서 발길을 멈칫거리게 만든다. 흥겨운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군밤 아저씨의 낭만에 부합할 현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스쳐 지나왔지만서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 싶다. (군밤 아저씬 현금만 받으신다 ㅋㅋ)

가까운 거리에 있는 슈퍼에서 장을 보았다. 평소에 까칠하고 도도하게 손님을 대하던 캐셔 아주머니와 상대하기 싫었지만,  할 수 없이 장바구니를 내밀었더니 친절하고 공손한 언행으로 손님을 대한다는 사실을 알고 말았다. 교육을 받은 것일까? 혹시 몸과 마음이 아픈 나의 행동이 상대방을 좋은 사람으로 행동하게 하였던 것인가?

Now I Become Myself

Now I become myself. It's taken
Time, many years and places; have been dissolved and shaken,
Worn other people's faces,
Run madly, as if Time were there,
Terribly old, crying a warning,
Hurry, you will be dead before-'
(What? Before you reach the morning?
Or the end of the poem is clear?
Or love safe in the walled city?)
Now to stand still, to be here,
Feel my own weight and density!
The black shadow on the paper
is my hand;shadow of a word
As thought shapes the shaper
Falls heavy on the page, is heard.
All fuses now, falls onto place
From wish to action, word to silence,
My work, my love, my time, my face
Gathered onto one intense
Gesture of growing like a plant.
As slowly as the ripening fruit
Fertile, detached, and always spent,
Falls but does not exhaust the root,
So all the poem is, can give,
Grows in me to become the song,
Made so and rooted by love.
Now there is time and Time is young.
O, in this single hour I live
All of myself and do not move.
I, the pursued, who madly ran,
Stand still, stand still, and stop the sun!

by May Sarton


2011년에  나를 찾은 모습이다. 내 정원에서 자라난 해바라기를 봄여름가을겨울 동안 바라보며 나를 찾았던  증명사진이라 올려본다. 

Monday, December 17, 2018

Hybridity

엊그제 내린 눈을 녹일 겨울 햇빛은 부족했나 보다. 군데 군데 햇살이 다가가지 못한 곳에 웅크리고 있는 하얀 눈들이 보이는 월요일 오후이다.  평소 잘 먹지 않는 '콩나물국'이라는 것을 끓이고 식구들을 위한 저녁 먹거리들을 대충 준비해 놓고 오랜만에 컴앞에 앉았나보다.

매듭을 만들고 있는 시간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늘 그렇듯이 뾰족한 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순간 순간 자잘한 의미를 만들지 않으면 살아간다는 것이 허허롭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에 대한 해결방법을 찾아 가고 있는 지금 여기 오늘의 나는 연약하기 그지 없다.  그동안 별탈없이 건강하게 살아서 몰랐던 것이었다!

타국생활중에 이런저런 큰 병 없이 무사히 짧지 않은 시간을 꾸렸던 것을 지금 여기서 뒤늦은 감사함을 가져본다. 그 더 젊었던 시간에도 염려와 걱정으로 어두움속에 거했던 것 기억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것이 젊음이었고 열정이었으며 사랑이었던 것을 어두움 속에서도 빛나고마는 소중한 것들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 같다.

중독수준이라 할 수 있을 만큼의 수영사랑을 정지하고 집에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약간의 우울감을 동반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잘 견디고(?) 있는 건강한(?) 자신을 보아서 다행이었지 싶다. 좋은 책을 들고 집중하기 좋았고, 건강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기 좋았고, 어수선하게 늘어져 있는 불편한 관계를 정리하기도 좋았고 그렇고 보면 꼭 필요해서 준비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되었다.

문제에 당면해 해결방법 하나를 시도했고 큰 다행이었지 싶다. 능력과 소신을 가진 의사샘을 만나 두려움 하나를 덜어낸 것이기에 쓸데없이 우울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자축하는 의미로 미장원에 가기도 하였다. 지금은 잠시 정지하고 더 날아오를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매듭짓고 싶다.

그건 그렇고,
왜 제목이 hybridity냐고?
퀸의 기사를 보다가 마주한 단어이기도 하고, 내 정원에서 자라던 하이브리드 장미들이 무지 보고싶고 그립기도 해서 그냥 제목으로 달아 보았다.  아마도 이 어려움을 이기고,  난 하이브리드로 강해지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덜덜 떨린다고? ㅋㅋ




Wednesday, December 12, 2018

Home, Sweet Home

눈이 흩날리는 흑백의 풍경을 바라보는 오늘은 아직도 코프캔디를 입에 물고 있는 중이다. 절대 아플 것 같지 않았는데, '절대'란 말은 어쩌면 지혜롭지 못한 단어이기도 하다. 따뜻한 물을 끓이고, 집안 온도를 높이고, 좋아하는 수영도 가지 않고, 약도 잘 챙겨먹고, 이런 성실한 자세로 내몸에 찾아든 병님을 대하면 시간과 함께 점점 나아질 것이란 습관적인 희망을 가지고 받아들이고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프고 나면,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을 하며 환하게 웃었던 수영장 여인이 생각난다. 두어 차례 큰 수술을 하여 고통의 쓰라린 주름도 있을 것 같은데 그녀는 해맑게 웃는다는 것이다. 병이란 것이 사람을 더 단단하게 하고 맑게 만든다는 생각이 스쳤던 것 같다. 하긴, 아픔으로 인해 부정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자기보호적으로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그런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 눈오는 날 왜 그녀의 환한 큰 미소가 떠오른 것일까. 난 사실 그녀를 잘 알지 못한다.

조경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  마당 넒은 집에 살았던 40대의 시간이 생각난다.  아들들과 삽을 들고 땅을 파서 어린 나무를 심었던 그 봄같은 시간의 풍경이 떠오른다.  집이 열한구 정도 되는 마을에 살게 되었는데 울타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마을 규칙이었다. 그래서 사생활 보호겸 나무 울타리를 만들 생각있었다.  나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한 탓으로 나무의 성장속도나 나무의 품성을 몰라 너무 가까운 거리를 두고 나무를  심은 적이 있다. 추후 결국은 나무들을 다시 뽑아 내어 이중 삼중으로 고생을 하며 나무의 자리를 찾아주던 무식해서 힘들었던 시간이 오늘 내게 가르침을 준다.

아무리 같은 종류의 묘목이라도 거리를 지켜주지 않으면 병들어 말라가며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는 것이다.  난쟁이 나무라고 불렸던 향나무과 나무는 서로가 닿은 부분이 갈변하며 죽어가는 것을 보았기도 하다.  사람사이도 마찬가지로 적당한 거리로 존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여 친밀한 관계로 오해를 하여 예를 잃고 다가간다든지, 인간적인 기대를 한다던지 하는 그런 경우가 만들어질 때가 있는 것이다. 존중하며 예를 지키는 것이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서로가 자유로울 수 있는 거리를 만들고,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 왜 어려운 것일까.

때때로 살다 만들어지는 씁쓸한 뒷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고 그것 또한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다. 일부러 계산적으로 편집된 불편한 진실을 들으며 분을 삭혀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분을 부추기고 이간질과 염장질을 하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어 도망치는 나를 본다.  먹을 거리나 얻어 먹을 것이 있어 꼬리를 흔드는 개들의 행동을 일삼는 친절한 사람들을 피해 도망치는 나를 본다. 그들은 절대 비난받고 싶어 하지 않으며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난 도망친다.

그래서 어디에 있냐고?
ㅋㅋ
아파서 집에 있다~~~ㅠㅠ


Monday, December 10, 2018

Under the Moon

Darron Almond, from Full Moon

서울 삼천동 pkm 겔러리에서 영국 사진작가, 대론 아몬드의 전시회가 있다고 한다. 햇빛이 다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달빛 아래에서 발견하곤 한다는 작가는 20년 동안이나 보름달을 스승으로 모시고 따라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에 관한 기사를 신문에서 보고 가슴이 조금(?) 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Night Garden' 시리즈가 생각이 났다. 여기서 잠시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다. 

밤에만 사진을 찍는다는  대론 아몬드의 전시회에 가보고 싶다.




Saturday, December 08, 2018

All Right, All Right

오라이 오라이 하며 버스를 두들기던 외침이 떠오르는 겨울 아침이다. 그려, 오라이 오라이 쭈욱 가면 되는 것이다.

눈앞이 캄캄해져 쓰러졌던 그날 아침이후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가 뚜렸해지고 있음을 본다. 부질없고 쓸모없는 헛된 집착으로 부터의 자유를 얻고자 하는 열망을 바라는 뚜렷한 자신의 초상을 보게 되었기도 하다.

아프고 나니,  사랑해야 할 것들과 무의미한 소음들에 해당하는 것들이 구별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 기침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게 목기침을 하고 있는 중이다. 절대 아플 것 같지 않았는데 자꾸만 몸이 약해진다. 겸손하게 받아 들이고 때로는 무의미하게 보이는 집안일을 하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뒹굴고 싶은 마음이 아니든 것은 아니었다.

아프고 나니 더욱 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진다. ㅋㅋ 적어도 내 식구들을 위해서라도  쓰러지지 말아야 한다는 원초적인 본능을 붙잡고 자신의 나약함에 무너지지 않도록 일어선다. 그래, 김장을 해야지 울 아들들이 좋아하는 김치를 담아야 한다!

왜냐하면 난 아직 내손으로 김치를 담을 수 있으니까!

허약한 몸의 상태를 인정하고 차분하게 여유있게 미리 미리 김장준비를 하였지 싶다. 마침 같은 날 김장을 하는 분의 지혜를 얻어 일주일 동안 일의 선후를 가려 쇼핑을 하고, 재료들을  다듬고 정리를 하며 계획을 세우니 막연했던 두려움이 물러나는 것을 보았다.  건강할 때 보다 더욱 체계적으로 김장을 준비하다 보니 올해 김치맛이 참으로 훌륭하다는 것이다.

장성한 두 아들과 남편 울 가족 모두 김장에 동참하였다. 언제까지 아직 출가하지 않은 두 아들과 김장을 하며 추억을 만들 수 있을른지 모르지만 현재를 즐기기로 하였지 싶다. 사실, 김장을 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김치를 조달해 먹는 여인들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난 내가 할 수 있으니 아직은 포기하거나 정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귀찮고 피곤한 과정을 지나야 하는 것이다.  ㅋㅋ

우리 식구들은 대단한 일을 이루어 내고 말았다!

김치통에 김치를 넣고, 뒷정리를 하고 나니 행복한 뿌듯함으로 피곤함이 생각나지 않는다. 엄마의 김치비법을 물어보는 아들들에게 정확한 레시피를 줄 수 없다는 점이 좀 아쉽긴 하다. 사실 감각에 의지해 김치를 담는 감각적인 주부라서 딱히 레시피가 없다는 것이다. ㅋㅋ

우리끼리 맛있다며 행복하다~~~

오직 사랑할 시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UE7qHA2M9U
Love of My Life, Queen

Where are You?

장갑이 어딨지?
한겨울 추위가 빨리 왔다는 떨리는 소식에 몸을 따뜻하게 감쌀 것들을 챙기다 보니 손장갑이 보이질 않는다. 손을 주머니에 집어 넣고 걷다가는 그 무서운 낙상을 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인데 장갑이 보이지 않는다.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어린시절 뽀얀 털이 달린 붉은 벙어리 장갑이 겨울만 되면 떠오른다. 사촌언니들이랑 바닷가에 있는 굴을 캐다 그 소중하고 따뜻한 것을 잃어 버리고 상실감(?)으로 둘레둘레 찾았던 그 순진하고도 어린 내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어떤 물건의 소중함을 갖는 것과 집착하는 것의 차이를 지금도 명확히 구분할 수 없을 때가 있는데 그때 난 무척 속상했던 것 같다. 그 낭만적으로 붉었던 털달린 벙어리 장갑을 잃어 버리고 난 후 내 어린 겨울 손은 무엇을 끼고 살았는지 그후 이야기는 기억나질 않는다. ㅋㅋ그 장갑 없이도 잘(?) 산 것 같지만서도 겨울이 되면 그 부드러운 털 달린 핑크색 장갑이 생각난다.

오늘 추운 겨울 아침 장갑이 없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면 건강하게 잘살고 있는 것일텐데 쉽게 나만의 답을 말할 수가 없다. 그래도 좋아 하는 운동이 있어 날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것에 감사하다. 난 아침운동으로 수영을 하고 있으며, 예술활동 보다는 울 가족과의 원초적(?)이고도 기본적인 행복한 시간을 꾸리기 위해 기꺼이 엄마와 아내의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일없이, 자신을 자신답게 만드는 예술이란 이름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암울한 단어 '불행' 이란 단어로 몰아넣는 그림은 그리고 싶지 않다.

'인내'라는 단어를 주어진 하루동안 생각해 볼 참이다. 수영장에서 아침수영을 하다보면 별별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단순히 두 그룹으로 나누자면 수영을 우선순위로 열심히 하는 운동파가 있느가 하면 수영은 몸풀러(?) 나오며 사교하러 나오는 밥파가 있다. 물론 수영도 열심히 하면서 식사하며 친교를 나누는 그런 이상적인(?) 활동을 꾸리는 사람도 있긴 하다.

네다섯으로 구성된 밥조직은 서로의 뜻을 모으고 그리고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나름 단합을 한다는 것이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오고가는 선물속에 정을 나누고 세를 불리고 그리고 큰 목소리를 낸다. 안되면 조곤조곤 작은 소리로 맘에 들지 않은 회원의 흉을 보며 세를 불리며 갑질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꼴사나운 나이갑질의 예를 들어 보겠다. 주름진 갑질과 청춘 미모 갑질이 있는데 주름진 나이갑질의 한 예를 들어 보겠다.

수영강사샘이 수업시간에 두줄로 자유형 대시를 하라고 하셨다. 25미터 레인에 회원수가 많으니 두줄로 가는 것이다. 오리발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대쉬' (숨도 쉬지 말고 허벌나게 빨리 가라는 뜻이다.) 를 하라고 해서 열심히 선수처럼 막 앞으로 갔더니만 (한참(?) 간격을 두고 출발했으나 앞회원 오리발이 얼굴앞에서 팔랑거렸다.) 수영과 친교를 두루 갖춘 나이 적지 않은 회원님이  하필 앞에서 나름의 회원 친화다정한 대쉬를 한 모양이다. 혼자 빨리 나아가면 같이 출발한 사람 무안할까 염려되어?

대쉬~~~~

갑자기 들으란 듯이 말한다. 둘이서 사이좋게 와야지 보기 싫게...쩝쩝


원래 친하지도 않고 평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 어르신이라,  상대를 하지 않고 못들은 척 인내하며 서있었더니, 그것으로도 만족을 못했던지 성실하게 대쉬하는 회원들에게 향해서 큰소리로 소리 지른다.  둘이서 사이좋게 하고 와야지 뭘 그리 빨리 오는 것이냐고 보기 않좋게~~~ 

농담하는 것 아니냐고?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열심히 대시하며 최선을 다한 회원의 열정을 무시하고,  수영샘의 지시에 따른 회원들에게 갑질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대쉬라는 수영스타일의 정의를 물어보고 싶다. 너무 민감하게 보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불편한 갑질인 것이다. 똑같이 회비내며 운동하러 오는 회원들에게 자신의 일방적인 느낌을 이야기하며 불쾌감을 조장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수영실력인가 아니면 밥인가 아니면 선물공세인가!

아이러니 다리미의 순간이다!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행동이야말로 별로 보기좋은 그림은 아닌 것이다. 삶은 불완전하고 모순적이라는 것은 알지만서도 순간 냄새나는 불쾌감을 안게 되었다. '타산지석'의 성어처럼 저런 경우가 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야무지게 하였지 싶다. 그래서 수영과 사교를 다 잘하는 사람은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갑질을 쉽게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잠깐 그 부정적인 에너지로 인해 똑같은 사람이 되어 균형감을 잃을 뻔 하였다. 나 자신의 좋은 에너지를 시험하는 사람들을 늘 준비해 주시는 어떤 손길에 대한 감사를 해본다.


Wednesday, December 05, 2018

What's your Name?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겨울 김장을 앞두고 혹시라도 아퍼 눕지 않을까 불안함과 약간의 긴장감이 깔리는 것을 모른 척 하기엔 자꾸만 느껴진다. . 창밖의 날씨님은 새벽녘 싸리눈이 내렸는지 군데군데 하얀색이 보인다. 색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 것인지 은근 청순한 하얀색은 부담스러운 색이기도 하다. ㅋㅋ깨끗한 하얀색 보다는 누리해서 편안하고 현실적인 땅의 색이 시간과 함게 주름지는 몸과 마음에겐 더 유혹적이라 할 수 있겠다.

남쪽 바다를 보고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이런저런 잉여 인연을 제거하고 정리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못난(?) 친구를 제거시키지 않고 심심해서 전화를 걸어준 친구가 고맙다는 생각을 유난히도 크게 가지게 된다.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가! 잘 알지 못하면서도, 다 아는 것처럼 사람을 판단하는 불쾌한 사람들을 겪느라, 성장통(?)을 아직도 겪고 있는 중이어서 그런 것인지, 오래되고 익숙한 친구의 따뜻한 목소리가 숨은 보석처럼 빛나게 반가왔나보다. 오래된 인연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어두운 무리(?) ㅋㅋ 들에 대한 감사를 해야 할까나.

오래도록 서로가 지켜보고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영장 샤워실에서 십년동안 지켜보는 사이라며, 자신의  맘에 들어 김치를 갖다주고 싶다는 여인의 얼굴은 기쁨이었지 싶다. 오래된 것은 시간을 품었기에 위대하다! 잠깐 부러움이 들었던 것 같다. ㅋㅋ 난 샤워할 때, 그 기꺼이 김치 담는 고귀한 손으로 내등을 맛사지 해주는 것으로 만족하며 질투와 시샘을 정지 하였다 다행히ㅋㅋ.

세상에 쓸모없고 하찮은 것이 없음을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못난 자신을 셀프로 칭찬하며 다둑거려 보았다.  누구의 추하고 모질한 모습에도 배워야 할 것이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아니 마음만 열면 모든 것이 삶을 풍부하게 만든다는 것을 몸소 경험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 싶다.



Tuesday, December 04, 2018

Paradox in the Picture

어떤 모임을 너무(?) 사랑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다. 적당한 거리를 만들며 상처를 주지 않고 사는 일 또한 어려운 실천과정을 겪어야 한다.

사람에게 향한 기대(?)를 하지 않고,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격려해 주고 사는 아름다운 그림은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집요하고 치사하게 즐기는(?) 사람들은, 언제나 매일 찾아오는 어두움처럼 받아 들이며 언제나 그렇게 있어 왔던 것처럼 초연하게 우아하게  감사할 수 있을까.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Every Matter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돌을 던질 때가 있고 돌을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떨어질 때가 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버릴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고 궤맬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전도서 3장


'약간의 거리를 둔다'(소노 아야코 에세이)를 읽고 나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작가가 언급한 전도서의 말씀이다.

세상은 불완전하고 모순투성이어서 인간에게 생각할 힘을 준다는 부분은 역설적이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럴 수도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열받지 말고 자신을 잘 다스리며 나답게 스스로 빛나야겠다는 알찬 생각을 키웠지 싶다.


Seek/Hide(Something Like Happiness),Mono Printing




Monday, December 03, 2018

Like You~~~

표리부동
                             -오은

어젯밤 꿈에는 네가 나왔다."잘 지내?"라고 차마 묻지 못했다. "잘 지내."라고 서슴없이 대답할까 봐. 누구보다 네가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이렇게나 나쁘다. 꿈속에서도 나아지지 않는다.


ㅋㅋㅋ 아침신문속에서 발견한 이 킥킥거리는 웃음은 무엇인가! 나 또한 안부를 묻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서슴없이 잘 지낸다고  말 하는 것이 듣기 싫어서. ㅋㅋ

나말고 다들 잘(?)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쉽게 잠들지 않는 나를 위해 책한권을 읽기로 했다. 침대 머리옆에 쌓여있는 밀린 책들을 정리해야 한다! 잠들고 싶은데 잠을 취할 수 없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좋은 책을 읽기로 하고 이미 읽었던 책들 중에 제목이 끌리는 책을 집어 들었다. 정신이 더욱 또렷또렷해지는 증상을 보인다.ㅋ 이런저런 모양으로 부딪히며 깨우치다 보니 책속의 글들이 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다. 흐믓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본다. 그래도 쉽게 잠들진 못했으나 오늘은 더 쉽게 잠들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어본다.

'심플하게 살기'란 책을 읽으면서, 가난과 분수 그리고 결핍이란 단어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만족할 수 없는 상태는 가난한 상태이며 물질적인 부를 가졌다 하여도 족함을 모르는 자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서술은 되새길만 하였다. 분수를 제대로 알고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지 잠시 체크하였다. 주제파악은 그리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주제파악으로 남들과 다르다 하여 기죽을 일도 아니며 비교하며 상처받을 일도 아닌 것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결핍'으로인해 발전할 수 있으며 성숙할 수 있다는 위로를 받기도 하였다.

잠을 쉽게 잘 수 없어서 난 책을 읽기로 하였다~~~


Saturday, December 01, 2018

Forget it~~~

기억을 간직한 공간과 시간은 다시 두려움을 데리고 온다. 어제 보다는 좀 더 나은 경험을 하게 되리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붙들지 않으면 안된다. 모르는 척, 못느낀 척 그렇게 몰라라하며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조바심이 나지만 이 또한 자신의 허약함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받아 들이고 통과해야  할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반복되는 두려움을 모르는 척 애써 보통처럼 아침 길을 걷다보니,집앞 오가는 길에 마주치는  오리와 두루미를 한동안 보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집 베란다에 걸터 앉아 몹씁짓을 하는 비둘기가 형형색색 오묘한(?) 색으로 아침햇살에 빛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둘기 구두가 엷은 핑크였나? 잠시 오리의 주황색 부츠와 헷갈렸나 보다.어느새 산유화 잎이 찬바람에 떨어져 빠알간 열매들이 불처럼 매달려 있는 길을 통과하다가 왜 오리와 두루미 생각이 떠올랐던  것인지.

다시 태어난 긴장감(?)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방어적인 자세라고 해야할까 사람들의 부정적인 이야기가 듣고 싶지 않다. 살아가는 이야기는 어쩌면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빚어지는 갈등거리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사랑 그 고귀한 단어를 내밀며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만, 현실은 너무 쉽게 몰이해와 자기해석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상사태라 여긴 몸이 여유공간을 다 자신에게 할애한 탓인지 타인에게 신경을 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좋은 이야기만 듣고 싶고 좋은 이야기만 나누고 싶은 상태이다보니 누군가의 넋두리를 듣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그러게'하며 상대방의 무안함과 불쾌함에 공감했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시간을 오래(?) 간직한 허약한(?) 몸을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제 나이듦과 동반되는 병들과 사이좋게 친해지며 멋지게 늙어가는 것이 숙제로 남은 듯 하기도 하다.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고 해서 스스로가  비겁하게 넘어지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던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