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30, 2019

Your Name

'오월'하고 첫날이라는 오늘의 이름을 부르자 '장미'가 떠올랐다. 이만하면 오월은 향기롭고 아름다운 시간이 아니던가. 노동자의 날이라고 해서 수영장이 휴장을 한  덕분에 온몸이 늘어져 한가함을 누리며 향기롭고 우아한 장미꽃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싱싱하고 향긋한 오이 소박이를 담고 주위를 살펴보니, 벌써 오이지를 담았다는 알뜰한 살림녀들이 있다. 물없이 담는 오이지를 담았던 묵은 해의 오월이 기억이 났다. 오이를 싫어하는 큰아들을 위해 오월의 첫날에 깻잎 김치를 담을 생각이다.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다가 붓을 씻었던 씽크대가 생각이 난다. 지금의 난 씽크대에서 맛있는 음식을 하기 위해 깻잎을 먼저 씻을 생각이다.

붓대신에 깻잎을 씻는 것을 먼저 선택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의 이름이 '화가' 대신에 '주부'라는 명명이 일반화될지라도 할 수 없는 본능인 것을 인정하기로 한다. 부엌에서 집안일을 하는 것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향해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은 알 수 없는 기쁨을 동반하는 일이며 포기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어쨋든 예술은 이기적인 것이니까.

나의 이름이 '빨강'일 때가 있었다. 그때는 빨강이었고 지금은 스스로의 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끔은 불편한 환경에 자주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어울리는 장소를 향하지 못한 연유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은 알고 있으나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것도 그닥 힘들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받아 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응'이란 단어는 가끔은 두렵기도 하다. 흉을 보면서 배운다는 밀이 있듯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습득하고 적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성이 강하다'라는 말을 들을때면 지금도 신경이 곤두선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런 문장을 내게 내미는 것인가? 남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자기 잘낫 맛에 산다는 것인가?

지금까지 적지 않은 나이를 품은 사람이 자신의 빛깔도 없이 살아온 것에 반성은 커녕 인간 고유한 매력을 발견하지 못하는 님들을 비난하는 짓을 범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문다.   남들과 똑같이 내숭과 위장을 하지 못하고 어리석게 튀는 것인지 흉을 보는 사람들에게 오염되지 않기 위해 귀를 막고 눈을 감아야 한다.

오월의 장미는 '가시'가 있다. 왜 가시가 있냐고 비난하는가 묻고 싶다. 가시가 있어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향기롭게 우아하게 피어날 수 있음을 모른단 말인가. 


Sunday, April 28, 2019

Spring Together


먹거리를 사오는 길에 이름은 모르지만 내 기억속에 있는 봄꽃을 보았다.  그리움으로 저 멀리 있는 추억속의 누군가의 정원에서 보았던 그 꽃이다.  정원의 빈 공간을 메꾸어 주는 역할을 하는 작은 꽃이 여기 이곳 화분위의 흙에 뿌리를 내리고 기꺼이 피어  쏟아져 내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성실한 기독교인으로 아들을 홈스쿨로 키우던 그녀의 정원에서 봄을 알리며 가득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 

한번 뿌리를 내리면 해마다 다시 꽃을 피워내는 귀여운 꽃인데, 함께 있으니 풍성하고 아름답다.  

Thursday, April 25, 2019

The Basic Things

조작능력이 탁월하지 않은 탓인지 스마트폰에 보이는 '설정'이란 단어는 내게 두렵다. 그래서 열린마음으로 순수하게(?) 살았던 면도 있어서 좋은 점과 불편한 점도 껴안고 살았던 것 같다. 지금도 두려운 것은 설정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여러개의 얼굴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처세의 한 방법이 되겠지만,  가면이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 일은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닌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본적인 미소와 친절로 족하다고는 했지만 종종 우리는 속마음을 드러내고 싶다는 것이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자신의 치부를 내보이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운이 좋은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가 처한 환경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변할 수 있겠지만 씁쓸한 뒷모습을 쉽게 내보이는 영리한 사람들을 껴안는 일은 자신에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대세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영리하다. 무난하고 상식적이고 교양있는 사람들이 불편할 때 그것은 누구의 탓을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자유로울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고통을 몰라라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공유하고 싶단 말인가. 자신의 입장과 결론이 설정되어 있는 사람에게 긴 터널을 지나는 외로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너덜너덜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쏟아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신비한 기적을 맛보는 일일 것이다. 결국은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지 않고 경청하고 인내하며 들어줄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 씁쓸하지만서도 이것 또한 삶의 부분이니 껴안고 가기로 한다.  거기까지가 최선이었던 것이다~~~

자유롭기 위해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미  푸른 봄이 시작되어 묵은 가지의 겨울을 잊었다. 내 삶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잠시 들렀다 떠난 사람들과의 이별은 당연한 순리라는 것을 잊지 말기로 한다. 나 또한 떠날테니깐~~~

Where I am

자신의 빛깔이 분명하게 산다는 것은 고집스럽거나 예민하거나 어딘가 불편한 여자처럼 보일 때가 있다.  타인들의 생각으로 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관계에서 깊이를 더하거나 무게를 더하는 일은 피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지금 여기서 깨닫고 말았다. 상투적인 인사말과 이쁜 미소면 충분하다는 것을.

모든 것을 원점으로 늘 새롭고 날고 싶은 마음엔 여기 저기서 주워모은 못난 돌로 인해 날아 오르기 힘들다. 수영복엔 주머니가 없는데 왜 자꾸 무거워지는 것인가. 귀로 들어오는 물, 입으로 침범해 오는 물, 코로 들어오는 물~~~ 오염된 수영장 물때문이다.

수영장 사람들은 젖은 몸으로 푸른 박스 안에서 만난다.  가슴과 배에 난 상처,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쳐진 살들, 탄탄한 젊은 몸, 실리콘 벨리의 몸, 많이 먹은 배 등등의 다양한 몸으로 만난다. 수영장 물은 갇혀 있고 여러 화학약품과 소금으로 사람들의 균을 억제하지만 그렇게 맑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수영장 물은 사람들로 인해 오염되어 있다.  필터를 통해 다시 들어오는 물 또한 그 물에 그 물이다.

물속에서 나는 돌고래이다. 인간의 생활에서 벗어나 물속에서 헤엄치며 돌고래가 된다. 불빛에 일렁이며 빛나는 물살,  리듬을 타는 물결들, 첨벙거리며 부서지는 하얀 거품들, 방울방울 올라가는 공기방울, 공중에서 손이 물속으로 떨어지는 소리, 발등이 물을 누르는 소리, 호흡이 딸리는 소리 ~~~

귀와 코와 입으로 들어간 푸른 박스의 물이 다시 흘러 나오지 않아 오염된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흩어진다.  그들과 함께 락스물과 소금물에 오염되거나 흡수되지 뭇한 채 겉도는 한 사람이 여기 있다. ㅠㅠ


Wednesday, April 24, 2019

Like a Fool

 인공지능 이름을 부르며  '티비 꺼'하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못알아 먹겠어요'하고 말한다. ㅋㅋ 다시 입모양을 정확하게 공을 들여 말했더니 드디어 실행에 옮긴다. 완벽하지 못한 인공지능의 무능력(?)을 참지 못하고 '바보같이!'란 말을 인공지능에게 내뱉고 만다. 책상앞으로 돌아오는 내 자신에게 향한 ' 너가 진짜 바보같아' 라는 내면의 에코를 무시할 수 없어 웃고 만다.

주변 티비소리가 시끄러워 주인님(?)의 목소리를 못알아먹고 행한 반응이었을텐데, 실제 사람인양 기대하는 난 어리석은 바보놀이를 하고 말았다.

날씨가 날로 더워지고 있다. 작년여름의 무더위를 생각하면 온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이 반갑지만은 않다. 초미세먼지 걱정을 하고 무더운 여름날의 급급함에 깝깝하지만 봄,여름,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겨울 옷을 벗고 봄옷을 입어 볼려고 했더니만 여름옷으로 건너 뛰어야 한다는 사실에 좀 두렵긴 하지만서도 뜨거운 날은 뜨거움으로 즐겁지 아니했던가.

수영장 탈의실로 걸어가는 길에 우연히 누군가의 대화속에 보석처럼 들어있었던 '인내'라는  단어는 참신했다. 운동을 통해 체력과 건강뿐만 아니라 '인내'를 배울 수 있다는 말을 주고 받는 사람들은 그 어려운 단어를 내밀며 받고 있었다. 운동하는 중에 무엇을 참아내며 견디며 포기하지 않은 것일까?

내맘같지 않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참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을 얽히게 만드는 부주의한 사람들을 견디며 함께 운동하는 것이 '인내력'을 향상시킨다면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바라기를,  너무 교양있어 영리하고 교활한 처세를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것도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지만 영리하게 교활한 사람을 견디는 것은 그에 비할 것이 아니다. 그래도 '인내'해야 하는 것은 언제 그런 똑같은 상황에 놓여 예외없이 나 또한 그런 교활한 사람이 될 지 모르게 때문에 관대하게 받아 들이며 인내해야 하는 것이다.

갑자기 등을 돌리며 다른 얼굴을 하는 교양있는 사람을 인내하며~~~
침묵하며 자신의 유익을 좇는 사람도 인내하며~~~
성숙하지 못해 유치한 행동을 일삼는 무식 용감한 사람도 인내하며~~~
내로남불로 무조건 자신만 옳다하는 사람도 인내하며~~~

그렇고보니 아침수영을 통해 사람을 견디며 인내하는 연습을 많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나를 인내하는 사람들도 똑같은 얼굴을 내게서 보고 있을 거라는 것쯤은 양심상 알고 있긴 하다. ㅋㅋㅋ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어쨋거나 선행을 하는 것도 길게 보면 이기적인 선택인 것이고 그런 기본적인 전제는 양심적으로 동등하게 접수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틈을 내어 푸른 박스의  질퍽거리는 그림을  멀리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자가진단이 내려진다. 물러나 모든 것을 신선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어리석어서 저질렀던 질퍽거림도 반전효과를 초래하여 어떤 소중한 의미로 해석될 때도 있을 것이다.

멈출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침묵속에 있는 스스로에게 요청한다!





Tuesday, April 23, 2019

Handle with Care

하루가 다르게 나무들이 옷을 푸르게 갈아 입는 4월은 아름답다. 먹을 수 없어 개꽃으로 불렸다는 철쭉이 화려한 색으로 짱짱하게 올라와야 눈에 튈 수 있을 정도로,  온 세상의 초록은 새롭고 어리고 부드럽고 아름답다.

아침 수영을 하는 푸른 박스 대신에 산을 오를 수 있다면 그 또한 멋진 일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슬며시 찾아 들고 말았다. 그러나 물맛에 길들여진  난 시간을 재촉하여 푸른 박스속으로 걸어 가고 만다.

푸른 박스속의 여인들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서로가 조심하고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부서지기 쉬운 마음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그러지 아니할지라도 아니 그러지 못할지라도 자유롭기로 한다. 

난 지금 우회도로를 선택해서 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길을 돌아가다  모든 것을 지켜보는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모두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Sunday, April 21, 2019

Made in April

데이비드 호키니의 전시회가 열린 '서울 시립미술관'에  서둘러 다녀왔다.  올해 8월까지 관람할 수 있다고 하나,  그의 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이 기다리지 못했다.

"눈은 언제나 움직인다
눈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눈이 움직일 때, 내가 보는 방식에 따라
시점도 달라지기 때문에 대상은계속해서
변화한다. 실제로 다섯 명의 인물을 바라볼 때
그곳에는 1천 개의 시점이 존재한다."-데이비드 호키니

보는 방식과 재현의 문제에 어떻게 의문을 제기하며 어떻게 그만의 방법을 선택했는지 궁금하였다. 작품의 형식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스타일을 실험하고 시도하기를 멈추지 않은 작가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가슴이 뛰는 일이다.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접근방식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보여준 데이비드 호키니의 회화, 판화, 드로잉. 사진 등 다양하였다. (그의 석판화 시리즈는 대학원 시절 미처 배우고 익히지 못했음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대학원 시절의 난 그때 주저하지 말았어야 했다.) 호크니가 뉴욕을 배경으로 표현해 놓은 '난봉꾼의 행각' 시리즈를 통해 흔들리는 정체성과 미술계의 부패와 타락등의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수영장 시리즈를 탄생시킨 로스엔젤레스의 그는 뜨거운 햇빛과 자유로움속에 행복한 그림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파란 박스속의 물의 특성을 포착한 '더 큰 첨벙(1967)에서 단순화된 형태와 평면성을 볼 수 있었다. 작품 설명에 의한 그의 유희적 풍자(?)를 눈치채지 못했다. 수영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저 로스엔젤레스에 가서 수영하고 싶은 마음으로 볼 수 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그의 작품, '예술가의 초상'은 전시회에 없었다! ㅠㅠ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건물 밖 복사본 그림으로 인증샷을 남기다.

Tuesday, April 16, 2019

No Problems~~~

살아가다보면, 사람의 얼굴이 동물의 형상으로 보일 때가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행복감을 맛볼 때 보다는 불행감을 맛볼 때  동물들의 얼굴이 나타나곤 한다. ㅋㅋ

본인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와 상황이 있는 것이므로 타인들을 굳이 열심히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도 받아 들이게 되었지만서도 가끔은 동물의 특성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가슴이 덜컹거릴 때가 있는 것이다.

'내로남불'이란 신조어는 요즈음의 현실인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말이다. 감언이설로 사람과의 관계를 좁히고, 필요에 따라 토사구팽을 하고, 불평하는 사람을 위해 조삼모사의 꾀를 부리는 사람들은 동물적인 처세술을 가지고 있다. 소수의 약자의 말과 행동을 무시하고 소외시키는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이중적인 잣대로 들이대고 그런 아전인수의 영리한 사람들은 교묘하고 조직적이다.

No Problems!

오랜 시간을 품고서도 물질적인 부와 외모의 굳룩킹 가치가 최고인 사람들과 점심을 같이 해본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주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돈'이야기를 한다. 따스하면서도 부드러운 넉넉한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힘든 것인가.  사람들에 대한 예찬을 하지 못하는 사람과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을 뒤에서 비난하며 앞에서는 웃는 그런 영리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것은 무채색 세상이다.

세상은 원래 무채색이라, 그래서 우리는 삶에 대한 예찬이 필요하다라는 말에 공감한다. 사람을 덜 움츠리게 하고, 덜 비난하고, 더 많이 예찬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그려 보기로 한다.


Good Luck~~~

밤이면 걷곤 하는 천변을 뒤로 하고 봄이니까 넒은 호수가 있는 길을 걸어 보자며 차를 몰고 나가  보았다. 드넓은 호수 근처로 고급진 아파트들이 장대하게 솟아 환한 불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호수가에 내리워진 아파트 리플랙션 불빛은 환상적으로 흔들리고 보고있는 나도 흔들렸던 것 같다.

하늘로 치솟은 아파트 건물들은 장대하여 위압감 마저 풍겼다. 호수가 있기에 올라선 고급진 아파트들은 컴컴한 호수보다 주인공이 되어 빛나고 있는 풍경으로 보였다.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커다란 호수를 보며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냇물의 소중한 가치를 알게 되었다.  좁다랗지만 바삐 흐르는 시냇물에  내 마음이 흘러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산위에서 흘러 내려와 드넓은 바다로 가는 냇물은 졸졸 소리를 내며 바삐 흐른다.  때로는 울퉁불퉁한 바위를 타고 내려갈때면  제법 깊은 소리를 내기도 한다.  잔잔한 호수는 도달할 곳이 없는 것처럼, 흘러가기를 포기한 모습으로 살아있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천변을 걷고 있자니 행복한 마음이 찾아 들었다. 무리지어 날아가는 비둘기, 까만 까치, 회색빛 두루미, 둥둥한 오리 등등 함께 흘러가는 즐거움을 알 것만 같다~~~

봄바람에 벚꽃들이 눈처럼 내려와 발아래 깔린다. 영화의 한장면처럼 그 모습은 낭만적으로 슬프다.

수영장에서 어느 주름진 여사님이 갑자기 나를 보더니 꼭 말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하신다.
'그쪽이 있으면 그 주변이 환하게 빛난다고' '눈이 참으로 이쁘게 생겼노라고'

ㅋㅋㅋ 그분의 칭찬이 없었더라면 아마 한참이나 자신의 못난꼴에 우울하며 쓰러졌을텐데 말이다.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잊지 말기로 하자.  모순적이고도 추한 삶의 모습이 털털거리더라도  절대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인 해석을 하지 않기로 한다. 그것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며,  더 큰 물로 흘러가기 위한 하나의 몸짓이란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벚꽃이 떨어지는 이 봄날에 깨우치면 큰 다행아니겠는가.

Sunday, April 14, 2019

Smooth&Fast

부드럽고 그리고 빠르게? 잠결에 보았던 두 단어를 간직할려고 노력했는데 의심이 든다. 수영장 문이 여는 빨간 날이라 즐거운 날이다. 천천히 그러면서도 빠르게 갈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하는 사명감(?)에 이른 아침을 먹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는 자신은 아직 '젊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힘을 빼야 한다'라는 문장은 지금 여기에 있는 나에게는 실천하기 어려운 도전적인 시험이다. 힘을 주고 운동을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부차적인 경제적인 지출을 해서 알게 된 사실에 약간의 배신감을 갖게 된 사실이다. 열심히 몇년간 아침 운동을 한 사람이 지금까지 힘을 주고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라도 된단 말인가. 그동안의 열성과 성실이 무안하게 기본적으로 실천해야 했을 힘빼기를 하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뭐라고요? 늘 말을 했더라고요?

단체수업을 통해 수영을 배우다가 급기야 개인수업을 하면서 가장 먼저 듣게 된 문장이 '힘을 주고 있다'라는 것이다. 들어도 몰랐을까 아니면 강사님들이 무심했을까. 제일 어처구니 없는 것은 무심하고 피곤한 강사님이 열정적인 지적을 해주지 않고, 말해도 못알아먹고, 열심으로 쓸데없이 힘을 팍팍주고 하면서,  어깨 다치고 허리 다치고 그렇게 손해보는 짓만 하는 것일 것이다.

수영하고 샤워하고 사우나하고 머리 말리고 등등의 다양한 행동들을 고려한 한달 회비는 많은 것을 요구하면 안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단체수업중에  자신에게 맞는 영법을 찾아내기란 어쩌면 타고난 수영천재가 아닌면 불가능한 일이거나 아니면 운이 좋아 강사샘이 특별히 신경을 써줄 수 있는 젊음과 미모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조직이  있으면 가능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수영연습을 하다가 자신에게 남처럼 물어 보았다. 왜 그렇게 열심히 선수처럼 하고 있는 거지요? 국가 대표 나갈 것인가요? 욕심이 넘 많지 않아요? 남보다 그렇게 잘하고 싶나요? 

무엇보다 수영을 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서이지 않을까!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하나의 방법이 수영이란 운동이고 아직도 배울 것이 많아 가슴이 뛰기 때문이 아닐까. 선수가 될 필요가 없이 스스로가 준 목표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그 기쁨을 알아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천천히 힘빼고 우아하게 빠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오늘도 시간을 내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난 아직 젊은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Thursday, April 11, 2019

The Cold Water

공감파와 찬물파?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타인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며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듣는 것을 못하여 공감은 커녕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나 그 부류가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상대방에 따라 공감하며 꼬리를 흔들기도 하고 박수를 쳐주기도 하고 참고 인내하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의 감정에 빠져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는 말을 내뱉아 의도치 않는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고의적이든 아니든 상식적인 배려와 친절이 결여된 사람들과 말을 섞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님은 틀림없다.

찬물을 끼얹고 그 사람은 웃으며 갔지만, 소심하고 민감하고 불완정한 사람은 불필요한 감정에 시달리게 된다.   어떤 긍정적인 해석을 하며 원하지 않는 그 불쾌함에서 빠져 나와야 하는 것인가.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구나~~~ 누군가의 소중한 엄마이며 누군가의 사랑하는 아내이며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그 누군가가 나에게 왜 그런 몹쓸 짓을 하는 것인가. ㅋㅋ

사람의 말과 행동은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럴 수 밖에 없었을거라며 타인의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을, 인간인지라 순간 기분이 출렁거렸던 모양이다.  나 또한 찬물을 끼얹는 말을 하고 살고 있을 것이라는 계몽적인 생각이 결국엔 들고 만다. 그려, 다 똑 같어~~~

지금  내안의 소중한 에너지의 흐름에 방해 받지 않을 권리와 책임은 자신에게 있음을 명심하기로 한다. 삶이 모순적이라고 해서 남의 탓을 하는 그런 바보가 되지 않기를 그리고 내탓만 해서 신경증 환자가 되지 않도록 균형을 잘 잡아보기로 한다.  오늘도 흔들 흔들 힘빼고 잘 살아보세~~~







Wednesday, April 10, 2019

What is 'Art'?

예술이란 무엇인가 물었을 때, 누군가가 흔쾌히 답할 수 있다면 상당한 시간을 그 질문에 대한 연구를 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한량없어 그 답을 선뜻 못내미는 것처럼 예술이란 것 또한 그렇다.

'삶의 변형물'이라는 정의에 공감한 적이 있다.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면서 품었던 감정과 생각을 독창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표현해 놓은 인간 창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술이 있어 삶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하다.

예술가란 말이 어울리지 않게 닫힌 마음을 지닌 나날을 꾸려 나가고 있는 것 아닌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단어에 둘러쌓여 빛나는 맑은 정신을 흐트러지게 한 것 아닌가 둘러본다. 인간이라 불완전하여 흠과 결함이 있음이 당연한 것인데 오만방자하게 판단하고 지적질하고 살고 있는 것 아닌가 거울속에 있는 얼굴을 들여다 본다.

살다보니 생기는 흉터와 상처들을 덮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기본이 아닐까하는 어여쁜 생각을 오늘 아침으로 품어본다.

어느 봄날에 난 나를 나답게 만드는 예술가로 돌아가기로 한다.
Intimacy; 나를 가장 나답게 표출해 낼 수 있는 것은 작품이다.
Autonomy; 스스로 안에서 샘솟는 힘으로 자동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은 작품이다.
Meaning & Purpose;작품을 통해 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궁극의 목적이다.
Interesting Job; 자신의 것을 독창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흥미롭고 매력적인 일이다.


Tuesday, April 09, 2019

What is Today?

봄비가 내리나 보다. 베란다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속엔 조그만 사람들이 우산을 머리위로 들고 길을 걸어 간다.  팝콘같은  벗꽃들이 이제 막 피기 시작했는데, 밤새 봄비가 오면 제대로 튕겨 피어보지도 못하고 떨어질 꽃들을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찾아든다.

어제 오후에 만났던  뒷산  소월의 진달래는 이제 하나 하나 꽃송이 땅으로 떨어져, 지나가는 사람들 가시는  걸음 걸음 사뿐히 즈려 밟혀 가시겠네~~~ 꽃이 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감정이입이 되는 모양이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은 당연한 것일텐데 어이하여 할일없이 지는 꽃을 생각하고 있단 말인가! 이 무모함을 승화시켜 작품으로 남겨야 하는 것을 어찌하여 이렇게 살고 있단 말인가. 낮술도 하지 않았는데 맘이 휘청거린다.  냉장고에 있는 요구르트에 진짜꿀이라는 그리스 유명한 꿀 한숟가락을 넣고 누군가가 여행길에 가져다준 말린 망고 하나를 넣어 먹었더니 행복감이 넘쳐 무모함으로 향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마음을 잘 잡아야 하는데 내 마음을 못잡는다 항상 모지리같이.

은행업무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년식이 오래된  벗꽃나무들은 그 풍채가 고풍스럽고 멋있다는 생각으로   더 오래된 아파트의 안속으로 걸어가게 되었다. 예상대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보다 훨씬 나무들이 고풍스럽고  꽃들이 탐스러웠다. 하지만 꽃을 보다 도중에 길을 잃었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는 문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쪽문을 찾아 헤맸다. 담을 넘을 수도 없고 방황하고 있자니 친절한 경비 아저씨님께서  담을 넘기 적당한 위치를 가르쳐 주신다. ㅋㅋㅋ

내 나이 반백을 넘어 이렇게 담을 넘을 줄이야~~~아이고오우~

이웃 아파트와 담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여러가지 있겠지만서도 당장 벽앞을 마주한 난 난감하였지 싶다. 담을 넘어본 지가 언제든가? 집이 있는 아파트로 돌아오기까지 또한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야 했다. 심호흡을 하고 훌쩍 뛰어내렸는데 무서웠다! 길이 아닌 곳을 다니면 생고생이란 생각을 했지싶다. ㅋㅋㅋ

오늘이 무슨 날인가?
내가 좋아하는 날이야~~~
-곰돌이 푸









Sunday, April 07, 2019

Sin Prisa Pero sin Pausa ( 서둘지말되 멈추지마라)

배불리 점심을 먹고 분홍 진달래가 피어있는 뒷산에 가려고 한다. 행복한 위장으로 산을 오르며 받아야 할 축복같은 봄햇살을 몰라라  집안에 있는 것은 스스로에게 용서받지 못할 짓이다.
아파트 뒷산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며 감사하는 마음이 찾아온 지금은 봄날이다. 진달래, 개나리, 목련, 밥풀꽃, 민들레, 산수유, 등 꽃들이 피어 오르는 4월의 날들속에 겨울 같은 앙상한 이야기를 자꾸 품고 있으면 어울리지 않는 일인 것이다.






Friday, April 05, 2019

The Fools in the Blue Pool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불쑥 앞으로 누군가가 등을 보이며 끼어든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누군가가 깜박이를 켜지 않고 갑자기 끼여들면 당신은 어떤 행동을 취하겠는가?
 수영장 같은 레인에서 끼리끼리 친하다고 이름을 챙기며, 당신  앞으로 젊은 회원을 밀어 넣는 행동을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은가?
같은 회비를 내고 수영을 하러 다니는데 어떤 회원은 강사도 선뜻 하지 못하는 자리배정을 자신있게 처리하는 장면을 목격한다면 당신은 어떤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되는가?
새파란 젊은 회원이 가벼운 목경례도 없이 앞으로 끼어드는 그 당당함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한단 말인가?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의 불편함과 불쾌함에 대해 민감하다고 당신은 말할 수 있는가?

무개념적이고 무례한 사람들은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들이다.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들에게 왜 찍혔냐고? ㅋㅋㅋ




Welcome~~~

 이 문제 많은 세상을
인내심을 가지고 걸으라.
중요한 보물을 발견하게 되리니.
그대의 집이 작아도, 그 안을 들여다보라.
보이지 않는 세계의 비밀들을 찾게 되리니.
나는 물었다.
'왜 나에게 이것밖에 주지 않는 거죠?"
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이것만이 너를 저것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페르시아 시인, 잘랄푸딘 루미
출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님의 책에서


여인숙
                                         -잘랄루딘 루미

인간이란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거나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들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Thursday, April 04, 2019

Like Nothing in the Sky

고독(Solitude)
                                        -윌콕스(Ells Wheeler Wilcox)

Laugh, and the world laughs with you;
Weep, and you weep alone.
For the sad old earth must borrow it's mirth,
But has trouble enough of it's own.
Sing, and the hills will answer;
Sigh, it is lost on the air.
The echoes bound to a joyful sound,
But Shrink from voicing care.

Rejoice, and men will seek you;
Grieve, and they turn and go.
They want full measure of all your pleasure,
But they do not need your woe.
Be glad, and your friends are many;
Be sad, and you lose them all.
There are none to decline your nectared wine,
But alone you must drink life's gall.

Feast, and your halls are crowded;
Fast, and the world goes by.
Succeed and give, and it helps you live,
But no man can help you die.
There is room in the halls of pleasure
For a long and lordly train,
But one by one we must all file on
Through the narrow aisles of pain.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되리라.
낡고 슬픈 이 땅에선 환희는 빌려야만 하고,
고통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득하니까.
노래하라, 언덕들이 응답하리라.
탄식하라, 허공에 흩어지고 말리라.
메아리들은 즐거운 소리에 춤을 추지만
너의 근심은 외면하리라.

기뻐하라, 사람들이 너를 찾으리라.
슬퍼하라, 그들은 너를 떠날 것이다.
사람들은 너의 즐거움을 원하지만
너의 고통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즐거워하라, 그러면 친구들이 늘어날 것이다.
슬퍼하라, 그러면 그들을 다 잃고 말 것이다.
네가 주는 달콤한 술은 아무도 거절하지 않지만
인생을 한탄할 때는 너 홀로 술을 마시게 될 것이다.

축제를 열라, 그럼 너의 집은 사람들로 넘쳐나리라.
굶주리라, 세상이 너를 외면할 것이다.
성공하여 베풀라, 그것이 너의 삶을 도와주리라.
하지만, 아무도 죽음은 막지 못한다.
즐거움의 방들엔 여유가 있어
길고 화려한 행렬을 들일 수 있다.
하지만 좁은 고통의 통로를 지날 때는
우리 모두는 한 줄로 지나갈 수밖에 없다.


  



Tuesday, April 02, 2019

Listen Carefully

학창시절의 영어라는 언어는 재미가 있었고, 시간을 내어 기꺼이 공부를 하였으며 어떤 하나의 작은 긍지로  간직하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고등학교 시절엔 필기시험으로 언어능력을 파악하던 때였으므로 말하기와 듣기 그리고 쓰기의 언어로서의 생활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40이 되어 '미국'이란 낯선 나라에 가서 일상의 언어로 다가온 생존영어는 그동안 외워두었던 단어들과 재빠른 눈치발로 그 역할을 감당하였던 것 같다.  경제적 활동에 있어서는 돈을 지불해야 할 상황에선 소통에 어려움이 그리 많지 않았던 반면에 돈을 돌려 받아야 할 아쉬운 부분에서는 상당한 인내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을 기억한다.

 듣기 영역 점수는 형편없이 낮은 점수를 기록하였다.
 'Listen Carefully'

영어가 들리지 않았다!
휙 지나가던 꼬부랑 영어들이 시간과 간절함을 덧입어 스며들기를 반복하다 어느날 좀 더 많은 단어들이 들리고, 상황에 맞는 영어문장이 들리고, 그리고 제스처와 다른 영어가 들리는 과정을 지나 짧지 않은 외국생활을 하였었다.  지금 여기서 지나간 40대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모국어인 한국어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주고받는 언어라는 것은 소통을 하기 위함일진데 마음을 열어 대화하기 이전에 마음문을 열고 들어주는 그 자체가 결코 쉽지 않은 행위라는 것임을 깨닫는다.

두개의 귀로 잘 들어주어야 하는데 하나의 입으로 말하기 바쁘다.  청(聽)이란 글자는 시간을 입어도 언제나 어렵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준다는 것은 무엇인가. 앞지르지 않고, 마음 문을 열고, 판단하지 않고,  솔직한 대화가 오고가는 것이 불편하지 않게, 눈과 눈을 마주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비난하지 않고, 충고하지 않고, 등등의 자세를 갖추어 경청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의 나라 말을 사용하면서 겪은 갑갑증 보다 모국어인 한국말을 사용함으로 얻어지는 외로움은 수많은 가면을 번갈아가며 쓰며 추하고 못난 마음을 감추어야 하는 이유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말하고 듣기를 하며 들켜버릴 본연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아마도 때때로 제대로 듣지 않고 말하기만 하는 괴물들을 양산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쉽게 떨쳐내기 어렵다.

https://www.youtube.com/watch?v=Oi290JIZ1uQ
Song for Asking, Simon & Garfunkel


Monday, April 01, 2019

No Record

레바논 출신의 여성감독, 나딘 라비키의 영화 '가버나움'은 가슴이 멍멍해지는 영화로, 주인공인 어린소년의  한맺힌 커다란 눈동자가 잊혀지지 않는 영화이다. 출생기록도없어 누구인가를 증명할 수 없는 존재로서, 부모로 부터 받아야 할 어떤 기본적인 보호란 것도 받아보지 못하며, 아동학대와 노동착취를 당하며 사는 12살(대략) 어린 소년(자인) 이야기는 오늘 내가 누리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돌아보는 마음을 갖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