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anuary 27, 2008

Red and Green


The Knocking the Water


Self Portrait with 3 Objects

얼굴을 그리지 않고 나를 나타낼 수 있는 세가지의 사물들을 결정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리고 그것들을 그럴싸하게 연결고리속에 집어넣어 눈을 끄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한편의 시를 쓰는 것 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 아직 시각적인 랭규지를 민감하게 구사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학기 뼈다귀들을 목탄으로 부지런히 그렸기에, 이번학기엔 근육을 배우나보다 했는데...이제 다시 연필로 다시 기초부터 시작하는 것 처럼 보이더니, 아니! 구성까지 신경써서 얼굴 말고 다른 것으로 초상화를 해오라니 이만저만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창의적이기엔 난 넘 나이가 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은 내게 열정이 엷어졋다는 것인가!

목탄으로 지금껏 드로잉을 해오다보니,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생뚱맞아 어찌 연필을 잘 다루어야 할 지 몰라 살살 다루었더니... 옅은 색 연필들로 그림을 그린다기에 민감한 소묘를 하나보다 싶어 성실히 조심스럽게 다루어갔더니...그만 조용한 그림이 되고 말았다.

말이 좋아 조용하고 평화롭지, 다른 말론 지루한 그림이란 속뜻이 있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날카로운 장미가시와 연필심지를 강조한다고 했건만 내 그림속의 날카로움은 그냥 그렇게 있었다는 것을 시간이 흐른 뒤에 깨달았다.

나를 나타낼 수 있는 사물, 아니 내가 그리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내가 그릴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관심이 있었던 것이고...해서 드디어 아이디어를 얻었다. 비오는 어느 날 보았던 장미와 그리고 연필을 든 나의 소중한 오른 손과, 그리고 지금은 굴리지 못하는 멋지게 훅으로 돌아가던 나의 볼링 볼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임페리얼 장미! 강한 가시와 부드러운 꽃잎속에 숨어있는 향기! 부드러움과 강함이 선명한 장미와 내가 닮았다면 누가 싫어 할려나? 그리고 언제나 수고로운 나의 소중한 오른 손은 언제나 나를 말한다. 그 손은 맛있는 음식도 만들고 그리고 멋진 그림도 그린다. 연필을 든 손은 지금의 나다! 그리고 굴러가서 핀들을 쓰러뜨릴 무거운 볼링볼, 항상 움직인다는 뜻이다. 움직여야 에너지가 생기는 것 아닌가!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젊은 친구들 처럼 거칠게 못그려서 다이나믹한 느낌은 가질 수 없었지만, 난 연필로 성실하게 숙제를 해보았다. 이것은 순간적인 크로키가 아니다.

Just Line Drawing- Check Check!


The Standing Figure


The First Day in Figure 08


Knock Knock

새학기를 맞이하여 분주하였나 보다. 몇주가 흘렀나?

일월의 끝자락을 붙잡고 스스로에게 안부를 묻는다. 춥지 않은 겨울을 지나 새해에 이어지는 겨울은 길고 추운 날씨로 깊어지고 있나보다. 그러나 어김없이 겨울나무들은 때를 따라 어린 순들을 내놓을 터를 마련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태양빛을 향하여 있나 보다.

언제나 이렇게 나도 창밖의 겨울나무들처럼 봄을 기다렸을까? 간절한 기다림으로 말이다.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운동을 하지 않고, 자꾸만 날씨의 무게만큼 마음이 가라앉으니 만사가 시큰둥이다. 이제 성숙해가는 한 모양세라고 보기에는 나이들어가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더욱 마음이 그렇다.

수채화, 유화, 서양미술사, 그리고 인물 드로잉 수업을 이번 봄학기에 수강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소감을 짝막하게 표현한다면, 수채화는 느림의 그림이라 할 수 있고, 유화는 실수를 용납할 수 있어 더욱 찬란한 그림이라 할 수 있고, 인물 드로잉은 끝없는 연습을 필요로 하고 있다. 서양미술사는 아득한 태고적 원초적인 기억들을 더듬고......

대학시절 미대앞을 지날 때면, 페인트가 묻은 앞치마를 입은 미대생들을 보면 얼마나 보러움이 앞섰던가!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처음 시작할 때의 두근거리는 열정은 어디갔는가!

내 자신을 깨울 때다! 똑 똑!!

Tuesday, January 08, 2008

Vincent Van Gogh


반 고흐의 "영혼의 편지"를 드디어 읽게 되었다. 동생 테오와 주고 받은 편지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고흐의 내면적인 고뇌를 잘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나서 가슴이 짠하였다.

난 이제 붓을 든 초짜 미술학도이지만, .그가 고뇌하고 갈등하는 부분 부분을 동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우리 모두 처절하게(?) 우리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억제하며 매일의 경험과 보잘 것 없는 작업들이 쌓여 나중에는 저절로 원숙해지며 더 진실하고 완결된 그림을 그리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니 느리고 오랜 작업이 유일한 길이며, 좋은 그림을 그리려는 온갖 야망과 경쟁심은 잘못된 길이다." 라고 고호가 표현해 놓은 부분은 밑줄 긋고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어떤 그림이 정말 좋은 그림인 것인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글처럼 살아 움직이는 힘이 깃들여 있는 좋은 그림앞에 서면 느낌이 오는 것일까? 그가 말한 것처럼 예술은 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더 깊은 사람의 영혼에서 솟아나온 것이기에 얼마나 바라보기 가슴벅찬 것인가!

가난과 질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고흐의 삶과, 처절하게 그림으로만 자신을 표현하며 살다간 고흐의 편지를 읽는 것은 가슴이 아픈 일이었다. 행복한 화가의 편지를 읽을 수는 없는 것일까?

새해벽두에 고흐는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나도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Monday, January 07, 2008

Happy New Year - from eccentric family


Sunday, January 06, 2008

Singing Soony 07

나는 떨었다! 입술이 덜덜 떨렸다.ㅎㅎㅎ 모든 것이 나이들어 간다?! 사진을 놓고 보니 날로 살도 늘어간다. 그런데 왜 난 떨렸을까?

간만에 떨리는 순간과 쪽(?) 팔리는 순간을 경험하였다.ㅎㅎㅎ 정말 이렇게 리얼하게 표현해야만 한다. ㅎㅎㅎ

전문 음악인도 아닌디 카본데일 음악의 밤 행사에 이름을 넣어 주었기에, 끝까지 마다하는 것이 혹시라도 교만스럽게 보일까 두려워 참가를 했는데, 그렇게 무식하게 아랫입술이 덜덜 떨릴 줄 몰랐다. 개인적으로는 가슴아픈(?) 순간이었는데도 나이를 먹어 물렁물렁 해진 탓인지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삐시식...

독일과 프랑스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음악 전공을 하신 분들과 어찌하여 함께 무대에 서게 되었던 것은 피아노 잘치는 목소리 큰사람이 빡빡 우겨서라는 뒷이야기도 말하고 싶다. ㅎㅎㅎ 참고로 난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의 피아노 치는 솜씨는 결정적으로 날 떨게 하고 말았지만!

아직까지 우렁찬 나의 목소리가 전공 음악인과 함께 자리를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금요일 저녁에 전화받고, 토요일 연습 없고, 일요일 한두번 불러보고, 그리고 무대라! 한시간 반동안 전문인의 음악속에 파묻혀 있다가 순서대로 나가 하다보니 목소리가 시간따라 잠기고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전공인이 아닌 나로서는 연습량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입술이 떨리고 말았다. 방송국에 가서도 이렇게 떨지 않았다. 떨리지도 않았는데 왜 아랫입술이 내 의지와 달리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그 순간에도 머릿속이 잠시 복잡하였다.ㅎㅎㅎ

이제 더 이상 노래를 하지 않아야겠다.ㅎㅎㅎ 누가 들으면 진정 내가 음악인인줄 알겄다. 그러고보니 난 정말 가끔 삭막하게 살고 있고나! 좋은 음악을 추려 들으려는 의지도 없고, 그리고 노래방이 없어서 속세의 노래도 기분내고 부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찬송가를 부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잊고 사는 것이 참 많다!

하지만 사랑하는 님의 말씀처럼, 잠시나마 내 몸을 울려서 아름다운 찬양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기쁨이며 내 의미였을 것이다. 가사의 의미대로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이다.

Shh......


Big Smile

그이를 처음 본 순간이 여고 일학년 어느 날 이었으니, 숱한 시간이 흘렀다. 이제 우리 나이 들어 가고 있다. 더 이상 그이를 위해 화장을 하지 않는 아줌마로, 불러오는 똥배를 들어내어도 부끄럽지 않는 중년의 아짐이 되고 말았지만 그이가 있으니 난 자신 만만이다. 업그레이드한 사진기로 큰아드님이 한컷 한 사진인데 화소수가 넘 높은 탓인지 넘 리얼하게 나오고 말았다. 커피 스테인이 드러난 누런 치아와 얼굴의 잡티까지......

그래도 난 이 사진이 좋다. 내가 이렇게 웃는 줄 몰랐다. 못난 점 많은 나를 품어주고 사랑해주는 나의 사랑하는 영감! 어이구 할멈! 이렇게 말하고 웃었나?!


My Babies 07


유화 기초반에서 이루어낸 나의 자식같은 그림들이다. 액자 없이 보관하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고 뭔가 끝내지 않은 듯한 걸떡지근한 마음이 있었는데,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아르바이트 생인 미술학도 '데이브'가 안목있게 액자를 완성해 주니 기쁘기 그지 없었다.
난 모르는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공부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지 않았는가! 배니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액자를 어떻게 골라야 하는 지도 일종의 마무리 공부가 안되어 있었나 보다. 하긴 기초반이니 그런 것을 가르치기엔 역부족이었을까?
블랙앤 화이트 작품이 액자옷을 제일 잘 입은 듯하다. 은색 액자에 두고보니 훨씬 더 깊은 맛이 더하여서 액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첫 칼라 작품인 붉은 색과 노란색의 그림은 골드빛 액자를 잘 만났지만 사이즈가 조금은 갑갑하다. 종류와 사이즈가 제한된 오픈형 액자에서 고르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모네의 카피그림은 액자를 조금은 잘못 만난 듯하다. 테두리에 여유공간이 없어서 인지 조금은 답답하고 액자의 진한 색깔은 찬란한 색들을 눌러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하고보니 뒤늦게 깨달아지는 것이 많다. 이번 이천팔년 봄학기에 그려진 작품들은 사이즈를 좀 더 크게 해보고 싶다. 그리고 벽에 걸리는 순간까지도 고려해서 그려 볼 생각이다. 내 자식같은 못난둥이 그림은 이베이에서 팔지 않으며 그것은 절대 가격을 붙일 수가 없다. 난 그림을 팔려고 그리지 않았다. 난 아직 배우는 미술학도이다.

My Son


My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