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16, 2024

red rabbit

 


Wednesday, May 15, 2024

어제를 벗고

 부처님 생신이라서 붉은 휴일은 비가 내렸다. 우산을 챙겨 나간 동네 공원은 비 소식에 인적이 드물다. 비를 맞는 붉은 장미는 방수로 아직 끄덕없는 듯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 것 같다. 하얀 찔레꽃을 보며 나의 정원에 심었던 주황색(코럴) 노랑색 장미를 한참이나 생각했다. 찔레꽃과 접목을 시킨 장미는 겹겹이 쌓여있는 우아하고 고귀한 영국 로얄 장미와는 다르게 찔레꽃의 단순함과 귀여움을 갖고 있었고 장미의 향기를 품고 있었다. 그보다 더 오래된 기억 속에는 찔레꽃 어린 가지를 뜯어 껍질을 벗겨 질겅질겅 씹어 단맛을 즐겼던 어린 순간도 생각난다.  달디단 사탕이 귀할 때 이야기다. ㅋ

벚꽃과 개나리 라일락과 철쭉이 피고 지고나니 5월의 시간은 그야말로 푸르다. 하얀 꽃들을 늘어뜨린 아까시아와 이팝나무가 꽃길을 만드는 시간 속에 장미가 꽃의 여왕답게 붉게 꽃봉우리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온 세상이 푸른 오월에 붉은 장미는 매혹적이며 이기적이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분다. 끄떡없이 피고지고 붉은 그 길을 갈 것이다. 

겨울 내내 묵은 흔적으로도 담을 붙들고 있던 담쟁이들이 어느새 반짝이는 새잎으로 담을 더듬어 붙잡고 기어 오르고 있었다. 날마다 새로운 모습이다. 어제를 벗고......




Monday, May 13, 2024

다림질

  쭈글쭈글한 옷을 입고 나가면 안될 것 같아 서둘러 다림질 판과 다리미를 찾았다. 옷까지 다려입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움직임이다. 무늬가 없는 옷이다보니 옷장 속 비좁은 곳에서 한쪽으로 쏠린 옷주름이 감춰지지 않는다. 약간의 노력이라는 것을 해도 괜찮을 듯 싶어 평소와 다른 부지런함을 챙겨 보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스팀 다리미는 쭈글거리는 주름을 편다. 마술이다! 그리고 훨씬 낫다!

우울증이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것이라고 한다.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그럴 때가 있는 것이다. 옷을 챙겨서 다림질을 하는 행위는 우울감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셀프로 칭찬할 일이기도 하다. 타인의 시선 보다는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은 주글거리는 옷의 상태를 알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소중한 자신을 감싸고 있는 옷을 단정히 하여 자신에게 예의라는 것을 차린 나를 사랑한다. 

다림질이 무색하게 앉았다 일어났더니  참을 수 없는 무게감으로 굵은 주름을 만들었다. ㅋ 그래도 내가 내려다 볼 수 있는 앞면은 아직 무사하지 않는가. 앞이라도 반듯해서 다행이다.  부정적인 면면의 주름진 생각을 멈추고 얼른 스팀 다리미가 지나간 듯 활짝 피고 웃고 보자고^^

Sunday, May 12, 2024

어제를 떠나 오늘을

 어제를 떠나서 오늘을 사는 것은 '무소유의 삶'이라고 한다. 어제의 껍데기들을 툭툭 털어버리고 오늘로 푸르게 일어서야 한다.  일단 베란다 창문을 열고...시원한 바람과 함께 새 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려온다. 

오늘 하루는 '소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을 가지고 먹고 쓰고 날로 하루를 꾸려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비워야 채워지는 것쯤은 알만한 나이가 되었는데도 자꾸만 부질없이 채운다. 어제의 서운함과 못마땅함을 얼른 내다 버리고 오늘을 푸르고 맑게 채워야 하는 것 알지만 자꾸만 모질하다. 조용히 몸을 움직이고 입을 닫고 묵묵히 할 일을 하다보면 고요한 평화가 찾아 올 것이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내 마음의 정원에 '긍정의 씨앗'을 심는 것을 멈추지 않고 날마다 날마다 마음을 고쳐먹고 내게 주어진 길을 자연스럽게 마치는 것이다. 때때로 넘어지고 주저앉아 뿌리지도 않은 잡초가 무성한 정원을 갖게 되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는 법. 

잡초에게도 배울 것이 많다고 한다. 예를 들면 잡초는 까다롭지 않고 민감하지 않고 강인하다는 것이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유연하게 생존하고 번성한다는 것이다. 동네 공원에 아무렇게나 무심하게 피어있는 붉은 크로바(토끼풀) 꽃들이 생각난다. 흰색 토끼풀의 꽃으로 꽃반지를 만들고 놀았기에 붉은 토끼풀의 꽃이 신기하기도 하다. 잔디 커터기가 지나가면 드러누워 깍이지 않던 크로바!

잔디밭에 줄기차게 차오르던 밉상 흰토끼풀들을 캐내던 어제의 난 40대로 젊었었다. 잔디의 천적인 크로바는 비료를 뿌려도 잘 죽지 않아서 잔디뿐만아니라 나의 천적이기도 하였었다. 지금 여기 난 나의 푸른 잔디밭이 없기에 토끼풀도 귀엽고 민들레 꽃도 귀엽다. 소유란 이런 것이다. 내 정원의 잔디밭 속의 민들레와 흰토끼풀은 밉상이고 길가의 민들레와 크로바는 신기한 것이다.

어제를 떠난 오늘 난 잔디 깍은 냄새도  그립다. 내것이 아니니 그리운 것이지. 이웃의 잔디 깍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할 때가 있었던 거 거의 잊었다. ㅋ 그려, 떠나니 그리운 것이다. 

Saturday, May 11, 2024

색이 없는 사람

  전날 밤, 다음 날의 날씨를 체크한 후 출근할 때 입을 옷을 챙겨 놓았는데 느닷없이 아침 마음이 변덕을 부려 다른 옷을 '부랴부랴' 뒤적거릴 때가 있다. 바로 오늘 아침이 그렇다. 쫓기는 마음으로 옷을 코디를 하다보니 즐겁지가 않다. 나이를 먹은만큼 나답지 않은, 편하지 않는 옷차림에 민감해진다. 특별할 일 없는 금요일이지만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오늘을 내가 최선을 다해 나다운 옷으로 기념하면 안될 이유가 있는 것인가.

요며칠 살이 차오른 모양이다. 오랜만에 체중계에 올라서서 확인한 숫자는 먹은만큼 성실하다. 울퉁불퉁 못난 부분을 가려줘야 하는데 마땅하지 않아 입었다 벗었다를 여러 차례 했더니 자신의 변덕스러움과 결정장애로 인해 피곤함이 느껴진다. 아침  '루틴'이라는 것이 있는데 어긋나게 아침을 시작하는 마음은 불안한 것이다. 

'상상력'이란 단어는 참 어려운 단어임에 틀림없다. 옷장에서 오늘에 맞는 옷을 추리는 것에도 나만의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배양할 수 있는 문화적인 풍토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침내 '무난하고 무채색의 옷'을 추려놓은 아침의 옷은 금요일을 기념하는 것과 꽤 거리가 멀다. 아무 일 없이, 튀는 일 없이 그런 조용한 무난한 하루에 맞는 옷차림!

입을 다물고 눈치를 잘 보는 사람이 취해햐 할 옷은 무난함의 틀을 갖추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길들이고 있다. 무채색의 옷을 입으니 편하긴 하다. 시간과 장소에 맞는 옷을 골라입는 것도 슬기로운 선택임이라는 것을. 나 또한 시간과 장소에 어울리는 옷차림으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난 할 수 있으니까. 

Wednesday, May 08, 2024

푸른 그늘

 

오래 묵은 친구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냥 동네 공원에 나가 걷기로 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묵직한 '첼로' 음악을 들으며 걷자니 맑고 푸른 날이 감사하다. 며칠 장마같은 비가 내린 후 오월의 세상은 더 푸르고 맑다. 귀찮지만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밖으로 나가길 잘했다 싶다. 틈만 나면 자연으로 걸어 가야 한다. 

'이팝 나무'의 꽃들이  비바람에 길거리에 하이얀 눈처럼 떨어져 내려 앉았다. 가장 향기로운 시간이다 싶다. 이팝나무와 아까시아 향기가 어우러진 5월의 시간은 싱그럽다.  청초하고 진하게 피고지는 아까시아의 향기에 취해 걷는 것은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다. 비를 먹은 대지는 기분좋게 푹신거렸다.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보았다. 

내리쬐는 태양빛이 부담스러울 때 선물처럼 적당한 '푸른 그늘'을 발견하게 되었다. 몇 년을 걸어 다녔는데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귀한 장소가 공원에 있었다. 키가 큰 나무들이 만든 푸른 그늘을 한참이나 왔다갔다 거닐었다. 

이만하면 행복하다~~~


Monday, May 06, 2024

댕댕이는 말이 없지

 

나무가 초록으로 물이 차오르는 시간 우리는 바다로 갔다. 바닷가 그늘진 곳에 앉아서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바닷가의 많은 사람들을 바라 보았다. 아들의 댕댕이는 말이 없다. 검은 아이라인을 두른 동그란 눈동자는 단순하다.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며 손짓하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은 것이기고 하고 환경이 바뀌어 낮잠을 제대로 취하지 못한 탓으로 만사가 피곤한 것이다. '여긴 어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ㅋ

교통체증과 주차공간의 부족으로 인해 뿌옇고 누런 먼지로 시달린 마음은 다시는 공휴일엔 집밖으로 나오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으로 딱딱해지고 있었지 싶다.  그늘에 가만히 앉아 있었더니 그만 바다의 푸른 출렁임으로 취했는지 그만 생기가 돌고 만다. 기억력이 딸리는 것일까. 잊었다! 말없는 댕댕이와 멍하니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넌 무슨 생각을 하니?'

ㅋ 먹는 생각~~~ 말이 없으니 내맘대로 생각하고 만다. 

Thursday, May 02, 2024

가장자리에서

 뙤약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에 모자도 없이 2시간 동안 교육 활동을 하게 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림자 하나 없는 운동장에서 광합성을 하며 태양을 반길 그런 나이 아니다. '태양을 피하는 요령'없이 노출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이 세상엔 당연한 것은 없지만 눈치가 살짝 보이긴 하였다. 유전적으로 멜라닌 색소가 발달되어 있는 신체적 결점을 고려할 때 눈치보고 그럴 때가 아니다. 용감하게(?) 가방 속에서 비상용 우산을 꺼내어 쓰는 것을 선택하였다. 운동장엔 모자를 쓴 사람과 모자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우산을 쓴 사람이 있게 된 것이다. 

그림자 하나 없는 드넓은 운동장에서 수업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그냥 자외선 폭탄을 맞아야 했던가. 아니다! 친절한 사전 정보가 있었더라면 아니 경험자였다면 미리 모자를 준비하였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일본 여행길에 구입한 가벼운 우산이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우산이라도 꺼내어 그늘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난 큰 일을 못하고 '눈치보는 가장자리'에 있는 모양이다. 

우산을 쓰고 쏟아지는 자외선을 가리고 참여하고 있는 상황을 비난하고 싶다면 그것은 개인적인 자유이다. 난 선택을 하였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혹은 수업에 임하는 태도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내리쬐는 자외선을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피부의 광노화뿐만아니라 소중한 눈에 자외선이 들어가는 것을 방어해야 한다. 한 손으로 우산들고 참여했다 하여 못할 것 하나도 없다. 그 모습이 불성실하게 보였다면 그것은 당신의 것! 난 소중한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누구는 모자 쓰고 누구는 눈치보며 수업 중이라 땡볕 받으며 서 있으라는 것인가. 

가장자리에서 오늘도 눈치보며 잘 견딜 모든 사람들에게 화이팅이다. 가끔은 저항해야 한다. 당연한 것은 없다. 길들여질 뿐!


Wednesday, May 01, 2024

바다 옆에서

 


 다시 얼른 푸른 물결 출렁이는 바다로 달려 가고 싶다. 푸른 물결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바다로 달려가기 위해 오늘의 일렁임을 잘 타고 넘어야 한다. 바람을 이용하여 하늘과 바다를 타는 '카이트 보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았다. 사람의 '균형감각'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헤아릴 수 없는 연습과 좌절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유연하게' 예측할 수 없는 바람과 파도를 즐길 수 있는 단단한 힘을 비축한 사람들은 이미 멋지다. 

월요일 같은 목요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목이 터져라 웃을 일 없을 보통의 하루겠지만 긍정의 안경을 쓰고 입 다물고 두 귀를 쫑긋 세워 밖으로 나가본다. 장인이 만들어 저렴하게 판매하고 게다가 손수 담은 국산 김치가 제공되는 '수제비'를 먹을 수 있는 날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니 이미 위장이 행복하다. (ㅋ 양이 많지 않은 것이 좀 아쉬운 점이다)

바다야, 기둘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