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November 30, 2023

The Morning Moon

 


 '마지막'이란 단어를 가슴에 품고, 버스 정거장에서 바라 본 '아침달'이다. 마지막이란 단어는 새로운 출발의 처음이기도 하지만 항상 마지막은 처음처럼 어렵다. 겨울 나무 가지 끝에서 팔랑거리는 나뭇잎이 나비처럼 겨울 춤을 추던 그곳에, 하얀 달이 아침까지 남아  내게 말을 하는 것 같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나의 판단이라고...'

1에서 0으로, 0에서 1로

 끈질기게 내안의 있는 힘을 가장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만의 탁월한 장점,아레테를 발현시키는 것은 '끈기'이다. 1에서 0으로, 0에서 1로~~~ 상실감의 파도를 넘어~~~

1-0, monoprint

                                               


Tuesday, November 28, 2023

달밤


 

달달하고 부른 밤이기에 '달달한 밤'인데,
그만 달밤이라 적고 만다.
달무리와 구름이 멋졌던 밤이었다.
내 안의 늑대 여우가 소리 짖어 
울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밤, 
달밤이었다. 

Night Garden

 




Monday, November 27, 2023

붉은 별을 밟다

 겨울 비가 내린 후 다음 날 예상 온도가 8도 이상으로 떨어진다 하여,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한 탓인지 막상 비 내린 다음 날, 오늘은 그리 춥지 않다. 

어제 내린 비는 빨간 단풍나무 별들과 함께 내렸나 보다. 무수한 붉은 별들이 길바닥에 스티커처럼 붙어 있다. 이른 아침부터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젖은 낙엽을 모으는 소리가 들리는 아침은 이상하게 영화 한 장면 같다. 

기온이 떨어져 '낙상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안전 문자가 스마트 폰에 도착해 있음을 기억한다.  나이를 먹으니 '낙상'이란 단어가 두렵다. 미끄러지지 않을 신발을 챙겨 신고 내딛는 걸음 마다 경계하며 붉은 별들을 밟고 걷는 이 순간도 잠시, 지나갈 것이다.

'머지 않아 너의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고, 머지 않아 모두가 너를 잊게 될 것'(아우렐리우스)


'국민 잠바'라 할 수 있는 두꺼운 오리털 잠바를 껴입고 지하철에 오른 사람은 나 혼자이지 않다. 사람들의 움직임은 커다랗고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두껍게 겹쳐진다. '뭐 어때, 옷이잖아.'  타인과 겹쳐지는 것은 겨울이어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지난 밤 부쩍 차가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동네 공원 걷기를 감행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평화롭고 고요한 걷기는  즐거움이다. 망설이는 마음으로 집안에 주저 앉아 있었더라면 행복 호르몬  '도파민'이 주는 맛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날이 추우면 더 두꺼운 옷을 챙겨 입고 나가고, 비가 오면 우산을 챙겨 나가면 된다.  단단하게 나아가지 못하고 물렁거리는 순간이 나라고 왜 없겠는가. 

홈 쇼핑에서 부쩍 '관절'에 관한 영양 보조제를 홍보하고 판매한다. 몸이 점점 노쇠에 갈 것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미리 앞당긴 두려움에 사로 잡히지 않기 위해 일단 홈 쇼핑에 걸려 들지 말아야 한다. 아무 일 없을 것이라며, 내 '연골'은 멀쩡할 것이라며 벌떡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 

고개를 들어 겨울 검은 밤,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달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낭만적이다. 보름달이다! 걸을 수 있는 즐거움을 오랫 동안 허락하시라 기도해 본다. 두 다리 성성하게 하소서! 홈쇼핑에서 선전하는 관절 영양제를 챙겨야 했을까...

일단, 젖은 낙엽에 미끄러지 않게 근육부터 잡고 보자. 몸과 마음의 근육이 울퉁불퉁한 그런 사람 되고 싶었잖아^^

I am 냥이

 

I am 냥이

오늘도 배우고 익히니 즐겁다!!!

... 스마트 폰에선 보이고 노트북에선 왜 영상이 보이지 않지?
스마트 폰에선 지원 가능하고 블러그 프로그램은 지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스마트 폰에서도 웹버전으로 보면 영상을 보는 것이 불가능.  

Sunday, November 26, 2023

아직 끝나지 않았어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Nyad)란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로 수영 선수 다이애나 나이애드(Diana Nyad)가 나이 60세에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는 이야기이다.  나이 60이란 숫자는 나이가  젊었을 때에도 성공하지 못한 일을 도전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보통의 나는 잘 알고 있다.

'만사가 다 우울해. 내 탁월함은 어디 간  거야?'

영화를 보고 있는 나, 만사가 다 귀찮고 심드렁하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ㅠㅠㅠ

그런데 '다이애나 나이애드'는 마음을 먹었다. 난 할 수 있어! 나 아직 끝나지 않았어!!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 거친 바다를 종단하는 일은 역시 '과학의 힘'이란 생각이 들긴 하다. 바다의 해류를 분석해야 하고, 가장 효율적인 식단을 제공해야 하고, 수영 선수에 대한 전문적인 의학 지식이 있어야 하고, 멘탈을 함께 잡아줄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전문적인 사람들과 한 팀을 이루기 위해서는 역시도 물질적인 받침이 있어야 하는 것도 당연한 것일테다. 모든 것을 올인하여 이루어내고 싶은 것이 있는가 자문해 본다. 보통의 나는 그렇지 않다. '그냥 저냥 살아가는 것이지...뭔 소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정체되고 퇴화하게 만드는 것이 늘어나는 나이탓일까. 꿈을 꾸지 않기 때문에 늘어지는 것이다! 보통의 나는 잘 알고 있지만 현실은 늘 '그냥저냥'이다.

하지만 그녀는 주저 앉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양 수영에서는 중요한 것이 '체력'뿐만 아니라 정신력 그리고 바다의 조류라고 한다.  저항감을 줄여 바다와 싸우지 않고 흐름을 타고 건너야 하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53시간이나 수영을 하는 것일까 궁금하다. 

바다엔 바다의 원래 주인인 물고기들이 산다. 식인 상어, 독성 해파리떼의 공격을 피하며 무사히 바다를 횡단하기까지 좌절하고 실패하고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면서도 절대 꺽이지 않은 '집념'이 있었다.  나이 60세에 도전하여 64세에 최초로 쿠바에서 플로리다 해안까지 180km를 53시간 동안 헤엄쳐 종주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 속의 여주인공 애넷 베닝(65)과 그녀의 코치이자 친구 역할로 나오는 조디 포스터(61) 두 여배우의  주름진 외모가 더 충격적이었다.

분장을 했나 의심스러웠다. 벌써...나도 늙었으면서 영화 속의 두 여배우의 주름지고 늘어짐이 충격이었다. ㅋ 자글거리고 처지는 얼굴로 분장을 했나? 아니다! 

'몸은 늙었지만 정신은 아주 멀쩡해...젊어서는 그게 없었지만, 지금은 있어'

애넷 베닝(65) 여배우님은 1년간 수영 훈련과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하고 영화를 찍었다고 전해진다. 노년의 영광을 보여주는 영화로 완전히 멋지게 늙은 두 여자를 보여주고 싶다는 감독의 의도가 살아 빛나는 영화라고 공감하고 확신한다.

'난 아직 끝나지 않았어. '

좋은 영화 한편으로 보통의 나는 뜨거운 기운을 받았다. 그려, 나 아직 살아있다. 몸도 늙고 정신력까지 없으면 아니된다. 몸도 잡고 정신줄 잡자! 몸이 정신을 지배한다~~~

다이아몬드

 'Diamond is just a lump of coal that stuck with it.'

Thursday, November 23, 2023

붉은 바보

 


함께 벼락, 번개, 태풍, 땡볕을 먹은
달디단 여름 품은 대추는
찬바람이 싫다며 떠났고
떨떠름한 못난 맛에 너는 남아
모질하게 부는 세찬 바람 견디며
겨울 바보처럼 서 있더니
더 붉은 단맛을 품게 되었구나.


그런 날

 


살다보면 그런 날이 있다. 별로라 생각했던 것이 괜찮게 느껴지는 그런 날.
하찮게 여겼던 것들이 날마다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소중한 것들이란 것을.
누구나 자신만의 십자가를 지고 산다는 것을.


Wednesday, November 22, 2023

가끔 피곤해

 목요일은 목이 터져라 웃어야 하는 날인데, 늦게 일어난 아침은 조용하다. 초미세 먼지를 알리는 인공지능 알림은 붉은 색이다. 고개를 돌려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니 뿌연 안개가 낀 것인지 밀가루를 물에 푼 것처럼 흐릿하다.

오늘 아침 잠이 깨어 뒹굴거리다 '울트라 러닝'(Ultra Learning)이란 말을 알게 되었다. 좋아서, 의도적으로, 자발적으로 어떤 것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아마도 평범을 넘어 그 이상의 단계에 '미치는 단계'일 것이라 짐작한다. 가슴이 뛰는 일이 있다는 것은 피곤해도 벌떡 일어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피곤함을 이겨낼 수 있는 뿌듯함의 쾌락을 알아버린 사람들은 멈추지 못할 것이고, 그 이상의 것을 성취하기 위해 더 깊은 곳으로 더 넓은 곳으로 향하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삶을 뒤돌아보니 몇 번의 그런 순간이 있었다. 좋아하는 운동을 배우고 익힐 때, 좋아하는 그림 작업을 할 때, '적당함'이란 단어가 어렵게 느껴지던 그런 때가 있었다. '적당함'이란 단어는 얼마나 어중간하고 애매한 말인가. 편안하고  쉬운 그 '적당함'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탐구하던 그 붉은 마음과 맑은 눈을 가졌던 날들이 내게도 있었다. 내 안에 엔진이 붕붕거리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물론 솔직히 과거형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다며 미그적 미그적거린 세월이 한참이나 지났다. 게으른 내가 나를 길들인 것이다. 

 작금에 이르러 어떤 것에 대한 '헝그리 정신'이 그닥 생기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한다면 저항하지 않겠다. 다만, 그날 그날 만족하며 산다는 것의 부작용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다. 세상엔 공짜가 없는 법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을 지금의 나는 선택하였고 때로는 무지 피곤함을 느끼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적당한 편안함에 대한 댓가이다.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피곤하다.

'결핍'에 궁상 떨지 않고, '욕망'에 사로 잡히지 않고,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무엇이지? 

변하는 세상에 적당히(?) 발 맞춰 배우고 익히고, 세월 따라 주름지고 약해지는 몸에 대해 '수용'하고 잘 관리하고, 나다운 품격있는 삶을 살다가면 되는데, 이제와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뭐지? 나다운 것이? 다행히 긍정적으로 '자체 발광', '자가 발전' 이런 단어가 떠오른다. ㅋ 나이 먹어서 자체 발광, 자가 발전 하기 힘들다. 나이탓하며 오늘도 역시 적당히 행복한 선택 들어간다. 난 평범하기로 했어, 그래서 가끔 피곤해.


Tuesday, November 21, 2023

굴전과 무생채

 '영국' 슈퍼마켓에서 무인 '키오스크'를 없애고 '사람'을 고용했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영국 정부에는 우리 나라에 없는 국민들의 고독과 외로움을 돌보는 '외로움부'가 있다고 한다. 인건비를 아끼자며 '키오스크'로 디지털 자동화를 하고 있는 세계적인 흐름을 거스리는 영국 정부는 대단하다 싶다.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 슈퍼에서 식료품을 구입하면서 그나마  슈퍼의 사람 직원과 몇 마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내용이다. 

슈퍼에 가서 물건을 구입시, 점원은 삐삐삐 바 코드를 인식 시키고 '여기에 카드 꽂으세요.' '영수증 여기 있습니다.'란 두 문장만 사용하는 것 같은데...'외로움'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이지? 도와주는 사람이 없이 셀프로 물건에 붙은 바 코드를 인식 시키고  값을 계산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물론 그 불편함은 익숙하지 않은 이유가 크겠지만, 셀프로 한다고 해서 물건 값을 할인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못마땅 하기도 하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 온라인에서 물품과 식품을 구매하는 신속 편리함에 익숙해진 탓으로 동네 슈퍼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긴 하였다. '사람'을 대면하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 것 같다. 집 밖으로 걸어 나가 몸도 움직이고 사람 구경도 하고 그래야 되는데...'스마트 폰'을 꺼내어 쉽게 주문 들어 간다. 

이웃 나라 '일본'은 학생들을 위한 학군 보다는 노인을 위한 '노인 복지관'이 있는 지역이 비싼 동네라고 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는 모양이다. 노인 복지관의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취미 활동도 하고,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함께 나눌 친구들도 만나는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건강'이 뒷받침 되어야 모두 가능한 일이다. 노인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영양 만점의 바른 식사를 하고 운동도 함께 하고, 복지관과 연계되어 있는 병원에서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노인 복지 사회는 이루어져야 하는데 어찌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각자도생! 무섭고 외로운 말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웃 아파트에서 열리는 '장'에 발품을 팔아 들렀다. 맛난 '족발' 침을 삼키며 통과하고, 기름진 '돈가스' 통과하고, 주인이 집접 말렸다는 꼬득꼬득하게 말린 생선 '서대'를 사고, 통통한 '굴'을 구입하였다. 김장철이라 굴값이 금값이었다. 대만 여행때 먹었던 녹말 가루로 부친 부드럽고 미끌거리던 '굴전'이 생각이 났드란다. 굴을 소금 물에 씻어 '부침 가루'를 묻히고 달걀물에 청양 고추를 송송 썰어 굴전을 급하게 만들었다. 기름 냄새가 집안 가득이다. '청수무'를 가늘게 썰어 무생채를 만들고 나니 습관처럼 차오르는 '우울감'이 사라지는 듯 하다. 역시 몸을 움직여야 하고, 위장이 든든해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술한잔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이만하면 족하다!

누군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좀처럼 쉽게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쉽게 행복한 기분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열심히 뭔가 도전하고 성취해야만 그 대단한 행복감이 느껴질 것 같은 그런 생각 말이야.  그 행복한 기분은 굴전 한 접시에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매 순간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가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때때로 행복을 거창하게 멀리서 찾곤한다. 

그려, 행복은 셀프다. 일단 오늘만 살 것처럼 행복하고 볼 일이다. 

Monday, November 20, 2023

스마트 폰은 스마트하다

 

희망 없이 사는 것이 죄다.

사막 여우

ㅋㅋㅋ 어라, 치우쳤넹^^ 바삐 만들었더니만...  페넥여우(사막여우)는 몸과 머리에 비해 커다란 귀가 특징이고 큰귀로 소리에 아주 예민하고 경계심이 강한 성격이란다. '일부일처제'를 따르며 살고 있다고 한다. 사막 여우 화이팅!
 

향나무 한 그루

 병원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매년 오르는 실비 보험비가 아까울 정도로 병원에 자주 가지 않는 편이다. '약'이 떨어지고 있다. 추운 날을 핑계 삼아 요리조리 미루고 미루다 마침내 금식을 하고 병원을 향했다. 

병원이 바쁜 것은 불안하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조바심을 눌러 앉히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을 의도가 전혀 없는 잘 들리지 않는 TV. 그러고 보니, 잡지나 신문 같은 것도 없다. 다들 고개 숙여 들여다 볼 '스마트 폰'이 있지 않는가. 바쁜 토요일을 피해 월요일을 택해 방문했는데도 바쁘긴 마찬가지이다. 주말을 기다린 월요일은 손님이 많다는 사실을 잊었다. 게다가 연말이라 건강 검진을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괜찮은 병원은 바쁘다! 진행 상태를 살펴 보자고 실시했던, 석달 전 피검사의 결과를 가지고 약을 처방해 주는 바쁜(?) 의사를 믿어야 할까. 혈액 검사를 위해 '아침을 굶고 왔다'고 말을 하는데도 '그냥 오늘은 약만 받아가시고...할려면 하시고요...' '뭐지?' 피 뽑고 다음 날에 결과 분석하고 처방을 해주면 되는 것인데 의사 선생님의 서두른 처방이 이해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석 달 전 혈액 검사의 수치가 아침까지 굶고 온 '배고픈 의지'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했던 모양이다. 

정신줄 잡고 오늘은 피 검사 하고 내일 약을 받으러 오겠다고 말해야 했을까... 점점 바보가 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적응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약 봉지를 들고 돌아오는 길은 단풍이 들지 못하고 떨어진 푸른 낙엽들로 인해 발걸음이 약간 미끈거렸다. 사람들 발걸음에 부서진 색은 초록빛이 날라간 흰색이 들어간 파스텔 초록색이다. 첫눈이 내리고 추운 날씨였음에도 귀여운 얼굴을 가진 노란 국화는 '군자'답게 아직 생생하다. 돌 틈에 뿌리를 잡고 있는 나의 '프렌치 마리골드'는 추위에 상처를 입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감나무엔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붉은 감들이 추상화처럼 달려 있다. 

붉은 감이 열려있는 감나무를 베란다 창문으로 보고 살고 있을 이웃의 행복을 생각해 보았다. '부럽네~~~'

무심히 걷고 있자니 푸른 향나무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하긴 활엽수들이 옷들을 벗으니 푸른 색으로 서 있는 향나무가 귀하게 달리 보암직도 하다. 지나치다 한번도 향나무 향기를 맡은 적이 없다. 어릴 적 향나무 연필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었는데 말이다. 구름 모양과 불 모양으로 움직이는 형태를 가진 '향나무'가 '반 고흐'의 그림에 나오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생각나게 한다. 

그럴 일 없지만, 마당이 있는 집에 향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는 상상을 잠깐 했다. 채송화와 봉숭아, 백일홍이 피어있는 소박한 정원이면 족하다. 집과 떨어진 깊은 마당에 감나무, 대추 나무, 무화과, 매실나무... 과일 나무를 심으면 벌들이 올 것이고, 벌이 오면 무서운 말벌이 온다는데...ㅋ 무섭다. 닭과 고양이와 강아지를 키울 것이다......일단 오늘은 마당에 향나무(영원한 향기) 한 그루 심고 본다. ㅋ



Thursday, November 16, 2023

반드시 오고야말 행복

 

2023년 첫눈이 내린 날, 마침내 너의 이름이 '프렌치 메리골드'라는 것을 알았다. 이름은 모르지만 아주 귀엽고 예쁜 너를 바라보며 행복해 했던 지난 시간을 기억한다. 너는 찬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것을 좋아하고, 심지어 찬서리가 내려도 아랑곳하지 않는 강인한 꽃이 틀림없다.  '반드시 오고야말 행복'이란 꽃말은 더욱 멋지다. 오가며 만나는 너는 첫눈이 내리는  오늘도 망설이지 않고 너답게 피었구나.

before winter

 


사라진 것들은 살아있는 것으로
망설임 없이 사라진다 하여
겉으로 웃고 속으로 우는 마음이 없다 하겠는가.


Wednesday, November 15, 2023

마주침

 옷을 챙겨 입고, 마스크를 챙기고 걷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기다리고...하루의 '루틴'처럼 행했던 일들도 이제 시작이 향했던 '마무리'로 매듭을 짓고 있나보다. '시작'이란 것이 있으면 '끝'으로 이별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언제나 '끝'이란 단어는 시원 섭섭함 보다는 '아쉬움'으로 머뭇거리게 된다.

자신만 들여다 보지 않고, 타인의 다른 사고와 경험을 만나는 것은 자신을 성숙하게 할 수 있는 마주침이다. 각자의 고유한 존재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서로 잘되기를 돕는 일은 사소하지만(?) 황홀한 일이다. 때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미소로 충분할 수도 있고, 때로는 침묵으로도 서로를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을, 때로는 성실함으로 서로를 지킬 수도 있다는 것을.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은 타인을 만나도 떨쳐 버릴 수 없는 셀프 자각이다. 겸손해진 것일까 초라해진 것일까. 타인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자신을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것일까. 

 '죽'도 '밥'도 아니어도 '화이팅'을 외치며 나아갔던 용기를 기억하며, 모든 기억과 감정이 좋았던 것으로 해피 엔딩 마무리를 하고 싶다. 잠시 비틀거리며 순간 씩씩대며 살아간 나날 속에도 누군가의 친절과 호의가 있었고 따스했다는 것을 잊지 않기로 한다. 


Monday, November 13, 2023

흐물흐물, 뒹굴뒹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생각 보다 훨씬 피곤한 일이다'

이른 아침을 먹고, 옷을 챙겨 입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이런 수고로운 일련의 과정이 나를 일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무기력'으로 흐물흐물한 멍한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푹신한 쇼파에 앉지 않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참 편할 것 같은데...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 깨닫게 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흐물한 상태를 좀 챙겨서 뒹굴뒹굴거리고 있자니, 자신에게 허락한 '독방'의 징벌이 생각났지 싶다. '뒹굴뒹굴' 힘없이 나뒹구는 낙엽처럼  TV 리모트 콘을 들고 이 채널 저 채널 돌리다가 결국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고, 난폭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드라마 세상으로 들어가고 만다. 

4부작 드라마 시리즈를 보며 잠시나마 '불안'을 잊었을까. 어라, 혼자서 잘 노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열정이 낙엽처럼 땅으로 떨어져 뒹굴뒹굴. 청소부 아저씨가 빗자루로 싹싹 쓸어가버린 모양이다. 

무작정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에 적당한 날 아닐까. 누가 나처럼 집안에서 '징벌적 고독'을 안주 삼아 냉장고를 털고 있을 어리석은 사람이 또 있을까.  운동을 하러 갔거나 취미 생활을 하러 갔겠지... 

내 '고독'은 내가 셀프로 감당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실내 자전거에 올라타 몸을 움직이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낫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은 피곤하다.

Thursday, November 09, 2023

이별 선물

 


아파트 정원수로 심은 감나무(대봉)에서 빨간 홍시가 익어간다. 바로 옆 대추나무가 맞았다는 벼락, 번개, 태풍, 땡볕을 대봉감이라고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나무 끝 붉은 홍시는 도시를 날아 다니는 까치밥이 될 것이다. 

가을이란 계절은 '이별 파티'이다.  시작과 함께 어김없이 찾아오는 '끝'이라는 단어를 내밀기 전의 '이별 파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극히 자연스런 일이고 당연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해피엔딩'으로 익어가는 홍시를 보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생각해 본다. 

Tuesday, November 07, 2023

겹쳐입기

 옷을 '겹쳐 입기'를 하니 날씨가 그리 차갑지 않다. 지하철에서  땀이 은근하게 목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느껴진다. 하지만 쌀쌀한 바깥 아침 기온을 고려하면 이 정도 땀은 참아야 한다. 사람들의 옷들이 두꺼워지니 지하철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 또한 '겹치기'를 하게 된다. '요리조리' 온 몸을 안으로 감아도 타인의 옷과 겹치기를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겨울이란 계절은 지하철 의자에선 선을 넘어 두껍게 겹쳐진다.

지하철 의자는 '천'이라서  혹시 모를 '빈대'가 숨어 있을 수도 있는데, 누군가의 옷에서 빈대가 묻어져 왔을 수도 있는데...'몰라, 그냥 앉을거야.' '뭔일 있겄어.' 신경이 뾰족하게 곤두서는 것을  '몰라라'하고 빈자리에 '털석' 앉고 만다. '지하철 공사에서 소독을 하고 있을거야...' 

버스 정류장에서 아직 치워지지 않은 낙엽들을 보고 있노라니,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낙엽들이 사람처럼 '때를 지어' 길을 건넌다. 무게가 없으니 바람이 부는 대로 쏠려 가는 것이 꼭 삶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바람 따라 공중 부양을 하며 굴러간 낙엽들은 또 어디로 가려나.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니 흘러가는 구름 한 점 없는 말간 푸른 하늘이다. 팔랑거리는 '플라타나스 나무'를 바라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나무의 중심부터 오래된 나뭇잎을 떨구니 먼저 따뜻해진 가을색과 가장 자리 어린 푸른 잎이 섞여 보암직스런 아름다운 자태이다. 도로변 가로수의 가지치기는 전봇대에 매달려 있는 전기 줄을 방해하지도 않아야 하고, 상가 건물의 '상호'도 고려한다면 일명 '닭발'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단순하게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닭발 가지'의 몸둥이에서 봄부터 시작한 여린 가지들이 새로 나와, 초록으로 쌓아 올린 나뭇잎들이 해를 따라 동그란 나무의 형태를 만든 멋진 나무들. 삭막한 도시에 가로수가 없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생각해보니, 달리는 버스 안에서 다양한 가로수의 가을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움'이다. 버스를 타지 않으면 이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특히 '플라타나스' 나무의 멋짐을 재발견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공 건물 앞의 가로수들은 왜 훨씬 우람하고 멋있는 것이지? 아무래도 검은 전선이 없는 이유가 크겠다.  공공 건물 주변에 주어진 '공간'과 '관리'가 이루어낸 멋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록달록한 자본주의 간판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무들은 당당하고 더욱 멋지다.  나무도 사람도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모양이다. 적당한 공간을 주고, 주위 환경을 배려하여 심어지고 길러진 나무들은 멋지다. 

비켜가는 가로수들을 보고 있자니, '적당한 거리감'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해준다며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까 자기 검열 들어간다. 날이 추워질수록 더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따뜻하게 돌봐야할 것 같다. 겨울로 가는 나무들이 가장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떨쳐내라 부정적인 생각을, 안으로 겹쳐 입어라, 긍정적인 마음을. 

Monday, November 06, 2023

벗었다 입었다

 아침 출근을 하기 전에, 집에 있는 AI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모든 아침이 그러하듯이 날씨를 물었다. 어제 보다 기온이 '10도가 떨어진 날씨'라고 하는데 그 숫자를 체감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10도가 떨어진 날씨에 적당한 옷차림을 하기 위해 옷부터 챙겨본다. 비가 내린 후 '초겨울' 날씨가 된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 날이 당도하고 보니,  옷을 '들었다 놨다' '벗었다 입었다' 그 숫자가 말하는 초겨울의 온도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다. 난 숫자에 약하다! 인공지능이 더 아날로그적으로 인간 냄새가 나게 말을 했더라면 좋았을것을.  '작년엔 무엇을 입었드라...'

좀 더 두꺼운 옷을 챙기고, 옷을 더 껴입고, 목도리를 챙기고,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쓰고, 발목이 더 긴 양말을 신고...밖으로 나오니 반은 성공이고 반은 실패다. 살이 차올라 겨우 껴입고 다니는 청바지가 차갑게 느껴진다. '청바지 속에 어떻게 내의를 껴입지?' '더 널널한 바지를 찾아야 하겠구나...'  목과 등은 따뜻한데 겹치기 입기가 덜한 부분인 어깨와 팔이 찬바람에 체온을 빼앗긴다. 작년 겨울 동안, 국민 겨울 옷이라 할 수 있는 '오리털 잠바' 입고 목도리 둘둘 감고 겨울을 보냈던 것이 떠오른다. '겨울엔 무슨 멋, 따뜻하면 최고지!'

다행히 어제 내린 비로 미세 먼지 없는 공기는 청량하다. 하지만 추울 것 같아 마스크를 벗지는 않았다. 지금 두려운 것은 초겨울의 추위와 함께 오는 '감기' 그리고 자신의 게으름을 보여주는 주체하기 힘든 넘쳐나는 살이다. 추운 날씨에 넘쳐나는 지방이 도움을 좀 줄까 했는데 그렇지 않다며 썰렁한 유머를 셀프로 해본다. 추위를 떨쳐 버리기 위해 바쁜 걸음을 하여 지하철에 올라탔더니, 겨울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방한용 두꺼운 옷때문에 지하철 내에서 땀을 흘리곤 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많은 지하철 안에서 두꺼운 옷을 벗을 수도 없을 것이고...다행히 지하철 바람은 아직 서늘하였다. 

무사히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 정거장이 있는 지상으로 올라오니 그야말로 날 것인 겨울 바람이 온 몸을 불어댄다.  버스 정거장에 차디찬 겨울 바람을 막아줄 방한 커버가 설치되어 있지 않음을 새삼스럽게 인식하였다. 정거장 의자의 냉냉함에 몸을 앉히는 대신에 서성이며 정거장 부근을 '요리 조리' 움직이며 '자체 발광'을 하였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 바람은 차가울 뿐이다. '다시 지하철 역 안으로 숨어 들어갈까?' '내일은 '장갑'을 챙겨야 하고 얇은 옷을 더 겹겹이 챙겨 입어야겠다.'

바람이 없는 따뜻한 버스에 올라타 앉아 있노라니, 공중 도덕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이 자기 집 쇼파에 앉은 줄 알고 전화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  듣노라니 비상사태도 아니고 그냥 안부 전화이다. 누군가 '저항'하는 사람 없다. 어제 퇴근 길에 보았던, 좌석을 두 자리나 차지하고 앉아서 비켜주기를 억지로 하던 무례했던 사람의 태도까지 생각이 나서 불쾌감이 갑절로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눈으로 나쁜(?) 표현을 하며 눈치를 주었지만 그 사람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다 듣고 있는 버스 안에서 전화통화를 하겠어...들리는 말소리는 개소리, 개가 떠든다고 생각하자...이쁜 개보다 못한...개념 없는 사람. 찬바람 보다 공중장소에서 무개념의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의 행위에 더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기도 하다. 공중 도덕은 어디서 가르쳐야 할까? 버스에서 내리니 세상이 조용하다. 초겨울 한파와 '무뢰한'에 놀라서 아침 길에 만나는 나팔꽃 호박꽃을 전혀 쳐다보지 않고 출근을 했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그려, 너무 이래저래 추워서 쳐다 볼 '여유'가 없었네... 


Sunday, November 05, 2023

젖은 낙엽

 가을 같지 않은 따뜻한 날이 계속되니, 봄의 시간이라 착각하고 꽃을 들어 올리는 모습에 이제 더 이상 놀라지도 않는다. 그동안의 혼란스러움을 잠재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서운 '돌풍'과 함께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오락가락 내리고 있는 중이다. 이상기온으로 따뜻한 가을을 식히는 요란스런 비가 내린 후, 기온이 '뚝' 떨어져 본격적인 '겨울'이라고 한다. 몸과 마음을 단단히 따뜻하게 챙겨야 한다. 이른 아침 출근을 준비 중에 그만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가로수가 넘어지면서 전봇대를 덮친 탓으로 정전이 되었다고 한다. 

주말에 냉장고를 채워뒀는데, 언제쯤 전기가 들어오려나...근심을 뒤로 하고 어둠속에서 아침 출근을 서둘렀다.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작동이다. 우산이 뒤집힐 정도로 바람이 부니 우산 손잡이를 꼭 붙잡고 바람과 싸우지 않도록 조심해 본다. 모자와 목도리 그리고 옷을 너무 따뜻하게 챙겨 입은 탓으로 이래저래 땀이 나오려고 한다. 비가 내리는 날엔 안경에 습기가 찬다. 안경 착용을 망설였지만 바람에 날려오는 것들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안경을 벗지는 않았다. 젖은 낙엽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발을 조심스럽게 옮겨야 한다. 돌풍이 불 때는 건물에 매달려 있는 간판들을 조심해야 한다...돌풍과 젖은 낙엽에 '긴장'을 하고 걸으며 서둘러 간판이 매달려 있는 건물들을 급히 빠져 나가고 중에 어느 아주머니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머니께서 비를 맞으며, 들고 있는 우산을 가지고 도로변 '빗물받이'에 있는  젖은 낙엽을 쓸어내고 있는 것 아닌가.  도로변 빗물받이에  '플라타나스' 나무의 떨어진 나뭇잎들이 비를 맞아 꿈쩍도 않고 들러 붙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빗물이 막힘 없이 하천으로 빠져 나가야 거리가 물에 잠기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빗물받이에 얹힌 젖은 낙엽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그냥 지나쳐도... '세상에 아직도 이런 좋은 사람이 살고 있구나.'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정거장 앞 빗물받이가 보이지 않는다. 역시 젖은 벗나무 낙엽들이 빗물받이를 수북하게 덮어 버렸다. 버스 정거장 바닥에 빗물받이에 대한 안내 표시가 없었더라면 누구도 숨겨진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잠깐 망설였지만,  '용기'를 내어 누가 보든지 말든지 우산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젖은 낙엽들을 치워보았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거창하고 위대한 일은 할 수 없어도, 여기 빗물받이에 덮힌 젖은 낙엽 정도는 치워줄 수 있다. 

퇴근길에 도로변을 살펴보니 여전히 빗물받이 근처에 빗물이 내려가지 못하고 젖은 낙엽들로 인해 웅덩이를 만들고 있다.  끝없이 낙엽들이 떨어지는 시간이니 치워도 치워도 티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젖은 낙엽으로 빗물 받이가 막혀도 도시 도로가 내리는 빗물에 잠기지 않는 것을 감사해 본다. 

Friday, November 03, 2023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귀하게 '하루'를 사용하고 싶었는데, 그냥 쇼파와 한몸이 되어 정신 줄 내려놓고 퍼져 버린 날은 '자괴감'과 '후회'를 남길 것 알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을 선택했다. 그래, 그런 날도 있어봐야 얼마나 성실하게 하루 하루를 꾸린 전날의 내가 이쁘고 사랑스러웠는지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이상 기온으로 인해 11월의 단풍이 늦게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단풍이 곱게 발색하지 못하고 갑자기 차가워진 겨울 기온에 '훅'하고 얼어서 떨어져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지구가 확실히 뜨거워진 모양이다. 바다 온도가 뜨거워져 떠나버린 '오징어' 대신에 '문어'가 잡히고, 양식장 물고기가 뜨거워진 온도에 적응을 하지 못해 폐사하는 소식, 멸치가 잡히지 않고 멸치 잡아 먹는 정어리떼가 극성이어서 정어리로 젓갈을 담았다는... 등등의 소식은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없다는 '불안함'을 주기 충분하다. 

코로나 후 각 나라마다 경기침체로 '각자도생'을 하고 있는 즈음에, 지구 저편 두군데에서 서로 한치 양보도 할 수 없어 총부리를 겨누고 살상을 저지르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나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하겠는가. 세계 경제와 정세가 불안하고 예측하기 어렵고, 살기 팍팍하게 대책없이 생활 물가가 오르고 있는데, 비행기 타고 배 타고 건너온 업그레이드된 빈대의 느닷없는 출현에 어안이 벙벙하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세상은 참으로 좁다! 비행기 타고 배 타고 돌연변이 빈대가 한국에 돌아왔다. 살충제에 끄덕 없는 갑옷을 입고 돌아온 빈대를 잡기 위해 천적인 바퀴 벌레를 풀어야 할까나. '이를 어째...'

세상의 삭막한 이야기의 부작용을 이겨내기 위해서,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서 정신과 마음을 잡아 줄 좋은 책을 읽으면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돋보기 안경을 걸치고 작은 글씨를 들여다 보는 것이 귀찮다. 냉동고에 숨겨놓은 마른 안주를 꺼내고 냉장고 구석 숨어있는 맥주 한캔을 꺼내고 말았다. 이럴 때 마시라고 있는 것이 술이다.  술의 정석대로 술이 술을 부르고 만다. 술과 안주를 집어 넣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다. 옷을 챙겨입고 동네 공원을 다녀왔더라면 우울감과 불안함이 덜했을 것이다. 몰랐다. 정말?

Thursday, November 02, 2023

출발한 버스

 예측할 수 없는 현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지속 가능한 '행복'이란 '돈'보다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행복이란 것도 '노력'을 하지 않으면 쉽게 주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저절로 주어지는 타인들의 '친절함'에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든다. 

매일 일상 속에서 사람들의 '따뜻함'과 '친절함'이 없다면 얼마나 살아가는 것이 삶은 밤고구마를 김치 없이 먹는 것처럼 팍팍한 것인가. 날마다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해 어떤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는 있는 것일까 자문해 본다. 나이가 들수록  '배려'와 '친절함' 그리고 '관대함'을 갖추는 것이 명품 가방을 드는 것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이미 승강장을 출발한 버스 기사님이 한발 늦게 도착한 승객의 '당혹감'을 모른 척 할 수 없어 살짝 닫힌 버스 문을 열어주는 마음은 친절함이다.  동네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신 의사 선생님이 변치 않고 찾아오는, 충성된(?) 고객에게 독감 주사 값을 할인해 주는 선택도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함을 담은 서비스이다. 아침 출근 길에 타인의 열린 가방을 모른 척 하고 지나가지 않고, 선한 마음으로 그 사실을 알려주며 가는 것도 친절함이다. 생각보다 우리는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퇴근길 버스 승강장에서, 간발의 차이로 먼저 출발한 버스 기사님은 애써 외면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사회가 건강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규정'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리 무정한 일도 아니었다.  그려 이미 출발한 버스에 연연해하는 내가 잘못이다며 쿨하게 보내 버린다. 이제 더 이상 떠나는 버스를 향해 무단횡단을 하지 않을 것이며, 애써 품위 없이 달려 가지 않을 것을 결심했다. 문닫고 출발한 버스는 '일관성' 있게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도 '둘쑥날쑥'으로 오가는 버스가 바로 눈앞에서 출발을 한다. 나와 기사님을 위한 '배려'로 쿨하게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려, 버스를 타기 위해선 사람이 먼저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승강장 근처에는 버스 보다 한발짝 늦게 도착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버스 안에서 버스에 올라타지 못하고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쳐 애원하는(?) 눈빛을 보내는 어제의 내 얼굴과 눈빛을 가진 사람을 보게 되었다. 버스 기사님이 그 간절함에 공손하게 두손을 모아 '미안하다'는 표시를 '고개 숙여' 하는 모습을 보고 그만 마스크 안에서 따뜻한 웃음이 번지는 것을 느꼈다. 

버스 기사님의 따뜻하고 친절한 거절을 보며 아직 세상은 따뜻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당연하게 '부릉'하고 떠나버려도 될 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