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피곤해
목요일은 목이 터져라 웃어야 하는 날인데, 늦게 일어난 아침은 조용하다. 초미세 먼지를 알리는 인공지능 알림은 붉은 색이다. 고개를 돌려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니 뿌연 안개가 낀 것인지 밀가루를 물에 푼 것처럼 흐릿하다.
오늘 아침 잠이 깨어 뒹굴거리다 '울트라 러닝'(Ultra Learning)이란 말을 알게 되었다. 좋아서, 의도적으로, 자발적으로 어떤 것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아마도 평범을 넘어 그 이상의 단계에 '미치는 단계'일 것이라 짐작한다. 가슴이 뛰는 일이 있다는 것은 피곤해도 벌떡 일어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피곤함을 이겨낼 수 있는 뿌듯함의 쾌락을 알아버린 사람들은 멈추지 못할 것이고, 그 이상의 것을 성취하기 위해 더 깊은 곳으로 더 넓은 곳으로 향하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삶을 뒤돌아보니 몇 번의 그런 순간이 있었다. 좋아하는 운동을 배우고 익힐 때, 좋아하는 그림 작업을 할 때, '적당함'이란 단어가 어렵게 느껴지던 그런 때가 있었다. '적당함'이란 단어는 얼마나 어중간하고 애매한 말인가. 편안하고 쉬운 그 '적당함'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탐구하던 그 붉은 마음과 맑은 눈을 가졌던 날들이 내게도 있었다. 내 안에 엔진이 붕붕거리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물론 솔직히 과거형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다며 미그적 미그적거린 세월이 한참이나 지났다. 게으른 내가 나를 길들인 것이다.
작금에 이르러 어떤 것에 대한 '헝그리 정신'이 그닥 생기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한다면 저항하지 않겠다. 다만, 그날 그날 만족하며 산다는 것의 부작용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다. 세상엔 공짜가 없는 법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을 지금의 나는 선택하였고 때로는 무지 피곤함을 느끼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적당한 편안함에 대한 댓가이다.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피곤하다.
'결핍'에 궁상 떨지 않고, '욕망'에 사로 잡히지 않고,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무엇이지?
변하는 세상에 적당히(?) 발 맞춰 배우고 익히고, 세월 따라 주름지고 약해지는 몸에 대해 '수용'하고 잘 관리하고, 나다운 품격있는 삶을 살다가면 되는데, 이제와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뭐지? 나다운 것이? 다행히 긍정적으로 '자체 발광', '자가 발전' 이런 단어가 떠오른다. ㅋ 나이 먹어서 자체 발광, 자가 발전 하기 힘들다. 나이탓하며 오늘도 역시 적당히 행복한 선택 들어간다. 난 평범하기로 했어, 그래서 가끔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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