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20, 2023

향나무 한 그루

 병원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매년 오르는 실비 보험비가 아까울 정도로 병원에 자주 가지 않는 편이다. '약'이 떨어지고 있다. 추운 날을 핑계 삼아 요리조리 미루고 미루다 마침내 금식을 하고 병원을 향했다. 

병원이 바쁜 것은 불안하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조바심을 눌러 앉히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을 의도가 전혀 없는 잘 들리지 않는 TV. 그러고 보니, 잡지나 신문 같은 것도 없다. 다들 고개 숙여 들여다 볼 '스마트 폰'이 있지 않는가. 바쁜 토요일을 피해 월요일을 택해 방문했는데도 바쁘긴 마찬가지이다. 주말을 기다린 월요일은 손님이 많다는 사실을 잊었다. 게다가 연말이라 건강 검진을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괜찮은 병원은 바쁘다! 진행 상태를 살펴 보자고 실시했던, 석달 전 피검사의 결과를 가지고 약을 처방해 주는 바쁜(?) 의사를 믿어야 할까. 혈액 검사를 위해 '아침을 굶고 왔다'고 말을 하는데도 '그냥 오늘은 약만 받아가시고...할려면 하시고요...' '뭐지?' 피 뽑고 다음 날에 결과 분석하고 처방을 해주면 되는 것인데 의사 선생님의 서두른 처방이 이해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석 달 전 혈액 검사의 수치가 아침까지 굶고 온 '배고픈 의지'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했던 모양이다. 

정신줄 잡고 오늘은 피 검사 하고 내일 약을 받으러 오겠다고 말해야 했을까... 점점 바보가 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적응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약 봉지를 들고 돌아오는 길은 단풍이 들지 못하고 떨어진 푸른 낙엽들로 인해 발걸음이 약간 미끈거렸다. 사람들 발걸음에 부서진 색은 초록빛이 날라간 흰색이 들어간 파스텔 초록색이다. 첫눈이 내리고 추운 날씨였음에도 귀여운 얼굴을 가진 노란 국화는 '군자'답게 아직 생생하다. 돌 틈에 뿌리를 잡고 있는 나의 '프렌치 마리골드'는 추위에 상처를 입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감나무엔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붉은 감들이 추상화처럼 달려 있다. 

붉은 감이 열려있는 감나무를 베란다 창문으로 보고 살고 있을 이웃의 행복을 생각해 보았다. '부럽네~~~'

무심히 걷고 있자니 푸른 향나무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하긴 활엽수들이 옷들을 벗으니 푸른 색으로 서 있는 향나무가 귀하게 달리 보암직도 하다. 지나치다 한번도 향나무 향기를 맡은 적이 없다. 어릴 적 향나무 연필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었는데 말이다. 구름 모양과 불 모양으로 움직이는 형태를 가진 '향나무'가 '반 고흐'의 그림에 나오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생각나게 한다. 

그럴 일 없지만, 마당이 있는 집에 향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는 상상을 잠깐 했다. 채송화와 봉숭아, 백일홍이 피어있는 소박한 정원이면 족하다. 집과 떨어진 깊은 마당에 감나무, 대추 나무, 무화과, 매실나무... 과일 나무를 심으면 벌들이 올 것이고, 벌이 오면 무서운 말벌이 온다는데...ㅋ 무섭다. 닭과 고양이와 강아지를 키울 것이다......일단 오늘은 마당에 향나무(영원한 향기) 한 그루 심고 본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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