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ne 21, 2017

If

만약이라는 약
                                   -오은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났더라면
지하철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바지에 커피를 쏟지 않았더라면
승강기 문을 급하게 닫지 않았더라면

내가
시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채우기보다 비우기를 좋아했다면
대화보다 침묵을 좋아했다면
국어사전보다 그림책을 좋아했다면
새벽보다 아침을 더 좋아했다면

무작정 외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그날 그 시각 거기에 있지 않았다면
너를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말을 끝끝내 꺼내지 않았더라면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닦아주는 데 익숙했다면
뒤를 돌아보는 것보다 앞을 내다보는 데 능숙했다면
만약으로 시작되는 문장으로
하루하루를 열고 닫지 않았다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

Tuesday, June 20, 2017

Lingering

마른 땅을 갈라지게 하는 날씨에 성격 착한 경비 아저씨 물호수를 들고  나무들에게 물을 주느라 아침이 분주하다. 그곳에서의 극심한 가뭄으로 오랫동안 뒷마당에서 자랐던 '에버그린 트리'라 불리는 나무의 붉은 죽음이 오랫동안 서있었던 삭막한 풍경이 마른 먼지처럼 일어난다.  사시사철 푸른 초록으로 서있었던 여덟 그루의 나무들을 말라 죽게 만들었던 가뭄과 여름날의 축 처진 게으름의 결과물의  그림은 처참했지 싶다.  낮은 밑둥만 흔적으로 남기고 나간  그 텅빈자리는 후회막심으로 남았었지 싶다. 착하고 인사 잘하는 경비 아저씨가 우두커니 서서 나무들에게 물을 주고 있다.

그곳에 두고온 노란집은 새주인과 함께 행복한 보금자리로 잘 있을까. 해마다 방문했던 시간이라 그런 것인지 그 그리움이 사뭇친다. 아침물가를 걸으면서도 그곳에서 보았던 꽃들을 생각했다. 폭탄같은 붉은 장미에 재패니스 비틀스가 날아들 시간이다. '샤론 로즈'라 불리는 무궁화들은 키를 더해 올망졸망한 모습으로 꽃을 품고 있을거나. 튼튼한 오스트리아 소나무도 더 멋져졌겠지.

향수병에 걸린 사람처럼 그 그리움이 찔떡하게 묵직하다. 파넬라 빵집에 들려 고소한 스프와 샌드위치를 먹고 커피 한잔을 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 그리고 '반스엔 노블스' 서점에 들려 미술 서적을 들쳐보는 장면이 선명하게 가슴으로 파고든다.  '로우스'에 들려 캔버스를 만들기 위해 잘생긴 각목을 골라 성실하게  분주했던 그 시간들이 왜 멈추어야했는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준비했던 그 '나' 다웠던 과정들이 두번 다시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아닌 것인지.

아직도 낯설은 이곳에서의 시간은 메마르고 건조하다. 나도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물이라도 줘야겠다.
A Whiter Shade of Pale, Procol Haram

No Name

커피의 카페인을 줄인 탓인지 수면량이 많아진 것 확실하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낯설음은 활력소가 되어 밥맛까지 일으키고 있다.  물고기처럼 운동을 하였더니 자꾸만 동물의 살들이 먹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살빼서 흔들거리는 피골이 상접한 모양새를 애초에 꿈꾸지도 않았다. 식물처럼 가냘프게 흔들거리는 것이 두려움이지 싶다. 건강하게 기운찬 아줌마로 만족할 수 있다. 아프고 나서 얻게된 귀중한 깨달음이라 할 수 있겠다.

오랜만에 현대 미술사 책을 들고 잔글씨를 읽다가 문득 '돋보기'의 귀중함을 느낀다는 것은 나이듦에서 오는 사물의 가치 발견이다.  인상주의 작가로 유명한 마네, 모네, 고흐 그리고 고갱에 대한 글을 읽다가 잊혀져 가는 강렬했던 나를 보기도 했다. 희미하게 아득하게 멀어진 시간들은 정녕 아무 의미없는 것들로 보낼 것인지.

조각을 공부했다는 여인의 희미하게 번지는 미소에 마음을 열고,  예술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좀 알려주라는 말을 '훅'하고 내뱉는 내 자신이 싫었다.  홈스쿨을 하며 미술을 가르치는(?) 그녀는 일하는 즐거움을 알고 있는 듯 혼자 있어도 평안해 보였다. 전문가로서의 붉은 자긍심과 파란 비판정신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뾰족하게 날이 선 창의적인 생각들이 사라졌음을 슬퍼한다. 누군가 일부러 나에게로 부터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고집스럽고 어리석게 모른 척 게으름을 피우며 멸멸하고 있는 중이다.

술을 걸친 밤은 잠이 내린다. 배가 불러서 오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늦은 밤산책을 하였다. 달걀 꽃이 밤이라 꽃잎을 닫아 안개꽃처럼 작은 모습으로 뿌려져 있다. 작은 꽃들을 꺽어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렸던 시간이 떠올랐다. 2011년 새이웃의 집이 들어서기전 빈터에 높이 자랐던 달걀꽃들의 향연 그리고 그 그렸던 그림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눴던 젊은 영문학도들과의 라이팅 시간이......

into my own
a horse with no name, America




Monday, June 19, 2017

내안의 리듬

천천히란 뜻을 품은 '서'란  글자가 요즈음 처럼 살갑게 다가온 적이 없는 것 같다. 봄날에 넘어짐으로 인해 천천히 바닥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는 것이 조금은 부자연스럽고 나답지 않은 걸음이지만 아직은 천천히 걷는다.  앞으로 가볍게  뛰어 멀어져가는 젊은 여인의 검은 머리 큰 흔들림에 이제 내 삶에 '달리기'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뛰어가는 그녀가 보지 못했을 작은 달걀 꽃들과  접시꽃이 조직적으로 햇님을 향해 나팔을 불고 있는 모습을 보며 조심스럽게 아침길을 걸었다. 뜨거워진 햇살에 참지 못하고 양산을 드는 용기를 내보기도 한 날이기도 하다. 천천히 걸어 수영장에 도착해서 조용히 옷을 갈아 입고 천천히 샤워를 하고 수업시간을  기다린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익히는 일은 아직 가슴뛰는 일인 것 분명하다. 수영선수가 될 일은 아니지만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열정을 품은 만큼의 합당한 결과를 보기위해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수영영법 중에 '평영'이 제일 안되는 종목인데 회원님들 칭찬에 깜짝 놀라 당황스럽기도 하였지 싶다. 상체의 우아한(?) 리듬에 속아 물속에 있는 정체 모를 허접한 다리 폼을 못본 것 확실하다. 수업이 끝나자 마자 평영의 우아한 모습 보여달라며 조르는 회원님들의 칭찬을 뒤로하고 우아한 접영하며 도망가버렸다. ㅋㅋㅋ  단지 그녀들과 달라 보였던 우아함은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앞으로 갔음을 그녀들은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느림이었지 싶다 리듬 못타는 뻣뻣한 다리를 위해서.



Sunday, June 18, 2017

The Mirror

뜨거운 아침을 걸어가기 위해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하루에 한잔이라고 제한된 아침 커피를 마시고, 카페인 기능이 총총할 때 신문을 서둘러 읽었다.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으로 달리는 차소리와 건물이 올라가는 분주한 소리들이 바람과 함께 들어와 널어놓은 빨래들이 조금 흔들린다.

이곳에서 유월의 시간을 온전히 보내는 것은 낯설은 경험이다. 오랫동안 장마가 오기전에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실을 몸이 인지하였다. 자외선 지수와 오존지수로 달궈진 붉은 해의 시간은 다행히 밤이면 선선한 푸른 바람이 분다. 습기가 끈적거리는 시간이 멀지 않았기에 밤이면 동네 천가를 걷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상쾌한 일이기도 하다.

 잉어와 메기가 살고 오리들과 흰 두루미가 있고 셀 수 없이 많은 송사리 떼들이 있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천가를 걷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깊은 물소리로 흘러가는  강변을 걷는 일과 파도치는 바닷가를 걷는 일과는 다른 잔잔하고 현실적인 길이다. 아침 걷기는 꽃길이라면 밤 걷기는 물속에서 움직이는 물고기들이 움직이는 작은 파동에 마음이 뺏기는 보다 섬세한 걷기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지역 정치인이 밤 산책길에 정치적인(?) 인사를 한다. 얼떨결에 누그드라하며 친절한 얼굴에 그만 반사적으로 고개숙이고 나니 텔비에서 보던 사람이다. 선거때가 아닌 시간에 자연스럽게 밤산책중에 만나니 호감도가 올라가는 것을 부인 할 수 없었다.

며칠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의 인사가 생각난다. 고개만 끄덕이는 인사만 하는 사이라 엘리베이터 공간에 있는 것이 때론 어색한 사이인데 들어오자 마자 고개를 숙였는지 똑같은 신발이란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나 보다. 그리고 관객을 둔 독백처럼 대한민국 아줌마 대표신발이라며 싸잡아 평가절하 하는 발언을 한다. 똑같은 신발을 신은 것에 대한 당혹감을 나타내는 것이라 이해하려고 침묵하였다. 침묵하였다~~~나름 성질있고 감각있는 이웃 아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으로 순간적으로 불쾌하기 그지 없었다.

짧은 시간의 침묵을 깨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부정적인 말부림이었지 않았나 싶다.

"신발이 참 편안하지요 저도 자꾸 이 신발이 신고 싶어져요. 그런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호호" "똑같은 신발 신은 기념으로 차한잔 할까요?"

"대한민국 아줌마 말이나 소나 다들 신는 신발을 당신도 신었구려 아이 참 재수없어" 이런 뜻은 아니었길 바란다. 나이가 들수록 말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 또한 배려없이 내뱉어 주워담을 수 없는 말들이 많으니 그러려니 해본다.

좋은 말만 하루동안 사용하는 것으로 ~~~


Wednesday, June 14, 2017

Sore/Sorry

아침에 한잔하는 커피를 귀하게 음미해야 한다. 불면증을 겪고 있는 터라 아침 방송에서 제안한 해결방법에 귀와 눈을 집중을 하였다. 아침에 커피 한잔과 아침 햇살 아래 한시간 동안 걷는 것을 실천해 볼 생각이다. 양을 세어서는 신경이 오히려 살아나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한다. 15분 정도 뒤척이다 잠들 수 없을  땐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에 나와 다른 일을 해야 한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수면제도 복용해야 한다.

어쩌다가 불면증에 걸리게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아름다운 사월의 어느 봄날에 넘어진 작은 사고 하나가 건강한 생활의 리듬을 깨트리고 중년의 우울감을 자극하게 되었으니 다시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형상이다. 두려운 마음에 마음 문을 닫고 입을 닫고 닫고 닫고 그런 감옥에 갖힌 자신을 구할 방법으로  호르몬 한알로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갱년기'란 단어는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털어내고 훨훨 날아갈 수 없다.

 다른 이들을 배려할 수 있는 미소지은 얼굴을 하는 것도 힘든  '갱년기'란 단어의 어두움은 주위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없다.  어쩌면 침묵으로 자신을 다스리고 결국엔 타인에게서 느껴지는 서늘한 침묵을 애써 모르는 척 흘려 보내야 하는 것이다. 서운한 마음이 있을 것 같은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며 인사라도 하고 싶었던 선한 의지는 결국은 이기적인 처세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혹시라도 상처 받았을 건강하고  젊은 그녀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침물가로 가는 일은 다시 가슴 뛰는 일이 되었다. 새로운 시간과 선생님 그리고 회원들이 주는 신선하고도 낯설은 환경에 놓여있는 나는 새롭다. 그리하여 가슴이 뛴다~~~

물가에 가기 전 아침 신문을 읽고 그리고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읽은 출발은 만족스럽고 무기력하지 않았다.  아침 수영은 얼굴이 붉어질 만큼의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래서 기분이 달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계란꽃들과 접시꽃이 피어있는 유월의 아침을 걸어가는 일은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한다. 커피 생각이 간절하지만 참아야 하는 늘어진 오후의 세시에  미드 드라마로 영어 담금질을 해볼 생각이다. 화이팅!


구스타브 말러, 아다지아토

Thursday, June 08, 2017

S-Mile

오월의 긴시간을 지나기 위해 보았던 미제 드라마의 대사말이 떠오른다.  주어진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몸부림(?)의 패턴들이 그 사람의 인간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실수를 통해서 배우고 깨우치며 자신의 고유한 삶을 꾸려나간다는 것이었다.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결단과 용기를 쉽게 내릴 수 없는, 혼돈의 드라마가 있기에 삶은 고통의 빛으로 아린 맛을 품어 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흔적들이 입체적인 어두움으로 남아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는 것인가.

물가로 향하는 아침이 어찌 가슴 뛰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몰입과 집중으로 에너지를 불태운 부작용이라 할 수도 있겠다. '번아웃'이라 이름 할 수 있는 그런 치열한 과정을 지나오지 않은 것 같은데 직면한 이 우울감과 무기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서 빨리 일어나 떨쳐 버려야 할 것들이다. 습관처럼 가방을 챙겨 아침 물가를 걸어갔다.  흰두루미의 뾰족한 주둥이가 힘차게 송사리들을 낚아 몸속으로 밀어 넣는 기름기가 흐르는 그림을 보았다.  살아야 한다~~~ 꾸역꾸역 밀어넣은 아침 식사가 생각이 났다. '식욕저하'라는 말은 내 사전엔 없는 말 아니던가. 먹어야 한다~~~

그리고 웃어야 한다~~~

Wednesday, June 07, 2017

메기의 추억

단비가 내리는 수요일은 무거운 하늘이다. 장미가 피어나는 오월을 의미 없이 흘려 보낸 불안감이 그림이라도 그리고 있노라면 잡혀질까 궁금하다. 먼지 쌓인 수묵화 종이들을 정리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이성적인 다짐은 오늘도 게으름을 피운다. 마음 둘 곳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갑작스런 외로움을 타는 것 또한 내안의 중심으로 가지 못하고  길잃은 막다른 길목에서  맛보는 아무 맛없는 방황이라는 것 알고 있다.

물가로 오가는 길에 보았던 꽃들은 어제 보았던 그대로가 아니었다. 보슬비를 맞으며 하얀 두루미가 길고 가느다란 다리로 서성거린다. 노란 꽃들이 바람에 쓰러지고, 꼿꼿한 접시꽃들이 인조꽃처럼 싱싱하게 일어나 있는 아침을 걸어 물가에 다녀왔다. 그 누군가 간절히 바랄 수 있는 조용한 아침의 꽃길속에 서 있는 그림을 지나 누군가의 행복감으로 반짝였을 수영장의 잔물결속에 서 있는 자신을 보았다.

며칠 전 밤 산책길에 보았던 '메기'를 잡겠다고 시냇가를 걸어 들어가 맨손으로 서성이던 중년 후반의 아저씨 생각이 난다. 느닷없이! 자갈속으로 매끄럽게 들어가버리는 메기를 기다리다 지쳐 나오는 아저씨를 보며 잠시 그 좁다란 이기적인 욕망을 원망을 하였지 싶다. 보는 즐거움 보다는 먹고 싶다는 유혹을 못견디는 도시 아저씨의 야생적인 혹은 취기어린 욕망을 이해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잊혀졌던 오래된 어린 추억을 되살리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아파트 숲에서 메기를 잡아보는 일! 메기를 잡았더라면 사진 찍고 다시 놓아 주었을까?

동물원의 신비한 동물을 보는 경이로움으로  밤빛 밑에서의 움직임을 쫒는 나의 눈은 오래된 추억을 잡고 싶은 것일까. 돌멩이를 들어 올리면 물고기가 나왔던 어린시절의 오래된 그림을 기억하기에 밤빛으로 반짝이는 물가에서 밤마다 메기를 찾는 것이다.  부디 우리 동네 메기들이 도시 아저씨들에게 잡혀가는 일이 없기를 바래본다.  내가 거니는 물속엔 메기들이 살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