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21, 2017

under the Sun

아침 물가로 걸어가는 길에 내리쬐는 햇살이 두려워 양산을 들었다. 잡티 없는 하얗고 뽀얀 피부를 위해 관리하는 여인들에 비해 자연스럽게 타고난 피부의 잡티를 를 갖고 살아가는 여인의 피부가 '없어보인다'라는 혹은 '저렴해 보인다'라는 평가를 노골적으로 하는 것이 불쾌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때때로 그 강력하여 폭력적이기도한 생각에 점령당해 거울에 보이는 잡티 얼굴이 무지 불쌍해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손끝이 시러워 장갑을 끼고 두꺼운 겨울 속옷을 아직 벗지 않은 꽃샘추위를 보내고 있는 차림에도 여름같은 양산을 들 수 밖에 없었지 싶다. 자동차로 움직인다면 아마 양산이 필요치 않았겠지만 아침물가를 걸어가는 기쁨을 포기하고는 싶지 않다. 주위의 눈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을 관리하는 용감한 여인들도 있다는 생각에 이른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차양 넓은 모자 대신 차라리 양산을 들고 걸었다. 아파트 입구에 노오란 산수유 꽃이 봄이라며 바람에 흔들거린다. 바람이 불지 않았던 막 떠난 자리가 서늘한 겨울 생각을 잠시 하였다. 옷깃이 바람에 날릴 때, 바람은 봄에 불어온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아~ 봄바람~~~

아침길 시냇물 속엔 작은 물고기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 겨울 동안 찾았던 그 물고기들은 그 동안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 고운 흙들이 앉아 모여 있는 움푹한 곳, 있을 만한 곳에 가만히 가던 걸음 멈추고 서있으면 작은 물고기들이 오여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오리들이 머리를 박고 꽃같은 궁둥이를 올리고, 길다란 목과 다리를 지닌 흰 두루미 두 마리가 침묵하며 서성이는  익숙한 그림을 보면서 내가 노는 물가로 양산을 들고 걸어갔다.

도시의 농부가 가꾸는 땅에도 봄을 맞이하여 움직였다는 흔적을 남겨 놓고 있었다. 부석거리는 겨울의 흔적들을 거둬내고, 밭고랑이 분명하고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여름을 기다리는 땅은 아직 조용하다. 땅속에 씨앗들이 소리없이 뿌리를 내리고 올라 오고 있는 것 확실하다. 봄비가 더 내리고 바람이 불고 햇살이 더 뜨거워지면 왕성한 푸르름으로 일어 날 것이라는 것 알고는 있다. 조용하지만 분주한 도시 농부의 땅을 지나 재즈 음악이 흐르는 커피숍 앞을 지나 내가 움직이는 물가로 걸어갔다.

이름 모를 고향언니가 손을 잡으며 밥을 먹고 가라며 붙잡는다. 고향 사투리를 사용하는 부드럽고 따스한 언니의 손을 잡고 따뜻한 점심 함께 하고 싶었지만 두려운(?) 마음에 집으로 들어왔다. 새로운 친구를 얻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동안의 상처(?) 때문인지 쉽게 밥먹고 차마시고 그런 일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그런 느낌? 그냥 웃고 인사하는 그런 사이로로 만족할 수 있다는 생각이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좋은 님이  나의 그림을 벽에 걸어두고 내생각을 한다며 페이스북 담벼락에 안부를 물었던 이른 아침의 안녕이 생각난다. 그곳 시간 오후3시! 커피 마시며 내 생각을 했을까? 잠이 와서? ㅋㅋㅋ 만화를 좋아하며 만화책을 수집하던 영문학 박사님이 이제 교수님이 되셔 연구실이 생겼단다. 연구실 벽에 내 그림과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포스터를 붙여놓고 내게 안부를 물었다.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고 기억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물가에서 만난 여인의 전화번호를 새로 첨가한 날이기도 하다.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는 그런 이야기로 시작해서 마무리도 그렇게 하였지 싶다. ㅋㅋㅋ 나이가 든다는 것은 병이야기를 하며 대화를 꾸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오래묵은 친구생각이 간절한 것인지?  한동안 연락이 없는 오래묵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학창시절처럼 '막수다'를 무식하고 예의없이 떨어놓고,  끊고나서 후회했다. 더 잘할 걸~~~더 칭찬해 주고 더 박수쳐줄 걸~~~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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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묵은 친구가 전화끊고 나서 보낸 글을 옮겨본다.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 나게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내가 가진 크나큰 지혜를 다 쓰지 못하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줄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내  팔 다리 머리 그리고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주소서.
내 몸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가고 그것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 줄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마는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 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저의 기억력을 좋게 해 주소서 하고 감히 청할 순 없사오나, 제게 겸손한 마음을 주시어 저의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때론 그 사람이 옳다고 행각하는 나도 가끔은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줄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Saturday, March 18, 2017

Creatively and Gracefully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인연을 맺고 또 오랫동안 친구의 이름으로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시간의 필터를 지나 보석처럼 남은 사람과 함께한 오늘은 보통의 여인처럼(?) 백화점 진열대에 머리를 숙이기도 하고, 주머니가 얇아 선뜻 구입할 수 없지만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책임지기 어려운 고급짐을 잠시 구경을 하였다.  서로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사람과의 수다는 행복하다.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처럼 사랑하라'란 푸른 글귀가 봄으로 올라오는 것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Sing like you don't need the money
Love like you'll never get hurt
you got to dance like nobody's watching

'알프레드 디 수자(?)'님의 글이라 알고 있었는데 아니라는 글들이 있다는 사실에 좀 놀랐지 싶다. 작가미상의 글을 수자님이 소개한 것을 번역해 오는 과정에서 생긴 착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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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동안 꽃을 들어올리지 않던 '군자란'이 드디어 꽃대를 아기발톱 처럼 올리더니 9송이의 조황색 나팔을 수줍은 듯 햇살을 향해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바라보는 마음에 따스한 번짐을 주는 것 분명하다. 오래묵은 친구에게 우리집 군자란 이야기를 하니 친구의 꽃도 오랫동안 꽃을 보이지 않아 협박아닌 협박을 하였다한다. 나 또한 무심하게 이파리만 무성한 남자같은 군자란에게 물을 주며 '너도 양심이 있으면 꽃을 좀 피거라'하였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물을 주러 가는 길에 그 한번도 본적 없는 현상에 눈을 비벼야 했다. 아니 진정 이것이 꽃을 올리고 있단 말인가! 드디어 때가 되었단 말인가! 어찌 물주며 바라보는 이의 간절한 마음을 알았단 말인가!오래묵은 친구는 군자란에게 뽑아 없애버리겠다고 협박을 했드란다. ㅋㅋㅋ그랬더니 자신의 꽃도 꽃대를 올리고 있는 중이라며 한참이나 사람 말을 알아먹는 꽃이야기 하느라 웃음꽃을 피웠다.

4년이란 숫자가 다 채워져가는 시간속에 나름 적응한다며 꽃을 피우기 보다는 적응하느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삶에도 내 정원의 군자란 처럼 9송이 꽃을 들어올릴 수 있을것인가 하는 생각이 덩달아 피어 오른다. 분갈이를 해주라는 친구의 말을 붙자와 꽃이 지고나면 더 넓은 영토를 허락해 주어야 할 꽃피울 숙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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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으로 살고 멋지게 죽기!
이번주에 방송에서 들었던 말중에 씨앗으로 가장 품고 싶은 말이었지 싶다. 시작과 끝사이에 펼쳐지고 있는 날마다의 삶이야기를 어떻게 채워 나가고 있는 것인지 잠시 생각해 본다. 예술가로서 경계에 선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작품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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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의 이야기중에 하나를 소개하자면,  한쪽 눈으로만 보는 외눈박이가 괴물로 나타나는 현상과 같은 것이라고 본다. 인간은 어리석기에 때때로 보고싶은 것만 보기 쉽다. 예를 들면 물가에서 쉽게 동화될 수 없는 낯설음과 불편함을 당해본 사람은 이미 먼저와 적응하며 그곳에 자리잡고 누리는 사람들이 쉽게 저지르는 악의없는 행동(그들만의 굳건한 단결력)과 언행(끼리끼리의 대화)에서 텃세를 느낄 수 있다는 그 느낌적인 느낌을 안다. 자리잡아 주고 밀어주고 땡겨주는 그들만의  일종의 행위들이 섞이지 못한자에게는 '텃세'라고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새로운 환경에 처해 먼저 도달한 기득권들의 악의없는 행동들을 똑같이 당해보지 않으면 절대 쉽게 이해하며 배려할 수 없는 '텃세'라는 단어의 추함을 물가에서 보았다. 적응하지 못한 약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로 그 불쾌함은 견디다보면 둔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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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라는 단어는 결코 쉽지 않은 정의와 실천을 품고 있는 듯하다. 배려? '역지사지'란 네글자로 말할 수 있는 것인데 각기 처해 있는 환경과 위치를 고려한다 할지라도 내 입장 보다 우선 할 수 없는 것이다. '배려'를 늘상 해줄 수는 없진 않는가! 이런 성급함과 인내력의 한계에 도달하게 되어 내뱉은 단어들은 불만과 불평으로 어둡고 무거운 무게를 안고 서로의 긍정적인 힘들을 파괴할 것이 분명하긴 하다. 그러나 파괴뒤에 창조가 있는 것을 기억하기로 한다.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 건강하게 다시 재정립하고 보완수정 들어갈 수 있는 관계가 건강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사람을 보아가며 그 각각의 그릇의 용량을 보고 부정적인 단어들도 쏟을 수 있어야 한다. 내공이 필요한 부분으로 잘못 그 과정중에 깊게 패일 상처만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이고도 생산적인 결과를 원한다할 지라도 잘못된 만남은 서로에게 상처만 줄 수 있다는 것 인정하기로 그냥 인정하며 마음을 비워버리기로 한다. 그래 너 잘났다~~후다닥 도망가는 것이다 후덜덜덜 무서워~ 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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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야수'의 영화를 보면서 왜 '개스통'이 맘에 들지 않은지 '벨'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다. 키크고 잘생기고 춤도 잘추는 멋진 인간적인 냄새가 가득한 개스통이 왜 싫은 것인지 묻는 말씀에 개스통이 무식하고 마음밭이 시컴해서 싫은 것 아니냐고 답했다. 맘에 드는 여인을 취하기 위해 여인의 아버지 마저 희생하여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던 그 비인간성의 확장이 없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책을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사회성이 떨어지기도 하며 혼자 잘노는 이상한(?) '벨'은 현실적으로 인기있는 '개스통'에겐 관심이 없고 비록 포악한 짐승남이지만  드라마가 있고 혈통이 있는 야수의 희생정신에 거기에 좋아하는 책도 도서관처럼 소장한 야수의 지성과  공주성을 뒷바침할 풍부한 야수의 거부하기 힘든 물질성과 인기없는 외로운 짐승왕자를 사랑하게 된 모성애의 묘한 결합으로 꽃피우는 사랑이란 감정이 보인다.

결국  사랑의 힘으로  그 짐승남의 야수성과 기타 여러분의 사물화된 저주를 벗기고 꽃미남 왕자님과 온 인류를 구원하여 행복하게 되었다는 오래된 동화적인 프레임을 그대로 간직한  영화를 즐기기엔 자신이  판타지가 빠져나간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기도 하였다. '멍때리기'로 좋은 영화였다며 (멍 때리기를 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나?) 내안의 잊혀진 판타지의 끝자락을 애써 끄집어내어 보기로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axySrE0Kg6k
Beauty and the Beast






Tuesday, March 14, 2017

Before Spring

Before Spring from Night Garden

생명의 서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을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잘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살멸한 영겁의 허적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Monday, March 13, 2017

Hello

Burn to be Wild from Night Garden

평상시 걷는 흰 두루미와 살찐 오리가 있는 물가를 걷지 못하고 그 길을 걸어와야 했다. 전리품처럼 소유하고 있는 선글라스의 수리를 맡기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고객을 만나는 안경집 사장님을 만났다. 먼저 앞서 들렸던 새로 단장한 안경집은 수리비를 5배의 가격을 제시하여 짐짓 놀라  다시 돌아나오는 것이 좀 뒤통수가 근질거리긴 했지만, 주도적으로 용감하게 나와 다른 안경점으로 향했다. 저렴한 과거의 경험을 갖고 있었기 망정이지 놀란 마음으로 몇걸음 걸어가니 그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중한 안경을 고쳐주었던 사장님 얼굴이 나타났다. 안경다리에 나사못이 3개나 없는데도 단돈 2000원에 최선을 다해주겠다고 하신다!(안경테에 맞는 나사를 찾는 것도 어려울 뿐 아니라 비슷한 것 찾아도 갈고 닦고하는 수고를 치루어야 한다 들었느데...)

이런 면에 있어서 우리나라 최고란 생각이 든다. 손재주가 좋아서 거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뚝딱뚝딱 빠르게 고쳐주는 신속함이 이곳에 살고 있는 기쁨을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이쁜 봄꽃들이 일광욕을 하는 작은 꽃집 앞을 지나고 언제나 날 보면 이쁘고 멋지다며 달콤한 칭찬 날려주시는 여사장님이 계시는 옷집앞을 모른 척 지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경기가 어렵고 하니 나같은 순수한(?) 손님이 봄이라며 뛰쳐 들어와 옷도 사입고 그래야 할텐데...그냥 바쁜 척 눈을 돌려 슈퍼가 있는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다가 그만 이불집 가게 앞 베란다에 저렴하게 햇빛 맞고 있는 초록색 옷에 눈이 박힌다~ 아~~~ 초록 스웨터를 입고 외출하는 봄여인이 걸어가는 풍경이 막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잠시 낼 아침을 위해 역사적 사명을 갖고 있는 나는 장을 보아야 한다. 요즘 만들어 먹고 있는 샌드위치의 즐거움을 생각하며 더욱 고급지고 더욱 고소한 샌드위치를 맛보기 위해 희생하기로 한다. 꿀꺽꿀꺽~~~

슈퍼에 들어가 목적지로 향하니 진열대에 있는 오늘의 목표물은 처절하게 참았던 인내에 보답하는 양 특별 묶음으로 세일 들어가신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니 내 눈안에 들어왔던 초록색 봄세터가 왔다갔다 하신다~~~

케시미어라고 써놓았지만 케시미어가 한번 들어갔다 나온 5프로 케시미어 세타일거야, 그리고 봄이라 곧 더워져 몸이 근질근질 알러지 반응을 보일지도 몰라~~

다른 일로 바쁘면 그 이쁜 초록색 옷을 잊을 수 있을까?

여우의 신맛나는 합리화와 망각할 수 있는 시간의 힘을 이용해서 초록색 옷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왜 벗어나야 하지? 이 나이에 그런 옷도 못입나 하는 자괴감이 아니드는 것은 아니지만 수영복 구입에  '탕진재머'로서 집중하고 있는 호사로움을 생각하기로 한다. 다 즐길 수는 없지 않는가!ㅋㅋㅋ

'탕진재머'란 요즘 최신새대 소비패턴을 연구해서 만든 것으로 돈이 없어 큰 돈 쓰지 못해 작은 돈으로 소소한 재미를 위해 재산을 탕진하는 신인류 소비자를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가 수영복 구입에 있어서 이성을 가리지 않는 탕진재머가 되어 있지 않나 자각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민주주의가 승리한 기념으로 수영복을 구입해 입고 물만 보면 자제력이 없는 타고난 재능을 억제하며 때로는 보호하는 의미로다가 물속으로 들어가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젊은 샘이 따뜻한 눈길 말길 손길 주지 않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스트림 라인 형성하며 쭈욱 쭉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멋진녀가 바로 나로소이다~~~

이런 말릴 수 없는 긍정적인 효과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탕진재머의 중독을 조금은 알 것 같아 신인류에 속한다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기쁜 일이다. 구식 사람이라 여겨지는 것 슬픈 일인데 신식이란 말 범주속에 소속된다고 하니 젊어지는 느낌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래도 초록 스웨터가 떠오른다~~~

이럴 땐 옷보다 먼저인 위장 생각을 해야한다. 빵을 사러 나가는 길에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두정거장 걸어가 초록 스웨터를 데라고 올까? ㅋㅋㅋ 빵만 사고 들어와야한다!

노자님 마지막 강의, 질의질문 시간이 남아있다는 사실로 오늘 걸린 유혹에서 벗어날지어다.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꾸리라고 마지막 강의의 맺음을 해주셨던 가르침 받자와 물가에서 만났던 모든 이들에게 좋은 얼굴빛으로 밝은 인사하였지 싶다. 그랬더니 마음이 밝아지며 쫀쫀한 마음 주름이 펴지며 따스한 빛으로 기분이 좋아지던 것을 느꼈다. 이것은 간증이다! 자신의 행복을 남에게 맡기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꿀꺽꿀꺽~~~

R.E.M, Losing My Religion

The Rising Sun

https://www.youtube.com/watch?v=0sB3Fjw3Uvc
The Animals, The House of the Rising Sun Mafia III Trailer 3 Casino

지난밤 보았던 '콩' 영화를 기억하고자 사운드 트랙을 찾다가 '애니몰스'의 노래를 만났다. 작년 겨울 어느 모임에 갔을 때 이름없는 오래된 가수들이 오래묵은 팝송 메들리를 불렀던 사실이 떠오르기도 했다. 꼭 이 노래 가삿말을 찾아봐야겠다는 의지가 드디어 봄날이 오는 길목에서 들으며 가사를 음미하게 되었나 보다. 듣다가 눈물이 나왔다 왜지? 이건 뭐지?

뉴올리언즈를 향하는 기차를 타는 장시간의 여행을 소개 시켜주었던 은사님의 따뜻한 미소도 떠오르고 온 가족이 함께 더운 여름날인데도 불구하고 걸어걸어 그곳 뉴올리즈 시립미술관에 갔다가 월요일이라 허탕을 쳤던 웃픈 이야기도 떠오르기도 한다. 여름에 무슨 오이스터(굴) 축제에서 맛본 치즈까지 왕 뿌려진 느글하지만 고소한 맛도 생각나고 무엇보다 재즈 컨서트를 보기 위해 줄을 서서 들어갔던 조그마한 장소에서 연주자들의 호흡소리와 땀방울을 적나라하게 보며 그들의 퍼포먼스에 빠져들었넌  뜨거웠던 순간도 생각이 난다.

대중버스가 발달하지 못한 사정으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니  차라리 가다가 걸리면 얻어탄다는 것이 그만 장시간의 행진을 해서 뮤지엄에 도착하기 까지 보았던 뉴올리언즈의 집들은 스페인과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들이 많았던 것이 지금까지도 인상적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꼭 사먹어야 한다던 콩음식 이름이 뭐였드라? 잊었네~~~ 게맛이 나던 콩죽이름이 뭐였드라?

뉴올리언즈에 가면 밤거리가 무서우니 밤늦은 시간에 돌아다니지 말라하는 충고가 있었던 이유도 잊어 먹었넹! 세상사는 것 천차만별 하기나름이긴 하다. 안전한 곳만 잘 골라 다니면 밤이 되어  인간들의 불켜는 시간이 재즈 음악으로 흐르는 낭만도시를 볼 수 있지만 으슥한 곳 한적한 곳을 돈 많이 가지고 다니면 필요욕구가 간절한 그 누군가의 자제력이 힘을 보일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누군가는 그곳에서 밤늦게 술을 마시다 돌아가는 길에 돈지갑을 뺏겼다는 아픈 소식을 전해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행히 내게있어 그곳에서의 시간은 맛있는 재즈가 있어 낭만적인 여름의 뜨거운 추억으로 각인되어있다.

 그것은 그렇고 '콩'영화로 가고자 한다. '콩'영화를 보고 그 느낌은  아마도 색바랜 복고적 시간과 그 전반에 깔린 묘사가 매력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 싶다. 오래되어 오히려 낯설고 신선한 그런 느낌 때문에 영화가 재미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나 싶다. 콩이 거대해서가 아니고 동물들이 거대하게 나와서가 아니고 제일 무서운 것은 보이지 않는 신경가스가 아닐까 한다. 다 무섭다~~~하며 손 번쩍 들어 항복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 무섭지 않을까 해서 한말이지만 막상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괴물이 나타난다면?

그래도 그래도 돈이 젤 무섭지요.ㅋㅋ

돈으로 모든 것이 귀결되면 '하수' '소인'이라 했는데 말이다. 자본주의 시대탓이라 여기고 그냥 인정하기로 한다.

무지해서 명령에 복종하다 보니 콩의 잠자는 콧털을 건드린 사람들이 당해야 했던 '콩'의 무지막지한  폭력성과, 반면에 함께 따라왔지만 난생 처음본 이쁜 여자라서 봐주는 '콩'의 관대함(?)을 어찌 받아들여야지요? 함께 살고 있는 님께 물어 보고 싶었다. ㅋㅋㅋ 위험에 빠진 착하고 힘센 동물을 살려 주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눈여겨 보아서 그 선의에 감동해서 봐준 것이라고요~~~ 그 짧은 순간에 그 손바닥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미물의 선의를 알아보았던 콩의 눈은 슈퍼 시력이다. ㅋㅋㅋ  이쁘고 착하면 '콩'도 내편이 될 수 있다는 실천할 수 없는 이상을 제시한 것 같긴 하지만 그저 웃으며 헛생각 나지 않고 영화에 몰입하게 해 주어서 감사했지 싶다.

요즘 지켜보고 있는 '노자'강의에서 강연자님의 '짐슴의 눈' 혹은 '야생의 눈'이 떠오른다.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봐야한다는 말씀이다.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읽지 말고 보이는 대로 보라하니 내겐 아직 역설적이지 싶다. 생각의 크기를 좁혀 좁은 시야를 갖지 말라는 뜻이겠지만 제대로 세상을 보고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님이다. 비판적으로 까칠하게 세상을 보는 것이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닐까하며 내가 뭘 모르고 있는 것인지 노자님을 만나다 꽃이 피는 봄으로 나아 가련다. 물어 보다가 인생 종난다고 하지 말지어다.ㅋㅋㅋ


Friday, March 10, 2017

Down Up

역사적인 날이라는 핑계를 안주삼아 잠시 세상뉴스를 끄고 '현대 사상가, 노자'님을 켰다. 일반명사 보다는 고유명사로 살아가려다 겪었던 상처어린 기억들이 떠올라 웃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며 자존감을 갖은 사람으로 적절하게 행하지 못해 '사회성'이 떨어져 외로웠던 순간들도 떠올랐다. 물가에서 수영을 배우면서 때때로 느끼는 불만과 자괴감은 내안의 기준이 상대방을 평가해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나로 비롯되는 에너지를 믿지 못하고 이끌어내지 못했던 것이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배움의 과정에서 비롯되는 고충을 이겨내는 것은 결국 자신안의 씨앗을 키워내고 자라게 하고 꽃피우고 열매맺는 일임을 잘 알고 있느 듯하여 자신에게 셀프로 칭찬을 해주고 싶다.

어쩌면 그 원하지 않았던 순간들은 돌이켜보면 내 스스로를 더욱 단단하게 하였던 것 기억하기로 한다. 주어진 환경이 좋으면 더욱 금상첨화겠지만 허락되지 않는 조건이라면 자가발전해야 한다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수용하기 어려운 것 사실이지만 나름의 색을 잃지 않고 '고유명사'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기까지 하다. '업 다운이 아니라 다운 업'하는 깨달음을 물가에서 얻기까지 하였다. 누군가가 지시하고 가르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내 자신의 물속 퍼덕거리는 움직임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게되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그림을 그릴 때 철저히 '다운 업'의 과정을 알게 모르게 지나쳐 왔었지 싶다. 내안의 것을 끄집어 내어 철저한 고유명사로서의 내 작품 그러나 그 이기적인 표현으로 타인들과 교감하며 공감할 수 있었던 창의적인 시간들이 내게 있었음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열심을 다해 경험하고 있는 물가의 시간들은 결국은 스스로가 즐기며 '다운 업'을 해야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물속으로 입수를 할 때도 뒤로 물러나 앞으로 더 나아가듯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삶은 뒤로 물러나야 하는 시간을 주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고유명사는 역동적이며 건강하다~~~


Wednesday, March 08, 2017

A&B and C

책 제목에 끌려 마음과 정신이 배고픈 상태로 책을 한권 구입하러 서점에 가고 싶었는데 그만 아침 운동에 지친 육체는 집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살아간다는 것이 예술로 승화되는 시간(?)에 대한 글을 누군가가 집필을 해놓았다 하니 가슴이 뛴다. (왜 자꾸 뛰기만 하는지...ㅋㅋ)

새로운 만남을 내일로 오는 금요일의 즐거움으로 미루고 '현대 철학자, 노자'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내가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잠시 살펴보는 것도 오늘의 양식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해 본다. '유무상생'의 관계로 세상을 들여다 보았던 노자는 누구인지 참으로 궁금하기도 하다. 분명하게 정의하며 분류하는 좁은 시야를 정지하고 유무가 함께 새끼줄처럼 꼬여 상생하는 관계를 통찰하며 변화무상하게 변해가는 세상을 살폈던 노자의 이야기가 아직 매력적으로 들린다. 특히, 미술공부를 하던 시절에 만났던 중국 교수님 생각이 많이 떠올랐다.

분명한 그림을 극도로 싫어했던 성질 이상한(?) 스승님이 왜 떠오르는 것이지? 중국사람이라 그런것인가? 애매하고 모호하고 아리까리한 이미지를 추구하며,  미니멀리스트이며 추상주의자였던 까칠한 교수님은 잘계시는지 궁금해진다. 시간의 긴 필터를 통과하니 내 작품에 대한 그때의 처절하고 모욕적(?)이까지했던 크리틱이 그립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애매함'이란 단어의 창의성과 확장성 그리고 상상성을 고급지게 표현하던 교수님 말씀대로 이제는 그 누구도 내 그림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는 자유롭고도 외로운  사람의 시간을 갖고 있나보다.

그 님이 좋아했던 작품 하나를 올려본다.
Daydream from Something like Happiness


거미줄
                             정호승

산 입에 거미줄을 쳐도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거미줄에 걸린 아침 이슬이
햇살에 맑게 빛날 때다
송이송이 소나기가 매달려 있을 때다

산 입에 거미줄을 쳐도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진실은 알지만 기다리고 있을 때다
진실에도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진실은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고
조용히 조용히 말하고 있을 때다


Gray Ground

'현대 철학자 노자'란 인문학 강의를 들으며 밝은 시간에 만났던 타인들의 언행을 이해하고자 했는데 교육효과가 있었는지 엉뚱하게 외로이 노년의 시간을 꾸리는 주름진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려야겠다는 착한 생각이 찾아 들었다. 공자는 씨앗을 품고있는 '인'이란 정의를 내리며 혈연관계의 진실성에서 '도'를 찾았고, 노자는 유와 무의 상생관계에서 '도'를 보았다고 한다. 늙은 아버지 자식들이 행복하라고 기도하신다며 건강을 걱정하신다. 나 또한 나의 아들들의 행복을 간절히 바란다. 근본적인 참의 세계인 것 분명하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혼자 종합병원에 다녀왔다. 이제 보호자(?) 없이도 이곳 대중교통을 이용해 원하는 곳을 다닐 수 있다. 수많은 시간이 쏜살처럼 지나가버려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느낌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기로 한다. 어쨋든 모르는 사람들 구경을 많이 했지 싶다. 한번도 안면이 없는 철저한 타인들은 바쁘고 피곤해 보인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스마트 폰을 보지 않고 눈 동그랗게 지하철 아무곳에나 보고 있으니 그것 참 이상하게 못된 짓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만 스마트 폰 꺼내어 괜히 들여다 보며 일을 만든다. 

한 사람도 책이나 신문을 보지 않았다!

그래도 오래전 사람들은 종이 신문이라도 보았던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다. 스마트폰 하나가 삶의 형태를 바꾸고 점령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지 하였다. 대학 종합병원엔 언제나 사람들이 많다. 병원에서 출발하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줄을 만들지 않았다.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들만의 질서와 규율이 있기를 바라고 누군가의 뒤에 줄이라 믿고 서있었더니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타나 옆으로 줄을 선다. 과연 마을버스 기사님은 어디에다 문을 가져다 놓을 것인지 진짜 궁금했다.  기사님 마음대로 아무데나 버스를 세우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며 자신들의 발들을 서로 올려 놓으려 자신들의 욕구를 전투적으로 보인다. 난장판이로세!

몰염치와 몰상식한 추태로 보이는 그림을 볼 때마다 '욱' 하고 올라 온다. 아무래도 남성 호르몬이 몸을 점령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병원 출입문을 붙잡고 한참이나 지나가는 아짐들을 위해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어 놀래 쳐다보았더니 외국인이다! 감사하다는 말한마디 없이 바삐 그 앞을 쌩쌩 지나가는 한국의 모습이 순간 창피했지 싶다. 그리고 돌아가는 마을버스를 올라타 앉아가기 위해 기사도 정신이나 선비정신 이런 것과는 거리가 완전 없는 그 무질서한 모습을 초라하게 보이는 그림은 가슴으로 부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래저래 화가나는 요즈음이다.

그래, 다들 피곤한 모양이지!

다시 노자로 돌아가 어찌 이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지 들어볼 생각이다. 

Tuesday, March 07, 2017

Nevertheless

남쪽으로 꽃들을 들어올린 나의 꽃들에게 햇빛이 쏟아지는 일요일 낮은 조용하다. 한국사람들의 사회심리를 강의하는 방송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알지 못했던 사회학적이고도 심리적인 분석이 독특했지 싶다. 그중에 '턱 쏜다'의 분석은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그녀들과의 시간이 떠올라 한참이나 웃었지 싶다. 아 그거였구나~~~

적절한 시간을 잘 선택해서 잘 턱을 쏘아야하고, 적절한 자랑질을 하며 즐겁게 축하받아야 하는데 밥값은 누가 내고 주인공질은 딴 녀가 했던 그 억울했던 감정의 찌꺼기가 이해받고 처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밥값내는 녀들을 주인공 시켜주어야  했던 것이다. ㅋㅋㅋ 박수치는 녀들의 사회성과 인간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ㅋㅋㅋ 한국 아짐들과 사이좋게 잘지내기 위해 알아두기로 한다.

무단 횡단보도를 하지 않기 위해 냇가 산책길을 택해 겨울의 시간을 한참이나 걸었다. 서너번의 횡단보도를 지나야 하는 길은 지름길이기도 하며 슈퍼에 들려 장을 보기도 하며 옷을 구입하기도 하는 실용적인 길이다. 두 갈래의 선택에서 오리와 두루미가 사는 냇가길을 선택하니 마음이 편하고 고요하다는 사실에(무엇보다 죄책감에에 벗어날 수 있다는)그 실용적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아파트 출입구의 신호등이 만만하여 그냥 건너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고, 보행자 길의 푸른 신호를 무시하고 그냥 차를 들이대고 지나가는 뻔뻔한 차들과 우회전 신호에 속도를 줄이지 않고 보행자를 위협하며 방향을 바꾸는 나와 님들의 모습을  한국인의 나름 생각하는 주체적인 생각하는 습성으로 인한 것이라 이해를 하려고 하니 슬픈 웃음이 나온다.

바보스럽게 교통법규를 지키던 그곳의 묵직한 모습이 생각난다. 사람이 지나가던 안하던 간에 보행자가 지나는 길엔 속도를 줄이고 사방을 살피고 정지 사인엔 절대 정지했던 그 바보스럽고 착한 사람들이 사는 그곳이 그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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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란 무엇인지 궁금해서 텔비앞에 앉아 화요일 오후를 커피를 마시며 들이켰다. 광안리 앞바다에서 날고 있는 행복한 그녀의 입에서 줄곧 떠나지 않았던 '노자'님의 이야기가 물음표를 안고 내안으로 파고 들었던 모양이다. 중국말을 할 줄 아는 흰머리 교수님이 왜 이리 멋있는 것이지? 중국말을 배워볼까 하는 지적 호기심이 잠시 일기도 하였다.  노자님이 마주했던 시대를 이해하고자 중국 고대사를 원초적인 시간부터 거슬러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 노자님의 깊은 사유로 이끌어낸 '도'의 정신이 드디어 전개되는 순간 난 왜 하필 내일 아침으로 먹을 빵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ㅋㅋㅋ

최근 있었던 물가의 흐트러진 물음표들에 대한 내안의 답을 찾느라 상당한 흔들거림을 느꼈던 것 같다.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순간에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그로인한 댓가성 응징(?)을 받는, 면이 없는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저 침묵으로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선의도 아니고 악의도 아닌 그냥 나불대다가 젊은 샘에게 수모를 당한 꼴이 어이없어 웃음이 흘러 나온다. 격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왜 자꾸 넘어지는 것일까? 그동안 닦었던 물가에서의 '도'가 아직도 멀고 험한 길인가 싶어 잠시 엎어졌다 일어났나 보다 보로씨~~~

투명하고 합리적인 솔루션을 갖지 못하는 불쾌함에서 불쑥 그런 말들이 자연스럽게 새어 나왔는지도 모른다는 핑계도 하면서 초라하고 구차한 반성은 집어 치우고 무한대로 자신을 사랑하며 신뢰하기로 한다. 영혼없는 칭찬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학구열에 심취한 전진하는 질문을 금지하며 스스로 연구발전 시키는 굳은 마음 크게 먹고 열심을 내었는데 그만 하다보니 그만 '화기애애'인 줄 알고 방심하고 까불다가 꼬트리가 잡혀 젊은 샘에게 물가 아짐들 보는 앞에서 교육 받았다. 역시 화기는 없고 애매를 가장한 무채색 관계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기본 예의와 존중을 운운한다면 갑자기 젊은 샘에게 미안한 일일 것이다. '지루한'이란 단어를 들리게 했으니 말이다. 자존심이 있다면 그 형용사가 들리지  않도록 지도안도 짜고 원포인트 렛슨을 하며 피드백도 성실히 할지어다!라고 활을 쏘고 싶었지만 붉은 학습자의 의도를 매도하는 푸르고도 어린 가슴팍이 보였다. (역쉬 아침밥은 먹고 다녀야하고, 여자는 젋고 예뻐야 한다~~~ 이쁜 년이 앙탈(?)을 부렸으면 저리 하지 않았을텐디....ㅋㅋㅋ)

  뗄 정도 없고 화기 애매한 분위기의 중급반을 견뎌야 하는 그런 고충을 숨기는 것이 어려운 일인 것이 분명하다. 하필 흘러나온 말이 '지루한'이란 단어였는지요? 수업을 참신하고 재밌게 하기 위해 다른 기구도 사용하면 좋겠다는 그런 팩트 충실한 표현이 '지루한'이란 단어로 아무런 무장없이 혹은 대책없이 그만 흘러나와 젊은 샘의 가슴팍으로 .스핀을 만들어 어느 푸른 가슴팍을 찌르고 다시 내게  망신살을 묻혀 더 큰 회전력으로 날아와 파고 돌아왔다.   역쉬 나이가 들면 셧업이 최고이다! ㅠㅠㅠ

 처절하고도 너덜거리는 물가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내가 노는  물가가 무지 무섭다며 넌더리를 친다. ㅋㅋㅋ 힘세고 강한 친구가 물가에서 그리 당하고 산다면 연약한 그녀들의 물가 풍경은 상상도 하기 싫은 모양이다.  최근에 'split'이란 24 아이덴티티란 미제 영화가 떠오른다. 물가에서 만나는 나는 누구인지? 젊은 샘의 비위도 하나 못맞추는 수중전에서의 모자란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며 입 다물고 수영만 해야 하는 것이  덜 달콤한 일이지만 그래도 난 물가에 가는 시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