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ly 18, 2018

so~~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래서,
저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

아침물가를 걸어 가며 만났던 어느 푸르름이 말한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나름 열심히 착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부끄럽지 않다.


Tuesday, July 17, 2018

The Wind in Summer

꽃들은 피고지고 노래한다. 여름이 열기를 더해 갈 수록 그 음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정열적으로 피고지고 사라진다.  꽃들이 사라지는 모습도 각기 다르다는 것을 가던 걸음을 멈추고 바라 보았다. 어떤 꽃은 열린 꽃 형태로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고 어떤 꽃은 벗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두려운 것처럼 몸을 감고 품위를 유지하며 떨어지고 어떤 꽃은 꽃잎 하나 하나를 떨구며 끝까지 존재하며 나비와 벌을 유혹한다.

화려한 꽃잎이 사라지고 동그랗게 아주 단순한 형태로 남아있는 꽃은 특별히 멋지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라지는 모습이 추함 속에 씨를 맺는 꽃이 있는 반면 최선을(?) 다해 본 핵심을 아름답게 유지하며 남아있는 단단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은 아름답다.

물가에서 마주하는 어떤 여인들은 향기가 있다. 아름다움과 그에 어울리는 교양과 품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여인들이 있는 반면에 그저 겉모습만 치중하여 피부과와 성형외과를 자주 가는 외모지상주의에 사로잡힌 여인들도 있다. 속모습을 가꾸는 것보다는 겉모습이 달라지는 것은 훨씬 더 쉬운(?)일이 아니겠는가.

인격이 숨어있는 속모습을 보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 것도 어찌보면 적당한 거리를 둔 관계로 보여지기도 하다. 사람속을 자꾸 들어내다 보면 향기보다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동물적인 냄새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을 자주 보아 왔기 때문이고 나 또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아침물가에서 마주하는 접시꽃, 노란 코스모스, 코스모스, 나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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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만 글을 읽다가 모질한 자신을 이해하며 스스로를 품으려 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그날, 뒤집혀지기전 아침 출발전 글서두이다. 얼마나 나란 인간이 연약한 것인가. 타인들로 부터 적극적으로 보호했어야 한다. 목소리가 커서 눈이 부리부리 커서 여러 이유를 달아 미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로 부터 보호했어야 한다.  각기 자기 자리에서 힘껏 향기를 품으려 활짝 피우는 꽃들이 아니라 썩은 고기를 쫒는 하이네나처럼 백년 묵은 여우처럼 꽤를 부리고 수를 부리는 간사한 동물들로 부터 살아남는 법을 익혔어야 한다.

조폭의 의리감(?)도 없고, 조직의 연대감은 밥과 커피로 뒷땅먹고 자란다고 믿는 사람들로 부터 자유로운 방법은 무엇인가.

살아가는 것은 늘 흔들리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한다. 무난하게 화내지 않고 잘 참고 견디며 교양있게(?) 처신하는 사람들이 가끔 부러울 때가 있다. 분노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일에 이성을 놓고 감정에 몰입한 자신이 자랑스럽진 않지만 흔들렸다는 것 인정하기로 한다. 나름 뒷정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훅하고 들어왔던 불쾌감과 모멸감의 강도는 객관화하기 어려운 참으로 주관적이기도 해서 때로는 남들의 시선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신들도 그런 일을 당한다면?

제대로(?) 정리하고 바로잡을 수 없는 미묘한 상태에서 즐겁고 신나는 수영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 이야기처럼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털어내고 아무일 없는 것처럼 물가생활을 꾸려낼 수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신적인 근육의 힘이 필요할 때라고 알고는 있지만 극히도 사소한 개인적인 일에 집중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진다는 것이다.

날것의 충동을 못이겨, 어리석은 바보라는 것을 들키고 말았다 내가!

아침물가를 걸으며 꽃들의 모습을 보며 행복했던 나를 불러 본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나는 물가만 가면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무서운(?) 여자로 만들어진 프레임속에 갖히게 되는 것인지 여전히 승산없는 분노를 하고 싶다. ㅋㅋ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여유있는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







Sunday, July 15, 2018

똥을 밟다

물가에서 똥을 밟고 말았다. 그래서 아직도 역겨운 냄새가 나고 있는 중이다. 똥이란 것을 알고도 밟은 자신은 결국엔 같은 똥냄시 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깐죽거리며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을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는다 하여도,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열기를 참을 수 없었다는 바보같은 변명을 늘어 놓는 자신을 보는 것은 결코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 어찌하여 똥을 피하지 못했던가!  자신의 치부(?)까지 보여가며 상대해야 할 가치가 있었는지 묻고 있자면 가치없는 짓이었다.

어떻게 하면 기본적인 소양도 경우도 없이 기본적인 선까지 파괴하며 시비를 거는 경우를 피할 수 있단 말인가.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란 책을 읽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누구 말대로 너무 곱게 자라서 상황적응을 못한 것일까.

깐죽거리며 상대방 열받게 하는 법에 대한 특강이라 있으면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성질 못참고 열받아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의 모질한 모습은 똥된 기분이다~~~

니똥 내똥 냄새나는 것 마찬가지이지만 세상은 똥으로만 사는 것 아니겠는가!



Wednesday, July 11, 2018

Give N Take

지난 밤,  장성한 두 아들과 함께 동네 새로 생긴 통닭집에서 생맥주 한잔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젊은 날로 즐길 수 있었던 가축적(?)인 모임이었지 싶다. 함께 통닭을 정신없이 먹고 이런저런 심드렁한 이야기 주고 받으면서 다시는 새로 개장한 집에 오지 말자고 함께 다짐을 하며 어떤 여름밤을 가족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였지 싶다.

새로 개장한 통닭집은 모든 것이 서툴고 해서 치맥이 주는 고소함과 시원함을 즐기기엔 오랜 기다림과 불안함과 약간은 신뢰할 수 없는 불완전함이 가득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가장 좋아하는 취향의 맛 (크래스피한 맛)을 만들 수 없다는 어린 직원의 말을 듣고 자리를 박차고 차마 일어날 수 없었다. 새로 생긴 집이니 새마음으로 열정적(?)으로 맛있게 최선을 다하리라는 기대가 갖는 크기 이상으로  불만감으로 변했지 싶다.  어떤 새로움에 대한 흥분은 검증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분명하다.

또 하루 여름날이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밀린 집안일을 하니 온몸이 급급하다. 이것또한 지나갈 것이다~~~

수영을 하고 돌아오는 길은 유일한 노점상앞을 지나치게 되어있다. 물론 다른 길도 있지만 늘상 다니는 길은 부지런하게 바삐 몸을 움직이는 아줌마가 주름진 여인들과 함께 채소를 다듬는 써비스를 하여 현금 장사를 하신다. 호박잎을 벗겨 팔고 있다는 사실에 사실 감사했다. 가방 깊은 곳에서 현금을 꾸역꾸역 찾아내어 아날로그적으로 값을 지불하다 싱싱하고 맵지 않은 고추를 천원어치를 구입했다.

웬 먹거리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고 셀프로 물어본다. 간소하게 고추를 된장에 발라 먹고, 강된장에 호박잎을 적셔 냄비밥 한숟가락을 몸에 넣는 그림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늙은 것 분명하다. 된장~~~

물가에서 순간 내뱉은 말이 괴물로 변해 마음을 어지럽혔던 날이기도 하다. 된장 젠장~~~

웃자고 하는 이야기가 꼭 사고를 친다. 뾰족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그 마음크기가 문제이긴 하지만 문제라고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유머감각이 결여되어 있어서 혹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 남탓을 하기엔 내 자신에게 먼저 화가 치밀어 오른다. 왜 뭣담시 입을 열어가지고는 결국엔 내 마음을 다치게 하는가 말이다.

뭔가 여유가 있고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들과 어울렸더라면 이런 상처는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냐고 자문해본다면 그것도 그럴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럴 땐 반성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부족한 자신의 인격을 인정하고 담대하게 나가야 하는 것인지? ㅋㅋㅋ

어쨋든, 좀 더 신중하고 품격있는 언어생활을 해야한다고 다짐을 하니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뒷베란다 정리를 한참하다가 된장그릇을 정리했다. 젠장!

물가에서 이런 불쾌함만 얻은 것은 아닌데 말이다~~~

Give and Take~~~
주고서 받는다~~~ 웃긴 몇마디 하고 살벌한 말 듣긴 했지만서도 먼저 호흡을 내뱉고 나서 들이 마신다는 것이다. 오늘의 못난 내가 필요했던 것은 잠시 머리의 필터를 걸쳐서 말을 내밀었어야 한다. 바보 젠장~~~



Tuesday, July 10, 2018

여름의 어떤 하루

비가 오는겨 마는겨?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압축된 사람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바라본다. 우산이 있는겨 양산이 있는겨? 우중충한 출발을 앞두고 양산과 우산을 한꺼번에 챙기는 것으로 집밖으로 나가기전 외출 준비를 한다.

자외선으로 충전되어 춤을 추는 인형들은 흐린 날을 탓하지 않고 춤을 춘다. 회색빛으로 찌푸린 기운 위로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중충함을 뚫고 다가오는 태양빛이 있어 꽃들이 피고지고 흰나비가 팔랑팔랑 꽃을 따라 날아다니겠지 싶다.

동화속에서 튀어나온 듯 흰나비가 팔랑거리는 모습은 환상적이다.  작고도 하이얀 흰나비가 이리저리 바삐 날개짓을 한다. 어느 님의 싯구처럼 흰나비도 날개가 제일 무거운 것일까?

'앤트맨과 와스프'란 영화를 월요일밤에 보았다. 영화관 주차장이 텅 비어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지 싶다. 월요일 밤에 누가 영화를 보러 오겠는가 하는 생각이 무색하게 상영관은 가득찼다. 별 기대를 하지 않는 무례함 때문이었는지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야 누가 말벌인지 확인을 하고 말았다. ㅋㅋㅋ

'말벌'이란 단어는 내게 있어 아주 포악하고 무서운 단어로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유학시절 가라지 문 앞에 대롱대롱 크기를 더해 공포스러움을 주었던 것이 말벌이다. 현관앞 꽃들이 많아 말벌을 유인하고 만 형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늦게 알고서 그동안 말벌에 쏘이지 않고 큰 사고 나지 않은 것에 대해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던가 말이다.

이곳저곳 집을 짓는 말벌들을 물리치기 위해 말벌퇴치 스프레이를 사서 말벌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약을 뿌렸던 그 아슬아슬하고 시간들은 무서움이다.

괜시리 뒷뜰 거닐다가 말벌을 피해 도망을 갔는데도 불구하고 나타나 공격을 하던 고약한 말벌에 쏘인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ㅋㅋㅋ ( 부부가 차례로 당했다고 했다. ㅠㅠ)

그래도 우리집에 같이 살자고 집을 마구 짓던 말벌들은 그런 부도덕한 짓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쁜 꽃들 땜에 말벌이 꼬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서도 꽃들을 제거할 수 없진 않는가 말이다. 그래서  말벌 킬러를 막 뿌렸던 기억으로 인해 영화속 이쁜 여주인공이 말벌이라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ㅋㅋ

무슨 말벌이 저리 이뻐? ㅋㅋ

과학적으로 보이는 용어들이 뇌속에서 거부배척당한다는 느낌을 받긴 하였다. 상상력이 부족한 탓인지 백프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오락영화 아니겠는가! 따지지 말고 그냥 즐기면 되는 것을~~~

무엇보다 센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자동차 추격신 장면은 뭐라고 해야할까.  바라보고 걸어보고 사진찍고 했던 유명한 장소들이 나오니 반갑기 그지 없었지 싶다. 센프란시스코의 구비진 도로를 이용한 자동차 널띠기 신은 이상한 친근감이 들었기도 하였다.

으~~~ 수영갈 시간이다~~~


Monday, July 09, 2018

꽃길을 걷다~~~

창밖은 양산이 아니라 우산이다. 눈을 동그랗게 크게 뜨고 창밖의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 우산을 그냥 들고 가는 사람, 우산을 머리위로 들고 걷는 사람 애매한 비내리기가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산을 쓰자니 가볍게 내리는 비를 피해 우산을 들고 있는 팔의 무게가 더 참을 수 없는 무거움으로 느껴지는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장마라는 시간을 지내기 위해선 갑자기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하기 위해 우산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특히나 차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다니는 사람에겐 작고 가벼운 우산이 필요로 하다. 작은 우산을 챙겼는데, 이제 갑자기 튀어나올 태양으로 부터 오는 자외선을 피하기 위한 장비들을 보조가방에 챙겨넣고, 우산을 쥐고 나가야 하는 그림이다.

주말이지만 어디론가 떠나지 않았다.

너무 지루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음표 머리가 일어나려고 했다. 언제나처럼 아침수영을 다녀와 쫄깃쫄깃한 수제비를 사먹고 그리고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바를 물고 그리고 멍하니 텔비를 보다가 커피를 마시다 보면 나른한 잠이 밀려온다. ㅋㅋ 그 나른한 눈꺼풀의 무게감은 가득찬 위장의 행복감으로 부터 시작하였기에 거부하기 힘들다.

영화한편을 온식구가 출동하여 보고 싶었지만, 군으로 급하게 복귀한 작은 아들의 부재때문에 주말 가족영화관람은 성사되지 못했다.  해가 서쪽으로 사라졌지만 보일 것은 보이고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은 가려지는 여름밤의 8시란 시간은 걷기에 좋다는 것이다.

차를 타고 특별히 넓은 호수가를 걷는 것도 좋을 듯 싶었지만 차를 운전하고 나가 주차를 하는 그 과정이 싫어 그냥 동네  시냇가를 걷기로 한다. 그렇고 보면, 참 게으르다는 것이다. 나이가 숫자를 더할 수록 새로운 시도를 해보아야 하는 것인데 편안한 것을 선택하고 만다는 것이다.

여름밤의 8시란 시간은 아름답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밤이라고 하기엔 보일 것은 적당히 볼 수 있는 낭만의 시간이다. 갑자기 꽃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일찍 피어난 노오란 코스모스가 씨를 맺으며 피고지고, 작은 접시로 얼굴사이즈를 줄인 접시꽃이 여름 장마비와 함께 온 바람에 쓰러져 꽃을 들어 올리는 강인한 모습과 , 보라색 이름 모를 섬세한 꽃, 그리고 태양과 같은 꽃들, 수잔아이라고 불리는 내 정원에 심었던 꽃, 그리고 아!

'콘 플라워'를 발견했다.
그 반가움을 어찌 형용할 수 있으랴!
오래된 묵은 친구를 만난 것처럼 꽃앞에 가던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길다란 하천 길에 두곳에 핑크와 보라를 섞은 콘플라워가 숨어(?) 있었다. 내 정원에 심었던 그 콘플라워와 같은 것이다. 해마다 다시 씨를 뿌리지 않아도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 올랐던 여름의 꽃 콘플라워는 그 꽃이 오랫동안 피어 정원을 환하게 밝혔던 꽃이다. 아이보리색도 심었었지~~~ 그후로 주황색도 나오고~~~

아득한 시간이 건드려진다.

삽을 들고 땅파고 영양토 넣고, 뿌리를 넣고 다시 흙을 덮고, 멀치를 덮고, 해가 강하지 않은 시간에  물을 주며 처음 터잡기를 지켜보던 그 기다리던 시간들이 생각이 난다. 날마다 지켜보던 나의 꽃들이 가슴속에서 짜아안 하고 피어나는 순간이다.  태양과 같이 아름다운 꽃에 반해 그림까지 그랬었다. ㅋㅋㅋ

콘플라워가 더욱 번성해서 핑크빛과 보라색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가 걷는 길은 전반적으로 노란 코스모스와 노오란 기타꽃들이 우세하다. 물론 접시꽃도 핑크빛과 붉은 빛 사이에 있지만서도 보라빛이 도는 콘플라워가 군데 군데 더욱 영역을 넓혔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을 가져본다.

태양이 머리위로 떠오른 시간에 보았던 '능소화'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고 물가에 가려고 한다.  미국 유학시절, 넓고도 푸른 옥수수 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운전을 하고 가다가 보았던 능소화!   높다란 전봇대를 타고 올라 높은 곳에 꽃를 피웠던 그 도도한 능소화가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아파트 방음벽에 집단적인 주황색 나팔들을 들고 합창을 하고 있는 풍경은 즐겁고 신기한 풍경이다.  하늘에 먼저 도달하려는 본능인가?

영광이란 꽃말을 가진 능소화( 하늘을 능멸하는(?) 아름다움을 지닌 꽃 ㅋㅋ)는 장원급제시 머리에 두르는 어사화에 사용되는 꽃이라고 한다. 떨어지는 모습이 또루룩 형태를 몰아 떨어지는  무궁화와 달리 나팔모양 그대로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

꽃들이 피고지는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 하나에도 감사해본다~~~



Thursday, July 05, 2018

Too Much

'too much'란 단어를 보면 주름진 스승님이 떠오른다. 스승님의 영어는 단순하고 선명했지 싶다. 뭔가 표현하고 싶은 욕망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 부어 실패했던 작품들의 지난 이야기가 아득하게 생각이 난다.

장마철 급급한 여름날엔 과한 치장을 생략하곤 한다. 시간을 알리는 시계를 걸치는 것을 생략하고, 자외선 차단제에 들러붙을 목걸이를 걸치지 않고, 그저 흔들거리는 귀걸이에 만족하다. 물가에서 과하게 몰두하고 집중하고 있는 여기 오늘의 나는 수영하는 것을 사랑한다. 좋아하기에 손바닥의 지문이 불어 쭈글거릴지라도 물속에서 나오기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영은 잘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날마다 무엇인가를 깨닫고 익히는 즐거움을 맛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행복한 답을 하고 싶다. 현실이 주는 무거운 중력을 벗어나 부드러운 물이 주는 부력과 친해지는 과정은 날마다 매혹적이다.

가장 문제가 많은 '평영'영법을 익히는 불완전한 과정중에 영역이 더 확장되고 더 단단해지는 나름의 기술을 하나씩 얻어가는 느낌이다. 누군가가 '전진'이란 1000보를 가기 위해 999보를 후퇴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아가기 위해 더 느리게, 더 부드럽게 스스로의 몸을 훈련시키다 보면 한시간이 짧고 두시간이 역시 짧다는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몸을 다잡고 부드럽고 단단하게 균형감을 잃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간격이 아직도 넓게만 보여지지만, 포기하지 않고 느리게 전진하고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열심히 하시는 것 아니예요?'하는 너무 과한 모습에 대한 약간은 부정적인(?) 질문을 듣는다. 이런 물음표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자신의 열정에 대한 핑계 아닌 핑계를 내놓게 된다. 수영하지 않고 그냥 수다 떨다 나온거예요~~~

완전한 폼으로 수영을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필요한 부분 동작을 하다보니 시간이 흐른 것이다. 쉬엄쉬엄하다 보니 시간이 과하게 흐른 것 뿐이다. 근데 왜 타인들에게 설명하고 변명해야 하는 것인가?

남과 다르다는 것은 불편한 것이다. 욕심 사납게 보이기 쉬운 그림이라는 것이다. 물속에서 자맥질을 하는 동안 그녀들은 사우나장에서 뜻깊은(?) 사교를 했으면 족하지 않는가? 타인의 취향에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야말로 품격없는 것임을 기억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날이 더우니, 장식적인 것을 생략하며 뭣이 중헌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여인들의 맨살이 들어나는 낭만적인 여름날이 벌겋게 익어가고 있다. 긴 장마중에 어디선가 목마름이 사라질 것이고 뜨거운 태양아래 과일들이 여물어 갈 것이다. 자외선 차단제 듬뿍 바르고 양산 쓰고 선글라스 쓰고 노화의 자극제인 자외선을 피하고, 스스로를 침몰시키는 우울감을 떨치고, 스스로가 자가발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넘 과하지 않게 현실과 이상사이의 즐겁고 신나는 균형감각을 잊지 않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