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19, 2019

Raining Monday

'링링'이란 태풍도 지나갔는데 왜 비가 오는 것이지? 태풍이 지난 후엔 청명한 푸른 하늘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를 벗어나,지금 여긴 반갑지 않은(?) 가을 비가 내리고 있다.

급급해서 선풍기를 돌리고 있는 지금은 이른바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가을임에 틀림없다. 봄비다운 봄비가 오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기에, 장마다운 장마를 보지 않았기에 지금의 가을 비의 소중함을 떠올리기 어려운 모양이다. 가을햇살에 곡식이 익어가고 과일이 탐스러워질 시간에 웬 비가 내린단 말인가. 초가을 월요일에 내리는 비는 낭만적이지 않고 급급하고 귀찮기만 하다.

태풍이 지나간 후,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흔들린 나뭇가지의 부스러기들과 야무지게 정리하지 않은 쓰레기들이 나뒹구는, 예상밖의  얌전한 뒷모습 풍경을 남겼다. 빗탈진 곳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기울어졌고, 올바로 곧게 서지 않은 나무들은 균형을 잡지 못해 나무가지들을 꺽어내야 하는 아픔을 경험 했던 모양이다. 거센 바람이 불때 뿌리를 잘내린 나무들은 잘 흔들렸던 것인지 덜 움직였던 것인지 안전하게 견뎌낸  반면, 균형을 잡기 어려운 빗탈진 나무들은 바람탓에 큰 변화를 겪은 모습이다.

빗탈진 곳에 있는 나무들이라도 엉기성기 서로를 기댈 수 있었던 어린 나무들은 위기를 잘 견뎌냈고,  홀로 비탈진 곳에 있는 어린 나무들은 쓰러져 있는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듯 하였다. 어려울수록 서로 보듬고, 때로는 견디며 함께 살아야 하는 모양이다. 큰 바람이 부니 홀로 있는 나무들을 보호해 줄 그 무엇이 없다.

대자연의 세계엔 때론 태풍이 필요하다고 한다. 정체된 것들을 뒤집어 질서를 다시 잡는 일종의 '조율'같은 것이라 대자연의 섭리를 겸허히 받아 들이지만 태풍때문에 여기저기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얼굴을 텔비를 통해 보고 있노라니 태풍이 없는 세상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다. 태풍으로 인해 정성을 다한 과일들이 나뒹굴고, 태풍이 가지고 온 열대성 해류가 양식장의 서식조건을 파괴시켜 물고기들이 집단 폐사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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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08, 2019

The Room

가을 장마로 비가 내리더니 이제 역대급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들은 물기로 인해 땅을 잡고 서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 강풍까지 불어 닥치면 쓰러지기 쉬울 것이다.

미국생활 동안 만난  비상 사이렌 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도 비가 며칠 동안 내렸었고 그리고 약한 토네이도의 비바람이 불었다.  토네이도가 침범할 수 없는  저지대로서 안전한(?) 지형이란 말이 무색하게 이웃들의 지붕은 날아갔고 큰 나무들은 쉽게 무너져 버린 풍경이 기억난다.

가을 비가 연속 내리더니,  오늘 아침은 무서운 속도로 세력을 키운 태풍의  뉴스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고 조용하다.  뭔가 큰 것이 올 것 같은 조용함이다!

아침운동을 두 다리로 오가는 나는 바깥 출입을 억제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가로수가 갑자기 쓰러질 것이고, 건물의 많은 간판들이 떨어져 날아다닐 것이며, 쓰러지는 가로수 때문에 전기줄이 끊어질 수 있는 태풍 부는 날을 상상하니 무섭기 그지 없다.  아무리 좋아하는 운동이라도 꾹 참고 집안에 있어야 할 모양이다.

어제 아침신문에서 만난 푸드 파이터, '로니 칸'의 인터뷰가 생각이 나서 적어 본다.
'먼저 내가 무엇으로 행복한지 찾고, 그걸 위한 일을 늘려 가라. 또 주변에 열정적인 사람들 둬라. 열정은 사람을 감화시킨다.'

열정적인 사람들이 욕심으로 가득찬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서로가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 지하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마음 속에 구정물을 일으키는 것은 타인들로 부터 시작될 수 있지만 결국은 내 마음을 지키는 정화 시스켐을 간직하여  자신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타인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 내적 단단함을 얻을 수 있는 힘을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은 태풍이 데리고 온 좋은 생각이다.

'소박한 정원'이란 책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선, 타고난 본성대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이고 함께 존재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 것을 깨달은 '오경아'님의 책을  태풍이 부는 날에 함께 만나기로 한다.










Tuesday, September 03, 2019

knock knock

'녹록지 않다'란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만만치 않다라는 뜻을 달리 표현한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흔히 사용하지 않은 어려운(?) 표현이라 검색을 해보았다. 타인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고 유지해 가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부정적인 말투로 징징대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어쩌다 한번이면 좋겠고, 남의 뒷흉을 소근거리는 사람 또한 어쩌다 한번이면 좋겠고, 소유한 부의 숫자가 늘어난 자랑을 하는 단순한 사람도 어쩌다 한번이면 좋겠고, 앞에선 웃고 뒤에선 뒷땅까는 사람은 안보면 좋겠고, 자신의 유익에 따라 배신을 일삼는 영리한 사람도 안보면 좋겠고 ㅋㅋㅋ 그래서 사람들이 싫어져 혼자이고 싶어진다.

이러면 반사회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라며 마음을 다둑여 마음 문을 열고 입을 열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하면 잘 듣고 꿀걱하고 삼키고 배려해 주는 사람은 없는 것일까. 배려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있는 자리에서 들어주는 것만으로 임무를 마치면 안되는 것일까. 남에게 말을 옮기고, 일을 확대 시키고 결국엔 차 마실 때 내놓을 에피소드 한편을 제공하고 말았다는 그런 느낌은 받고 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

'그러려니'다! 다시한번!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음으로 때로 단순하게 무식하게 입에서 튀어 나오는대로 말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잘못을 뒤돌아보지 않고 자기 보호적인 차원으로 적반하장의 형태를 취해 사람을 황당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미안합니다','감사합니다' 이런 단어들만 제대로 사용해도 될터인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잔머리를 굴리며 합리화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순무식한 사람의 좌충우돌의 꾸중물을 보는 것 보다 여우처럼 잔머리를 쓰며 달콤하게 부드럽게 의사소통을 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도 있다.)

남의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은 피해야 할 사람임에 틀림없다. 사람 보는 눈이 있다며 함부러 남의 인상이 어쩌고 저쩌고 지껄이는 사람 또한 냄새나는 그것처럼 피해야 한다. 물질적인 축적이 많다하여 없는 사람위에 올라 앉아  괄시하는 사람 또한 추한 사람이다. 물질은 아름다운 것이나 그렇다고 밥이나 얻어 먹는 사람이나 콩고물이나 줏어 먹는 사람이 아닌 이상 그런 거들먹거리는 꼴을 쉽게 받아 들이는 것은 역겨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난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이다. ㅠㅠ)

물가의 여인들이 가장 거센 사람들이다는 말을 자주 듣기에 조심하고 조심하지만 어쩔 수 없이 빚어지는 이야기들이 생겨난다. 삶이란 어쩌면 내가 살아온 이야기 꾸러미일터인데 풍부한 경험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선을 지키고  즐겁고 기쁜 이야기만 나누는 관계를 만들면 피곤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만든 사람에게 충고는 하지 않기로 한다. 어쩌면 사람들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를 걸고 하는 말이다.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며 다만 나에게 집중하고 더 단단하게 서면 되는 것이다.  나는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으니까!




Together

'함께(together)란 단어는 다정하지만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서로가 각자 존재하는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멋지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함께 있어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태도가 기본적인 기초를 갖고 있거나 혹은 시간의 축적만큼이나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부드럽고도 단단한 넉넉함이 마련되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뒷담화를 실어 나르기를 즐겨하는 사람과의 식사와 커피는 피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무심하게 편안한 커피 한잔 하기가 쉽지가 않다! )

'그럴 수도 있지', '그러려니', '괜찮아' 등등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단어들이 없다면 어찌 미묘하고도 애매한 감정을 정리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한다. 그러나 이런 무심한 단어들은 술처럼 취하게 하여 무기력하게 쓰러지게 만들지도 모른다. 자꾸만 수용하고 용인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로 살다보면 어떻게 되는거지?


'여름과 가을의 공존'이란 단어를 아침신문에서 보았다. 애매하고 모호한 것은 아름답지만 복잡할 때가 있다. 선명한 것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한 것 아니겠는가. 나무들은 아직 푸르고 서늘한 시간을 따른 꽃들은 치열하게 꽃들을 들어 올리며  9월이라는 시간에 접어 들었다.  이곳으로 돌아온 나의 시간은 6년이란 숫자를 축적하였다. 돌아보면 보잘 것 없고 남루한 기억이 쌓여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원하지 않는 삶이었다. 지금 여기서 진정 내가 꾸린 삶의 모습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더 마음 편해지는 서술이라 할 수 있다.

돌아보면, 6년의 시간은 사라졌다! 65세를 노인으로 칭한다면 아직 중년의 시간이 있다. 앞으로의 시간을 가을 꽃처럼 최선을 다해 피워내야 할 것이라고 마음밭을 다져보기로 한다.

내 삶의 마지막 날에 갖게 될 단어는 무엇일까? 나 또한 남들처럼 마지막 날을 별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냥 잊고 살고 싶은 멀리 있는 단어이다. 하지만 가을이니까 물어본다.



내 삶을 함께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삶의 결이 더 풍부해지고 깊이가 깊어지고, 더 단단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음을 감사할 수 있었으면 한다.







Thursday, August 29, 2019

STOP

미국 유학시절에  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하던 중에 만난  '정지'란 단어가 오늘 아침에  먼저 떠오른다. 운전을 배우는 것은 운전하는 법과 지켜야 할 규칙을 배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붉은 불이면 멈추는 것이고 초록불이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유난히 익숙하지 않아 신경을 써야 했던 것이 정지 신호인 영어, 'STOP' 사인이었던 것이다.  신호가 없는 도로에서 붉은 정지 간판위에 'STOP'이란 글자가 보이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오고가는 차가 없더라도 멈추어야 하는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머리가 좋고 행동이 빠른 사람들은 이 교통사인을 지키는 일이 어렵다는 것이다. 잠시 멈추면  되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어렵다. 익숙한 본능은 좌우를 살피고 그냥 가려고 한다.  사람의 판단력이 앞서 가는 것을 정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하게 착하게 교통규칙을 지키는 습관을 자기화하는 것은 유치원 시절 익히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정지! 멈추고 먼저 도착한 차가 출발하고 착하게 순서대로 출발하면 되는 것이다.

'판단정지'!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들과 함께 어울릴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각자 모두는 그들 나름대로 환경과 경험 그리고 고유한 개성이 있는 것이다. 어울려 조화롭게 잘 지내기 위해서는 내 생각의 잣대로 함부러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자신 또한 비교 당하고 심판받고 지적질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타인들을 향해서는 쉽게 판단하곤 한다.

잠시 멈추고 생각을 다듬어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들을 물리칠 '정지'라는 단어가 필요한 순간이 있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말을 함부러 뱉고 살고 있지  않는지 삼가 조심하며 새로 시작된 가을  하루를 잘 챙겨봐야겠다.

Wednesday, August 28, 2019

Long Raining in Fall

'가을 장마'란 말은 반갑지 않다. 남쪽에서 비가 내리고 있는 중이라 공기가 물기를 머금고 있다. 베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덥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혹시몰라 양산겸 우산을 챙겨 아침운동 가방에 넣어 두었다.

이제 가을이려나 하면 여름이고 여름이려나 하면 가을이다! 어깨가 드러난 여름옷을 입는 것을 보면 여름이고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돌리지 않으면 가을이다. 배롱나무 꽃이 피어 흔들거리면 서늘한 가을이 오는 것 분명하다고 나의 정원에 심었던 배롱나무의 기억은 말한다. 남쪽으로 향한 현관 앞에 심었던 배롱나무 꽃은 검붉은 장미 색에 연분홍을 섞은 색이었다. 불타는 여름의 끝색과 닮았던 것을 이 여름기억의 끝자락을 붙들고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곳엔 배롱나무가 많다. 길가에 배롱나무 연분홍색이 묘하게 싫다고 말했던 사람은 잘살고 있을까. 부정적인 인상을 말했던 그녀가 잊혀지지 않는다, 묘하게! 아마, 시골아낙의 입술에서 보았던 촌시러웠던 충격을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ㅋㅋ 지금 이곳에 있는 난 내 정원속에서 피어 올라오던 사랑스럽던 배롱나무(Crape Myrtle)를 기억하는 것이다. 살랑살랑한 레이스를 많이 달고 귀엽게 올라오던 어린 배롱나무가 이제 많이 자라나 가지치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백일홍이라는 국화과 꽃이름과 헷갈리게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머리속의 사전엔 '지니아'라고 불리는 꽃이 '백일홍'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피어있는 특성에 따라 백일홍이라고 했음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배롱나무 또한 7.8.9 석달 동안이나 피어나는 속성을 가졌으니 이 또한 나무 '목백일홍'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떠나간 님에 대한 그리움'이란 꽃말을 찾아 보고서 어릴 적 유난히 슬프게 들었던 이야기의 주인공이란 것을 알았다. ㅠㅠ 어린 시절 다양한 이야기에 노출되어 있는 생활을 하지 않았었는데 그 누군가가 꽃에 얽힌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고 첫충격으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연인이 적을 죽이고 돌아오는 깃발의 색이 흰색이어야 하는데, 죽인 이무기의 피가 깃발에 묻어 붉은 색으로 보여 기다리던 여인이 그만 슬픔에 죽어 버렸다는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충격적이지 않나!

성질 정말 급하당!
(혹시 판단력이 흐려져서 마당이 있는 집에 살게 된다면, 배롱나무 한그루를 심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Sunday, August 25, 2019

Soft & Hard

창문을 닫을 때가 되었구나~~~ 여름을 돌리던 선풍기 소리도 잠잠해지고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간에 이르렀다. 남쪽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고 한다. 과일들이 익어가는 즈음엔 비가 너무 거세게 내리지 않았으면 하는 농부같은 생각이 든다.

무더운 여름을 지날 때면 '이 또한 지나가리니' 하였더니 찬바람이 어느날 갑자기 불어오니 마음 한구석이 내려 앉는다. 내려 앉은 마음을 다시 들어 올리는 일에 평상심을 잃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무심하게 밤을 걸어 가는 일도 도움이 된다. 내려 앉은 탓에 책한권을 구입해 읽고 있자니 그 또한 괜찮다.

여름의 끝자락을 붙들고, 여전히 헐렁한 여름옷을 입고 아직 선풍기를 집어 넣지 않은 구석진 시간에, 케이블에서 영화를 몇편을 보았는지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틈틈이 종이로 된 책을 만나면서 그렇게 가을을 맞이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편안해진 것은 '괜찮아'와 '그러려니'의 삶을 수용한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습관적인 폭력엔 아무리 사소해도 저항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란 반항은 좀 더 좋은 사회를 위해선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타인에겐 봄바람을 자신에겐 가을 바람을 불며, 스스로의 삶을 챙기며 바르게 살아야 하지 않나 하는 단단한 다짐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기도 하다.

어떤 모임이나 다수의 폭력(?)에서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기 어려운 것이고, 구별과 차별은 은연중에 성행하는 것이고, 힘센자와 힘없는 자가 구별되어 대우를 하며 대접을 받고 누군가는 누리고 누군가는 박수를 치며  누군가는 불편함을 인내해야 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런 것이 삶에서 그림자라고 한다면 피할 수 없는 그림자일 것이다. 빛이 있다면 필연 그림자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왜 오늘 아침 빛과 그림자 타령이지? ㅋㅋㅋ 개인적으로 빛과 그림자 노래 가사를 좋아한다. )

수영장에서 떠 있는 즐거움을 아는가! 부드러운 물위에 떠 있는 즐거움을 맛보는 난 행복한 사람이다. 부드럽고 단단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아침운동 간다~~~


Tuesday, August 20, 2019

Transformation~~~

통찰력, 르네 마그리트


모든 것이 가을로 천천히 그러나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창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서늘해졌지만 남쪽에서 비가오는 바람은 축축하다. 무거운 공기탓인지 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아침이다. 

아침신문속에서, '인간은 주어가 아니라 동사이다'란 문장을 발견하였다. 작가님의 글이 읽고 싶다는 좋은 배고픔이 일어났다 다행히!

지난번 경주를 방문했을 때 잠깐 들렸던 미술관에서 보았던 '르네 마그리트'의 '통찰력'이란 작품 사진을 올려 보았다. 알을 보고 어떤 새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가 물어 본다. 그렇고보니, 새 또한 변형을 하지 않는가! 알을 보고 어떤 새가 될 것이는 눈을 가지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힘이 있는가.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 것 정도는 알만큼의  나이를 먹었다. 그때는 옳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 있다는 것쯤은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나이도 먹었고 말이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진실도 있고, 덮어 두어야 훨씬 편해질 불편한 진실 또한 있고, 이래 저래 살아간다는 것은 미스테리이다. 그래서 그 답없는 미스테리 때문에 삶이 더 풍부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내적 성장을 멈추지 않는 멋진 여자의 하루를 잘 꾸려나갈 것을 다짐해 본다. 아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