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18, 2024

나부터 꼰대 탈출

 마침내 동네 도서관에 회원 등록을 하였다. '해야지해야지' 자꾸만 미루다가 드디어 아파트 출입구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등록을 한 것이다. 그야말로 동네 작은 도서관이다. 작년에 일터가 있었던 큰 도서관을 떠올리면 빈약하기 그지없는 환경이다. 동네 작은 도서관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온라인에서 도서관 이용법을 더 공부를 한다면 당황함이 그나마 감사함으로 바뀔 것 같긴 하다. 

요즘 머리에 꽂힌 단어 중에 하나로 '젊은 꼰대'란 단어의 뜻을 찾아 보았다. '나 때는 말이야'하고 시작하며 선을 넘는 라떼 꼰대에 버금가는 젊은 꼰대는 '선을 긋는다'.  고물가, 고환율, 고유가 3고 시대에 생존해야 하다보니 점점 세상이 각박하고 정머리가 없는 세상이 된 듯하여 씁쓸하다. 

자신이 늘 옳다고 주장한다.

상대방은 늘 틀리다고 말한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들으면 불편해 한다.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자신의 경험을 맹신한다.

나이, 서열을 중요시 여긴다. 

등등의 꼰대 감별법이 있다하여 옮겨 보았다. 무엇보다 '열린 마음'으로 공감하고 소통해야 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다. 그려, 나부터 잘하자고! 젊은 꼰대를 만나면, 사람 고쳐쓰는 것 아니니  그냥 후딱 도망가는 것으로~~~


 '...지원자님께서 부족하고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많은 분들 모시지 못 해 안따까울 따름입니다. 다시 한 번 소중한 시간을 내어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얼마나 따뜻한 온도를 가진 거절 문자인가. 거절의 온도가 가장 따뜻한 문자라서 기념삼아  적어 보았다. 냉정하고 간결한 '불합격'이란 짧은 단어를 넣은 건조한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물론 따뜻한 거절이어도 거절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사람을 두번 넘어뜨리지 않는 다는 점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낙담할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여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문자를 보내는 행위 그 자체가 훌륭하다는 것이다. 세상엔 좋은 사람들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려, 나부터 좋은 사람!


 

Wednesday, April 17, 2024

살아있다

 월요일 같은 목요일 아침이다. 동네 공원 철쭉들이 축제를 붉게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행복했다. 사람의 손길이 결여된 관리되지 않은 동네 공원을 걸으며 느꼈던  떨떠름하고 매말랐던 처음 맛을 기억한다. 깔끔하게 잘 정리된 공원들의 모습을 알기에 습관처럼 비교하며 불행한 맛을 굳이 맛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공원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몰입해서 걸으면 좋았을것을 그때는 그랬다. 시간이 지나 울퉁불퉁하고 어영부영한 동네 공원 길을 자꾸 걷고 있노라니 '감사한 마음'의 길이 내 마음 속에 생긴 모양이다.  다행히!

꽃들은 '치열하게' 피고 있을까?

살면서 '치열하게'라는 말로 서술할 정도로 열심히 살아본 적이 있냐고 한다면 '그렇다' 말할 수 있다. 함께 목소리를 모아 합창을 할 때,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할 때, 좋아하는 운동을 할 때 나는 '몰입'이란 것을 하였던 것 같다. 아무런 생각없이 오로지 그 순간에 집중하고 모든 에너지를 쏟았던 그 때 난 살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난 살아있다!

그러니 흔들리얼정 자신을 의심하지는 말자고 다짐한다. 선택했던 모든 것들 그리고 선택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은 나의 것이었고 그리고 난 도전을 하였고 그만큼 경험한 것이다. 그래, 난 아직 살아있다. 

Tuesday, April 16, 2024

사람들

 '사람들은 ㅇㅇㅇㅇ 지냅니다.'

선생님이 제시한 문장에 알맞은 말을 집어 넣으라고 하자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갸우뚱거린다. ㅋㅋ 답이 정해진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교실 안에 내가 보인다. 얼마나 막막할까...... '사이좋게' 혹은 '싸우면서' 혹은 '상관없이' 혹은 '무심하게'......

궁금해서 요리조리 몸을 비틀며 생각하는 아이들을 바라 보았다. 과연 뭐라고 대답할까?

'사이좋게'란 단어가 정답이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좋게 유지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하는 물음표가 일어났다.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이다. '인간'이란 단어가 품고 있는 그대로 사람과의 간극을 이해하고 어울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편견과 아집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저울질을 하고 판단하고 선을 넘고 예를 잃어 버리기 쉽다.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품어 주고 사랑하고 산다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을까 하는 교과서적이지만 바른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라는 문장은 씁쓸하지만 사실적인 표현이다. 사람에게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이 없다.  자신의 잣대로 함부러 판단하는 습관을 경계해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비중의 무게를 재서 처신을 달리 하는 참으로 가벼운 사람을 좋은 눈으로 바라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 면면도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생존법이니 어찌 '측은지심'을 갖지 않겠는가. 

Monday, April 15, 2024

Uprising April

 


조용한 바닷가를 거닐었다.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를 바라 보았다. 사람들이 없어서 더욱 좋았다. ㅋ '바글바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다들 어디로 가셨을까. 바닷가 공기가 선선한 탓인지 벚꽃과 목련꽃이 아직 한창이어서 더더욱 좋았다. 아직 봄이다! 넘어가는 석양을 붙잡고 와인 한잔 하고 싶었지만 그냥 보냈다. 

Sunday, April 14, 2024

이랬다저랬다

각을 어떻게 잴까요? 

때로는 '기준'이 필요하다. '어떤 점'을 기준으로 삼는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점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기준이 없어서 자유로울 수 있는 면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어떤 측정을 해서 정확한 값을 산출하고 싶은 경우에 반드시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고 그 명확한 점과 분명한 선이 필요한 것이라는 개념(?)을 나름 정리하게 되었다. 

알고보면 참으로 쉬운 '점'인데 그것을 맞추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다리미를 들고 옷주름을 잡을 때,  열과 습기 그리고 나의 체중을 실어 각을 잡아 선을 만들 때 마주할 기준 점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나의 기준 점은 어디일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거창한 것 아니다. 마음 중심으로부터 맑고 밝은 기운이 유지될 수 있게 하려면 나부터 잘 챙겨야 한다. 이제 자신을 챙길 나이가 된 것이다. 못난 나를 다둑거리고 또한 타인도 '그러려니' 눈감아주고 그렇게 좋은 에너지를 유지하고 도둑맞지 않아야 한다. 

오늘도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흔들리겠지만 선한 기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를.

Thursday, April 11, 2024

천천히 부드럽게

 벌써 금요일이다. 연일 따뜻하고 건조한 날씨로 성큼 여름의 기운을 껴안게 되어 조금은 당황스럽다.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부드럽게 나아가면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가끔은 좋다. 여러 모양과 빛깔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 중에 하나가 지혜로움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앞서 포기하고 체념하여 무채색의 사람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어떤 빛깔 없이 조용한 맑음이 좋을 때도 있다. 마음은 붉은 빛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타인들을 향해 반갑게 솔직하고 진솔하게 다가가고 싶지만 두려움이 앞선다.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이런 문장을 안고 살아서는 안되지만 자꾸만 사람과의 관계에 '기대'하지 말고 오직 자신만 잘하면 된다한다. 

어떤 일을 오랫동안 하게 되면 직업병이 생기게 마련이다. 작업을 많이 할 땐, 사물들의 형태감과 색들에 대해 참으로 민감했다. 모든 것이 작품으로 향할 때였으니 말이다.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면 '지적질'을 하게 되는 것도 경험했다. 알고 있으니 참지 못하고 '지적질'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선의로! 가르쳐 주고 싶은 욕망을 참기 어렵다. 그 오지랖을 정지해야 하는데 가끔은 참을 수 없다. 입을 다물고 맑고 고요한 마음을 먼저 챙겨야 한다. 그려, 스스로 깨닫게 되겠지~~~ 그것이 진짜여~~~누군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때 친절하게 도우면 된다. 먼저 나서서 참견하고 가르치는 것은 오지랖의 옆모습. 그런데 때로는 그런 오지랖이 있어서 세상이 덜 팍팍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대화를 할 때 이상하게 기분 나쁜 사람이 있다. 왜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일까. 하나마나한 말을 했다고 느껴질 때, 서먹한 분위기를 깨자고 말을 한다고 했는데 그 틈에도 지적질을 하고 잘날 척을 하고...ㅋ, 타인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딱딱한 말투 등등의 모습은 내게도 있다. 대화를 해도 대화를 하지 않고 소통을 하여도 소통이 되지 않는 그래서 누군가의 인내치를 올리고 사람에 대한 냉소감이 들게 하는, 그런 사람들은 본인이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도 모를 것이다.

거울을 보며 외쳐보자. 나부터 웃고 친절하고 부드럽게~~~ 나부터 잘하자!

Wednesday, April 10, 2024

그늘 아래 그 나무

 월요일 같은 목요일 아침이다. 날씨님이 봄비를 살짝 내린다고 하니 초록 물감을 뿌린 듯, 작은 새싹들은 더욱 초록을 입어 크기가 커질 것이고 시간을 다한  꽃들은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 벚꽃 잎이 한올 한올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모습은 언제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낭만적이다. 바람이 데리고 간 자리는 길모퉁이 낮은 곳.  핑크빛 연약한 꽃잎들이 조그마한  섬을 군데 군데 이루고 있음을 보았다. 꽃이 지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얼굴이다. 피고 지고 지고 피고~~~

너무 빠르게 가버리는 봄꽃 잔치를 잡고 싶어  차를 끌고 멀리 나가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동네에서 봄날을 자연스럽게(?) 즐기기로 하였다. 충분히 햇빛을 보지 못하고 그늘에 서있던  벚꽃들이 늦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좀 늦으면 어떠리~~~이것 또한 시간을 감추고 거스릴 수 없는 자연의 얼굴이다. 자신의 잠재력을 꽃 피울 그 시간이 있는 것이다. 가난한 햇빛이어도 뿌리를 땅 속 깊이 단단히 박고 온갖 바람을 견디고 서있는 성실한(?) 나무는 언젠가 나름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어찌 그 나무의 깊은 상처를 알 수 있으리요마는, 그늘에서 올린 꽃이 너무 아름답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