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05, 2023

젖은 낙엽

 가을 같지 않은 따뜻한 날이 계속되니, 봄의 시간이라 착각하고 꽃을 들어 올리는 모습에 이제 더 이상 놀라지도 않는다. 그동안의 혼란스러움을 잠재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서운 '돌풍'과 함께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오락가락 내리고 있는 중이다. 이상기온으로 따뜻한 가을을 식히는 요란스런 비가 내린 후, 기온이 '뚝' 떨어져 본격적인 '겨울'이라고 한다. 몸과 마음을 단단히 따뜻하게 챙겨야 한다. 이른 아침 출근을 준비 중에 그만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가로수가 넘어지면서 전봇대를 덮친 탓으로 정전이 되었다고 한다. 

주말에 냉장고를 채워뒀는데, 언제쯤 전기가 들어오려나...근심을 뒤로 하고 어둠속에서 아침 출근을 서둘렀다.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작동이다. 우산이 뒤집힐 정도로 바람이 부니 우산 손잡이를 꼭 붙잡고 바람과 싸우지 않도록 조심해 본다. 모자와 목도리 그리고 옷을 너무 따뜻하게 챙겨 입은 탓으로 이래저래 땀이 나오려고 한다. 비가 내리는 날엔 안경에 습기가 찬다. 안경 착용을 망설였지만 바람에 날려오는 것들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안경을 벗지는 않았다. 젖은 낙엽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발을 조심스럽게 옮겨야 한다. 돌풍이 불 때는 건물에 매달려 있는 간판들을 조심해야 한다...돌풍과 젖은 낙엽에 '긴장'을 하고 걸으며 서둘러 간판이 매달려 있는 건물들을 급히 빠져 나가고 중에 어느 아주머니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머니께서 비를 맞으며, 들고 있는 우산을 가지고 도로변 '빗물받이'에 있는  젖은 낙엽을 쓸어내고 있는 것 아닌가.  도로변 빗물받이에  '플라타나스' 나무의 떨어진 나뭇잎들이 비를 맞아 꿈쩍도 않고 들러 붙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빗물이 막힘 없이 하천으로 빠져 나가야 거리가 물에 잠기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빗물받이에 얹힌 젖은 낙엽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그냥 지나쳐도... '세상에 아직도 이런 좋은 사람이 살고 있구나.'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정거장 앞 빗물받이가 보이지 않는다. 역시 젖은 벗나무 낙엽들이 빗물받이를 수북하게 덮어 버렸다. 버스 정거장 바닥에 빗물받이에 대한 안내 표시가 없었더라면 누구도 숨겨진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잠깐 망설였지만,  '용기'를 내어 누가 보든지 말든지 우산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젖은 낙엽들을 치워보았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거창하고 위대한 일은 할 수 없어도, 여기 빗물받이에 덮힌 젖은 낙엽 정도는 치워줄 수 있다. 

퇴근길에 도로변을 살펴보니 여전히 빗물받이 근처에 빗물이 내려가지 못하고 젖은 낙엽들로 인해 웅덩이를 만들고 있다.  끝없이 낙엽들이 떨어지는 시간이니 치워도 치워도 티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젖은 낙엽으로 빗물 받이가 막혀도 도시 도로가 내리는 빗물에 잠기지 않는 것을 감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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