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October 30, 2023

달밤에 막걸리 한잔

 지난밤은 노란 보름달이 떠있는 가을 밤이었다. 가을이 물들어가는 것이 보고 싶어 이른 저녁을 얼렁뚱땅 먹어 치우고 평소처럼 동네 공원에 산책을 갔다. 가을 단풍이 멋지다고 소문난 곳으로 발품을 팔아 가보고도  싶었지만 '가을은 그곳에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며 발걸음은 늘 하던 대로 가까운 공원에 갔다. 

도시 가로수로 심어 놓은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들과  벚나무가 예쁘게 옷을 갈아 입고 있는  그 자연스런 가을의 아름다움 만으로 충만하였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온 후 위장이 든든하고  형형색색의 가을 빛을 눈으로 먹고 해서 가을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생각하지 못했다. 수분기 날린 이파리들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겨울로 떨어지기 전에 즐기고 싶었을 뿐이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니, 가을 저녁은 빠르게 빛을 감추고 어두움이 내려 앉아 버렸다. 아파트 숲을 빠져나온 노오란 보름달이 유난히 크게 보였다. 달은 언제나 낭만적이다. 지금은 볼거리가 너무 많은 세상이지만, 아무것도 쳐다볼 것 없던 시절의 달님을 생각했다. 날마다 검은 밤에 떠오르는, 크기를 달리하는 달님은 얼마나 멋진 볼거리였을까.

'이태백'의 달을 잠깐 생각했지만 술 생각은 나지 않았다. 재잘거리던 수다도 잠시 아무런 생각없이, 아무런 말없이 평화롭게 가을밤을 조용히 걷고 있자니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온다.

가을 빛 대신에 어두움이 내려앉은 나무 아래 벤치에서, 창백한 가로등 불빛에 얼굴을 드러내며, 영화처럼 주름진 노인 한 사람이 외친다.

'누구 없소? 나랑 막걸리 한잔 나누며 이야기할 사람 누구 없소? 외로워서 이리 밖으로 나왔소만...'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할아버지께서 벤치에 앉아 '술 한잔 하신 용기'로 사람을 찾는다. 막걸리 한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 순간 어느 누구도 그 할아버지에게 걸어가지 않았다. 

이른 새벽 시간에 잠이 깨어, 지나쳤던 '그 외로움'이 생각났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 할아버지는 동네 벤치에서 외쳤을까.  달처럼 차오른 외로움이 술 한잔을 잡아 당기고, 가을 달밤은 외로움이 밖으로 나오기 적당한 때였나 보다. 삶의  주름진 굴곡 사이로 들어선 검은 외로움은 셀프로 감당해야 하는 것 알지만, 달 기운과 술 기운으로 속절없이 사람을 불러 보는 그 외로운 마음이 지금 여기 내 마음의 파도를 출렁이게 만든다. 

0 Comments:

Post a Comment

<<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