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October 17, 2023

알면서도 모른 척

 아침 출근 길에 옷을 가볍게 입고 나왔더니, 쌀쌀한 가을 바람이 따듯한 몸의 온도를 빼앗아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맑은 햇살을 언제까지  즐길 수 있을까 생각하고 '마스크'를 벗으니 차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매연을 뿜으며 달려 간다. 날이 점점 쌀쌀해져 난방을 하기 시작하면 공기가 더 탁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불청객 초미세 먼지가 자욱한 날을 걷게 될 것을 미리 앞당겨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아직 오지 않은 '음울한' 겨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마스크를 장착하고 몸을 걸쳐 앉은 정거장 의자가 차갑다.

버스 정거장 의자의 찬기운을 모른 척 앉아서 '멍하니' 달려가는 차들을 바라 본다. 잠깐 스마트 폰을 들고서 카톡 문자로 안부를 묻지 싶은 마음이 살짝 들었으나 그리 하지는 않았다. 버스 정거장에서 더디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순수한 기다림'은 이제 없다. 다들 스마트 폰에 고개를 숙이고 무엇인가를 읽고 반응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침묵할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을 누려 보았다. 그리고 버스가 왔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도 미처 카톡을 하지 않은 '사람들의 안부'가 생각났다.

'다들 잘 있겠지...'

직접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듣고 아무 말이나 쏟아내도 흉이 되지 않던 때가 좋았던 것 같은데, 이제 예를 지키고 선을 지키기 위해 '카톡'으로 먼저 안부를 묻고 실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전화를 해야 하는 시대를 '고의든, 자의든' 선택한 것이다.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그런 사이'를 지내다 보면 점점 멀어지는 것을 알 것 같다.  걸려오는 전화가 뜸해지고, 카톡 문자가 끊기고 그렇게 멀어져 가는 것이다. 나이를 자꾸 먹으니, 어차피 삶이란 외로운 것이란 씁쓸한 면면을 '무심하게' 일단 받아 들이고 만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간 이야기가 난들 왜 없겠는가. 카톡 문자가 뜸해지고 문자가 건성건성 안부만 묻고 우리만의 '잡다한 디테일'이 떨어질 때, 결정적으로 더 이상 아무 때나 아무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쉽게  전화기를 들지 않을 때, 서로가 멀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살아간다.

이제 부담스럽지 않는 피상적인 이야기들로 안부를 묻고, 적당한 선에서 '서로 행복하자'며 이야기를 맺는 것이 당연하거늘...'지리멸렬'한 이야기를 '더 이상 들려 줄 수 없어' 서로가 멀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내 마음의 슬픔을 알면서도 '부담스러워' 나를 모른 척 살아간 날들이 있다. 때로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덮어버린 그 푸른 슬픔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맨날 내다 버리잖아, 저 푸른 바다 밑으로. ㅋ 아직도 털어내지 못한 그 끈질기게도 달라붙은 것들은? 이 또한 시간과 함께 낙엽처럼 떨어져 나가 나뒹굴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어리석게도 가슴 속에 가둬 두고 물을 주고 품고 안고 산다. 

아침 방송에서 '갱년기'를 슬기롭게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정열을  쏟고 다시 그 과정에서 충전된 활기찬 기운으로 행복한 일상을 꾸리게 되었다는 이야기 끝에 치밀하게 계산된 '건강 보조제'를 보여주고 말았지만. 알면서도 모른 척, 걸려들지 않을 작심으로 한참이나 방송에 나오는 몸매 좋고 나이 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사람들의 건강한 모습을 지켜 보았나 보다. 

알면서도 모른 척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여유'라는 단어의 한 모습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다. 마음 속 '여유'를 갖기 위해서는 여우같은 지혜로움이 필요한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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