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01, 2023

코스모스 타임


 '전형적인' 가을 날이다. 푸른 하늘은 높고 공기는 맑고 뜨거운 햇살에 여름내 땀 흘려 축축해진 것들이 '고슬고슬'해지는 그런 느낌을 받는 그런 날이다. 초가을 햇살이 거실 창안으로 넘어 들어오는 시간은 찬란하다. 너무도 그 찬란함에 눈이 부셔 블라인드를 내려놓고 약간의 어두움을 만들고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때를 알아 모든 꽃들이 피고 지는 것을 알았지만서도, 선선한 바람이 부는 지금 이 시간엔 한들거리는 '코스모스'가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시기이기도 하다. 집 근처 공원은 관리가 소홀한 편이라 감히(?) 말할 수 있는 공원이다. 관리가 되는 공원엘 나가면 관리인 표시가 나는 옷들을 입고 부지런히 '가든닝'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마련이다. 가든닝에 필요한 연장들과 사람들이 분주히 일을 하고 있기에 그 장소에 가면 뭔가 '관리'되고 있고 그 결과로 더 만족스런 '공간'에 놓이게 될 것 같은 '기대감'이란 것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 공원은 일하는 '관리인'이 보이질 않는다. 아무리 내가 공원을 방문하는 시간의 한계로 인해 추적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 할지라도 공원은 관리가 미흡하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다. 국가가 이 극한 시대에 세금을 쓸 곳이 많기도 하고, 시가 한정된 세금으로 모두를 만족시키기엔 우선 순위를 둘 것 같기도 하고, 구청은 팍팍한 살림살이로 인해 공원에 사용할 물질적인 여력이 없는 것일게다. '밥'이 우선이지 '꽃'은 다음이다.

그리하여, 난 사람의 인위적인 손길이 덜 간 '자연스런(?)' 공원에서 걷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갖게 되고 만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적응'과 '수용'의 단계를 지나니 이 또한 나름 괜찮기도 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기도 한다. ㅋㅋ 사람의 적응력은 그렇고 보면 대단하다. '어쩔 것인가'.  내가 사용하는 공원 출입구 근처에 잡초가 무성한 넓은 '터'가 있다. 공원 출입구인 점을 고려하면, 첫인상을 만들 수 있는 곳으로 잡초밭으로 그냥저냥 방치해서는 안될 곳 같은데 '가든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냥 무심하게 내버려진 땅이 있다는 것이다.

'시가 돈이 없어서 방치를 하는구먼, 쯧쯧'

그런데 봄의 어느 날, 그 빈터에 구여운 꽃모양을 가진 '개망초'와 보라색 크로바 꽃이 가득하였지 싶다. 할 수 없이(?) 바라보니 그 또한 이쁘긴 하였다. ㅋ 가던 걸음 멈추고 자세히 그 잡초밭을 들여다 보니, 식물계에서 가장 끌어들이는 힘이 강하다는 색, 빨강색으로 피고지는 양귀비 꽃이 잡초들과 섞여 피고지고 있지 않은가.

붉은 양귀비꽃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심었을 것이고, 개망초와 크로바 꽃은 원래 그 척박한 땅에서 오랫동안 피고지는 주인들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붉은 양귀비 꽃을 심고 애지중지 관리를 해서 그 원주민격인 잡초(?)들이 처음엔 쫓겨난 것 같았지만, 사람들의 관리소홀로 '터'가 방치되자마자 붉은 양귀비들은 '세'가 약해진 것이다. 

붉은 양귀비가 피고 지고 시간을 따라 사라지고, 한참 동안 완전히 잡초들의 세상이 된 것 같았다. 그래도 해마다 일어나는 '노란 코스모스'가 여기는 '잡초밭'이 아니고  '꽃밭'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물론 잡초가 피우는 꽃도 꽃이다. 하지만 잡초와 꽃의 차이는 귀한 맛 아닐까? 이 문제는 취향의 관점에서 봐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일부러 잡초 꽃 밭을 만들어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너무 무질서하게 방치된 풀밭을 보고 마음이 평화롭고 치유함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름 모를 풀꽃들과 거센 잡초들 사이로 가을의 꽃, 코스모스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진직에 알았다. 내심 무수한 잡초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피어날 코스모스들이 안타깝기도 하였지 싶다. 사이사이 잡초들을 제거한다면 얼마나 코스모스 들판이 멋있을까 상상하며 '쯧쯧'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린 코스모스들은 바라보고 지나가는 '나'보다  '강'하다. 어느 새 그 어리디 어린 줄기를 올려 꽃들을 피워 올린 것이다. 내리치는 빗줄기와  한 여름의 뜨거운 온기는 가느다란 이파리 사이 사이로 '통과'해 버리고 맑고 찬란한 가을 햇살을 자기들만 받들어 올릴 것처럼 꽃을 바짝 위로 올린 것이다. 그리하여 숱한 잡초들을 아래로 두고 그림자로 가두어 버린 것 아닌가. 그리하여 '코스모스 벌판'이 되어 버렸다. 나의 걱정과 염려를 비웃듯이.

자연은 이기적이다!

서 있는 자리에서 단단하게 뿌리를 붙잡고, 느닷없는 바람을 탓하지 않고, 타질 것 같은 더운 여름을 견디며, 잡아 먹힐 것만 같은 거센 잡초들을 탓하지 않고 코스모스답게 성실하게 일어난 것이다. 태양을 향해 위로 위로 올라가 당당하게 서는 일을 더디지만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짜잔~'하며 코스모스들이 때를 알아 축제를 벌인다. '지금은 코스모스 타임!'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을 머리 위에 두고, 코스모스 꽃들을 가슴앞에 세우고,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저마다의 포즈를 취해 사진을 찍는다. '지금은 코스모스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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