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라는 순간
10월 좋은 날에 여기저기서 축제가 많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이끌려 갔더니 이웃 아파트 주민 축제가 한창이다. 무엇보다 생동감 있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사람들의 즐거운 커다란 움직임들이 가득한 축제의 분위기는 기름진 음식 냄새와 함께 구수하고 활기차다.
왁자지껄한 가을 축제의 소리들을 뒤로하고 달의 얼굴이 잘 보이는 동네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가로등이 불빛을 밝힌다해도 공원은 어둑어둑하고 이미 쌀쌀한 겨울의 공기가 내려 앉았다. 어느 유명한 작가님의 가을이 덕지덕지 추락하며 흘러내리는 그림이 생각나는 담쟁이들이 차디찬 콘크리트 벽을 아직도 기어 오르고 있었다. 가을이란 시간은 '추락하는 것'과 어쩌면 맥을 같이 하는 것이란 생각이 스쳤다.
한편 공원 콘크리트 벽을 붙잡고 올라가는 담쟁이 뿌리들은 컴컴한 땅 속에서 어두움을 붙잡고서, 시간을 다한 이파리들을 떨어트리면서도 동시에 있는 힘을 다해 어리고 부드러운 어린 잎들을 올려 보내고 있지 않은가. 겨울이란 시간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모르는 척 살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콘크리트 벽 담쟁이의 모습은 '추락'과 '시작'이 '공존'하는 시간, '가을'이다.
당장 캔버스를 꺼내어 황금빛 제소를 바르고 가을의 색을 덕지덕지 칠해 추락하는 가을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신기하게도...오랜만에 '영감'이라는 님이 오셨는데...오늘도 난 '여기까지'인가 보다.
모든 사람에게는 '시작'이라는 막막하고 두려운 어린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이 누구인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등등의 물음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찾는 과정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혹은 언어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은 멋진 일이기도 하면서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을 멈추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컨텐트가 없는 삶을 살다가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속에서 마주했던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며 그것엔 정해진 답이 없다. 만약에 틀에 박힌 정해진 답을 갖고 있는 그 사람의 오만과 교만을 경계해야 하는 것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지금 시작하는 사람에게 한마디 해달라 한다면, 그냥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을 원하는 지를 아는 사람은 그냥 시작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가슴이 뛰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슴이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
타인의 작품을 모방하기도 하면서 기본적인 토대를 쌓으면서, 때로는 진부하고 흔해빠진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며,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이는 그 과정속에서, 뻔하고 식상한 틀을 부수고 자신만의 색과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그 과정은 멋진 일이고 위대한 일이란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어떻게 자신만의 독특하고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것인가 고민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그 어려운 과정을 시작한 것이고 자신의 꽃을 피우기 위한 단련의 시간을 지나고 있은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글을 그적거리다보니 나의 무력감에 대한 답이 나왔다. 더 이상 '가슴이 설레는 느낌'을 갖지 못해서이다. ㅋㅋ 핑계이다! 오늘도 난 나아가지 못한 핑계 하나를 가슴 주머니에서 꺼내어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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