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쳐입기
옷을 '겹쳐 입기'를 하니 날씨가 그리 차갑지 않다. 지하철에서 땀이 은근하게 목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느껴진다. 하지만 쌀쌀한 바깥 아침 기온을 고려하면 이 정도 땀은 참아야 한다. 사람들의 옷들이 두꺼워지니 지하철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 또한 '겹치기'를 하게 된다. '요리조리' 온 몸을 안으로 감아도 타인의 옷과 겹치기를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겨울이란 계절은 지하철 의자에선 선을 넘어 두껍게 겹쳐진다.
지하철 의자는 '천'이라서 혹시 모를 '빈대'가 숨어 있을 수도 있는데, 누군가의 옷에서 빈대가 묻어져 왔을 수도 있는데...'몰라, 그냥 앉을거야.' '뭔일 있겄어.' 신경이 뾰족하게 곤두서는 것을 '몰라라'하고 빈자리에 '털석' 앉고 만다. '지하철 공사에서 소독을 하고 있을거야...'
버스 정류장에서 아직 치워지지 않은 낙엽들을 보고 있노라니,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낙엽들이 사람처럼 '때를 지어' 길을 건넌다. 무게가 없으니 바람이 부는 대로 쏠려 가는 것이 꼭 삶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바람 따라 공중 부양을 하며 굴러간 낙엽들은 또 어디로 가려나.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니 흘러가는 구름 한 점 없는 말간 푸른 하늘이다. 팔랑거리는 '플라타나스 나무'를 바라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나무의 중심부터 오래된 나뭇잎을 떨구니 먼저 따뜻해진 가을색과 가장 자리 어린 푸른 잎이 섞여 보암직스런 아름다운 자태이다. 도로변 가로수의 가지치기는 전봇대에 매달려 있는 전기 줄을 방해하지도 않아야 하고, 상가 건물의 '상호'도 고려한다면 일명 '닭발'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단순하게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닭발 가지'의 몸둥이에서 봄부터 시작한 여린 가지들이 새로 나와, 초록으로 쌓아 올린 나뭇잎들이 해를 따라 동그란 나무의 형태를 만든 멋진 나무들. 삭막한 도시에 가로수가 없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생각해보니, 달리는 버스 안에서 다양한 가로수의 가을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움'이다. 버스를 타지 않으면 이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특히 '플라타나스' 나무의 멋짐을 재발견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공 건물 앞의 가로수들은 왜 훨씬 우람하고 멋있는 것이지? 아무래도 검은 전선이 없는 이유가 크겠다. 공공 건물 주변에 주어진 '공간'과 '관리'가 이루어낸 멋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록달록한 자본주의 간판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무들은 당당하고 더욱 멋지다. 나무도 사람도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모양이다. 적당한 공간을 주고, 주위 환경을 배려하여 심어지고 길러진 나무들은 멋지다.
비켜가는 가로수들을 보고 있자니, '적당한 거리감'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해준다며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까 자기 검열 들어간다. 날이 추워질수록 더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따뜻하게 돌봐야할 것 같다. 겨울로 가는 나무들이 가장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떨쳐내라 부정적인 생각을, 안으로 겹쳐 입어라, 긍정적인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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