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October 25, 2016

Something like Happiness in Paris

가을비가 데려온 쌀쌀함은 옷의 두께를 더하지만 이곳에 온후로 이렇게 맑은 가을의 시간을 축복이라 여기며 감사하며 창문을 열어 놓았다. '사이드 턴'이라는 새로운 물가의 숙제는 나름 가슴을 뛰게 하였다. 그동안 '플립 턴'을 연습하였고, 이제 스스로가 익혀야 할 목표가 생겼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것 같다.

루브르를 다녀온 인문학자가 쓴 책을 읽어야 하는 화요일이다. 맑은 미역국도 끓여야 하고, 밀린 여름옷도 세탁소에 가져다 주어야 하고, 손목 시계 밧테리도 교환해 주어야 하고...늙은 아버지가 보낸 고구마를 쪄먹을 수 있는 기쁜 날, 지난 여행의 감동을 쉽게 떠나 보내고 싶지 않다. 산이 보이지 않고, 높은 고층의 아파트 숲이 보이지 않고, 넓은 하늘 아래 오래된 아름다움으로 낮게 모여 있었던 파리의 시간은 지난 스페인의 시간과는 달랐다.

지난 봄 스페인의 시간이 오랜만에 단체여행이라는 편리함 속에 제대로 예술적 가치가 있는 시간을 덜 가진 반면에 이번 파리여행은 개인 여행으로 그곳 지하철 속의 출근하는 사람들 속에 존재해 보았고, 계획하지 않고도 파리 곳곳을 여유롭게 다닐 수 있었던 것이 더 만족스러움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스페인도 꼭 다시 가고 싶은 나라임을 잊지 않고 있다. )

세계 3대 박물관에 속하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밀로의 '비너스', 작가불명의 그리스 신화의 승리의 여신  '니케' 앞에는 중국과 한국의 단체관광 사람들이 모여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느라 번잡하기 그지 없었다. 겹겹이 보안 유리로 둘러진 '모나리자'와 어찌 눈을 마쳐 본단 말인가~~~너무 멀리 있는 그녀의 미소를 이번 방문에도 희미하게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보아도 중성적인 미모의 여인이로세~~~미스테리를 품은 그녀의 얼굴이 언제나 신비로울 수 밖에 없어 사람들을 모으는 것인가!

유명한 작품들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기념사진 눌러주고, 오래전에 즐길 수 없었던 숨어 있는 작품들을 즐길 시간이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특히 이란의 고대 작품들을 보고 깜짝 놀랐기도 하였다.

파리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미술관겸 도서관인 '퐁피드 센타'에 들려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것은 루브르의 오래됨과는 다른 신선함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간에 인상파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오르세' 뮤지엄을 먼저 들렸으면 좋았겠지만, 휴관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후기 인상주의 작품들과 특히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볼 수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의 감동은 잊기 어려울 울림을 주었기도 하다.  생각하는 사람의 '로뎅 박물관'과  마리 앙뜨와네트의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은 각각의 자연스런 포근함과 인공의 고급진 화려함으로 환상적인 기쁨을 주기 부족함이 없었기도 하다.

무엇보다 '베르사유 궁전'은 처음이라 그 환상적임이 충격적이었다. 정원사가 몇명이 필요한지? 분수는 언제 트는 것인지? 키자란 나무는 어찌 다듬는지? 바로크 로코코 스타일의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는 왕실의 방들을 보며 고급적인 공주 왕비병 취향이 있는 그녀들이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나오기도 하였다. 가장 궁금했던 '마리 앙투와 네트'의 소박한 정원을 못보고 왔다는 사실을 어찌 용서할 수 있을른지 난감하기도 하다. 그녀를 소재로 한 영화속에 나왔던 소박한 정원을 생각했는데, 너무도 광대한 정원을 사방으로 쏘다니느라 발바닥 아프고 다리 아린 것은, 무조건 걷고 보는 본능에서 초래된 아픔이었지만서도 그녀의 정원을 못본 사실이 몹시도 아쉽고 만다.

결국은, 하루 이틀 파리지앵 처럼 멋내느라 패션의 완성인 신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자니 그 피곤함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어 결국은 눈에 튀는 운동화 신고 다니고 말았다. 센느 강변을 거닐 때 운동화가 필요하고, 뮤지엄에 하루종일 서있을 때도 운동화가 필요하다. 지난 스페인 여행은 움직이는 버스안에서 잠들 수 있어서, 혹은 쉴 수 있어서 당해 보지 않았던 이유로 미처 그 필요성을 인지 하지 못했었다. 다행히 준비성 많은 성격탓으로 준비해 간 운동화가 없었으면 파리를 어찌 돌아 볼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한번도 개똥이나 고양이똥을 밟거나 발견하질 못했다.  까만 피부의 사람들이 팔목에 무얼 채우지도 않았고 보채지도 않았다. 그동안 갈고 닦은 너무 한국 아짐의 무표정한 얼굴로 무섭게 하고 다녀서 그들이 피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아니드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몽마르트 언덕에서의 적극적인 호객행위는 아티스트로서 슬프기도 하였다. 이곳저곳 어느곳이나 아트로 밥먹고 살기는 어려운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붓을 놓치 않고 예술을 하기 위해 빵값을 버는 그들의 모습에 슬픔이 느껴지기도 하였기도 하다. 저렴한 가격에 그림 한점을 구할 수 있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저렴한 가격에 그림 그려주며 사는 화가들이 그리도 처량했던 것은 초겨울비가 내려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림 적시는 비를 탓하며 짐보따리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화가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가슴아픔이었다.

파리의 밤거리를 오랫동안 거닐지 못했다. 체력이 연약하여 그만 무거운 다리를 쉬게 하는 것이 낭만 파리의 밤보다 소중해서일 것이다. 바케트 빵맛에 익숙해지고 지하철 타기가 편리해질만한 시간에 돌아와야했다. 유명한 장소마다 치안이 엄했고, 시리아 난민들이 구걸을 하는 어두운 그림도 있었지만 파리는 아름답다.  파리의 어느 미술관에서 파리 한마리를 그린 그림을 보았을 때의 그 느낌을 뭐라 해야할 지 모르겠다. 검은 색과 무채색의 옷을 즐겨입는 그들 속의 나는 행복했음을 기억한다.



Monday, October 24, 2016

Pardon~~~ in There

이상하게시리 여행을 떠나 돌아오니 조용하고 차분하다. 시차때문에 피곤해서 기력이 쇠하여 일어난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겠지만 이곳의 맛없는 침묵이 평안하기까지 하다. 인사성 없고 나름 똑똑한 아짐이 동대표가 된다는 사실이 엘리베이터벽에 붙어있고, 동네 유일하게 있는 길거리 노점상 아짐은 부지런히 야채를 다듬으며, 맛있는 김밥집엔 역시나 손님이 줄을 서고, 물가의 귀여운 젊은 여인들은 싱그러운 수다를 떠는 그런 익숙한 그림이 신선하기까지 하였다.

그곳에서 전시회가 있어 갔다면 더 값진(?) 일이었겠지만, 이곳을 잠시 벗어나고 싶었다가 더 정확한 표현으로 보여진다. 무려 18년전의 기억은 빛바랜 사진으로 기억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번은 더 가보고 싶은 욕구만 늘려 놓은 오래전의 젊었던 시간은 너무나 짧았었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 말이 언제나 옳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젊은 시간의 그곳은 패션거리를 더 머무르지 못해 아쉬워하였다면, 이번 방문은 더 많은 시간을 뮤지엄과 겔러리에 투자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으니 말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여행 마지막 길에 만난 스코틀랜드 출신의 미국 영화배우와 우연히 옆 테이블에 앉게 되어 짧은 스코티쉬와 콩글리쉬의 만남을 뽑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이가 70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에너지는 젊은 힘을 감추지 못하고 품어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맥없는 젊음이 느껴졌다. 난 화가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곳 지하철에서 배운 단어 Pardon~~~ 줄곧 미안할 땐 파동 파동하고 다녔으며, 백팩 매고 지하철 탔다가 그곳 아짐이 중얼중얼 뭐라 불평하는 것을 그만 알아듣고 말았다. 그 제스처와 그 얼굴 표정은 세계공통언어로서 충분했다. 뭐지? 아~~~파동!






Back Up

이천 십육년 시월 그리고 열흘을 더한 지금의 나는 살아있어서 느끼며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복잡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용서하기 위해서, 너덜거리는 넋두리를 뱉어 내어 보기도 하면서 치유를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  나의 어리석어 보이는 소리들을 들어주며 응대하여 줄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무너질 땐 책을 읽는 것은 언제나 유익한 것 같다. 재밌게 나이들고 싶단는 책 제목이 맘에 들어 넘기다 그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는 이야기에 그만 웃고 말았다.  물가에 너무 열심을 내었더니만 때론 주위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다. 지나치게 열성적으로 하는 것이 주위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왜 몰랐지 하며 웃고만다. 뒷방 어르신처럼 굴기엔 넘 젊은 나이 아니든가!

물가에서 정신이 단련되어지고 있는 것인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나보다 강한 강자를 보며 느껴지는 질투와 시기를 그리고 열등감을 극복하며, 나보다 약한 약자로 부터 오는 질투와 시기를 견딜 수 있는 겸손의 처세를 익히며, 이해관계로 얽혀져 있는 복잡한 컴플렉스가 양산하는 몰이해를 삭히며 나 자신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 물가에서 단련하고 있는 어떤 의미이기도 하다.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동글게 세상을 살고 있다하며 모난돌을 비판하며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는 사람을 견디는 일은 도전이었다. 그리고 난 단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