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30, 2007

My Friday

간만에 그림을 그리고 난 후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어떤 사물들을 그리고 싶은 것인지, 그리고 언제 내 시간을 만들 것인지...생각해야만 했다. 도자기 수업시간에 만들고 있는 호박과 달걀 그리고 피망의 느낌을 다행히도 내 손은 기억하고 있기에 그 느낌을 살려 그려보고 싶었다.

그 순간 난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그래서 커피가 든 커피잔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그리고 매끄러운 속옷을 의자에 걸쳐서 구성을 갖추고, 스포트 라이트를 오른쪽에 놓고.......

준비하는 자세에서 부터 그림은 다르다. 몇번의 경험에서 알게 된 사실은 마음에서 부터 그림이 나온다는 것이다. 하얀 종이위에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그릴 재료들을 챙기고 담대하게 선 하나 하나 하나를 보태며 형태를 잡고, 다시 잡고, 그리고 빛의 방향에 따라 명도를 집어넣고...끝없는 더함과 빼기를 하였다.

금요일 오후가 회색빛으로 가라앉을 무렵, 나의 그림은 내게로 왔다. 바라보면 볼수록 고쳐야 할 부분들이 있지만, 난 그만 멈추었다.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 눈이 간다.

Thursday, March 29, 2007

Smile


Ink and Water


Monday, March 26, 2007

Ben's Clarinet Contest

지난 토요일, 우리 우빈이의 클라리넷 첫 컨테스트가 있어서 온종일 아들과 함께 보냈다. 울 우빈이가 난생 처음으로 클라리넷을 가지고 실력을 평가받는 자리라서,모든 것을 미루고 아들의 긴장을 덜어줄 겸 긴하루를 동행한 것이다.

길눈이 어두워서 자가용 대신 학교 버스를 타고 가게 되었는데, 학부모는 나 혼자였다. 긴장되는 마음을 아닌 척하며 떨려하는 아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줬지만, 내가 대회를 나가는 것처럼 마음이 조마조마 설레였다.

한시간 사십분의 거리를 달려가서 도착한 곳은 어느 시골학교 중학교의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오래된 건물에서 풍기는 평화로움이 봄기운과 함께 잘 어울린 듯했다. 드디어 우빈이 의 차례가 되었다. 우빈이의 긴장됨보다는 덜하겠지만, 내 마음은 왜 그리도 떨리던가. 절로 나오는 기도에 기대어 안떨린 척했다.

오분도 안되는 시간 동안에 우빈이의 아름다운 연주가 울려 퍼졌다. 'In moto triste'라는 곡이였는데,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곡이였다. 강약을 조절하고 밀고 땡기고, 효과적으로 마무리를 하고...6개월 남짓 배운 실력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솜씨였다.

약간의 실수도 너무나 아름다운 우빈이의 연주를 바라보면서 난 눈물이 글썽거렸다. 감격일까 아니면 함께 하지 못한 사랑하는 사람때문일까! 우석이의 풋볼모습을 바라볼 때와 같이 난 눈물이 글썽거렸다. 분명 슬픈 일은 아닌데...

물론 일등 그레이드를 받았고, 카본데일 중학교 음악선생님께서 그 동안 몰라봤다며, 밴드 일등석으로 자리를 배정하겠다고 하셨다. 전학간 지 얼마 안되는 내 아들을 그동안 몰라봤나 보다. 하여튼 우빈이의 실력을 인정 받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하였거니와, 미국에서의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 같다.

아침 여섯시 반에 출발하여, 오후 여섯시가 다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긴 하루였지만, 난 나의 아들땜시 가슴이 떨렸다.

Saturday, March 24, 2007

Three Point of Perspective


Friday, March 23, 2007

Spring from the Bean

시간과 정성을 들인 작품을 바라보면, 어떤 뿌듯함이 느껴지며 애착이 생겨 자식처럼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비록 결점이 많을지라도.

일상생활에 존재하는 어떤 사물을 통해 어떤 의미를 발견하여 다른 추상적인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보는 것이 도자기 수업의 첫 프로젝트였다. 아줌마다운 발견을 부엌에서 했다. 양파와 마늘이 열심히 초록색 깃발을 내밀고 있음을 보았다. 견딜 수 없는 솟구침이라고 명하고 싶다.

평소에 콩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좋아하던 나로서는 , 양파의 형상을 대신하여 콩의 형태를 기본으로 잡고 주요 이미지인 싹을 첨가하였다. 단순함속에 숨어있을 그 오묘한 삶의 원리를 깨우치면서 이 작업을 하는 동안 난 흥분되고 즐거웠다.

흙으로 만드는 생활도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해, 바닥이 그릇같이 보이지 않는 모습을 만드는 것이 무척 힘들게 느껴졌다. 그것은 어쩌면 조각으로서의 접근이 더 가까웠는지 모르겠다. 핀칭과 코일의 기술로 기본을 만들고, 도중에 발생하는 사고를 수습하는 지혜를 덤으로 배우면서 그렇게 나만의 작품이 완성되었다.

살아있는 것들은 움직이며 상승된 선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바, 둥글둥글 하다못해 펑퍼짐한 이미지에 갖히지 않도록 노력했다. 여성스런 선의 에스라인과, 힙업 라인도 숨어 있고, 뒷모습은 또 하나의 이미지가 숨어있도록 의도적인 표현을 하였다

Wednesday, March 21, 2007

Before Firing#3


Before Firing#2


Before Firing


Tuesday, March 20, 2007

Missing Mountain

두해전 이곳에 올 때 난 등산화를 챙겨왔다. 물론 산을 오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곳 카본데일에선 넓은 하늘과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지만 지칠 때 찾아 갈 수 있는 살가운 산이 없다. 나의 첫 타국생활을 꾸렸던 집에 다행히 넓은 뒷뜰이 있어 밤이면 등산화를 신고 한시간 남짓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겐 행운이었다.

나에게 소중한 보약같은 어두운 밤의 산책을 새집에서 다시 시작하였다. 집주위의 불을 모두켜고 땅을 디디며 메마른 시멘트 거리 대신에 포근한 땅을 밟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생활에 지쳐 땅내음이 나는 곳으로 주말이면 탈출하고 싶었던 그 마음은 이제 그러한 것들을 그리워하지 않고 삶의 한부분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이상 소원하지 않아도 될 것이 되어 때로는 무신경, 무감동 해진다고나 할까.

무념의 시간들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때, 문득 내가 올라가 본 한국의 산들이 생각났다. 친구들과 대학졸업여행으로 올랐던 한라산, 아름다운 돌들이 많았던 설악산, 제이의 고향 인천 철마산, 정다운 계곡이 있었던 부산 해운대 장산, 그리고 대전의 계룡산, 우송이산...아무래도 남편과 함께 동네 근처에 있어 자주갔던 장산과 우송이산이 가장 추억으로 남는다.

이곳에 온 뒤로 더이상 기댈 곳이 없는 끝없는 지평선에 눈이 베이는 것에 감동하지 않는다. 산이 없기에 뒷뜰을 산삼아 걸으며 무심하게 하늘에 달도 보고 별도 보고 하다가, 나의 참을 수 없는 무게를 묵묵히 견디며 비오고 바람부는 날에도 내 발을 거뜬히 지켜주며한걸음 한걸음 내딛어주는 등산화가 고맙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훗날 내가 그림을 잘 그리게 된다면 고호의 그림에 나오는 낡은 신발처럼 그려주고 싶다. 시간과 함께 낡아가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아직 내가 도인이 되지 않았음이라.

타오르는 목마름 뒤에 마시는 냉수 한사발, 가파른 오르막 길에서 주저않아 쉬고 싶은 마음을 다잡던 끈기와 인내, 산꼭대기에서 목청껏 내질렀던 "야호오오..." 오가며 주고받았던 삶의 대화들... 산을 타고 내려온 날의 달콤한 뻐끈함 등등의 것들이 오늘 몹시도 그립다.

Drawing My life

부끄러운 생각을 이겨내고 몇장의 드로잉을 올려 보았다. 그림 하나 하나에 그 당시의 마음의 흔들림과 열중함이 느껴진다.

어떤 영혼의 그림이 묻어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라인과 형상 그리고 포지티브와 네카티브를 인식하고, 그리고 입체적인 명도를 집어넣고 그에 앞서 멋진 구도를 잡고, 또 둘러싼 배경들까지 고려하여 그려야 한다. 물론 아주 기초적인 것들을 연마하는 중이라 영혼이란 단어를 이름하기 거창하고 주제넘는 일인지도 모른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내 안에 들어있는 나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좌절하고 흔들리고 그리지 못했음을 본다. 어디 세상사는 일이 언제나 평화롭고, 그림 그리기에 충분한 안락함이 있던가!

스스로 내 드로잉들을 평가하자면, 명도가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결점이 있다. 모든 것을 고려하여 드로잉을 완성하기엔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였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내 마음이 어두워서 보아도 보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난
수 많은 시행착오속에 숨어 있을 나만의 의미를 찾기 위해 다시 한번 마음에 하얀 도화지를 펼쳐본다.

Lost


Fishes


Water and Ink

Complex

Ground 123

Composition


Portpolio in Spring semester-Drawing





Sunday, March 18, 2007

Dress Shirt


교회를 다녀오는 길에 우빈이 컨서트 준비를 위한 옷장만을 하였다. 검은 색 양복 바지와 검은 색 드레스 셔츠 그리고 검은색 가죽 구두를 사주었다. 맨처음 입어보는 정장의 낯설음을 극복하기 위해 지금 나의 사랑하는 둘째 아들은 그것들을 착용하고 클라리넷을 불고 있다.

제법 음악가 다운 분위기가 흐르면서 그의 호흡과 함께 흘려나오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어쩐지 형식적인 복장과 잘어울리는 듯하는 것이 참 이상스럽기도 하다. 청바지 입고 부는 것과는 다르니 말이다.

부쩍 나의 둘째 아들이 여물고 있다. 머리가 길어서 인가? 어깨가 넓어지고 턱 밑에 수염이 자리잡고, 급기야는 양복바지를 입은 모습을 보니 다 커버린 느낌이 들어 몇자 적는다. 그래도 이번 해에 키를 훌쩍 키워나야 하는데, 그것이 내 소망처럼 될 지는 모르겠다.

우빈이가 양복바지를 입었다.ㅎㅎㅎ

Saturday, March 17, 2007

Kimchi

봄방학의 끝자락을 붙잡고 난 김치를 담궜다. 이곳엔 고냉지 땅콩 배추도 없고, 서해안 굵은 소금을 구하는 것도 비싸고, 맛을 지켜줄 딤채도 없는 실정이다. 가게에 있는 배추를 운명이라 여기고 사고, 미국 소금을 쓰고, 마늘과 생강 양파를 믹서에 갈아 양념을 만들어 배추김치를 유리병에 담았다.

웬만하면 난 김치를 담군다. 하지만 봄방학이 끝나가는 토요일 오후를 김치에 할애하다보니 마음이 즐겁진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요즘 잘나가는 영화 한편 기념삼아 보려고 했느데, 그만 배추를 사오고 말았다. 새삼스럽게 배추를 파는 가게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기까지 했다. 그곳이 없다면, 어떻게 김치를 먹고 살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엄마의 김치가 가장 먹고 싶다. 내가 담은 김치는 그냥 김치이다. 엄마의 김치맛을 따라갈 수 없다. 경험 깊은 엄마는 재료부터 나와는 다르겠지 싶다. 김치의 세계도 재료가 얼마나 중요한가 말이다. 일종의 엄선된 재료로 엄마의 경험깊은 방법으로 맛있는 김치가 만들어지겠지...

냄시나는 김치를 겂없이 아침마다 먹고 학교에 간다.ㅎㅎㅎ 치아를 요리조리 잘닦고, 진한 향수 뿌려도 냄시가 나겠지. 샐러드를 먹고, 두유 마시고, 요플레와 과일을 먹겠다는 다짐은 어디가고 김치통을 끼고 사는 것인가! 냄시나는 것이 맛은 있어가지곤 김치중독을 만들었나보다. 누가 김치 끊는 방법을 아는가?

Friday, March 16, 2007

Soony Logo


Soony Seo


Illustrating Darkness


Thursday, March 15, 2007

Spring with Illustrator


Flower?

알록 달록한 예쁜 꽃을 사는 대신에 상추 모종 세박스를 샀다.ㅎㅎㅎ 그리곤 성질 급하게시리 나무화분에 꽃대신 상추를 심어 카고 앞모퉁이에 보란듯이 세워놓았더니, 분위기가 시골(?)스럽다. 그래이딩이 끝나면 집옆마당에 터를 잡아 상추와 깻잎 그리고 부추를 심을 생각이었는데, 일이 내맘처럼 되질 않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무화분에 상추를 심어 이웃 사람들을 뜨악하게 만든 꼴이 되고 말았다.

운전을 하거나 산책을 할 때, 그리고 텔레비젼을 보면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남들 집앞에 알뜰하게 자리잡은 작고 푸른 나무들을 몇그루 사야할 것 같고, 그리고 동서남북 자리잡아 더운 날이면 그늘을 만들어줄 멋진 나무도 심어야 할 것 같고...쓸 곳은 많은데, 돈이 없네그려.

무슨 놈의 돌들은 그리 비싼 것이야요. 뒷마당에 돌 몇개 박으면 좋을텐디, 디게 비싸다그려. 한달에 한번 그 값나가는 돌을 하나씩 박으면 멋진 정원이 될 것도 같은디...누가 돌멩이를 우습다 했는가! 글쎄다.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자꾸만 관심이 가고 신경이 쓰이고...끝없는 관리를 통해서만이 초원위에 하얀집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난 자유롭지 못하다.

어린시절, 사루비아 붉은 꽃밭이 생각난다. 울 할머니와 엄마는 채송화,다알리아, 민들레, 목단, 장미, 들국화, 수국 등등의 꽃을 앞마당에 자라게 했었다. 일종의 유기농 꽃밭이었다. 먹다 남은 음식은 개가 먹고, 그리고 정말 찌꺼기는 화단에 묻어 기름진 땅을 만들어 예쁜 꽃을 피우게 만든 나의 할머니와 엄마. 보고싶다.

이제 나에게 꽃밭이 생기면, 쌀 씻은 물과 커피 찌꺼기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는 꽃밭으로 어김없이 가겠지싶다. 때따라 벌레도 잡아주어야 할 것이고, 잡초도 뽑아야 할 것이고, 또 무엇을 해야하나? 그런데 내게 그럴 시간이 있을까? 이제 시골 아짐이 되가고 있는 것 같다. 불록 솟아나오는 아랫배 윗배에도 관용을 베풀고 꽃밭과 채소밭 가꿀 생각까지 하고... 운동 대신 밭일을 해야 한다. 모자와 장갑 그리고 호미가 필요하다 시방!

아티스트도 되야 하고 음, 할 일이 넘 많고나.

Wednesday, March 14, 2007

It's SPRING

비가 내리니 마음까지 무겁고 몸도 무겁고 해서 잠시 산책을 하였다. 나뭇가지 끝에 번지는 푸른 몽우리들이 날 위로해 주었다. 어김없이 봄날이 왔나보다. 개나리가 노랗게 꽃망울들을 먼저 터트리고, 벗꽃과인 체리라는 나무가 연분홍 빛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내 마음엔 봄이 있는가! 남편과 떨어져 지낸 지 두해가 넘어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는 것인지 예전의 봄날이 아니다. 봄날을 타야 마땅한 것 아닌가 말이다. 한들 한들거리는 봄같은 치마를 두르고 날개 같은 스파프 봄바람에 날리며 봄을 타는 것이 젊은 여자에게 해당되는 부분이었던가.

봄은 여인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영 내 마음은 그렇지 않다. 비가 와서인가.

이번 봄방학은 새집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땅을 고르고 잔디 씨를 뿌리고 그리고 그 위에 거름을 뿌리는 등등의 일을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나에게 있었다. 집을 구입한 이래, 날씨가 풀리면 해결해야 할 하나의 과업이었는데, 막상 일을 해 주어야 할 건설주의 반응이 이 좋은 봄날을 즐길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당연하게 전체 잔디밭을 그래이딩하고 잔디를 심어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무슨 영문인지 계약서에 의해 어쩌고 저쩌고 영어로 씨부렁거리며 나의 기대를 망가트린다. 이 좋은 봄날에!
자상한 부동산 할아버지께선 걱정하지 말라하지만, 걱정 많은 나로서는 마음이 무겁다.

Tuesday, March 13, 2007

Gardening

봄방학이면 어디론가 여행을 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난 베낭을 짊어지고 떠나는 여행을 뒤로하고, 난 장미 네그루를 심었다. 물론 한국에 있는 낭군님이 오지 않으면 여행을 떠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꿀처럼 달콤한 봄날의 휴가를 어찌 보내는 것이 유익한 것일까? 따스한 봄바람이 부느 날 작은 아들과 함께 샘스에 간 김에 붉은 장미 네 그루를 사왔다. 친정 집 앞마당에 곱게 자리잡은 장미가 생각나기도 했고, 담장에 올라앉은 넝쿨 장미도 생각나기도 해서, 내 안에 자리잡은 추억이 자꾸 가시많아 무서운(?) 장미를 선택하게 만드나보다.

현관 출입구에 늘 푸른 상록수 대신 가시있는 장미를 심은 것이 잘한 선택인지 모르겠다. 조그마한 정원을 마무리 하는데 돈이 상당히(?) 들었다. 먼저 잡초를 정리하고, 땅을 파고, 장미를 심고 다시 잡초를 막을 섬유를 깔고 그리고 예쁜 돌을 까는 작업을 하였다. 없이 사는 사람은 나무도 심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잠시 하면서...

이곳 사람들은 '로우스'라는 마켓을 가는 곳을 좋아한다고 했다. 하우싱에 대한 전반적인 물건들을 전문적으로 파는 곳으로 이곳에 집을 구한 이래 여러번 방문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다면, 예쁜 돌들을 사서 정원에 박고 싶은 욕심(?)이 옷을 사서 입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있다. 이제 나도 늙나보다. 옷사서 입는 것 보다는 예쁜 정원에 관심이 가니 말이다.

들깨, 상추, 토마토, 부추 이런 등등의 먹거리 식물들을 심어야 하는데, 오늘 오후엔 터를 잡아야겠다. 이러다보면, 금쪽같은 봄방학이 휙 가버리겠는 걸...숙제도 해야하는디...

Thursday, March 08, 2007

Ceramics , Hand, and Heart

어제 세라믹 프로젝트 넘버 원을 끝냈다. 흙을 주무르던 순간부터 사진으로 찍어놓았다면 더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었을텐데, 그것까지 신경쓸 틈이 없었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시간과 정성을 투자한 작품이라 자꾸만 기다려진다. 주무르고 주무르고, 치고 치고해서 반죽을 해서, 기본을 형성할 바닥을 만들고, 거기에 흙을 더해 형상을 만들고, 그리고 붙이고, 깍아내고, 또 깍아내고 다듬고, 문지르고 문지르고...반짝 반짝 광을 내어 불에 구워질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흙의 선택도 선택이거니와, 그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우리의 인생과도 같아 하는 동안에 마음이 평안해지고 어떤 깨달음이 부지런한 손놀림과 함께 오는 것 같다. 우리네 인생이 흙으로 부터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인라 이렇게 친숙한 편안함이 오는 것인가!

어떤 의미가 되기위해 계획되어지고, 건설되어지고, 다듬어지는 과정은 글을 쓰는 것과 같다. 하긴 모든 일이 그렇긴 하다. 수 많은 시행착오와 고통의 사유을 담지 않은 작품은 어떤 깊은 감동을 가져오기 싶지 않을 것이다.

내 시간과 정성을 쏟아낸 작품이 뜨거운 불속에 들어가 연단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 견딜 수 없는 뜨거움을 지나면 더욱 강한 아름다움을 잉태하고 기다리는 나에게 돌아오겠지...

Wednesday, March 07, 2007

Where's my DRAWING?

왜 그림을 올리지 않냐고요? 음~그것은 내 따끈따끈한 열정의 부재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내 능력의 빈곤함탓이지.

요즈음 드로잉 수업은 잉크를 가지고 창의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차콜과 연필을 벗어나, 잉크와 물로 형태와 명도 그리고 구성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물을 다루는 일은 쉽지가 않다. 물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인내, 그리고 붓을 터치하는 결단력, 모든 것을 고려하는 치밀함...윽, 피곤해...창의적인 터치는? 으윽으윽 글을 쓰고 말지...

처음 마음처럼 그 비어있는 그릇에 열정 하나 하나를 담아 성실하게 내 시간 시간들을 잘 그려나가고 싶었는데, 지금껏 무엇을 배운 것일까? 발전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저런 물음표에 대답할 시간도 없이 시간은 봄으로 어김없이 흐르고 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은 차디찬 시간들을 빠져나와 만물이 꿈틀거리는 봄의 시간으로 번져가고 있다.

The House

Tuesday, March 06, 2007

The Water Ground

커피를 마시며 물고기를 바라보다가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자니, 물속에 사는 그들의 움직임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주일전 '바버'와 '샤크'를 입양하였다(?). 카본데일의 전문가(?)의 협조로 건강한 물고기를 입양햐였는데, 바보스런 이름을 가진 바버가 샤크한 샤크를 제압하고 살고 있다. 무리지어 졸졸 떼지어 사는 바보가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고 성가시게 굴며, 공격까지 하고 있는 꼴을 보자니 조금은 짜증이 나기도 하면서, 웃기기도 하면서...

지난주는 솓구치는 호기심으로 구피와 구라 그리고 샤네갈을 입양하였다. 역시 전문가의 협조가 있었다. 구라와 샤네갈은 전문가의 선물이었는데, 구라는 떡대이며, 샤네갈은 육시기다. ㅎㅎㅎ 구피는 아름다운 부채꼴의 꼬리로 팔랑 팔랑 나팔나팔하며 오자마자 사랑을 독차지했는데, 그만 하룻밤 자고 나니 어항속의 누군가가 구피의 아름다운 지느러미를 뜯어먹은 것 아닌가!

그럼 카본데일의 전문가의 소견이 틀렸다는 것인가! 구피와 구라를 구입할 때 그쪽 일에 종사하며 돈받고 일하는 전문가의 말쌈이 구라가 구피를 잡아먹는다며 따로 키우기를 권했었는데, 그렇다면 그 말쌈이 맞다는 것인가 아니면 육시기가 다들 잠자는 사이에 그 짖을?

육식을 한다는 육시기는 아직 어려서 그짓을 할 수없다는 작은 아들의 변호에 난 구라가 그짓을 한 것이라며 생각을 굳혀가고 있는데...그 구라란 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점잖게 행동을 하는 유형이라 다들 잠자는 사이에 그런 잔인한 행동을 했으리라고 생각을 할 수 없엇다.

그리고 하룻밤을 보냈다. 이게 웬 일인가! 정말 멋지고 싱싱한 또 하나의 구피가 이젠 죽어 있었다. 완전 꼬리가 없어진 채로...

몇년전인가, 물고기가 죽어 나가는 것이 보기싫어서 어항에 물을 빼버린지가! 정말 물고기가 죽어 있는 것을 보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다. 비린내나는 물고기를 구워먹고 튀겨먹고 삶아먹고 하는 본인이 조그마한 물고기 한마리 물에 둥둥 떠있는 것을 보고 민감해 하는 것이 비린내나는 아리러니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가만 쳐다볼 수록 의심만 커져가고, 아무리 쳐다봐도 살어자를 찾아낼 수 없다. 밤사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 수가 있나. 그렇다고 몰카를 달수도 없고...해서 작은 아들과 함께 과감히 장애 물고기를 건져내어 저 세상에 미리 보내고, 성성한 구피 한마리는 작은 어항에 격리 시키고, 그래서 어항은 오늘 아침 조용하다. 평화란 이런 것인가. 연약한 물고기들이 없는 어항속은 이상하게시리 평안하다. 이래서 노는 물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인가.

구원(?)된 구피는 외로이 혼자 놀고 있다. 이럴 땐 어찌해야 한담? 나 사는 것도 힘든디, 이것들까지 신경을 써야하나? 원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