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30, 2009

Auction, 12/4/09, Surplus Gallery at Glove Factory

Six Apples, 11x14 inches, Oil Painting on Canvas, 2008


이곳 미술대학을 졸업하기전에 조그마한 페인팅을 헌납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었다. 일년에 한번 이곳 미술대학에서 옥션을 주최한다. 일종의 경매인데, 교수님 작품들은 그 이름값에 힘입어 부자들이나 구입할 수 있고, 나같은 대학 학생의 작품은 얼마되지 않은 돈으로 구입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내 그림을 사고 싶어 할까도 궁금하고, 얼마에 팔릴 지도 궁금하고, 기본적으로 비싼 입장료 내고 들어와서 아트에 관심을 갖는 돈있는 사람들도 구경할 겸 겸사겸사해서 헌납을 하였다.ㅎㅎㅎ 그래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내 작품을 그냥 헌납을 하자니 아깝기도 하다. 팔리기라도해서 미술대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야할텐디......

Thanks Giving with Max Family

Cone Flower in My Garden, 12x24 inches, Oil Painting on Canvas, 2008


해마다 멕스 가족과 댕스 기빙 식사를 하였나 보다. 아끼던 꽃 그림 한점으로 늘 울 우석이를 자식처럼 아껴주는 맥스 가족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했다. 맥스가 울 아들들을 위해 운전해 준 시간과 기름값에 비교될 수 없겠지만, 내게 있는 소중한 것을 주기로 하였다.


아끼던 그림을 떠나 보내는 마음을 어찌 표현할 수 있으리요. 하지만 좋은 이들의 사는 공간에 함께 하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기에... 맥스집의 거실에 걸릴 때의 그 기쁨을 어찌 말할 수 있으랴! 우리집 거실이 아닌 다른 집 거실에 걸리는 순간을 보는 것은 기쁨이었다. 박수 치며 그 기쁨에 모두들 즐거워 하였다. 거실이 훤하게 비추는 행복한 그림이라는 타이틀을 주어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는 멋있는 작품이 되었다. 우리집 거실에 걸려있는 것 보다 몇배로 멋있었다.


조금은 아까운 마음이 없었던 것 아니었지만, 맥스집에 걸려있는 나의 그림을 보니 그 마음이 확 사라졌다. 주는 기쁨이라고 해야할까.언제 시간이 나면 다시 리콜을 해서 마지막 코팅처리를 해주어야겠다.


맥스네 댕스기빙음식은 맛있었다. 핑크색 와인 한잔에 힘입어 중얼중얼 영어를 제잘거렸다. 나의 아들들 앞에서 글러벌 영어로 말할 때의 어색함을 아는가. 하지만 기쁜 나머지 난 영어로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ㅎㅎㅎ 그들이 있어 행복한 댕스기빙이었다.

Thursday, November 26, 2009

You are My Big Son

뚱띵이 내 아들이 이곳의 대학 주최 글쓰기 대회(?)ㅎㅎㅎ에서 대상을 받아 거금(?)중의 일부인 100불을 내 놓았다.ㅎㅎㅎ 무지막지 자랑스러운 순간의 사진이 결정적으로 지금 내 손에 없다. 산다는 것이 그렇다. 너무 흥분되는 순간이라서 고급 사진기를 챙겨갔더니만 그 프로세싱이 내맘 같지가 않아 기존에 있는 아들이 사진을 다시 올리고 만다.

한국인 학생으로서 대상을 받은 사실이 기록적인 일이다라고 했다. 미국학생들을 물리치고 일등을 했다는 사실에 난 너무너무 울아들이 자랑스럽다. 비록 이런저런 사정으로 대도시의 좋은 학교로 진학을 하지 못했던 뒷이야기를 알면 사람들은 더욱 울아들의 넓고도 깊은 마음에 또다시 감동 받을 것이다.

젊은 날의 아빠와 엄마의 초상처럼, 울아들은 키타줄을 튕기며 소리 지르며 젊은 날을 보내고 있다. 나름대로 밴드도 있고, 녹음 시디도 있고, 그리고 사진도 찍으며 학교성적도 올에이를 유지하면서 친구도 많으면서...... 무지 바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다리 짧은 유전자를 극복하더니 이곳 미국에서의 시간을 성공적으로 잘 꾸려나가고 있어 기분이 좋다.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함을 보게 되어 엄마로서 행복하다.

누가 영어로 된 글쓰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단 말인가. 집안의 경사이다!!! 노래 대회가 아니고 글쓰기 대회란 것이다!!! 무지막지 감사할 일이다.

Monday, November 23, 2009

Flame On #2

조용한 '댕스 기빙데이'의 아침에, 몇달동안 하지 못한 두가지 일을 했다. 먼저 잔디밭에 잔디약을 주었고, 그리고 동네를 한바퀴 돌고 들어왔다. 간만에 느껴보는 잔잔한 즐거움이었다. 그러고보니, 매일 아침 서둘러 스튜디오에 갔나보다. 오늘은 특별히 이곳의 큰 명절중의 하나인 '댕스 기빙데이'라서 그냥 나도 집에 머물면서 그동안 내 시간속에 쏟아진 감사할 것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었다.

그런대로 푸른 형태를 잡아가는 잔디밭에 그동안의 수고를 생각해서 농약을 뿌려주며 감사행위(?)를 하였다. 이웃의 푸른 잔디밭에 더이상 기죽지 않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다. ㅎㅎㅎ 거센 잡초들이 다시 올라 오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푸른 잔디밭을 위해 약을 더해 주는 것 뿐이다. 날이 추워지니, 참 잔디와 가짜 잡초가 분명해 진다. 놀라운 사실이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친구를 알고 지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 처럼 날이 추워지면 잡초들은 갈색으로 변한다.

많은 부분들을 잡초들이 여전히 자리잡고있다. 다시 봄이 되면 잡초들은 거세게 연두빛 푸른 빛으로 일어 날 것이고 참 잔디들은 그냥 그들의 늘 푸른 빛으로 살아 남을 것이다. 나의 관찰에 의하면, 내가 선호하는 잔디의 색은 깊이 있는 푸른 색이다. 가벼운 푸른 색들은 알고보니 잡초에 가까왔다. 가을 겨울이면 색이 변해 버린다.ㅎㅎㅎ 어떤 사람들 처럼! 아니 나처럼!!

뿌듯한 마음으로, 간만에 산책을 하였다. 겨울이라서 새들이 여름날의 아침처럼 울지 않았다. 이웃들의 지붕들은 여름날의 폭풍의 상처를 다 걷어낸 것 같다. 우리집만 빼고 다들 지붕을 갈아 버린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하다. 지붕덮개가 한쪽도 날아가지 않은 상태에서 어찌 지붕을 새로 덮을 수 있단 말인가! 상대적인 불안함을 참아야 한다.

그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이곳의 겨울은 조용하고, 봄에 개학과 함께 날씨가 이상하다. 눈이 내리고 폭풍이 오고...올겨울이 춥다고 했는데, 꽃들이 봄날처럼 꽃을 피운다. 크리스마스가 한달 남았는데 겨울이 올까싶을 정도로 날씨가 봄처럼 좋다.

꽃그림 밑에 글을 달았으니 그림 이야기를 하자면, 꽃에 대한 또 다른 도전이었다. 그야말로 그냥 그려보고 싶었다. 그것도 빨리! 꽃이 시들기 전에, 그리고 브러시 터치의 속도감을 보기위해.

거울앞에선 누님같은 국화꽃! 불꽃 같은 정열이 아직 살아있을 것 같은 얼굴이 거울에 있는가 하는 자문을 하면서...스쿼시하며 소리지르던 내 모습을 스스스로가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 내가 늙어가고 있나보다. 무척이나 성가대에서 함께 소리를 모으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온몸으로 소리를 내던 시절이 왜 아득히 느껴지는 것일까.

아냐,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할 때이다. 불꽃 같은 정열이 그림으로 표출되었지만, 이베이 옥션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 같은 대중적인(?) 꽃그림이 나왔다. ㅎㅎㅎ 그러나 만족스럽다.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소망한다.

Flame On #1




My Hand


The Big Trunip

와~턴입은 정말 컸다. 그 스케일을 보여주기 위해, 귀여운 금발머리 꼬마 아가씨를 사진으로 찍었다. 물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가를 부모로 부터 허락을 받고서다. 구여운 턴입과 귀여운 소녀!

Dramatic Compostion?


Composition Study


Be Memodeling


If

어느날, 모처럼 혼자 외식을 하러 스튜디오에서 가까운 중국 식당에 갔다. 대학 시절 혼자 밥을 먹다가 그 홀로 있는 사실이 슬퍼서 화장실에 가서 엉얼 울었던 기억이 난다. 흑흑흑 사실 그땐 난 친구가 많았다. 그것은 젊은 날의 고독이었다. ㅎㅎㅎ

혼자 먹는 것이 불편하고 좀 불쌍한 것은 사실이지만, 편하기도 하다. 그런데 책과 스켓치북도 없이 지갑만 들고 간 것이 아닌가. 식당의 구석진 곳에 앉아서 음식이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한단 말인가. 거기다가 어디서 본 적있는 미국인들이 옆자리에 앉아서 중얼중얼 이야기를 나누눈데 릿슨닝 연습을 하기도 뭐하고 해서...결국 식탁 위에 놓여있는 냅킨에 눈이갔다. 볼펜이 없다면 이 쪽팔리는 난감함을 벗어날 길이 없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볼펜이 가방에 있었다. 후~ 뭘그리나? 카메라 속에 둘째 아드님이 셀카를 해놓았다. 그래서 집중해서 아들을 그렸다. 그리다보니 아드님이 날 닮았다는 사실을 알았다.ㅎㅎㅎ 잘생긴 놈!

그림이 끝나고, 달고 기름진 중국 음식이 나왔다. 보거나 말거나 실컷 먹었다. ㅎㅎㅎ난 아짐마다!

The Pleasure of Drawing

사이즈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차콜드로잉 종이에 그린 그림으로 오분동안 그린 젊은 모델이 잠든 얼굴이다. 담당 교수님이 서둘러 모델을 깨워버린 감이 있어 완성하지 못한 아쉬움이 드는 찰나에 '에런'이 내게 다가와서 흥분하여 말했다. 'It is a beautiful drawing!' 아직 끝내지 못한 드로잉을 앞에 두고 감동하는 그녀에게 물었다.'Why?'

음악의 하모니처럼 세고 여림의 다양한 선들이 잘 어우러져있다는 말씀이었다.

하얀 도화지에 시작하는 마음은 언제나 그 설레임과 동시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처음 본 바로 그 통찰력이 오분동안 나타내었던 그 선의 흔적들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나보다. 바로 이 점이다. 난 보는 눈이 없나보다. 처음의 그 낯선 신선함을 보는 눈이 없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음~

Friday, November 20, 2009

Sleeping Young


Her Name is Woman


She


Lines


Unknown

Fear of Flower, 12x24 inches, Oil Painting on Canvas, 2009
꽃에 대한 두려움을 난 갖고 있다. 꽃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은 영원하지 않다. 물론 시든 꽃을 그리는 것도 뭐 생각 좀 있어 보이긴 하지만, 싱싱하고 빛나는 꽃그림을 기대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모른다 할 수 없지 않는가.
파머스 마켓에서 이름도 모르는 꽃을 사서 서둘러서 그렸다. 최근 작품으로는 가장 짧은 시간내에 그린 유화일 것이다. 긴장되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스스로에게 준 시험이었고, 그 시험을 잘 통과한 것 같다. 담당 교수님인, 세이가 무지 좋아해 주었다. 문제는 시간이 나는대로 더 붓칠을 할려고 했는데, 교수님은 그만이라고 했다. 지금 상태도 훌륭하다나! 왜냐고 물어보았었다. 영어로 말씀하셨기에 분명하게 해독한 것은 아니지만, 색감이 좋고 브러시 텃치가 어쩌고 저쩌고......
30년 넘은 경력을 지닌 교수님의 의견이니 절대복종이다. 사실 고치다가 살아있는 싱싱한 그림맛을 쥑이는 것이 나의 단점중의 하나이다. 언제 스탑한단 말인가. 난 아직도 보는 눈이 없다. 일단은 후딱 그리고 냅둬봐야겠다. ㅎㅎㅎ 어쩐가보게.ㅎㅎㅎ

Portrait with Books

'Heavy Head', 30x30 inches, Oil Painting on Canvas, 2009

30x30 inches 크기의 두번째 작품이다. 사색적인 무게감이 너무 밝게 나와서 아쉬움이 남긴하다. 일종의 교화적인 그림으로 도서관에 걸면 적당할까? 하지만, 나의 발상은 더이상 나아 갈 수 없는 가장자리에 앉아서 읽었던 책더미들속에서 발견했을 아니면 발견하지 못한 내 삶의 빛과 그림자를 나타내고 싶었었다. 그런데 붓을 놓은 순간 나의 찬란한 그림은 그냥 아름답고 만다.

교만한 바벨탑이 무너지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가장자리에 앉아 무엇을 해야할까? 무거운 머리가 내려다 보고 있는 저 아득히 먼 아랫부분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다음 작품을 기대하시라!

Heavy Head(processing)


30x40 inches, Mix media on Canvas, 2009


커피 가루와 종이 그리고 박스를 부착하기 위해선 비싼(?) 젤 미디엄을 사용해야 했다. 아크릴값도 장난이 아니고......그러나 만족할 수 없는 이미지를 얻었다.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분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사이즈가 커지고 텍스쳐가 있는 흑백 이미지를 만들었지만 유화보다 싸 보이는 것은 왜?


댕스 기빙 브레이크 중이라 교수님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해서 그만 손을 놓았다.

Wednesday, November 18, 2009

I love Pinky

Sunday, November 15, 2009

Uprising

http://www.youtube.com/watch?v=Md1E_Rg4MGQ&feature=related

멋있는 놈들!ㅎㅎㅎ 이른 아침 뮤직채널에서 처음 본 그들은 멋있었다!! 그래서 아침마다 그들을 기다렸다. 급기야 인터넷에서 검색까지 해서 블러그에 연결하는 열성까지. 뮤직 비디오를 만든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허벌 멋있다. 비싼 티켓을 구입해서 컨서트에 가는 열광팬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이런 기분 처음이다.ㅎㅎㅎ 무엇보다 가사내용이 간단하고, 반복적이어서 일단은 편안하고, '스'하고 나는 영어의 끝발음이 나에게 있어 넘 매력적이다.

뒷배경으로 드럼치고 있는 장면과 앞배경의 기타가 앞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정말 멋있다!!! 자꾸만 보고싶은 뮤즈!!!

부정적인 마음이 지배하지 않도록, 넘어지는 마음 일으키기 위해 이 노래를 스스로에게 강추!

Monday, November 09, 2009

The Fall on Stools(There is no seat for you)


30x30 inches, Oil Painting on Canvas, 2009


이곳 카본데일의 농부들과 그리고 예술인들의 장이 서는 토요일의 아침쇼핑은 빼놓을 수 없는 주말행사이다. 어느 농부의 진열대에 올려져있는 그 눈부심의 발견! 스튜디오에 벌려놓은 정물화 셋팅을 뒤로하게 만든 '턴업(turnip)'이라는 보라색 무우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일년전에 스마일 페인팅속에 한번 그려본 적이 있긴 하지만, 땅속에 바로 뽑아 올린 그 감춰져 있었던 싱싱한 보라색 아름다움은 가을날의 이른아침의 햇살에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하루만에 그 싱싱한 보라빛의 아름다움은 맛이갔다. 수분이탈 현상이 생기면서...결국은 주말시장에서 세번이나 턴업을 구입했어야했다.


셋팅하는이 쉽지 않았다. 역시 컴포지션이 우선이다! 아무리 턴업이 아름답다해도 그 구성이 약하면 결국은 고생만 실컷하고 스스로가 만족할 수 없는 찝찝한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을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익혔기에 조금 신경을 쓰긴 했는데, 스툴을 그려내는 것이 턴업을 그리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30x30인치의 정사각형 첫이미지로서 가을날의 느낌을 스툴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기쁘게 생각한다. 턴업의 색뿐만 아니라 뿌리의 운동감과 마루바닥과 의자의 기호학적인 형태와 그리고 가을의 색감이 만족스럽다. 그래서 제목은 '의자위에 내린 가을'로 생각하고 있다.




K's


홀로선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때때로 난 고립되어 있다. 학교에선 나이들고 영어못하면서 그림만 열심히 그리는 아짐마로 친구 만들기가 쉽지 않고, 학교밖의 생활은 나에게 없는 것과 같다. 지역교회를 안나간 지가 꽤 오래된 것 같다. 미국생활에서 교회없는 생활을 상상해 보시라!

고독이 아니고 진정 난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것 같다. 고독과 고립의 차이는? 놀아주는 이 많은데 외로운 것은 고독이고 ㅎㅎㅎ 놀아주는 사람이 주위에 없는 것은 고립아닐까?ㅎㅎㅎ 고립이다!!!

이곳의 생활은 기댈 사람없는 고립된 생활이다. 때로는 마음이 홀로서기 위해 매듭을 만든다. 어쩌겄는가! 다행히 난 아트를 사람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때로는 마음열고 술한잔 할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투명인간이 되어 그림만 그리는 아짐마. 그래도 행복하다.

S's Taste----The Young Lady


모래, 석회가루, 젤미디엄, 전문 풀, 아크릴을 믹스하여 '젊은 그녀'를 추상화한 작품이다. 엠디에프 보드는 무거웠다. 엣지처리와 그리고 제소처리가 좀 까다롭기는 하였지만, . 믹스미디어 실험을 하기엔 가격도 저렴하고 단단해서 편리했다.
내게는 첫시도였던 실험작이었다. 모래를 펴면에 부착시키는 일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엔 실수섞인 경험이 필요하였다. 스케치북에 도안한 구상을 리서치하여 나름대로 근거를 만들고(색동 저고리는 젊은 아가씨를 뜻함), 뻔하지 않는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생각하고 생각하고......
젊은 그녀의 에스라인과 젊은 그녀의 풍만한 가슴선을 합성하여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오색을 집어넣었다. 미미멀주의의 간단한 이미지 비슷한 것이 나왔다. 이 작품을 하기전 미니멀주의의 안이함(?)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중요한 것을 먼저 결정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핵심적인 것만 뽑아내고 그외의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디자인 요소가 강렬하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시아나 항공회사의 마크가 떠올라서 좀 염려되긴 하였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하여 만들었던 것 만큼 후회는 없다. 다른 이미지에 비해 사랑받고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전시회를 통해 연륜있는 교수님께서 좋아하신다는 지목에 깜짝 놀라 다시 보았다. 내가 저질러놓은 이미지를!


Sunday, November 08, 2009

Jazz with Mr.Brown

photo by Luke Kim





토요일밤, 큰아드님 덕분에 간만에 얼굴에 분칠하고 고급컨셉(?)으로다가 검은색 정장에 아이보리 레이스 브라우스 받쳐입고 뾰족구두 신고 음악회에 다녀왔다. 검은 정장을 입어본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굽 갈 걱정없게 신을 일 없는 뾰족구두에 입혀져 있는 먼지들을 닦을 구두솔은 어디있는 것인가? 똥배도 누르는 연장(?)은 어디있고? 거친 손에 로션을 듬뿍 발라 섹시한 스타킹 조심스레 올렸는디 그만 옆구리 터져있는 것을 바라볼때의 그 기분을 아는가?

브라운이라는 음대교수님의 시디 자켓사진을 찍고 돈 벌어서 20프로의 돈을 엄마에게 내놓는 울 큰아들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ㅎㅎㅎ 조금은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한 모양이다. 패밀리 사진찍고 돈벌고...ㅎㅎㅎ 전공은 아니지만, 취미생활로 돈도 벌어서 좋기도하고...

그만 자랑하고, 어쨋든, 울아드님 덕분에 초청권을 받아 간만에 째즈 음악회에 갔다. 음대 교수님들의 째즈밴드의 밤이었는디, 멋있었다. 주로 박사님 음악인들이 하는 째즈라서 지적이었다고 해야할까. 끈적끈적한 맛은 없었지만, 고급스럽고 지적이었다. 특히나 나이든 음악인들의 넘치는 자신감은 멋있었다. 변장하고 갔는데, 그만 미대교수님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누가 저렇게 멋있게 혼자 앉아있다냐 했다나...

시상이 좁다. 진작에 알긴 알았지만...음악회 주최인 브라운의 부인은 내가 오년전에 우연히 알게되어 가벼운 인사를 하고 지내던 분이었다. 얼마나 놀랬던지...

나도 한때는 음악인이 아니었던가?

Saturday, November 07, 2009

The Tales of The Gateway to Fun

미대 건물에 속해있는 조그마한 갤러리에 믹스미디어 페인팅의 가능성을 전시했던 이번 쇼는 리셥션이 없었다. 오고가는 미술인들에게 인사를 받았던 것이 전부였지만, 철저히 내 손으로 그림을 걸고 내리는 과정을 경험했고, 좀 게으른 마음에 타이틀을 걸지 않는 대담함(?)과 귀찮은 마음에 만지지 않았던 조명의 무식함 또 무슨 짓을 하였을까? 맞다 그림높이가 너무 높이 걸려있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그리고 한쪽 벽에 작은 페인팅을 너무 걸어 그림의 희소성 가치를 벗어났다는(?)ㅎㅎㅎ...

새로움에 도전했던 지난 봄학기의 작품들과 이번학기 도전했던 문짝시리즈를 함께 걸었었는데, 문짝 시리즈가 압도적으로 강한 인상을 주었나보다. 가장 지배적인 이미지가 되리라고 생각했던 예상은 맞았고, 그러나 도전정신 투철했던 작은 사이즈의 이미지들이 각기 두각되지 못한 것은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솔직히 가지고 있는 믹스 미디어를 다 걸지 못했었다. 공간의 한계땜시 추린다고 추렸는데, 넘 많이 걸어서 평가절하 되었던 것 속상한 부분이다.

하지만, 나의 도전정신을 높이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 잊지 않기고 한다. 사람마다 눈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다!!! 이번에도 역시 별로다고 생각했던 이미지들이 부각되고 멋있다고 생각했던 이미지들은 관삼 밖으로 밀렸다!!!

무엇을 뜻하는가?

단지 크리티크를 위한 크리티크를 받는 경우에서 사람들의 다양함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된다. 보통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그리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의 배경에서 그림을 평가한다. 그리고 공부한 예술인들은 좀 다르다. 뭔가 다르다. 크리티크를 위한 크리티크를 할 때가 있다는 이야기다.

나의 그림에 열광하는 어느님의 필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냥 기분김에 선물로 줘버렸다. 얼마냐고 물어보면 참으로 난감하다. 아직도 이 질문에 당당히 값을 말할 수 없다. 얼마라고 말해야 할까.

The Balad of Blue Lust

The Balad of Blue Lust, 24x36 inches, Mix media on Canvas, 2009

I Was Crazy About Something

I Was Crazy About Something, 12x18 inches, Mix media on Fly wood, 2009

The Most Popular One

Under the Skin, 36x28 inches, Mix Media on Fly Wood, 2009

The Succesful Abstract Painting

Let it go, 11.5 x18 inches, Mix Media on MDF Board, 2009

To V

Facing, Mix Media on MDF Board, 4x4 inches, 2009

She was Stuck on Paper


Challenge


Long Leg Problem


Stretching


What time is it?


Waiting


She was Strong


Am I Ready?


Woops


The Heavy Head


The Great Professor




My Witness

유독 이곳 카본데일 한인 아짐마들이 '아저씨'라고 부르길 좋아하는 나의 남편님이 싱가포르에서 영어로 스피치를 하는 모습이다. 공학박사이며 모기업의 회장님이시다. 비록 직원들 월급주기 힘든 작은 기업의 대표이지만, 친한척 굴며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아다오. 난 한편도 우리집 남편을 아저씨라고 친근하게(?) 불러주라고 주문한 적 없다. 나이도 어린 것들이 아저씨라 부르며 이야기할 땐 정말 입을 찢어주고 싶다. 진심이다.

하긴 나도 입주댕이 함부러 놀려 누가 흉을 보고 있을지도......

카본데일에서 교수님 부인이 아닌 신분으로 오년을 살아왔다. 학교촌에서 교수님이 아닌 사업가 부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렇다. 나이 더 젊은 집사가 전화해서 성빼고 이름넣어 '은순자매님'이라 시작한다. 성은 왜 빼고 이름을 부르는가? 왜 자매님은 왜 붙여? 내가 대학학생이니 그렇게 젊게(?) 불러도 된단 말인가? 아니면, 신앙심에 불을 지르려고? 억울하면 교회에 열심하셔서 집사되시라고? 장성한 아들들이 둘이며 나 또한 돈은 없지만 사모님이다., 밥사주며 사모다운 처신을 못한탓이라 생각하지만 심하다 심해.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을 카본데일 교회의 추억거리이다.

뭐 그런 호칭가지고 그러시냐고요? 니가 한번 당해봐라. 나이 든 노인들이 그리 불렀다면 뭐 내가 어리니 그럴 수도 있다지만, 뭐 이런 따위들이 있어. 그것도 성경보고 기도한다는 것들이 아무 생각없이 주딩이들을 나불거리니 원.....

Friday, November 06, 2009

Processing


The Most Difficult One in Drawing


The Fall in Stools


Soony's Studio


The Gate of Allyn

미대의 공식적인 업무를 시행하는 사무실과 학장실이 있는 '앨린'빌딩의 동쪽문에서 사진을 찍었다. 믹스미디어의 작품을 전시한 '버제트 갤러리'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큰아들과 동행하는 김에 졸업이 얼마남지 않은 것을 고려해 사진한장 찍어 달라고 했다.

카메라에 문제가 생겨서 대부분의 사진들이 촛점에서 벗어나 실망스럽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 한국에 돌아가면 무척이나 지금의 더 젊은 시절의 추억들이 그리울 것 같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 내년 오월에 졸업을 하면 사년만에 학부 졸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학위가 있어 그나마 크레딧을 인정받아서 사년이다. 물론 난 봄학기와 가을학기만 하다보니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도 하였기도 하고.

시간이 정말 빨리 가버린다. 엊그제 가을학기를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학기말이고, 댕스기빙과 크리스마스 그리고 해피 뉴이어...그리고 몇달있으면 졸업을 하겠지싶다. 이곳 미술대학원에 진학을 하게 된다면 더욱더 전문 화가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겠지만, 동대학에서 동대학원으로 진학을 하지 않는 이곳의 실정을 고려한다면, 영어가 딸리고 나이든 아짐학생으로서 성적좋은 것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역부족인것 같다.

가장 소원하는 것은 그림공부를 더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대학이 안된다면 문제가 복잡해지고 ......더 좋은 것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을 믿어야 하는데...

지금껏 달려온 것 마져 달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냥 졸업을 하는 날까지 내 그림에 최선을 다 할 생각이다.

Sunday, November 01, 2009

Posters of Soony Seo's Art




Sims and Soony


9 to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