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30, 2019

Your Name

'오월'하고 첫날이라는 오늘의 이름을 부르자 '장미'가 떠올랐다. 이만하면 오월은 향기롭고 아름다운 시간이 아니던가. 노동자의 날이라고 해서 수영장이 휴장을 한  덕분에 온몸이 늘어져 한가함을 누리며 향기롭고 우아한 장미꽃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싱싱하고 향긋한 오이 소박이를 담고 주위를 살펴보니, 벌써 오이지를 담았다는 알뜰한 살림녀들이 있다. 물없이 담는 오이지를 담았던 묵은 해의 오월이 기억이 났다. 오이를 싫어하는 큰아들을 위해 오월의 첫날에 깻잎 김치를 담을 생각이다.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다가 붓을 씻었던 씽크대가 생각이 난다. 지금의 난 씽크대에서 맛있는 음식을 하기 위해 깻잎을 먼저 씻을 생각이다.

붓대신에 깻잎을 씻는 것을 먼저 선택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의 이름이 '화가' 대신에 '주부'라는 명명이 일반화될지라도 할 수 없는 본능인 것을 인정하기로 한다. 부엌에서 집안일을 하는 것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향해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은 알 수 없는 기쁨을 동반하는 일이며 포기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어쨋든 예술은 이기적인 것이니까.

나의 이름이 '빨강'일 때가 있었다. 그때는 빨강이었고 지금은 스스로의 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끔은 불편한 환경에 자주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어울리는 장소를 향하지 못한 연유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은 알고 있으나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것도 그닥 힘들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받아 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응'이란 단어는 가끔은 두렵기도 하다. 흉을 보면서 배운다는 밀이 있듯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습득하고 적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성이 강하다'라는 말을 들을때면 지금도 신경이 곤두선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런 문장을 내게 내미는 것인가? 남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자기 잘낫 맛에 산다는 것인가?

지금까지 적지 않은 나이를 품은 사람이 자신의 빛깔도 없이 살아온 것에 반성은 커녕 인간 고유한 매력을 발견하지 못하는 님들을 비난하는 짓을 범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문다.   남들과 똑같이 내숭과 위장을 하지 못하고 어리석게 튀는 것인지 흉을 보는 사람들에게 오염되지 않기 위해 귀를 막고 눈을 감아야 한다.

오월의 장미는 '가시'가 있다. 왜 가시가 있냐고 비난하는가 묻고 싶다. 가시가 있어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향기롭게 우아하게 피어날 수 있음을 모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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