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02, 2019

Listen Carefully

학창시절의 영어라는 언어는 재미가 있었고, 시간을 내어 기꺼이 공부를 하였으며 어떤 하나의 작은 긍지로  간직하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고등학교 시절엔 필기시험으로 언어능력을 파악하던 때였으므로 말하기와 듣기 그리고 쓰기의 언어로서의 생활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40이 되어 '미국'이란 낯선 나라에 가서 일상의 언어로 다가온 생존영어는 그동안 외워두었던 단어들과 재빠른 눈치발로 그 역할을 감당하였던 것 같다.  경제적 활동에 있어서는 돈을 지불해야 할 상황에선 소통에 어려움이 그리 많지 않았던 반면에 돈을 돌려 받아야 할 아쉬운 부분에서는 상당한 인내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을 기억한다.

 듣기 영역 점수는 형편없이 낮은 점수를 기록하였다.
 'Listen Carefully'

영어가 들리지 않았다!
휙 지나가던 꼬부랑 영어들이 시간과 간절함을 덧입어 스며들기를 반복하다 어느날 좀 더 많은 단어들이 들리고, 상황에 맞는 영어문장이 들리고, 그리고 제스처와 다른 영어가 들리는 과정을 지나 짧지 않은 외국생활을 하였었다.  지금 여기서 지나간 40대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모국어인 한국어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주고받는 언어라는 것은 소통을 하기 위함일진데 마음을 열어 대화하기 이전에 마음문을 열고 들어주는 그 자체가 결코 쉽지 않은 행위라는 것임을 깨닫는다.

두개의 귀로 잘 들어주어야 하는데 하나의 입으로 말하기 바쁘다.  청(聽)이란 글자는 시간을 입어도 언제나 어렵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준다는 것은 무엇인가. 앞지르지 않고, 마음 문을 열고, 판단하지 않고,  솔직한 대화가 오고가는 것이 불편하지 않게, 눈과 눈을 마주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비난하지 않고, 충고하지 않고, 등등의 자세를 갖추어 경청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의 나라 말을 사용하면서 겪은 갑갑증 보다 모국어인 한국말을 사용함으로 얻어지는 외로움은 수많은 가면을 번갈아가며 쓰며 추하고 못난 마음을 감추어야 하는 이유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말하고 듣기를 하며 들켜버릴 본연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아마도 때때로 제대로 듣지 않고 말하기만 하는 괴물들을 양산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쉽게 떨쳐내기 어렵다.

https://www.youtube.com/watch?v=Oi290JIZ1uQ
Song for Asking, Simon & Garfunk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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