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12, 2018

Home, Sweet Home

눈이 흩날리는 흑백의 풍경을 바라보는 오늘은 아직도 코프캔디를 입에 물고 있는 중이다. 절대 아플 것 같지 않았는데, '절대'란 말은 어쩌면 지혜롭지 못한 단어이기도 하다. 따뜻한 물을 끓이고, 집안 온도를 높이고, 좋아하는 수영도 가지 않고, 약도 잘 챙겨먹고, 이런 성실한 자세로 내몸에 찾아든 병님을 대하면 시간과 함께 점점 나아질 것이란 습관적인 희망을 가지고 받아들이고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프고 나면,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을 하며 환하게 웃었던 수영장 여인이 생각난다. 두어 차례 큰 수술을 하여 고통의 쓰라린 주름도 있을 것 같은데 그녀는 해맑게 웃는다는 것이다. 병이란 것이 사람을 더 단단하게 하고 맑게 만든다는 생각이 스쳤던 것 같다. 하긴, 아픔으로 인해 부정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자기보호적으로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그런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 눈오는 날 왜 그녀의 환한 큰 미소가 떠오른 것일까. 난 사실 그녀를 잘 알지 못한다.

조경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  마당 넒은 집에 살았던 40대의 시간이 생각난다.  아들들과 삽을 들고 땅을 파서 어린 나무를 심었던 그 봄같은 시간의 풍경이 떠오른다.  집이 열한구 정도 되는 마을에 살게 되었는데 울타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마을 규칙이었다. 그래서 사생활 보호겸 나무 울타리를 만들 생각있었다.  나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한 탓으로 나무의 성장속도나 나무의 품성을 몰라 너무 가까운 거리를 두고 나무를  심은 적이 있다. 추후 결국은 나무들을 다시 뽑아 내어 이중 삼중으로 고생을 하며 나무의 자리를 찾아주던 무식해서 힘들었던 시간이 오늘 내게 가르침을 준다.

아무리 같은 종류의 묘목이라도 거리를 지켜주지 않으면 병들어 말라가며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는 것이다.  난쟁이 나무라고 불렸던 향나무과 나무는 서로가 닿은 부분이 갈변하며 죽어가는 것을 보았기도 하다.  사람사이도 마찬가지로 적당한 거리로 존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여 친밀한 관계로 오해를 하여 예를 잃고 다가간다든지, 인간적인 기대를 한다던지 하는 그런 경우가 만들어질 때가 있는 것이다. 존중하며 예를 지키는 것이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서로가 자유로울 수 있는 거리를 만들고,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 왜 어려운 것일까.

때때로 살다 만들어지는 씁쓸한 뒷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고 그것 또한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다. 일부러 계산적으로 편집된 불편한 진실을 들으며 분을 삭혀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분을 부추기고 이간질과 염장질을 하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어 도망치는 나를 본다.  먹을 거리나 얻어 먹을 것이 있어 꼬리를 흔드는 개들의 행동을 일삼는 친절한 사람들을 피해 도망치는 나를 본다. 그들은 절대 비난받고 싶어 하지 않으며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난 도망친다.

그래서 어디에 있냐고?
ㅋㅋ
아파서 집에 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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