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ing Memory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하면 사람들은 주부 가요 프로그램에 나가기를 가장 큰 칭찬의 모습으로 권하곤 했었다. 물론 시디를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이 가장 마음에 든 달콤한 칭찬이었지만... 젊고 싱싱한 시절엔 아이들이 어려서 시간을 내지 못했고, 직장생활을 한 후론 방송국에 가는 것이 그렇게 매력적인 일로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37의 나이가 한 숫자를 더하게 되기 전 어느 날, 저물어 가는 한 청춘의 끄트머리를 잡고 방송국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의 예선 연습곡은 '사랑 결코 시들지 않는' '서문탁'의 파우워풀한 노래였다. 노래 제목처럼 결코 시들지 않을 것 같은 열정으로 부르는 것을 난 좋아했고, 내 목소리는 운좋게 가능했었고, 사람들은 열광해 주었었다. 난 나의 경험에 힘입어 더 늙기 전에 내 얼굴을 텔레비젼 박스에서 보고 싶었다.
악보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고, 그다음 어떻게 연습을 하는 것이 문제였다. 반주가 마땅하지 않기에 할 수 없이 난 노래방을 선택해야만 했다. 며칠의 연습을 하고 용감 무식하게 난 서울로 가는 새마을호 기차를 타고 '덜커덩 덜커덩'상경을 하였다.ㅎㅎㅎ
여의도 KBS 방송국! 예선무대의 떨림!ㅎㅎㅎ 노래좀 한다는 전국의 아줌마들이 모였단다. 물론 난 예선을 무사히 통과를 했다. 하지만 기름진 피디 나에게 노래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제안이 아니라 각본이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내가 본선에 나간 주부들 중 두번째로 나이든 사람이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골고루 나이 연령층을 배려하고, 노래 스타일과 방송 횟수까지 그들의 자료에 의해 파악하고 골고루 분포시키고자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 많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그에 따라 광고 수입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그들의 전략을 난 이해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저런 이유로 나에게 다이나믹한 그 노래 대신 내가 두번째로 적어낸 노래를 본선에 나가기를 권했다. 난 그때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노래는 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왜냐면 내 노래는 잔잔해서 대상을 받을 만큼의 도전적인 노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역할을 포기할 순 없었다. 비록 들러리가 될지언정! 난 텔레비젼에 나오고 싶었다.ㅎㅎㅎ
방송 스케쥴에 의해 난 부산 모 노래방에서 연습을 하였다. 쉬운 곡으로 알았었는데, 막상 연습을 하자니 티나지 않게 어려웠다. 어떤 다이나믹한 부분이 없는 서정적인 느낌의 노래를 연습하는 것은 화끈한 노래보다 어려웠다.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이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이 노랫말을 음미했다. 악보를 구하는 동안 이 노래가 샹송 번안곡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한국 원래 고유의 유행가가 아니란 점이 아쉬웠다.
방송 녹화가 있는 날 야생적인 나의 머리는 동네 미장원 아줌마의 손길로 고상하게 풀렸고, 그냥 심심해서 나가는 나는 싱거운 정장을 입고 나가기로 했다. 차후에 의상에 관련된 젊은 녀들에게서 한소리 듣게 되었지만...그녀들은 쇼적인 것을 원했었다. 돈이 없어 의상도 협찬도 못하는 실정이었고, 더욱 웃긴 것은 속눈썹까지 하나 사오라고 했었던 것을 난 아직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부분이 후회되는 부분이다. 이왕 방송이 그런 것이라면 왜 난 의상에 더 신경을 쓰지 않았었던 것이었는지. 방송이 나간 후에 친지 친구들은 왜 그렇게 옷을 입었냐고, 왜 그렇게 머리를 했냐며, 왜 그노래를 했냐며 속상해했다.ㅎㅎㅎ
무대화장을 마치고 녹화전 리허설을 하였다. 내 번호는 일번이었다. 그때 난 내 번호를 보는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것은 야구 선수 번호가 아닌 것이다. 진정 선수는 나중에 나오는 것인데... ㅎㅎㅎ 텔비에 나가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날 진정시켰다.
무대체질인 것을 또 다시한번 깨달았지만, 난 담대했다.ㅎㅎㅎ 정말 떨리지 않았다. 일찌감치 포기해서인가? 나도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녹화전 우승자가 눈에 보였다.
그러나 방송을 앞두고 난 가슴이 떨렸다. 드디어 내 얼굴이 전국구 방송을 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내 얼굴을 보았다, 텔레비젼에서!!! 그리곤 난 더 이삐게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ㅎㅎㅎ내가 노래 부르는 모습은 참 못생겼다.ㅎㅎㅎ 내가 오디형인가보다....
나의 예선 연습곡은 '사랑 결코 시들지 않는' '서문탁'의 파우워풀한 노래였다. 노래 제목처럼 결코 시들지 않을 것 같은 열정으로 부르는 것을 난 좋아했고, 내 목소리는 운좋게 가능했었고, 사람들은 열광해 주었었다. 난 나의 경험에 힘입어 더 늙기 전에 내 얼굴을 텔레비젼 박스에서 보고 싶었다.
악보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고, 그다음 어떻게 연습을 하는 것이 문제였다. 반주가 마땅하지 않기에 할 수 없이 난 노래방을 선택해야만 했다. 며칠의 연습을 하고 용감 무식하게 난 서울로 가는 새마을호 기차를 타고 '덜커덩 덜커덩'상경을 하였다.ㅎㅎㅎ
여의도 KBS 방송국! 예선무대의 떨림!ㅎㅎㅎ 노래좀 한다는 전국의 아줌마들이 모였단다. 물론 난 예선을 무사히 통과를 했다. 하지만 기름진 피디 나에게 노래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제안이 아니라 각본이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내가 본선에 나간 주부들 중 두번째로 나이든 사람이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골고루 나이 연령층을 배려하고, 노래 스타일과 방송 횟수까지 그들의 자료에 의해 파악하고 골고루 분포시키고자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 많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그에 따라 광고 수입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그들의 전략을 난 이해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저런 이유로 나에게 다이나믹한 그 노래 대신 내가 두번째로 적어낸 노래를 본선에 나가기를 권했다. 난 그때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노래는 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왜냐면 내 노래는 잔잔해서 대상을 받을 만큼의 도전적인 노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역할을 포기할 순 없었다. 비록 들러리가 될지언정! 난 텔레비젼에 나오고 싶었다.ㅎㅎㅎ
방송 스케쥴에 의해 난 부산 모 노래방에서 연습을 하였다. 쉬운 곡으로 알았었는데, 막상 연습을 하자니 티나지 않게 어려웠다. 어떤 다이나믹한 부분이 없는 서정적인 느낌의 노래를 연습하는 것은 화끈한 노래보다 어려웠다.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이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이 노랫말을 음미했다. 악보를 구하는 동안 이 노래가 샹송 번안곡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한국 원래 고유의 유행가가 아니란 점이 아쉬웠다.
방송 녹화가 있는 날 야생적인 나의 머리는 동네 미장원 아줌마의 손길로 고상하게 풀렸고, 그냥 심심해서 나가는 나는 싱거운 정장을 입고 나가기로 했다. 차후에 의상에 관련된 젊은 녀들에게서 한소리 듣게 되었지만...그녀들은 쇼적인 것을 원했었다. 돈이 없어 의상도 협찬도 못하는 실정이었고, 더욱 웃긴 것은 속눈썹까지 하나 사오라고 했었던 것을 난 아직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부분이 후회되는 부분이다. 이왕 방송이 그런 것이라면 왜 난 의상에 더 신경을 쓰지 않았었던 것이었는지. 방송이 나간 후에 친지 친구들은 왜 그렇게 옷을 입었냐고, 왜 그렇게 머리를 했냐며, 왜 그노래를 했냐며 속상해했다.ㅎㅎㅎ
무대화장을 마치고 녹화전 리허설을 하였다. 내 번호는 일번이었다. 그때 난 내 번호를 보는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것은 야구 선수 번호가 아닌 것이다. 진정 선수는 나중에 나오는 것인데... ㅎㅎㅎ 텔비에 나가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날 진정시켰다.
무대체질인 것을 또 다시한번 깨달았지만, 난 담대했다.ㅎㅎㅎ 정말 떨리지 않았다. 일찌감치 포기해서인가? 나도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녹화전 우승자가 눈에 보였다.
그러나 방송을 앞두고 난 가슴이 떨렸다. 드디어 내 얼굴이 전국구 방송을 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내 얼굴을 보았다, 텔레비젼에서!!! 그리곤 난 더 이삐게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ㅎㅎㅎ내가 노래 부르는 모습은 참 못생겼다.ㅎㅎㅎ 내가 오디형인가보다....
0 Comments:
Post a Comment
<<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