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일을 하다가
붉은 구정연휴가 끝난 다음날 서둘러 병원을 다녀왔다. 봄으로 가는 햇살은 훨씬 맑아지고 추운 독기를 뺀 것 같지만, 봄을 부르는 바람은 손가락이 무색하게 시럽다. 장갑 없는 시린 손을 자꾸만 주머니에 밀어넣게 되는 아침은 월요일 같은 목요일 아침이다.
연휴 마지막 날에 '왕과 사는 남자'란 한국 영화를 보았다. 꽃미남은 아니나 연기력이 월등한 배우와 감독의 유머코드와 미감이 찰떡으로 들어맞고, 출연진 모두가 조화롭게 훌륭했던 것 같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무거움과 가벼움을 오가는 밀땅을 무리없이 표현하며 역사적인 비극미와 인간미를 잘 표현한 것 같다. 게다가 '한명회' 역할의 배우의 선택은 참신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웃기고 재밌는 영화라야 요즈음 사람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재미도 있고 감동도 줄 수 있는, 잘 만든 영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난 후, '단종'에 대해 검색을 해봤다. 그렇고보면 왕권의 세습을 능력이 있는 아들 대신에 오로지 '장손'이라는 이유로 물려주고 싶어했던 것이 비극을 잉태한 잘못된 선택이었지 않나 싶다. 수렴청정 할 수 있는 엄마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없는 상황에서 어린 왕 주변에 권력을 가진 군신들은 정치적인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집안의 능력있고 야심있는 숙부, '수양대군'에 의해 어린 왕은 쉽게 제거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어린 단종의 죽음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영화관이 어두워서 다행이다 싶었다,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붉은 연휴가 끝나고 다시 보통의 새 날이 되었다. 햇살 받은 꽃들이 툭툭하고 꽃망울이 피어날 것 처럼, 베란다 창문에서 집안으로 스며들어오는 햇살은 봄햇살처럼 화사하다. '왕과 사는 남자'의 '엄흥도'처럼 인간에 대한 의와 예를 잃어버리지 않는 하루를 보내보기로 한다.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자신의 목숨과 가문을 멸할 수 있는 위험을 무릎쓴 선택을 나는 '엄흥도'처럼 할 수는 없을게다. 하지만 거창하지 않는 의와 예를 지키는 선택을 매일 실천할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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