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anuary 12, 2025

듣다

 날이 추워짐에 따라 확실히 바깥 활동이 줄어드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기온 차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여 약을 달고 살았던 이주일 넘는 시간은 생존본능적인 차원에서 찬공기에 대한 '민감성'을 장착하게 한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날씨이면 '저항'하지 않고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로 대체하는 것도 슬기로운 선택일 수 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난 찬 바람에 저항할 푸른 나이가 아니다!

 '한파'라는 단어 또한 지나가고 주말동안 날씨가 맑으니 얼른 동네 공원을 걷고 싶다. '해'가 있는 시간에 옷을 겹겹이 챙겨 입고 동네 공원에 나가 보니, 겨울햇살이지만 햇살의 에너지가 있고 없고에 따라 빙판 길의 여부가 갈린다. 평소 다니던 길을 들어선 후에 미끈거리는 서늘함을 발견하고 만다. 발길을 돌리지 않고 신경을 곤두세워  미끈미끈한 빙판 길을 조심조심 피해 발걸음을 내딛다보니, 초긴장감로 인해 맑고도 고요한 즐거움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공원 근처에 위치한 높은 콘크리트 아파트가 만드는 응달진 곳을 벗어나니 공원의 모습은 고요하고 맑은 햇살이 내리쬐는 겨울 풍경이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는 겨울 옷을 껴입은 댕댕이와 그 댕댕이를 옆에서 지켜보며 기다리는 나이지긋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들의 댕댕이, 촉촉한 까만 코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땀이 살짝 날 정도로 빠른 걸음을 하여 공원을 바삐 걸은 후 맛보는 상쾌한 행복감은 두 다리가 멀쩡해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몇년 동안 나에게 '걷기'는 분명 어떤 치유같은 것이었지만 무릎 연골이 닳아지는 댓가를 치루지 않았을까 걱정이 된다. 병원에 가서 소중한 무릎의 상태를 알아보야야 하는데 자꾸 게으름을 피운다.(병원 가는 것이 참 싫다) 지금 내겐  적당한 걷기와 근육운동의 병행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알게 된 사실은 행운이다 싶다. 

글을 읽다가 '그릇된 맞장구'란 단어를 발견하였다. 누군가의 관계에서 소위 '리액션'이라며 부드러운 혀로 내뱉었던 '말'의 '엉뚱한 결과(?)'는, 앞뒤 상황, 맥락은 잊혀지고 본의 아니게 상처로 남게되는 사실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나의 단어의 수는 더 적었어야 하며, 감정적이지 않았어야 했고 더 긍정적이며 장점을 칭찬해주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상호 주고 받을 수 있는 건강한 대화를 했어야 했다.'  

진실하다며 '필터'를 거치지 않고 급하게 내뱉었던 솔직했던 순간들, 친하다며 '선'을 넘었던 부끄러운 순간들을 가끔 나는 후회한다. 반면에 내안에 상처를 남긴 타인의 그릇된 리액션도 역시 자신의 책임에서 자유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기로 한다. 상대방의 말을 더 '침묵'하고 '인내심'을 갖고 잘 들어주는 리액션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침묵'하고 듣기만 하다 내 이야기는 언제할지 '조바심'이 나겠지만,  좋은 사람은 분명  좋은 귀를 갖고 나의 안부를 물어 볼 것이다. 

햇살처럼 환하고 따스한 에너지가 있는 미완성의 초상화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아침이다. 부족하고 모질하지만 천천히 나의 속도로 원하는 초상화를 그리면 되는 것이다. 기미 주근깨를 없애준다는 기적같은(?) 쿠션을 얼굴위에 토닥토닥거리다 아직도 빛나는 눈동자와 마주쳤다. '넌 무엇을 원하니?' '...'근육부자! ㅋ 그리고 마음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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