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이불이 되어
커다란 나무들의 반그늘 아래 혹은 아파트 애매한 빈 땅을 채우고 있는 '맥문동'(Liriope)의 겨울나기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무심히 지나치곤 했는데 귀한 겨울의 초록으로 기꺼이 넘어진 맥문동의 모습에 깜짝 놀래서 발걸음을 멈췄다.
나의 정원에 직접 땅을 파고 심었던 나의 노란빛이 섞여있는 리리오페가 생각났다. 집 현관 앞의 반그늘이 지는 땅에 심었던 리리오페는 6월과 7월에 작고 귀여운 보라색 꽃을 들어올리고, 가을이 되면 꽃이 지고 난 자리에 까만 구슬을 방울방울 달고 있었던 모습이 기억난다. 겨울이 다가오면 푸른 잎을 사정없이 쳐주었기에 맥문동의 겨울나기를 알지 못했던 모양이다.
마트에 장을 보고 오는 길에 초록으로 모두가 누워있는 모습에 웬일이지 싶었다. 여기저기 푸른 리리오페가 겨울 추위에 쓰러져 있는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누워 쓰러져도 꺽이지는 않았다. 추운 날씨에 땅속의 뿌리가 얼지 않도록, 온 몸을 넘겨 서로를 덮어주는 맥문동의 겨울나기 모습이다. 한 방향으로 모두가 누웠구나, 서로가 이불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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