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듣고 착하게(?)살아보려고 했더니, 적당히 듣고 살으란다~~~' 시력이 남부럽지 않게 좋았던 나는 '노안'이 찾아오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잔 글씨를 읽으려면 어김없이 '돋보기'가 있어야 하고 노안 그 슬픔은 그렇다치고, 평소 잘 듣고 살고는 있나 청력에 대한 살짝 의문이 들기도 했다.
지금에 이르러 젊은 시절과 달라진 시력처럼, 피부가 주름지고 탱탱함을 잃어가는 것처럼, 듣는 것 또한 달라질 것인데 왜 듣는 능력 또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의심하지 않았을까. 우연히 발견하게 된 '좌우 청력의 차이'에 당황했다. 또래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고 '그러려니'하는 마음으로 열흘 이상의 시간을 보냈나 보다. 지난번 비염으로 인한 후유증이었을까?
어떤 적당한 황금 시간을 넘겨 후회하는 일 없게 전문가가 있는 동네 병원엘 가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러려니'하는 마음을 누르고, 장마가 소강상태로 화창한 '오늘이 적당한 날'이라며 동네 병원에 갔다. 간단한 청력검사는 예상대로 좌우청력이 다름을 보여 주었다. 믿음이 가는 의사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시설이 첨단화된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는 것도 좋을 듯 싶어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평소 같으면 운동화를 신고 양산을 쓰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조바심과 불안함에 버스를 타고 첨단 시설이 있는 병원을 찾아 갔다.
'별 일이 아니어야 할텐데......'
종합병원에나 있을만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 터라, 사람이 동네병원 보다 사람들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이런저런 정밀한(?) 검사를 마치고나서 새로 만난 의사님의 반응은 불안하다. 처음 보는 환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이유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방문 이유도 제대로 적지 못하는 의사 선생님은 애매함과 막연함을 가지고 설명을 하신다. 정신줄은 내가 잡아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왼쪽과 오른 쪽이 별 차이가 나지는 않는데...전 기록이 없으니 청력이 갑자기 떨어진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젊은 사람들의 청력은 확실히 아니다......
제 나이때치고 청력은 어떤 것인가요? 어떤 기준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인가요? 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고 살려고 합니다만......'
과거 청력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 비교할 자료가 없는데 어떤 치료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보편적인 자료에 의해 치료를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제 나잇대 사람들과 비교해서 심각합니까? 전문가이신 의사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질문을 한다는 것은 '불안함'이다.
'더 생각하겠노라'며 낯선 병원에서 빠져나왔다. 청력검사결과지를 출력하는 과정에도 과한(?)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돈을 지불하고 검사를 해서 결과를 얻었는데, 그 결과를 출력하는 과정에 도장 하나 찍어주면서 또 댓가를 요구하는가. 다른 병원에서 또 다시 검사할 것 예상되는 일임에도 혹시 몰라 출력을 해달라고 했다.
잠 못자고 고민할 바에 검사 결과지를 가지고 신속하게 동네병원 친숙한 선생님을 찾아 뵈어야 한다. 동네 믿음직스러운 의사 선생님의 판단은 슬기롭다. '자연스런 변화'로서 수용하는 쪽으로 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삐걱거리며 닳아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죽지 않을 것처럼 살지 말자며 자신을 위로해 본다. 별 일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