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ne 30, 2025

어질어질~~~

고객센타에 전화를 걸어, 상담원과 상담을 하며 방문 써비스 예약을 잡고 싶었으나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AI 시대'는 참으로 비인간적이다. 

대기자가 많다고 해도, 홈페이지 안내를 하여도 아날로그적으로 전화기를 들고 기다렸다. 참고 인내하며 '상담원'이 나오기를 기대하였다. 하지만 전화는 길게 인해했던 마음이 허무하게 독단적으로 끊김을 당하며 무시 당했다. 다시 포기하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보통은 상담원이 나오는데......두번 당하고 나서야 정신줄을 잡고 안내 문자에 소개된 링크를 누르고 인공지능이 하란대로 적응(?)을 해봤다.

당연한 변화이기에 수긍을 하며 적응하고 내가 변화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왠지 씁쓸하다.  외국에 살면서 불편했던 일 하나가 '써비스 센타'에 전화를 걸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서투른 영어로 문제를 서술하는 일은 아쉬운 마음의 '을'이 되는 일로 왜 그리도 말문이 막히던가.  소비 활동의 주체로서의 어눌한 영어는 소통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소통은 참으로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같은 언어를 쓰는 이곳에 있는 지금의 나는 고객센타에 전화를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전보다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아무리 기다려도 상담원 사람이 쉽게 나오질 않는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같은 말만 되풀이 하며 전화는 끊긴다ㅠ 어질어질~~



사람을 믿어?

 6월의 마지막 날의 월요일 아침은 뭐라 특별히 쓸 말이 없다.  주말 동안 몸무게 숫자가 늘고 또 뭐가 있었드라~~~ 월화수목금의 현실로 돌아오기엔 약간 멍한 기운이 있다. 

 '오징어 게임3'를 수면 시간을 어겨 가면서까지 하면서  완주를 해버렸고, 먹을 것이 없다며 발품을 팔아 어시장에 가서 초코렛 색의 살아있는 오징어회를 떠와 무와 무를 함께 넣은 초고추장 무침을 만들어 흡입하기도 하였다. 그닥 신선하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은 오징어 게임3를 보고 난 후 '실망감'이 있었다. 기대 하지 않고 봤는데도......흥미진진하지도 않고 감동이 없다. 맨 마지막에 세계화된 오징어 게임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잔꾀까지 부리지 않는가. 포기하기엔 아까운 브랜드가 된 것이다. 

K드라마의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운, 오징어 게임 시리즈의 마지막(?)을 완주 한 기념으로 오징어를 먹어주는 것도 좋을 듯 싶다는 어거지(?) 명분을 만들어 어시장으로 향했다. 

식초와 레몬까지 들어갔는데 왜 그 팔팔하게 물총을 쏘며 저항하던 오징어는 질긴 것일까? 치아가 약해진 것인가 아니면 오징어를 밀어넣던 자동 기계칼의 넓이 조절에 실패한 탓인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강직함'이다.  원래 계획대로 오징어를 살짝 데쳐서 무와 오이에 초무침을 해먹을 생각이었지만,  날 것의  초코렛 오징어의 식감은 내 치아가 감당하기 어렵게 질겼다.

검색을 해보니, 콜라겐 함량이나 근육 조직의 특징에 따라, 신선하면 할수록 질기다고 한다. 큰 놈으로 골라서 구입을 했으니, 더 근육이 튼튼하고 질겼던 모양이다. 슬기로운 상인은 싱싱한 오징어를 더 얇게 썰어서 소비자의 치아를 보호했어야 했다. 

'오징어게임 3'에서 남는 대사는 '사람을 믿어?'란 질문이다. 더 폭력적이고 잔인한 전개를 통한 자극적인 요소들은 이상하게 평면적이며 뻔했지 싶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희생하는 장면 또한 '공감' 하기 어려워서 몹시도 거슬렸지 싶다. 몰입을 방해하는 착한 전개(?)에 실망스러웠다. 극한 상황에서 감당해야 할  '선택'은 자신의 유익을 위할 수 밖에 없질 않는가. 어쩌면 그것이 더 인간적일 것이라는 나쁜(?) 생각을 오히려 하게 되었다. 

난 오징어를 파는 가게 사장님이 몇 천원 깍아주는 호객용 가격에 그만 중요한 질문 하나를 묻질 못했었다. 내 노후한 치아가 감당할 수 있을지를. 물총을 쏘며 저항하는 오징어의 몸부림 프러세싱을 보며 싱싱하니 부드럽고 고소하게 감칠 맛을 상상했다. 내 탓이다 ㅋ 다음엔 오징어를 살짝 데친 오징어 숙회를 하기로 한다. 

Friday, June 27, 2025

바다의 길

 


장마비가 잠시 머뭇거릴 때, 얼른 바닷가로 달려가 석양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었다. 기분도 그닥 좋지 않고 탁 트인 바다로 달려갈 때가 된 것이다.  장마의 흐린 기운은 황금빛 석양을 볼 수 있다는 확신을 빈약하게 하고 큰 기대도 갖지 않기에 충분했다. 기분이 꿀꿀거릴 땐, 드넓은 바다로 달려야 한다~~~
 
밖으로 나가면 '음식'이 가장 고민거리이다. 바닷가 식당은 대부분 해물 칼국수 식당 아니면 게장정식으로 난감하다. 불안한 마음으로 한참을 여러 식당을 지나쳐 새로 생긴 식당 한 곳을 발견하였다. 새로 연 식당이니 '처음의 마음'이 있을 것이라 여기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나 보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반찬이 신선하고 간도 적당하고 맛있지 않는가. 바다에서 건져진 신선하고 고소한 생선 구이를 비린내와 누린내 없이 정말 잘 먹었다. 행운이다 싶다. 착한 식당을 우연히 알게 된 것은 꿀꿀한 날에 주어진 분명 위로같은 행운임에 틀림없다. 

배가 부르고 기분이 좋아졌지 싶다. 이제 노을이 지는 바다에서 평화롭게 거닐면 금상첨화인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장마의 흐릿한 기운은 더 짙어졌다. 그러나 그 구름 뒤에도 태양은 있는 법. 혹시 모를 일이다. 뿌연 시야 사이로 붉은 태양의 기운이 보였다 사라졌다~~~ 허옇게 질린 하늘에서 아름다운 석양을 기대하지는 않았기에 흐릿하지만 붉은 태양의 기운은 더 고맙기 그지 없었다. 

바닷가 카페와 술집들은 이국적이다. 그리고 한산하다. 이리도 아름다운 해변의 카페에 사람들이 바글거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들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다. 뿌연 구름의 기세가 훨씬 세다! 어디선가 생 음악이 들려와 따라 걸어갔더니, 나이가 있는 동네 밴드 몇 명이 모여 귀에 익은 오래된 노래를 부르며 리허설을 한다. 황금빛 노을을 감상하며 노래를 듣는 낭만적인 풍경을 상상해 본다. 사람들이 너무 없다!

사람들이 없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바다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적적한 것 같기도 하고~~~바다의  물이 갈라지면 '목섬'에 갈 수 있는 길이 생긴다고 한다. 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길처럼. 내게 무슨 그런 행운이 있을거나하며 내가 경험할 '기적'을 의심했다. 하지만 찰랑거리는 바다가 빠르게 양쪽으로 서서히 갈라지며 '목섬'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지 않는가. 찰랑거리는 물 밑으로 길이 보여서 금방이라도 뛰어가면 금방이라도 다을 것 같았다. 그래서는 안된단다. 바닷가를 왔다갔다하며 겸손하게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기적처럼 바다가 갈라지고 바다보다 높은 길이 보였다. '꼭 지친 나를 위한 선물을 준비한 것처럼' 바다의 길이 보였다.ㅋㅋㅋ 




Thursday, June 26, 2025

여럿이 함께 밖으로

어린 학생들이 함께 줄넘기를 하는 수업에 참여하면서, 가물거리는 아주 옛날, 집  밖으로 나가 놀던 어린시절의 '나'와 만났다. 밥 먹으면 집 밖으로 나가 '자연친화적'으로 놀았던 촌스러운 나를 만난 것이다. 

 맨손으로 나가 적당한 돌멩이를 주워 비석치기를 하고,  흙과 풀을 가지고 밥을 짓고 반찬을 반들어 소꿉장난을 하고, 나뭇가지를 주워 시골의 넓은 마당에서 자치기를 하며, 콩을 넣은 오재미 놀이를 하며, 검은 색 고무줄을 이어 고무줄 놀이를 하였고, 쪼그리고 앉아 자잘한 돌을 모아 손바닥이 닳아질 정도로 공기놀이를 하고, 옷삔에 끼워진 시커먼 전리품을 가슴팍에 더 매달기 위한  전투적인 검은 삔 따먹기를 하고, 동그란 딱지 따먹기를 하고....나의 어린 시절은 집 안에서 공부하며 앉아있지 않았다. ㅋ

공터가 제법 넓게 있던 이웃 동네에 발품을 팔아 원정을 가서 놀았던 함께 줄넘기 했던 기억은 좀 더 단련된(?) 기술이 필요했던 놀이로 기억 난다. 아이들이 바글거리며 모여서 새끼줄이나 밧줄을 잡고서 함께 줄넘기를 했던 그 가슴들과 발들이 함께 뛰던 순간! 넘어가는 줄에 한명 한명 차례로 뛰어들어가 리듬에 맞춰 뛸 때 얼마나 스릴과 재미가 있었던가.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져 친구들이 각자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되어서야 '저녁밥' 먹으러 집안으로 들어갔던 그 시절의  나는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면 가슴이 뛰질 않았다. 뭘 모르는 지 몰랐던 아이, 하긴 모든 것이 배울 것이라......  어린 나는 그냥 의무적으로 숙제를 하고, 밖에서 뛰어노는 것만큼은 신나게 잘했던 것 같다. ㅋ 

돌이켜보니, 그 뛰어놀았던 활동적인 에너지가 헛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비교적 튼튼한 몸을 가진 건강한 사람으로 잘 성장하지 않았는가. 놀이를 통해서 알게모르게 배우고 깨달은 것이 있다. 규칙을 잘 지키는 법, 수많은 실패를 극복하는 법!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열심히 연습하고 익히면 '나의 것'이 되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익히지 않았는가. 

가슴 뛰는 에너지를 담고 있던 '몸'이 늙고 있다. 신나고 즐거운 느낌보다는 차분하고 고요한 기운이 드는 그런 시간, 나는 밖으로 나가 함께 어울리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몸의 근육뿐만아니라 마음의 근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에 자꾸 집안에 그냥 평화롭게 있고 싶다는 것, 이것이 문제라면 문제이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



Tuesday, June 24, 2025

바쁜겨?

 그냥 푹신한 쇼파에 푹 주저앉아 쉬고 싶은 날이 있다. 음습하게 숨겨놓은 과자봉지를 기억하며 한참을 망설였다. '한번만!' 결국 건강에 유익하지 않고 금지해야 할 과자봉지를 들고 타인의 드라마가 들어 있는 검은 네모, TV를 켤 때가 있다. '바사삭 바사삭' 고소하고 맛있는 소리를 먹으며 상상력을 자극하며 타인들의  이야기를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입에 넣는 과자는 너무나 빠르게 그 고소함은 소진되며, 타인의 신선하고도 기발한 상상의 세계는 감당하기 어렵거나 너무 지루하다.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다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거나 나처럼 피곤할 것이라며 조용히 있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친구의 이름이 생각나기도 하고, 며칠 동안 전화 없는 친구도 생각나고, 무심한 이름도 생각나고......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들이 꾸물거리다 가라 앉았다.

다들 바쁠겨~~~불안함을 털어내려고 다들 바쁠겨~~~ 아니야, 나름 의미를 찾으려고 바쁜겨~~~ 바쁜 것은 좋은 것이여~~~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별 일?

 ' 잘 듣고 착하게(?)살아보려고 했더니, 적당히 듣고 살으란다~~~' 시력이 남부럽지 않게 좋았던 나는 '노안'이 찾아오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잔 글씨를 읽으려면 어김없이 '돋보기'가 있어야 하고 노안 그 슬픔은 그렇다치고, 평소 잘 듣고 살고는 있나 청력에 대한 살짝 의문이 들기도 했다.

지금에 이르러 젊은 시절과 달라진 시력처럼, 피부가 주름지고 탱탱함을 잃어가는 것처럼, 듣는 것 또한 달라질 것인데 왜 듣는 능력 또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의심하지 않았을까. 우연히 발견하게 된 '좌우 청력의 차이'에 당황했다. 또래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고 '그러려니'하는 마음으로 열흘 이상의 시간을 보냈나 보다. 지난번 비염으로 인한 후유증이었을까?

어떤 적당한 황금 시간을 넘겨 후회하는 일 없게 전문가가 있는 동네 병원엘 가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러려니'하는 마음을 누르고, 장마가 소강상태로 화창한 '오늘이 적당한 날'이라며 동네 병원에 갔다. 간단한 청력검사는 예상대로 좌우청력이 다름을 보여 주었다. 믿음이 가는 의사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시설이 첨단화된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는 것도 좋을 듯 싶어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평소 같으면 운동화를 신고 양산을 쓰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조바심과 불안함에 버스를 타고 첨단 시설이 있는 병원을 찾아 갔다. 

'별 일이 아니어야 할텐데......'

종합병원에나 있을만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 터라, 사람이 동네병원 보다 사람들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이런저런 정밀한(?) 검사를 마치고나서 새로 만난 의사님의 반응은 불안하다. 처음 보는 환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이유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방문 이유도 제대로 적지 못하는 의사 선생님은 애매함과 막연함을 가지고 설명을 하신다. 정신줄은 내가 잡아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왼쪽과 오른 쪽이 별 차이가 나지는 않는데...전 기록이 없으니 청력이 갑자기 떨어진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젊은 사람들의 청력은 확실히 아니다......

제 나이때치고 청력은 어떤 것인가요? 어떤 기준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인가요? 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고 살려고 합니다만......'

과거 청력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 비교할 자료가 없는데 어떤 치료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보편적인 자료에 의해 치료를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제 나잇대 사람들과 비교해서 심각합니까? 전문가이신 의사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질문을 한다는 것은 '불안함'이다. 

'더 생각하겠노라'며 낯선 병원에서 빠져나왔다. 청력검사결과지를 출력하는 과정에도 과한(?)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돈을 지불하고 검사를 해서 결과를 얻었는데, 그 결과를 출력하는 과정에 도장 하나 찍어주면서 또 댓가를 요구하는가. 다른 병원에서 또 다시 검사할 것 예상되는 일임에도 혹시 몰라 출력을 해달라고 했다. 

잠 못자고 고민할 바에 검사 결과지를 가지고 신속하게 동네병원 친숙한 선생님을 찾아 뵈어야 한다. 동네 믿음직스러운 의사 선생님의 판단은 슬기롭다.  '자연스런 변화'로서 수용하는 쪽으로 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삐걱거리며 닳아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죽지 않을 것처럼 살지 말자며 자신을 위로해 본다. 별 일 아니다!



Sunday, June 22, 2025

착한 메아리

 후덥지근한 습기를 날리고 청량한 바람을 주는 '에어컨'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장마의 무거운 습기를 더 이상 선풍기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만 그칠 것 같지 않은 긴 비에 에어컨을 틀고 말았다. 

무거운 구름이 요란하게 비를 뿌리고 바람이 뿌연 것들을 불어버린 후, 하늘은 어느 고급진 휴양지의 하늘처럼 맑고 깨끗하다.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오래전 처음으로 각인된 천국의 고급진 하와이의 하늘 풍경이 생각났다.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될 날이다. 장마가 잠시 남쪽으로 후퇴한 틈을 타, 얼른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어 젖히고 갖힌 공기를 내보내고 햇살의 기운을 누려본다. 

며칠 후, 다시 장마가 올라온다고 한다. 

요즘 어린 학생들은 '상황에 알맞은 인사말'을 교실에서 배우고 있는 중이다. 어떤 상황이라도 당황하지 않고 품위있게 '감정'을 잘 다스리는 여유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날이 후덥지근하고 불쾌지수가 높을 때일수록 여유있는 쿨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 명심하자.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고, 아쉬울 것 없이 아니면 말고의 수용하는 자세, 일상의 삶속에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하고, 어제의 나보다 지금 여기의 나에게 집중하고  열린 마음과 긍정적인 마음을 장착하는 태도를 갖고자 한다면, 에어컨을 켠 것 같은 쿨한 마음이 되지 않을까.

내 마음 속에 청량한 바람 에어컨을 켜두기 위해서, 두 귀로 잘 듣고 말을 조심조심 아껴씁시다^^ 무더운 여름날일수록 말 한마디가 착하고 시원한 메아리가 될 수 있도록.


Friday, June 20, 2025

옳은 일

 공동주택에서 살면서 제일 골치가 아픈 일은 '누수발생'일 것이다.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물기가 슬금슬금 집안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일은 참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인불명의 누수로 인한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이웃을 생각하면 신속하게 서둘러 협조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사람들은 기본적인 '양심'을 챙길 시간도 없이 바쁜 모양이다. 귀찮지만 응당 협조를 해야 하는 것이 분명 옳은 일인데 말이다.  

관리실의 설명을 듣고 협조를 하겠다고 했는데 왜 불안해지는 것일까. 다들 문도 열어주지 않고 피하는 일을 혹시 쉽게 바보같이 귀찮음을 허락한 것 아닐까.  문제해결을 위해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고 그 뒷처리를 지켜보고 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 감당해야 할 그 무언가의 무게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옳고 착하게 사는 것은 때때로 귀찮고 피곤한 일이기에 말이다. 

옳은 결정을 한 것이다. 도움을 요청하면 귀찮더라도 협조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당연히 옳다. 이웃의 불행을 보고도 협조하지 않은 사람들의 추한 모습을 배워서는 안된다. 옳고 그름의 가치관도 없이 이기적인 결정을 하는 사회라고 생각하면 사는 것이 비참해진다. 나라도 똑바로 살자~~~

Thursday, June 19, 2025

건강한 일상

 골고루 골고루~~~ 지금 여기 나의 삶에, 평범하고 건강한 '일상'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선 참으로 필요한 낱말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골고루'란 말은 고루고루의 준말로, 차별없이 균등하게 특정 음식을 편식하지 않고 영양성분을 다양하게 먹는 균형잡힌 식단을, 운동도 어느 부위에 편중되지 않게 다양하게 구석구석 움직여 주어야 하는 내게 절실히 요구되는 낱말이다.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장마철이 시작되었다. 슬그머니 들어선 습기에 침략당한 흐느적거리는 정신줄을 잡아보는 아침이다. 때때로 마음 속에 제습기를 틀어 원치 않는 부정적인 습기를 제거해야 한다. 

금요일 아침으로,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다. 몸에 모든 것이 달라붙는 날이다. 껴입은 옷들과 악세서리를 벗겨내고 단순한 차림을 하였다. 미리 현관 앞에 빗물이 쉽게 스며들지 않는 신발과 커다란 장우산을 챙겨두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백가방을 몸 앞으로 옮겨 걸어야 할 것이다. 우산을 써도 소용없는 비바람이 불면 어떻게 하지? '후딱' 빗속을 뚫고 집으로 향하면 될 일이다. 살다보면 비에 젖는 그런 날도 있지 않는가.

날씨가 찐덕거리며 급급할수록, 타인을 향한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 한 마디'를 조심해야 한다. 더 침묵하고 더 침묵하고~~~ 내 이름에 들어있는 부드러운 '순'이란 글자대로, 순한 마음 품고, 순하게 귀를 열고,  순한 말을 하고~~~ 공자님 가라사대,'더불어 말을 나눌 만함에도 말을 나누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함께 말을 나눌 처지가 아닌데 말을 나누다 보면 결국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도 잃지 않고 말도 잃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툭 내미는 타인의 말 한 마디가 들러붙지 않도록, 마음 속에 제습기 틀며 보송보송한 하루를 잘 보내보자며^^ 

Wednesday, June 18, 2025

있으면 있는 대로

 

어린 학생들이 '더''가장'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비교'의 기초 개념을 배우고 있는 교실에서 문득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란 말이 생각났다. 

비교하고 경쟁하며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는 것은 알지만 '비교'라는 낱말은 썩 기분 좋은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더 공부 잘하고, 더 키가 크고, 더 날씬하고, 더 돈이 많고, 더 예쁘고...등등의 비교는 긍정적으로는 자극제로서 '동기유발'도 하는 면도 있지만, 유익하지 않은 우월감과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심리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의 세포들은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마음의 고요한 평화'와 '행복감'을 누리기 위해선 '자신의 가치관'과 '기준'이 중요한 것이다. 행복의 잣대를 어디에다 둘 것인지 물어야 한다. '무엇이 중헌겨?'라는 물음을 멈춰서는 안된다.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는 '비교는 행복을 훔쳐가는 도둑'이라고 했다고 한다. 비교해서 얻어지는 것은 초라한 주제파악이나 질투와 시기이며, 이제 질투와 시기로 동기유발의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시키기엔 역부족인 나이가 되었다^^

이제 나이가 드니 기준이 바뀌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나가는 사람의 납작한 뱃살과 튼튼한 허벅지와 자신의 것을 비교하며 타인을 부러워하게 된다. 친구들의 손자손녀가 부럽고, 고독할 시간 없이 바쁜 친구가 부럽다. 언젠가부터 타인과의 비교는 자신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으로, 피곤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 버렸다. 비교하지 않고 꽃처럼 피고 지면 되는 것이다. 넌 너대로 난 나대로~~~꽃처럼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다가면 되는 것이다. 


Tuesday, June 17, 2025

후딱~~~

아침부터 잡곡밥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릇에 소분하여 냉장고에 집어 넣어야 한다. 밥이 다 되었다고 밥냄새를 하얗게 품는다. 달콤한 밥 냄새......

마늘을 까고, 일용할 먹거리를  준비하느라 어제 오후내내 가사노동을 해야 했다.  앉아서 마늘 껍질을 벗기자니 '등'이 아프고 손가락이 아팠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것이라, 힘들어도 껍질 벗은 하얀 마늘을 빻아 냉동고에 집어 넣어야 했다. 집안 일이라는 것은 조금 게을리하면 바로 헝클어진 일상의 그림을 만드는 것이라, 매일의 '성실함'이 필요하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가. 굳건한 의지로 식단을 바꾸고 착한 생활(?)을 거의 일년 정도 유지하고 있지만, 때때로 비집고 들어오는 '탄수화물'의 유혹에 취약하다. 먹탐이 많은 나는 '적당함'을 찾는 것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오랜만에 허한 부드럽고 고소한 빵은 정말 맛있다! '오늘 하루만 먹으면 안될까?' 때때로 맛있는 빵을 먹고 살아도 되는 사람들이 무지막지 부럽다. 

그러니 얼른 도망가야 한다, 후딱~~~

Monday, June 16, 2025

길 바닥에서

 수고롭게 땅을 파서 씨를 심고 물을 주고 벌레를 잡는 등등의 행위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이맘 때, 길을 걷다 작고 귀여운 여름 나팔을 부는 분홍 나팔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무더운 여름날에 그저 누릴 수 있는 감사함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도, 분홍 나팔 꽃은 행복한 분홍색이다. 

구석진 곳에서, 길 바닥에서 아무렇게 사는 것 같은  분홍 나팔꽃이라도 시련과 좌절이 없겠는가. 바닥에서 시작하여 여리고 부드러운 넝쿨로 여기저기 더듬고 감아 올라, 꽃을 피우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란 말인가. 분홍 나팔꽃이 노래를 한다. 힘내자^^ 


Sunday, June 15, 2025

아직 선풍기

 벌써 에어컨을 틀 수는 없다. 일찍 도착한 장마로 인해 온 집안이 급급하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가득찬 아침이다. 지금은 6월 중순으로 아직은 선풍기를 틀며 몸에 달라붙는 습기를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에어컨의 청량한 바람으로 습기를 제거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버티고 싶다.  무덥고 뜨거운 긴 여름의 처음 시작엔 그동안 누적된 경험치에서 비롯된 당황하지 않은 '여유'라는 것이 조금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직은 선풍기로 견딜 수 있다.' 에어컨 맛을 쉽게 허락한다면 길어진 여름 내내 에어컨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의 시작에 쉽게 항복하며 에어컨을 켜고 싶지 않다^^

Thursday, June 12, 2025

마늘

비싸지 않은 것을 찾아 보기 힘든 시기라서 각오를 하였지만, 마늘 반 접 값에 놀랐다. 마늘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는 일이라서, 틈 나는 대로 마늘을 구입해 베란다에 두었더니 마늘 냄새가 존재감을 알리며 그 냄새가 진동이다.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 빨리 도착한 이른 장마 소식에 서둘러 마늘 껍질을 벗겨 빻아서 냉동고 안으로 집어 넣어야 하는 커다란 숙제가 주어진 마음은 분주하다. 이럴 땐,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을 떠올리는 것이다. 냉장고 문을 열고 코끼리를 넣고 문닫고~~~

오늘은 반드시 마늘의 신호에 응답을 해야 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마늘을 담아둔 박스를 가져와서, 흙이 묻은 뿌리를 잘라내고, 알알이 쪽쪽이를 만들어 물에 조금 불려서 껍질을 벗기고, 물기가 빠진 하얀 마늘을 분쇄기에 넣어 빻아, 봉투에 넣어 냉동고에 집어 넣으면 되는 일이다. 조금은 귀찮고 냄새 나는 일이지만, 일을 마치고 나면 아주 뿌듯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오늘은 목요일, 목이 터져라 웃고 싶은데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고, 일자목 생기지 않게 슬기로운 집안 일을 할 수 있는 지혜를 갖기를 스스로에게 요구해 본다.  손에 장갑 끼고 마늘 껍질 벗기는 것 잊지 않기로 하고......

Wednesday, June 11, 2025

킁킁 장미향기

 내가 언제부터 꽃구경을 가던 사람이 되었는가 자문해 본다. 평일 오후인데도 붉은 휴일처럼  일상의 일거리들을 뒤로 하고, 한시간 넘게 차를 이동하여 장미가 피어있다는 공원으로 향했다. 

늘상 즐겨가는 나의 동네 공원과는 차이가 있다. 계획하고 물질을 들여 만든 공원은 정갈하다.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토길이 군데군데 있기도 하고, 관리하기 힘들다는 잔잔한 작은 호수도 있고, 여러 종류의 장미들이 만발하고 기분 좋은 장미 향기가 가득하다. 

킁킁 장미 향기~~~

붉은 장미, 노란 장미, 주황색 장미, 핑크색 장미, 하얀 장미 등등의 여러 장미를 보면서 역시 난 내 정원에 땅을 파고 뿌리를 심어 주었던 장미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어김없이 엄마의 담장에 올려진 핑크색 넝쿨 장미까지. 왜 발품을 팔아 장미을 보러 온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엄마는 돌아가셨지만 장미는 계속 피어나 엄마 생각과 나의 장미들의 기억과 만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6월 초순의 날이지만 태양은 뜨겁다. 아무리 양산을 쓰고 걷는다해도 대낮에 장미 공원을 걷는 일은 '느닷없이' 피곤하다, 이런저런 폼을 잡고 사진을 찍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 햇살이 너무 뜨거운 탓일까. 아무래도 전날에 잠을 설친 이유일 것이다.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에 장미꽃잎들이 탈색되는 것 같기도 하였다. 해가 지는 더 늦은 시간에 장미 정원을 걸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잊지못할 에피소드 한 개가 생각나 웃는다.

 오전 출근시, 허리에 '챔피언 벨트'라고 하기도 했던 징박힌 넓은 허리띠를 하고 학교에 갔더니, 특이한 허리띠 모습을 보고 어린 친구들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반응을 하였다. '선생님, 이순신 허리띠를 하셨네요^' 나를 웃게 만든 어린 친구들의 관심과 호기심은 그 고급진 공원의 장미향보다 오래 남을 것 같다^^



Tuesday, June 10, 2025

어쩌면 해피엔딩

 엘리베이터 안에서 더 주름진 어르신이 웃으며 더 젊은 나를 보며 '이쁘다'며 칭찬을 하신다. '감사합니다'란 말로 칭찬에 대한 답을 하였다. 오랜만에 듣는 타인으로부터의 칭찬이었을 것이다, 특히 외모로 ㅋ.  검진 결과를 들으러 병원으로 향하던 불안함과 긴장감이 이웃의 달콤한 한 마디에 사라진다. 언제나 '칭찬'은 좋은 것이다. 

종합병원엔 항상 사람들이 많다. 서둘러 병원에 일찍 도착하였기에, 당연하게 한 시간을 인내하였다.  환자진료로 밀린 시간은 예약된 시간과 상관없이 양해와 배려를 요하는 것으로 다시 내게 인내심을 요구하였다. 두 시간 넘게 대기실 의자에 앉아 기다리자니 이러다 없는 병도 생기겠다는 생각과 '정말 아프지 말아야겠다'는 어리석은(?) 다짐을 하게 되었다. (누가 아프고 싶어서 아프겄어요?)

다행히 '결과가 안정적이다'며 의사 선생님께서 검진의 횟수를 줄여 주신다. 병원을 오가는 일은 참 피곤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병원과 친해질 수 밖에 없으니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 들이기로 한다. 

한국의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제목처럼 매 순간 더 긍정적인 생각이 필요하고, 하루하루를 더 선하고, 더 즐겁고, 더 밝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나의 삶도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Monday, June 09, 2025

summer is here

 집안의 창문을 이쪽저쪽으로 다 열어젖히고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지금은 푸르디 푸른 여름이다. 

주름지고 노쇠한 아버지의 넋두리가 가슴을 무겁게 한다. 시골에서 유유자적한 소박한 삶은 외로움과 고독을 이겨낼 수 있는 '건강'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참으로 고독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외로움과 고독의 시간인 노년의 시간이 어김없이 나에게도 찾아 올 것이다. 외로움이 깊어져 우울감이 쉽게 찾아 올 것이고, 근육이 다 빠져나간 노쇠한 몸은 기력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질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두려움이다. 

미래의 '두려움'을 앞당겨 슬퍼할 시간에 '건강관리'라는 것을 더 철저히 해야 할 시간이기도 하다. '고독'을 이겨낼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 혼자있는 시간과 함께 있는 시간의 '균형'을 슬기롭게 찾아내야 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기로 한다.

Sunday, June 08, 2025

여행의 짠맛

 하얀 밤꽃 향기가 진한 6월에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나'라는 사람은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음식 때문에 여행의 맛이 짜디짜게 느껴지는 것은 음식에 대한 '진심'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름지고 달달한 음식을 피하며 여행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때때로 새로 생긴 굳은 의지는 힘을 잃고, 오래된 습관을 따라 차 안에서 심심풀이 간식을 몸안에 집어 넣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여행이잖아~~~'

부지런히 여행전 건강한(?) 간식거리를 구입하고 좋지 않은 음식을 피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챙겼었다. 좋은 식당과 좋은 음식을 선택하는 일은 정신 바짝차린 슬기로움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집밥의 건강한(?) 식단에서 벗어나 바깥 음식을 흡입하며 자신에게 허하고 싶은 '즐거움'이란 것이 있다. 댓가를 치루었지만 실망스럽게도그 모든 것이 요상하다.

아무리 '고물가 시대'라고 하지만 음식점의 음식은 짜고 밑반찬은 싱싱한 채소 나물 하나 없이 소금 절인 장아찌류이다. 돈을 주고 소금물을 사서 몸속에 집어 넣는 기분을 느끼게 하다니 참으로 몹쓸 식당의 맛은 짠맛이다. 밝고 깨끗한 조명에 이끌려 불나방 처럼 끌려 들어갔을까. 게다가 가족을 동반한 몇 팀이 식당 안에 앉아 있는 모습은 '괜찮겠지' 싶었다. 모든 것이 짠맛이다. '안녕히 가시라'는 소금기 없는 친절한 점원의 인사가 참으로 이상하고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더 슬기로운 선택을 했어야 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장거리 여행보다는 근거리 당일치기로 잠깐 바깥 바람을 쐰다더니, 입증된 식당에서 외식을 하고 아니면 귀찮더라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녀야 할 모양이다. 여행 중에  바깥 음식을 먹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Wednesday, June 04, 2025

Look Up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과정 속에 '심리적인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살펴 언행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look up, think, act'으로 살피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셀프 교육 들어간다. 

 처치가 급한 과일들과 싱싱한 과일을 교묘한 비율로 섞어 판매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려니 하면서도 종종  상한 과일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을 때면 인간에 대한 씁쓸한 맛이 느껴진다. 고객과의 '신뢰'를 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이다. '싱싱하고 맛있다'는 말을 순진하게 믿고 지갑을 연 내가 슬기롭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쿵저러쿵 따지며 계몽(?)하는 과정은 피곤하다. 싫으면 그 가게에 가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바뀌는 수밖에 없다.

Tuesday, June 03, 2025

국민으로부터

 월요일 같은 수요일 아침은 늦은 밤 드라마 시청으로 인한 피곤함과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궁금해 잠을 설친 이유도 있다. 

'다시 보기'를 하여도 전혀 지루하거나 뻔하지 않은 드라마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른 저녁, 쇼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나를 '각성' 시키고 말았다. 어찌 처음 보는 것처럼 이리도 신선한 재미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매력적인 입체적인 캐릭터와 선과 악의 양면성을 갖는 인간들, 특히 대사가 압축적이며 단단하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권모술수, 나름의 명분과 정의, 연대와 물질, 정치와 권력, 서약과 배신,  맹세와 죽음, 권력과 종교, 왕과 국민......

마침내 대통령 보궐 선거가 끝이나 새로운 대통령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명명된 아침이기도 하다. '국민'이 그 직위를 임명하였다고 하여 '취임식' 대신에 '임명식'을 가진다는 뉴스를 보았다.  불안정한 세계정세와 관세전쟁이 겹친 경제위기에서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왕좌의 게임'에서 'Winter is Coming!'이란 대사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부디, 슬기로운 정치를 하고 국민을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Sunday, June 01, 2025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공원 입구에 꽃잎이 4장으로 이루어진 하얀 꽃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 오래전 나의 정원에 심었었고, 그림으로도 그렸던 꽃이라는 생각에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한국에선 가을에 열리는 열매모양을 본따서 산딸나무(dogwood flower)라 부른다고 한다. 가만히 자세히 보니 하얀 꽃잎의 모양이 살짝 다르다. 처음 이 꽃을 알게 되었을 땐, 둥글둥글 귀여운 꽃의 모양을 보고 귀여운 강아지를 연상하며 쉽게 그 이름을 기억했었다. 그런데 이곳의 꽃모양은 뾰족한 귀를 가졌다. 

산딸나무 꽃은 아직 하늘을 향해 한창인데, 산 속의 때죽나무꽃과 아까시아 꽃은 흙으로 돌아가며 산은 이제 6월로 꽃 없이 푸르름만 남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자연의 시간이란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미세먼지가 온 도시를 뿌옇게 감싸는 토요일 아침이지만, 산을 오를 수 있는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누군가는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잡초를 뽑는 일련의 생산적인 일을 하는 반면에 누군가는 산을 오르며 치유와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마다 각자의 처지와 상황이 달라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한다하여 '혐오'라는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존중'이란 참 어려운 단어임에 틀림없다.   

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무척 예민해지고 자신의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는 그런 관계가 내게도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산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기에 '그러려니'하며 흘려보내야 한다. 마음을 고요하고 평화롭게 다스리는 일에 아직도 난 서툴다. 아직도 '내가' 많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