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공원 입구에 꽃잎이 4장으로 이루어진 하얀 꽃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 오래전 나의 정원에 심었었고, 그림으로도 그렸던 꽃이라는 생각에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한국에선 가을에 열리는 열매모양을 본따서 산딸나무(dogwood flower)라 부른다고 한다. 가만히 자세히 보니 하얀 꽃잎의 모양이 살짝 다르다. 처음 이 꽃을 알게 되었을 땐, 둥글둥글 귀여운 꽃의 모양을 보고 귀여운 강아지를 연상하며 쉽게 그 이름을 기억했었다. 그런데 이곳의 꽃모양은 뾰족한 귀를 가졌다.
산딸나무 꽃은 아직 하늘을 향해 한창인데, 산 속의 때죽나무꽃과 아까시아 꽃은 흙으로 돌아가며 산은 이제 6월로 꽃 없이 푸르름만 남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자연의 시간이란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미세먼지가 온 도시를 뿌옇게 감싸는 토요일 아침이지만, 산을 오를 수 있는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누군가는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잡초를 뽑는 일련의 생산적인 일을 하는 반면에 누군가는 산을 오르며 치유와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마다 각자의 처지와 상황이 달라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한다하여 '혐오'라는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존중'이란 참 어려운 단어임에 틀림없다.
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무척 예민해지고 자신의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는 그런 관계가 내게도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산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기에 '그러려니'하며 흘려보내야 한다. 마음을 고요하고 평화롭게 다스리는 일에 아직도 난 서툴다. 아직도 '내가' 많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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