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December 30, 2024

기어코

 코코코 코! 코코코 눈! 어린 아이의 눈과 마주치며 초보엄마가 코코코 놀이를 하던 푸른 시간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끝내 어떤 목표를 성취하겠다는 굳은 다짐이 들어있는 '기어코'란 단어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따뜻하고 사랑스런 놀이가 생각난 것이다. 나도 '할머니'가 되어 어린 손자 손녀의 얼굴에 '코코코 놀이'를 하고 싶다는 본능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자연스런(?)일일 것이고, 어떤 생각의 혁신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결코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서도. 

'기어코 행복의 씨앗을 내 정원에 심어야겠어!'라고 시작하고 싶었는데,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욕심(?)을 잠시 부린 모양이다. '삶에 대한 태도'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인데 자꾸만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한 집착으로 자신을 얽어매며 쉽게 불행감을 느끼곤 한다.  끝과 시작인 시간 이 겨울의 시간에 고개를 숙여 내 삶을 굳건히 지탱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근원적인 '뿌리'에 대한 감사함을 갖고 싶은 아침이다. 행복의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얽매임으로 '직무유기'를 저질러서는 안된다. 

기어코 행복하려면, 우선 행복해지려는 생각에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지 않을까. 날마다 긍정적인 태도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성실히 살다보면 그 과정속에서 소소한 행복도 누릴 것이고 감사로 충만한 시간을 꾸릴 수 있을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나의 진정한 자유로부터 온다는 것을. 요즈음은 자주 처음 살아보는 매일이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이가 드니 좋은 점도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셀프로 토닥거림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몸과 마음을 움직여 부정적인 얽매임을 끊어버리고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그런 하루를 보내보자고^^

Sunday, December 29, 2024

Bird Strike

 하늘을 날던 철새들이 자신들보다 빠른 비행기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얼른 도망가야 할 것 같은데 새들은 아직 방어기제를 적응시키지 못한 모양이다. 넓은 바다와 강을 끼고 공항이 있고, 바다와 강가엔 새들의 먹잇감이 풍부할 것이고 새들은 생존의 구역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 않는가. 

아침 9시면 먹이를 구하러  새들은 떼를 지어 날아오르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인간들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공항 근처에 새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어떤 노력이란 것을 하고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비행기 이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고,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로 공항 하늘은 복잡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두 날개로 원래 공중을 날아왔던 새들이 커다랗고 빠른 비행기를 피해 요리조리 피해 먹이를 구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번 '무안 비행기 폭발 사고'는 아직 명확한 결과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새떼와의 충돌로 인한 사실이  중요한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에 있을 때, 옥수수 밭 사이로 있는 전원적인 길을 운전하고 가는 중에 갑자기 작은 새가 차 앞유리에 박치기를 하여 자동차 앞유리가 파손된 적이 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몰랐었다. 다행히 저속 운전이라서 자동차 앞유리창은 머리카락 같은 상처를 입었지만, 결국엔 시간과 함께 금이 점점 확장되는고로 안전을 위해 앞유리를 통째로 바꾸어 갈아야했다.  새들의 눈이 머리 측면에 있어 '시야가 좁아 생긴 일'이라는 것을 알고나서 더 천천히 운전을 하게 되었다. 

인간인 우리가 슬기롭게 새떼를 피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하여 돌발사고에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었을 것인데 안타깝기 그지 없는 비극적 뉴스이다. 


Tuesday, December 24, 2024

우리에게 남는 것은 사랑이다

 냄비에 물을 조금 채우고 우리나라 명품(?)이라 할 수 있는 구멍이 송송 뚫어져 있고 접어지는 스텐리스 찜기에 귀엽고 작은 고구마들을 올려 물이 끓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평범한'이란 단어가 그리 싫지 않게 되었을 때는 나이를 한참이나 많이 먹은 후였던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의 예수님이 탄생하신 특별한 나리지만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늦은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TV 리모컨을 들고 이리저리 채널을 바꿔보지만 마음 둘 곳이 없는 그런 평범한 아침은 특별한 붉은 '크리스마스' 아침이다.

'즐겁고 행복한 성탄절~~~'

빨간 딸기라도, 붉은 연어라도 먹어야 할 것 같은데......우선 붉은 고구마를 삶고 본다. 성탄절 케잌과 성탄절 만찬이 없지만, 평범한 붉은 공휴일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새벽 송을 부르며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냈던 흘러간 청춘의 시간이 잠시 떠올랐다. 성가대에서 성탄절을 앞두고 밤마다 열심을 내어 연습했던 성탄절 칸탄타도 있었지......

미국 시절엔, 이웃들이 다정한 성탄절 카드와 함께 초코렛과 손수 구운 쿠키를 가져다 주는 문화에 초코렛을 구하러 다니기도 했었던 달콤한 기억과 성탄절을 앞두고 작품들을 도네이션하고 즐겼던 미대 옥션도 생각난다. 

어린시절 최초의 크리스마스는 동네 교회에서 나눠준 빵으로부터이다. 세월이 흘러 우는 아이에겐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이 없다는 캐롤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자꾸 울면 안된다는 것을. 늘 착하고 늘 웃고 살 수는 없지만 지향해야할 삶에 대한 태도를 가르쳐준 캐롤의 가사이다. 지금 여기서 착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이지 자신에게 물어본다. 

그때그때마다 착하게의 방법은 다르지만, 평범한 성탄절 아침에 난 영국의 시인, '필립 라킨'의 싯구, '우리에게 남는 것은 사랑이다'라는 문장을 기억하고 싶다.  

Monday, December 23, 2024

이상한 시간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천천히 읽고 있는 중이다. 

광주, 도청, 분수대, 정거장, 궁전 제과, 삼양 백화점, 서점, 우체국, 학생회관, 전남대, 여고 1학년, 가사 시간, 최루탄 소리, 흰연기,  화순 너릿재, 화순 고속 터미날, 개구리 울음소리, 총소리, 국어 선생님, 사라진 선생님, 사라진 사람들, 용달차에 올라탄 사람들, 담요, 피난, 리어카를 끌고 가는 행렬......오늘 아침 떠오른 나의 단어들이다. 

여고 1학년 5월이었다. 전남대가 내려다 보이는 학교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최루탄의 소리와 희뿌연 연기에 익숙한 시간이었다. 가사 시간의 실습으로 생강맛이 나는 맛있는 '매작과'를 만들다 갑작스럽게 수업을 파하고 하교를 하였다. 

밤에 우리 가족은 불을 끄고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을 대비했었다. 총소리가 커지자, 아버지의 지시대로 신속하게 가장 낮은 곳인 부엌으로 온가족이 모두 모였던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는 본능적으로 자식들을 광주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셨다. 날이 밝자 교통 수단이 끊긴 광주를 벗어나기 위해, 다음날 아버지와 함께 어린 우리들은 화순 너릿재를 넘어 버스가 다니는 화순 버스 터미날까지 걷고 걸었다. 엄마 아버지만 집에 남고 자식들은 모두 집을 비웠던 것이다. 6.25 전쟁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람들이 짐을 꾸려 길을 걷고 걸어갔다. 

동생들을 데리고 시골 친척집에 도착했을 시간은 어두웠고, 개구리가 논에서 한참이나 따발총처럼 울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지만, 이상한 사람이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려 이상한 계엄령을 선포하고도 뻔뻔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은 이상한 시간이다. 

Sunday, December 22, 2024

뜬금없이

 친정 아버지의 텃밭에서 자라난 붉은 고추가루로 김장을 하니 참으로 김치 빛이 맛있는 붉은 색이다. '아버지의 마지막 붉은 고추가루'를 사용하는 것일게다. 수도권 김장철(11월 중순과 하순)이 지나버린 탓으로 김장에 사용할 수 있는 쪽파와 붉은 갓을 쉽게 구할 수 없었고 가격이 몇배 올라 있었다. (내년엔 김장 재료가 풍부할 때 김장을 하는 것도 슬기로운 선택일 것 같기도 하다.) 최소한의 양념을 전날에 준비하여 하룻밤 숙성 시키고 절인 배추를 기다렸다. 절인 배추가 생각보다 빨리 도착하여 한시간 반정도 물을 뺀후 바로 간단한 김장을 하였다. 

작은 양의 김장이라도 '대행사'였을까. 김장을 끝내고 병원을 방문하기 좋은 시간이란 것을 알았다. 개운한 마음으로 일주일 동안 지속되는 '쉰 목소리'에 대한 진단과 약처방을 받아왔는데, 갑자기 밤에 열이 나고 콧물이 나는 새로운 증세로 아프고 말았다. 일부러 무슨 병균을 집어 넣어 버린 것처럼 증세가 확 달라진 것이다. 몸살에 콧물이 나고 머리가 아프고......할 수 없이 다시 다음날 병원에 다녀와야 했다. 어쩌다가 내가 아프게 되었지? 출근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집에서 잘 지냈고, 날이 춥다고 찬 바람에 노출되는 것을 차단하였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래. 나이탓이다! 아니면, 긴장을 너무 풀었을까.' 너무 일찍 잠들고 한밤중에 일어나 스마트 폰하고......일련의 선택이 몸의 컨디션을 좋지 않게 하였나 보다. 게다가 앞서 홈쇼핑에서 구입한 명인의 어리굴젓을 먹은 후 탈이 생겼고,  그 극복과정에서 면역력이 약해져 있었던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 

뜬금없이 아프고 있자니, 건강의 소중함을 더욱 알 것 같다. 아프기 전에 나한테 잘하자~~~



Thursday, December 19, 2024

꿈틀꿈틀~~~

며칠간 목이 잠기는 목의 이상증세를 안고 지내고 있다. 기승전나이탓이라며 병원을 가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신이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밤공기가 차가워져서 야기되는 알러지 증상 같은데 난생 처음으로 겪어보는 증상이기도 해서 놀랍기도 하다.  2주 이상 쉰 목소리가 계속되면 이비인후과에 가야 할 모양이다.

작고 부드러운  실크 스카프를 찾아 목에 감았다. 실크 스카프를 선물해 준 사람이 잠시 떠올랐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동네 맥주 집에서 수다를 떨던 동네 30대 친구들. 그들도 나처럼 한 두개의 병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을 것이며, 여전히 '자기 개발'을 하며 성장 발전을 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앉기'의 반대말은 '서있기'가 아니라는 말을 접했다. '몸을 움직여 활동을 하는 것'과 '오랜 시간을 서있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어 다행이다 싶다. 활동성이 떨어지는 차가운 시간임에 틀림없다. 오전엔 하늘이 잔뜩 흐리다고 하니, 오후엔 일부러 몸을 움직여 동네 마트라도 가서 장을 보고 와야 할 것 같다. 꿈틀꿈틀~~~


Wednesday, December 18, 2024

순하고 고운 나의 이름

 햇볕 아래 동네 공원을 다녀오겠다는 결심은 오래묵은 친구의 카톡 문자에 구석진 어느 곳으로 흩어져 버린다. 눈이 내린다며 문자를 남긴 친구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며 생각나는 사람으로 아직 남아있다는 것은 기쁨이다. 

수다는 즐겁다. 서로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을 허한 사이, 친구 사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만나 지금까지 연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어떤 기적과도 같은 것 아닐까 싶다. 연락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삶의 증인이 되어주는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노력'이라는 것이 필요한 일인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우연히 방송을 보다가 '하산의 미학'이란 단어를 알게 되었다. 산을 하산하는 일'에 지금의 시간을 비유할 수 있겠다 싶다.  내 이름대로 '천천히, 나의 은빛 색으로, 물이 흐르는 것처럼 순하게 산을 하산해야 한다. 순하고 고운 나의 이름이 내 삶의 기본값이며, 어쩌면 지금 여기 내 삶의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촌스럽기도 하고 발음하기도 불편해서 자긍심이 없었던 나의 이름에 대한 미안함이 든다. ㅋ 몰랐다 그때는! 자신과 많이 화해한 것 같지? 그치!

Tuesday, December 17, 2024

사는게 재밌니?

 몸에 익은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심심해서 아니 적막해서 습관처럼 TV를 켜는 습관이 언제부터 손가락에 붙어있다. 분명 우선순위라는 것이 있었는데 머리판에 강력하게 새겨넣은 '절대'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손가락은 리모컨을 잡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린다. 홈쇼핑을 건너뛰고, 심각한 뉴스를 건너뒤고 마침내 '튀르키예'의 어느 지역을 소개하는 방송을 틀어 놓고 아침 커피를 홀짝거린다. 

'튀르키예'는 터어키의 새로운 국가명으로 외우기 조금 어렵다. ''터어키'가 훨씬 쉬웠는데......' 머리에 보자기를 쓴 사람들이 화덕에서 구워낸 음식은 먹고 싶다는 욕망을 슬슬 피어나게 한다. 최고의 밀가루를 반죽해서 얇게 펴발라 그 위에 맛있는 치즈와 온갖 야채를 얹은 튀르기예 피자를 먹고 싶다는 욕망. '다행이다, 아직 먹고 싶은 것이 있다니......' 내친 김에 튀르키예를 방문하기 좋은 시간을 생각해 본다. 두 다리가 성성하고 가슴이 두근거릴 그 시간말이다. (방문하기 좋은 계절은 가격이 비싸군^^ 헐!)

그만그만, 정신줄 잡고 내 삶을 더 재밌고 유익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어제 따끈따끈하게 도착한 책 한권이 있다. 오랜만에 침대에 누워 한강의 '소년은 온다'의 첫 페이지를 읽자니 쉽게 읽어서는 안된다는 경외감이 들었다. 어찌 이렇게 문장 하나하나가 시처럼 함축적이란 말인가. 책을 내려놓고 잠이 들었다. 

올들어 가장 추운 날 아침은 조용하다. 오늘도 점심 후에 동네 공원을 걸을 생각이다. 푸른 것들을 내려놓은 나무 가지들은 치장이 사라진 순수하고 솔직한 얼굴이다. 겨울 나무들 사이로  공원 고양이들이 몸단장을 하고 있는 모습을 힐끗 바라보았다. 차디찬 하늘을 배경으로 붉은 산수유 열매들이 열을 뿜는 동네 공원은 지금 내게는 치유의 장소임에 틀림없다. 

어제는 일부러 공원의 텅빈 텃밭을 향해 걸어 보았다. 텃밭에서 싱싱한 야채들을 손수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아직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지지대도 만들어 주고 일련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흙!

흙! 잊었다.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만지며 몰입했던 그 순간을. 흙속에 씨를 심고 물을 주고 벌레를 잡던 그 순간을. 점심 후, 동네 공원에 다녀 오고 볼 일이다. 



Monday, December 16, 2024

나에 대한 예의

 '뭐여?' 깊은 잠을 잔 것 같은데 시간을 알리는 숫자가 너무 생뚱맞다. 두 시간 자고 벌떡 일어날 순 없지 않는가. 이것은 아니다 싶어 잠을 요리조리 청해서 다시 잠이 들었나 싶더니 '다시 뭐여?' 눈을 의심했다. 각성이다! 너무 일찍 잠든 탓도 있겠지만 며칠 동안의 지속된 선택이 습관을 만들어버린 결과이다! 다시 스마트 폰을 들고 셀프 연구(?) 들어간다. 바로 근처에 있는 문화센타에 회원 등록을 하고, 삶의 격을 유지할 수 있는 '무릎'을 튼튼하게 할 수 있는 정보를 알아보고, '탈모'에 대한 조사도 들어가다 보니 깨어있는 것도 괜찮다 싶다.

어느 정도 조사를 마치니 자신의 생활을 전반적으로 재조정해야 할 것이라는 셀프 처방을 안고 다시 잠을 청하였다. 냉장고에 있는 검은 콩과 자꾸만 먹지 않고 미루는 두부도 몸 속으로 넣어야 한다......'연말이라 각성을 하는 모양이다'......'인생 2막에 대한 예의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단어는 거리가 느껴지고 존엄하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일을 처리할 수 있고, 혼자서도 '독립'을 유지할 수 있어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삶을 마치기 전까지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주어진 삶을 누릴 수 있는 것! 걷고 싶고, 듣고 싶고, 말하고 싶고, 느끼고 싶고, 기억하고 싶을 것이다. 리듬에 맞춰 유연하게 춤까지 출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샤워를 마친 후 욕실 배수구 수채통에 걸려 있는 머리 카락을  발로 잡아 올리니 '탈모 치료'란 단어가 굵게 소리를 낸다. 이른 아침의 홈쇼핑의 광고는 '초고령 사회'를 마게팅한 최적화된 방송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래서 그리 채널마다 치매, 관절, 콜라겐, 골다공증, 유산균......등등의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샴푸를 바꾸고 탈모 예방을 위한 식습관과 생활 습관을 고려해야 한다. 나이를 먹은 몸이 고려해야 할 것이 한 두개인가. '저속노화'란 단어가 요즘 뜨는 단어라고 한다. 노력을 해서 노쇠의 속도를 늦출 수만 있다면 노력이란 것을 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지금은 소중한 자신을 돌보고 관리라는 것을 하는 것이 나에 대한 예의를 차릴 때!

날이 춥지만 낮에는 햇빛 먹으러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와야겠다^^

Sunday, December 15, 2024

더 나은 당신?

 브로컬리 찜을 했더니 온 집안에 브로컬리 냄새가 가득이다. 아침 출근을 하지 않은 월요일 아침이다. 평소대로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몸을 움직여 미리 먹거리를 챙겼다. 사놓고 깜박 잊은 시금치도 데치고, 브로컬리도 찜을 하고, 사과와 토마토도 씻어 놓고...책상 앞에 앉아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몸을 미리 움직여 의자에 앉는 시간을 늦추어야 함이다. 

TV만 습관처럼 틀지 않으면 세상이 고요하다는 것이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이고 혐오적인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 약물)란 보디 허러 공포 영화를 보았다.   젊고 예쁜 사람들이 위험에서도 빨리 구조될 수 있고, 도덕적인 비난도 덜 받는다고 하지 않는가. 시간이 지날수록 주름지고 낡아가는 늙음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 내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약물의 도움으로 좀 더 이뻐지고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외모로 인생의 승부를 거는 삶을 꾸려 온 것이 아니어서 그런가.  '건강'이란 단어를 맨 앞에 두고 있는 나 역시 늙음을 거부하고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시간을 거스릴 수 있겠는가 싶다. '만족'이란 단어는 늘 어렵다~~~자기 자신의 몸에 대한 가혹한 비판과 비교를 스스로에게 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미모로 승부를 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극도의 클로즈업한 장면과, 미칠듯한 음악은 선정적이고 폭력적이고 역겨웠다. 후반부에서의 뻔한 불쾌한 연출은 좀 허탈하기까지 하였던 것 같다. 하지만 모처럼 괜찮은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였다.  젊음과 늙음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에게도 푸르고 붉었던 젊음이 있었다. 그랬으면 된 것 아닌가.

나이값 하자~~~

  


있을 때 잘하자~~~

 눈물이 흘러 내릴 것 같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바뀌는 동안 함께 했던 어린 친구들은 '마지막 날'이라며 따뜻한 인사 카드와 종이 접기를 하여 '감사'와 '이별'을 준비하였던 모양이다. 어린 친구들과 이별이 눈가에 빛나는 눈물로 촉촉해질 것이라고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이별이 아쉬워 책상에 엎드려 우는 어린 왕자(?)의 슬픔을 생각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쑥스럽기까지 하여 상황을 회피하려는 나를 꼭 껴안으며 이별을 아쉬워하는 동화같은 장면을 정말 상상하지 못했다. 

'있을 때 더 잘할 걸~~~'





부글부글 한밤중

 어렴풋이 보이는 시계의 숫자는 한밤중이다. 일찍 잠들었던 패턴을 깨고 조금 늦게 잠들었음에도 각성을 하고 말았나 보다. 뾰족한 현실적인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알지만 떨쳐낼 수 없는 불안함이다. 스마트 폰에서 '건강'에 관련된 동영상을 틀어넣고 잠을 청해 보지만 새롭게 발견한 베란다 천정의 부글거림이 울퉁불퉁 소리를 낸다.  

'베란다 천정의 탄성 코팅이 부글부글 울퉁불퉁할 때, 다들 어찌 하는 것인가?'

'베란다 타일 줄눈이 메꿈이를 구입해서 얼른 보수하여 누수를 막고 물 사용을 자제한다.'

상식이 없고 양심이 없는 행위를 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유'야 있겠지만서도......

Thursday, December 12, 2024

지금은 불을 지필 때

 어쩌다가 아프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도 알 수 없다. 버스 뒷자리에서 불안하게 들려오던 기침 소리가 생각난다. 아침 출근을 하는 마지막 시간을 앞두고 하필 몸이 좋지 않다. 온 몸이 추위를 느끼는 증세는 '몸살'이라고 하는 것인가. 저녁을 먹지 못하고 아침이 되어도 식욕이 일어나지 않는 증상을 오랜만에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하필 지금~~~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출근했던 모든 날로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리라. 새로운 환경에서 처음 접하는 일이기에, 적응하며 힘들었던 부분도 있었지만 도전한 만큼 성장한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완벽하지 않아서,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더 채우고 배울 것이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날이 춥다하여 따뜻한 인간적인 체온을 뺏기지 않도록 내안의 불을 지필 때이다. 나이가 들어 주름지고 약해지는 것에 대해 투덜대지 않고, 자기 혐오에 빠지지 않도록 불을 지필 때, 지금^^ 

 

Wednesday, December 11, 2024

새롭게~~~

 지하철을 타고 나가 친구의 얼굴을 보았다. 게으름과 귀찮음으로 만남을  미그적미그적거렸다. 다행히 '용기'를 내어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간 자신을 칭찬해 본다.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오랫 동안 마주 하지 않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다. 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였지만 길은 생각보다 멀고, 멈춰서기를 반복하는 지하철의 느린 속도가 마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어린 시절 친구라고 허물없이(?) 굴었던 그 시절이 아득하다. 조금은 조심스럽고 조금은 말을 삼가하니 오히려 평안하다. 선한 영향을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가슴 따뜻한 일인가. 집안에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 나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고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자신을 성숙시키는 친구.

새해에는 나도 '봉사'라는 단어를 내 삶속에 넣어야겠다는 다짐을 더욱 확고하게 되었다. 지원서를 내고 '교육'을 받는 과정을 밟아서 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자신만 바라보지 말고 밖으로 나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새롭고도 선한 자극을 자신에게 주어야 할 때가 지금이다. 

Tuesday, December 10, 2024

그치?

 하얀 폭포수가 떨어지며 만드는 물안개는 붙잡을 수 없어 아름다운 것일까. 뿌옇고 흐릿한 신비함은 내것이 아니어서 매력적인지도 모른다. 노트북 모니터를 켜자 떠오르는 사진 한 장을 보며 '꿈'이란 단어를 연상하였다. 

 현실적인 노력과 희생 없이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긴 하지만, 너무 일찍 꿈꾸기를 포기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내 정원에 좋은 긍정의 씨앗을 심어 꿈을 실천할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어야 한다.  천천히 느릿느릿한 속도로 싹을 튀우겠지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을 다짐 하기 좋은 겨울의 오늘이다.

머리가 좋지 않으면 그냥 솔직한 태도로 삶을 꾸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일찍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대체로 솔직한 태도를 보여 주며 투명했던 시절을 '순수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이를 먹으니 '솔직함'이란 단어가 불편하긴 하다. 

나의 좋은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도록, 타인의 말을 귀담아 잘 듣고 불필요한 말을 줄이는 하루를 보내자고 다짐해 본다. 고요한 겨울 아침이 좋다~~~



Monday, December 09, 2024

사진이라도?

 '시절 인연'이란 단어를 자주 떠올리게 되는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옷깃만 스쳐도 귀한 인연이라고 했는데, 실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무덤덤하다는 것이다. 잠시 머물다 인연을 다하고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어쩌면 어떤 씁쓸함 없이 혹은 집착하는 마음 없이 이별하는 것도 그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 들이기로 한다. 

'사진이라도 한장?', '굳이?'

뒤돌아보니,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순간들이 좋은 기억들을 덮는다. 더 열심을 내고 더 성실하게 부정적인 마음을 잡아내고 '인내'해야 했었다. '사랑'과 '관심'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임하리라는 다짐이 무색하게 부정적인 에너지에 사로 잡혀 흔들렸다. '보람'이 없다며 투덜대고 열정의 크기를 줄인 모습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은 것에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다. 

새로운 일에 도전했던 용기와 포기하지 않았던 회복 탄력성은 자신을 좀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성과이다. 한만큼 아픈만큼 배우고 깨우친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과가 흡족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는 것에 '너무' 아파하지 않기로 한다. 

수업이 끝나면, 고맙다고 두 손을 벌려 꼭 껴안으며 인사를 하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잊지 않기로 한다. 



Sunday, December 08, 2024

자기 스스로

'에곤 실레'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 바람 부는 추위를 마다하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미술관에 도착하여 얻게 된 것은  지금도 느껴질 수 있는 메마른 대지에 촉촉하고 푸른 물기가 맴도는 기운이다. 오래 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들렸을 때, 에곤 실레의 미술관에 들리지 못했던 아쉬움이 컸던 터라 한국에서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은 반갑기 그지 없어 서둘러 미술관으로 향했다. 추위로 인해 얼굴 볼이 빨개지는 날인데도 사람들이 집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였다. 

'에곤 실레의 라인 드로잉'을 처음으로 접했던 대학 시절이 떠오른다. 누드 모델을 보고 드로잉을 처음 접했을 때, 그저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묘사를 하다 끝내 갖혀 버리는 실수를 범하던 나의 드로잉에 큰 가르침을 주웠던 그의 드로잉. 신선한 충격이었다! 너울거리며 선이 불완전하며 리듬을 타던 그의 드로잉!

'To restrict the artist is a crime. It is to murder germinating life. (예술가를 제한하는 것은 범죄다. 그것은 태어나는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에곤 실레

신예술가는 어떤 경우라도 자기 자신이어야 하며, 창조자여야 하며, 과거나 전통에 의지하지 말아야 하고, 자기 스스로 모든 토대를 닦아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그는 신예술가가 될 수 있다. 에곤 실레, <신에술 그룹 선언서> 중에서

                                              에곤 실레

Tuesday, December 03, 2024

이만하면 좋은 걸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할 것은 정리를~~~ 마찰로 생긴 '보푸라기'를 없애기 딱 좋은 아침은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수요일 아침 지금이다. 무심결에 TV를 켰더니 별 요상한 비상 계엄령 뉴스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무슨 생각으로 구시대적인 발상을 하게 되었을까 참으로 한심스럽다. 눈과 귀가 의심스러운 뉴스이다. 어쨋든, 난 검은 색 니트에 몽글거리는 보푸라기를 정리해야 한다. 새 옷처럼 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정갈해진 느낌이 든다. 

거실 바닥에 선물 받은 양모 카페트를 깔았다 다시 거둬들였다. 슬리퍼를 신고 카페트를 밟으려니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실내 슬리퍼를 벗고 신고 하다 그만 결정을 하고 말았다. '없이도 살았잖아!' 미세 먼지 문제도 있고 조금 춥고 말지......실내 미세먼지를 없애기 위해서 공기 중에 스프레이도 하고 물걸레질도 하고 그러기엔 무거운 카페트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할 수 없이 미감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선택을 내린 것이다. 

대신에 절전형 전기 난로를 구입했다. 붉은 전기 난로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불멍'이 주는 따뜻함과 어떤 기분 좋은 느낌을 갖게 된다. 토닥 토닥 소리를 내며 타는 장작을 넣은 아날로그 난로는 아니지만, 거실 한 편에서 얼굴을 돌리며  붉은 열기를 발사하는, 굴뚝 청소도 필요없는 현대적 감각의 난로가 주는 그 자체로도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이만하면 좋은 걸^^' 





Sunday, December 01, 2024

눈이 내린 후

 여행을 가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하루를 시작하여 늦은 시간까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듯이 주어진 하루를 여행을 온 것처럼 꾸려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어 따뜻한 이불 속에서 빠져 나와 보았다. 주말인데도 평상시처럼 일단 일어나 시간을 꾸려 보니 하루가 길어져 미루었던 일들을 실천하고도 여유가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루 하루의 시간을 단단하고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는 하루 하루의 성실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와 깨닫는 것인가. 한번쯤 시도해 보고 싶었던 건강 음식을 '새롭게' 시도해 본 것을 스스로 칭찬해 본다. 어두운 빙판 길이 무서워 걷지 못했던 동네 공원을 낮에 걸어 보았다.  첫눈이 녹아 내리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나무 위에 내려앉은 눈이 부스스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도 한다.  동네 공원을 걸었던 낮 시간의 산책은 저녁 산책에서 어렴풋하게 보였던 색들을 가득찬 색들로 보여 준다.  첫눈의 차가움을 견디고도 아직 붉은 단풍 나무는 아직도 멋졌고, 노란 은행나무는 노랑을 전부 땅으로 '내려 놓기'를 마친 모습이다. 때가 되면 붉은 단풍 나무도 모든 것을 내려 놓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불타오른다. 

겨울이 되어  무성했던 잡초들이 쓰러지고 나뭇잎이 떨어지니, 공원의 숨은 안쪽 모습도 훤하게 드러난다. 동네 공원을 걸었던 처음의 낯설고도 하찮아 보였던 처음 느낌이 생각난다. 지금 난 그 별로인 동네 공원이 참 좋다. 공간이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장소가 된 모양이다. 눈이 내려 질컥거리는 고운 길 대신에 모난 돌이 아무렇게나 박혀 있는 곳을 골라 밟으며 '감사함'을 느꼈다. 모난 돌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하늘의 그물인 법망은 너무 크고 넓어 헐거워 보이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빠뜨리는 법이 없다.' (노자의 잠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