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린 후
여행을 가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하루를 시작하여 늦은 시간까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듯이 주어진 하루를 여행을 온 것처럼 꾸려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어 따뜻한 이불 속에서 빠져 나와 보았다. 주말인데도 평상시처럼 일단 일어나 시간을 꾸려 보니 하루가 길어져 미루었던 일들을 실천하고도 여유가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루 하루의 시간을 단단하고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는 하루 하루의 성실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와 깨닫는 것인가. 한번쯤 시도해 보고 싶었던 건강 음식을 '새롭게' 시도해 본 것을 스스로 칭찬해 본다. 어두운 빙판 길이 무서워 걷지 못했던 동네 공원을 낮에 걸어 보았다. 첫눈이 녹아 내리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나무 위에 내려앉은 눈이 부스스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도 한다. 동네 공원을 걸었던 낮 시간의 산책은 저녁 산책에서 어렴풋하게 보였던 색들을 가득찬 색들로 보여 준다. 첫눈의 차가움을 견디고도 아직 붉은 단풍 나무는 아직도 멋졌고, 노란 은행나무는 노랑을 전부 땅으로 '내려 놓기'를 마친 모습이다. 때가 되면 붉은 단풍 나무도 모든 것을 내려 놓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불타오른다.
겨울이 되어 무성했던 잡초들이 쓰러지고 나뭇잎이 떨어지니, 공원의 숨은 안쪽 모습도 훤하게 드러난다. 동네 공원을 걸었던 처음의 낯설고도 하찮아 보였던 처음 느낌이 생각난다. 지금 난 그 별로인 동네 공원이 참 좋다. 공간이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장소가 된 모양이다. 눈이 내려 질컥거리는 고운 길 대신에 모난 돌이 아무렇게나 박혀 있는 곳을 골라 밟으며 '감사함'을 느꼈다. 모난 돌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하늘의 그물인 법망은 너무 크고 넓어 헐거워 보이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빠뜨리는 법이 없다.' (노자의 잠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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