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29, 2024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일상의 밋밋한(?) 맛에 신선한 시각을 갖게 하고 내일로 향할 생활의 활력소가 될만한 즐거움을 동반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에서 '여행'은 그 중에 제일인 것 같다. 차들로 꽉막힌 도로를 지나 한참을 달려 뻥뚫린 푸른 바다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맛은 인내한 크기만큼 황홀하다. 단순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직 성성한 두 다리를 움직여 몸을 움직이다 보면 맑고 고요하고 에너지가 충만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닷가를 갈 때는 두터운 옷을 여벌로 준비해 가야한다. 다행히 챙겨간 얇은 오리털 잠바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여름 성수기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로 차를 몰고 달려 온 것이다. 바닷가에 누워 '낮잠'을 자보는 것을 해보았다. 해변에 누워 '숙면'을 취하면 안된다고 한다. ㅋ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드러누운 난 낭만적인 영화와 달리 커다란 검은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누웠다. '광노화'가 무섭다는 것이다. 피부과에 가서 잡티 제거하고 표백관리 할 시간과 돈으로 여행을 더 나녀야 하는 형편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었다. ㅋ

삶이란 죽을 때까지 '주제 파악'을 하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어진 환경에 맞게 그 안에서 행복을 줍줍하면 되는 것이다. 결국엔 우리 앞에 공평하게 '끝'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자꾸 소중한 내안의 푸른 에너지와 붉은 열정을 도둑 맞게 되는가 말이다. '비교'하는 버릇을 얼른 버려야 한다.  친구에게 여행지 사진을 보낼까 하다가 보내지 않았다.  주말엔 아무런 자극없이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만 깜빡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Done is better than Perfect


                                    완벽하지 않아도 부딪혀봐야 한다~~~

Sunday, April 28, 2024

푸른 네 빛

 


가장 젊은 우리 망설이지 말고 바다로 가야한다. 깊은 바다가 출렁이는 바닷가 푸른 소나무는 푸르다. 변하지 않는 푸른 '소나무' 노래를 부르며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생각하다 그냥 푸른 바다 한번 쳐다보고 그만 '멍'하니 걸었다. 끝없는 소나무 숲을 걷는 것은 '다시' 맑고 고요한 푸른 마음을 되찾는 것. 푸른 바다와 소나무를 심은 푸른 마음을 가지고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Thursday, April 25, 2024

그러려니~

 뒷목에서 어깨로 스트레스가 모여 시큰거리기 시작한다. '뭐니뭐니'해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가장 심한 것 같다. '무례한 사람을 대처 하는 법' '히스테리한 사람 대처 하는 법'을 검색해 보았다. 산전수전 다겪어 무뎌졌을 때도 되었는데 무례한 사람들에 대한 대처 방안이 별 효과가 없다. 이 또한 살아 움직이다 보니 겪는 것이니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러려니'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보내기, 냄시 나는 똥을 피하듯이 '얼릉 도망가기' 하는 필살기가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았는데 참고 견딤을 이고 있는 무의식은 스트레스가 쌓인다.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에서 벗어나는 간단한 해결 방법은 무례하고 4가지가 없는 사람들을 보지 않으면 되는데 '나'를 포기하는 방법 말고 특별한 묘안이 없다는 점이다. 

'소통'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하는 것은 쌍방향이 아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것을 내뱉었다면 타인의 것도 살펴야 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자신에게만 충실한다. 솔직함 속의 무례함이란 그런 것이다. '예'가 없는 진실의 얼굴은 때로는 추하다는 사실을 간혹 우리는 잊는다. '존중'이란 말이 쉽지 사람마다 존중이란 단어의 접근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이 말은 여기 지금도 맞는 말이다.  감정적인 에너지를 쏟을 가치가 없어서 그냥 내비두고, '물 흐르듯이' 통과하게 한다는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타인의 무개념적인 행동에 사로 잡혀 자신의 맑고 밝은 에너지를 흑화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 무례한 행동을 일삼는 당사자도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 난 나대로 리액션 혹은 리스판스하면 되는 것이다. 삶은 리액션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오늘도 무사히~~~


Wednesday, April 24, 2024

Silver Lining

                           from 'something like happiness', Mono Print, 2011


 영화 제목으로 알게된 'Silver Lining(실버 라이닝)'이란 뜻은 구름 뒤의 태양이 구름 주위로 나타태는 태양의 존재감을 인식할 수 있는 은색 테두리를 말하는 것으로 '희망'을 빗대어 한 말이었다. 때때로 불행한 일에 흠뻑 젖고 있노라면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태양의 존재감이다.

구름이 머금은 물기를 내리고 바람과 함께 흘러가면 반드시 태양이 나온다는 그 약속! 겨울 안에 봄이 있고 봄 안에 여름이 있듯이 자연은 씨앗을 품고 변하는 것 같다. 먹구름이 많았던 며칠이었다. 건조한 날에 비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부지런하게 꽃들은 피고지고 나무들은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어 온 세상이 푸르다. 

어둠속에서 일어났던 내 정원의 해바라기가 생각났다. 어둠안에 씨를 심었던 그 시절을 기억한다. 해바라기가 성실하게 어두움 속에서 일어났고 불행의 탈을 벗고 초록으로 나왔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성실했던 나의 해바라기! 



Tuesday, April 23, 2024

눈물

 비가 내리는 밤이지만 우산을 들고 동네 공원을 걸었다. 비가 내리면 공원엔 사람이 없다. 우산에 비가 부딪혀 떨어지는 소리는 낭만적이다. 두두둑 두두두 두두둑......교실에서 눈물을 흘리던 어린 아이들 생각이 났다. 

선생님의 지시 내용을 잘 따라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옆 짝꿍이 말을 걸어 못알아 듣고, 앞 친구가 뒤돌아 시비를 걸고, 뒷 친구가 실수로 등을 민다......그럼에도 입을 다물고 두 눈을 선생님을 향해 바라 보고 두 귀를 바짝 세워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친구들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 글자를 단순하게 따라 적고 '반복'을 하여 한글을 익히던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아날로그적으로 종이로 된 책을 읽고 종이로 된 공책에 따라 쓰고 그렇게 한글을 단순하게 깨우치던 그 시절에 비해 요즈음 아이들은 융합적으로 약간은 복잡하게 학습을 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디지털 세상에 노출된다는 요즈음 아이들이고 귀한 금쪽이들의 시대 환경을 고려한다면 교육 방법이 변화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왠지 '쉼표' 없이 연속되는 과정이 아이들로 하여금 '좌절감'을 더 맛보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하였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인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을 떠올린다면 무엇보다 '기'가 죽어 있었던 것 같다. 시골에서 산과 들로 뛰어 놀다 갑자기 연필을 잡은 어린 내가 얼마나 당황했으리요. 연필을 잡고 능숙하게 글자를 쓰던 아이가 부러웠을 것이고 '참 잘했어요' 도장이 찍힌 친구 앞에서 기가 죽었을 것이다. 상을 받는 우등생 친구들에게 박수 치는 그냥저냥한 평범한 학생 중의 한 명이었다. 다행인 것은  씩씩하게 그 서툴고 삐뚤고  어린 시간을 잘 견뎌냈다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아이 옆에 다가가 쓰담쓰담하면서 잠시 머물러 주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지? 


Monday, April 22, 2024

덕분에 의미를 찾다

 '일류의 조건'(사이토 다카시)을 읽고 있는 중이다. 오랜만에 읽는 자기계발서로 '몰입도'가 있어서 하루만에 다 읽어버릴 것 같아 일부러 멈칫거렸다. 아껴서 읽고 싶은 책을 만났다. 

'수니표 스타일'을 만들어야 할 그 순간을 쉽게 놓아 버렸다는 후회와 자책이 무뎌진  지금 여기의 난 이 책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려, 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대한 댓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배우고 싶은 것을 철저히 도둑질하여 내 것이 되게 하고, 그 훔친 것을 내것으로 요약할 수 있어야 하며,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지금 내게 묻는다. '넌 무엇을 원하니?'

어제는 강의에 참여할 수 없는 시간에 혼자 교실에 앉아 어린이날 행사를 위한 과자를 포장하였다.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넌 누구 여긴 어디??'

선물을 받고 기뻐할 어린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려, 그 기쁨을 위해 누군가는 이런 수고로움을 해야 하고 그런 일을 내가 참여하게 되었다는 데 '의미'를 두어야한다. 

그런데 '벌'을 받는 느낌은 왜 드는 것이지? 혼자 독방에 앉아 과자들이 수북히 쌓여있는 어지러운 책상에서 선물 박스를 만들고 과자를 종류별로 갯수별로 집어 넣는 일은 '집중'을 필요로 한 일이었다. 40분하고도 5분의 휴식 시간을 사용하여 맡은 바 임무를 다 하고 싶었지만 그리 하지 못하였다. 일을 완수하지 못해 미안함이 들었지만 난 최선을 다했다. 

45분 동안 선물 박스를 53개를 만들었으니 얼마나 바쁘게 일하였겠는가! 박스 만들고 큰거 두개 다른 거 하나하나하나하나 이건 2개 이것도 2개 아, 이것은 3개....반복 반복.......

그러나 '감동'은 없었다. 오히려 다 끝내지 못했냐고 물었다. 난 누구? 여긴 어디? 

난 이것을 원하지 않았다. 잘못된 선택을 하였단 말인가. 그동안 쌓은 경력과 자격이 이런 대우를 받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런 경우 어떤 의미를 찾아야 내 마음이 다치지 않을까. 

처음 하는 일이라 어색하고 불편한 것은 당연하지만, 입 다물고 눈치 보고 적응하는 것 마땅하지만 마음이 흐려진다. '분노는 생각보다 사소하다'란 문장을 생각했다. 누구라도 할 말 하는 세상은 아니라는 깨달음과 함께 타인때문에  맑고 밝은 마음을 어지럽히는 어리석음을 정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려, '덕분에' 내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Sunday, April 21, 2024

반 그늘 아래서

 


'금낭화'란 이름을 가진 어여쁜 꽃이다. 동네 공원 가는 길에 줄기 줄기에 대롱대롱 사랑을 매달은 금낭화의 모습에 깜짝 놀라 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스마트 폰을 꺼내어 검색을 하니 그늘에서 자란다는 '금낭화'로 다년생이다. 도시 한 복판 상가 건물 앞 반 그늘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아서는 자생을 한 것 같진 않고 누군가 심었던 모양이다. 금낭화의 꽃말을 찾아보니 '겸손'과 '순종'의 꽃이라고 한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영어 이름은 'Bleeding Heart')



Friday, April 19, 2024

잔소리

 '무엇이 고민일까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마음과 손이 바쁘다. 짧은(?) 시간내에 무엇이 고민인지 그려야 하고 글로도 표현해야 한다. '고민'이란 뜻은 제대로 알고 있을까? 최근 무엇이 가장 문제거리였을까요? 무슨 일로 기분이 좋지 않았을까요? 무엇이 짜증나는 일일까요? 

작은 손으로 연필을 잡고 꼬무락거리더니 이미지를 나름 완성하였다. 그리고 이제 글을 써야 하는데 '삐뚤빠뚤' 춤추는 글자를 제대로 하기엔 시간이 바쁘다.  바른 자세를 하고 앉아 있기엔 타격감(?)이 있다. '왜 어려운 것일까? 난 왜 못하는 것일까? 왜 저 친구는 하는데 난 뭔 말인지 모르지? 이게 아닌데...' 마음이 일렁이는 어린 내가 보인다!

용기를 내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눈물이 나고 재미가 없다......다둑거리며 챙겨본다. 일단 자세를 바르게 하고 연필을 잡고 다시......

고민 박스 속에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잔소리'였다. ㅋ 사랑과 관심의 잔소리는 우리 친구들을 슬프게 하는 모양이다. 자신들의 입장과 능력을 배려하지 않고 과하게(?) 쏟아지는 잔소리에 마음이 다치는 것이다. 뒤돌아보니 나 또한 잔소리를 많이 하였다. 지금도 한다.ㅋ 못알아 먹으니 알아 먹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이야기 또하고 또하고......' 분명 사랑하는 아이를 교육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오죽하면 '계모처럼 방치하고 냅두라'는 말을 마음 밭에 심었겠는가. 무심하게 거리를 두면서 방치아닌 방치를 하는 것이 오히려 독립심과 자립심을 줄 때도 있었다. 아이들을 향한 '조바심'을 자제하고 '무한신뢰'하며 적절하게 안내 지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조바심'을 내려놓고 '기다림'을 할 수 있을까? 

부족하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그 적당함은 언제나 어렵다. 


Thursday, April 18, 2024

나부터 꼰대 탈출

 마침내 동네 도서관에 회원 등록을 하였다. '해야지해야지' 자꾸만 미루다가 드디어 아파트 출입구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등록을 한 것이다. 그야말로 동네 작은 도서관이다. 작년에 일터가 있었던 큰 도서관을 떠올리면 빈약하기 그지없는 환경이다. 동네 작은 도서관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온라인에서 도서관 이용법을 더 공부를 한다면 당황함이 그나마 감사함으로 바뀔 것 같긴 하다. 

요즘 머리에 꽂힌 단어 중에 하나로 '젊은 꼰대'란 단어의 뜻을 찾아 보았다. '나 때는 말이야'하고 시작하며 선을 넘는 라떼 꼰대에 버금가는 젊은 꼰대는 '선을 긋는다'.  고물가, 고환율, 고유가 3고 시대에 생존해야 하다보니 점점 세상이 각박하고 정머리가 없는 세상이 된 듯하여 씁쓸하다. 

자신이 늘 옳다고 주장한다.

상대방은 늘 틀리다고 말한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들으면 불편해 한다.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자신의 경험을 맹신한다.

나이, 서열을 중요시 여긴다. 

등등의 꼰대 감별법이 있다하여 옮겨 보았다. 무엇보다 '열린 마음'으로 공감하고 소통해야 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다. 그려, 나부터 잘하자고! 젊은 꼰대를 만나면, 사람 고쳐쓰는 것 아니니  그냥 후딱 도망가는 것으로~~~


 '...지원자님께서 부족하고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많은 분들 모시지 못 해 안따까울 따름입니다. 다시 한 번 소중한 시간을 내어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얼마나 따뜻한 온도를 가진 거절 문자인가. 거절의 온도가 가장 따뜻한 문자라서 기념삼아  적어 보았다. 냉정하고 간결한 '불합격'이란 짧은 단어를 넣은 건조한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물론 따뜻한 거절이어도 거절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사람을 두번 넘어뜨리지 않는 다는 점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낙담할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여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문자를 보내는 행위 그 자체가 훌륭하다는 것이다. 세상엔 좋은 사람들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려, 나부터 좋은 사람!


 

Wednesday, April 17, 2024

살아있다

 월요일 같은 목요일 아침이다. 동네 공원 철쭉들이 축제를 붉게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행복했다. 사람의 손길이 결여된 관리되지 않은 동네 공원을 걸으며 느꼈던  떨떠름하고 매말랐던 처음 맛을 기억한다. 깔끔하게 잘 정리된 공원들의 모습을 알기에 습관처럼 비교하며 불행한 맛을 굳이 맛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공원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몰입해서 걸으면 좋았을것을 그때는 그랬다. 시간이 지나 울퉁불퉁하고 어영부영한 동네 공원 길을 자꾸 걷고 있노라니 '감사한 마음'의 길이 내 마음 속에 생긴 모양이다.  다행히!

꽃들은 '치열하게' 피고 있을까?

살면서 '치열하게'라는 말로 서술할 정도로 열심히 살아본 적이 있냐고 한다면 '그렇다' 말할 수 있다. 함께 목소리를 모아 합창을 할 때,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할 때, 좋아하는 운동을 할 때 나는 '몰입'이란 것을 하였던 것 같다. 아무런 생각없이 오로지 그 순간에 집중하고 모든 에너지를 쏟았던 그 때 난 살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난 살아있다!

그러니 흔들리얼정 자신을 의심하지는 말자고 다짐한다. 선택했던 모든 것들 그리고 선택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은 나의 것이었고 그리고 난 도전을 하였고 그만큼 경험한 것이다. 그래, 난 아직 살아있다. 

Tuesday, April 16, 2024

사람들

 '사람들은 ㅇㅇㅇㅇ 지냅니다.'

선생님이 제시한 문장에 알맞은 말을 집어 넣으라고 하자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갸우뚱거린다. ㅋㅋ 답이 정해진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교실 안에 내가 보인다. 얼마나 막막할까...... '사이좋게' 혹은 '싸우면서' 혹은 '상관없이' 혹은 '무심하게'......

궁금해서 요리조리 몸을 비틀며 생각하는 아이들을 바라 보았다. 과연 뭐라고 대답할까?

'사이좋게'란 단어가 정답이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좋게 유지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하는 물음표가 일어났다.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이다. '인간'이란 단어가 품고 있는 그대로 사람과의 간극을 이해하고 어울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편견과 아집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저울질을 하고 판단하고 선을 넘고 예를 잃어 버리기 쉽다.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품어 주고 사랑하고 산다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을까 하는 교과서적이지만 바른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라는 문장은 씁쓸하지만 사실적인 표현이다. 사람에게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이 없다.  자신의 잣대로 함부러 판단하는 습관을 경계해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비중의 무게를 재서 처신을 달리 하는 참으로 가벼운 사람을 좋은 눈으로 바라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 면면도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생존법이니 어찌 '측은지심'을 갖지 않겠는가. 

Monday, April 15, 2024

Uprising April

 


조용한 바닷가를 거닐었다.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를 바라 보았다. 사람들이 없어서 더욱 좋았다. ㅋ '바글바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다들 어디로 가셨을까. 바닷가 공기가 선선한 탓인지 벚꽃과 목련꽃이 아직 한창이어서 더더욱 좋았다. 아직 봄이다! 넘어가는 석양을 붙잡고 와인 한잔 하고 싶었지만 그냥 보냈다. 

Sunday, April 14, 2024

이랬다저랬다

각을 어떻게 잴까요? 

때로는 '기준'이 필요하다. '어떤 점'을 기준으로 삼는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점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기준이 없어서 자유로울 수 있는 면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어떤 측정을 해서 정확한 값을 산출하고 싶은 경우에 반드시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고 그 명확한 점과 분명한 선이 필요한 것이라는 개념(?)을 나름 정리하게 되었다. 

알고보면 참으로 쉬운 '점'인데 그것을 맞추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다리미를 들고 옷주름을 잡을 때,  열과 습기 그리고 나의 체중을 실어 각을 잡아 선을 만들 때 마주할 기준 점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나의 기준 점은 어디일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거창한 것 아니다. 마음 중심으로부터 맑고 밝은 기운이 유지될 수 있게 하려면 나부터 잘 챙겨야 한다. 이제 자신을 챙길 나이가 된 것이다. 못난 나를 다둑거리고 또한 타인도 '그러려니' 눈감아주고 그렇게 좋은 에너지를 유지하고 도둑맞지 않아야 한다. 

오늘도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흔들리겠지만 선한 기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를.

Thursday, April 11, 2024

천천히 부드럽게

 벌써 금요일이다. 연일 따뜻하고 건조한 날씨로 성큼 여름의 기운을 껴안게 되어 조금은 당황스럽다.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부드럽게 나아가면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가끔은 좋다. 여러 모양과 빛깔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 중에 하나가 지혜로움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앞서 포기하고 체념하여 무채색의 사람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어떤 빛깔 없이 조용한 맑음이 좋을 때도 있다. 마음은 붉은 빛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타인들을 향해 반갑게 솔직하고 진솔하게 다가가고 싶지만 두려움이 앞선다.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이런 문장을 안고 살아서는 안되지만 자꾸만 사람과의 관계에 '기대'하지 말고 오직 자신만 잘하면 된다한다. 

어떤 일을 오랫동안 하게 되면 직업병이 생기게 마련이다. 작업을 많이 할 땐, 사물들의 형태감과 색들에 대해 참으로 민감했다. 모든 것이 작품으로 향할 때였으니 말이다.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면 '지적질'을 하게 되는 것도 경험했다. 알고 있으니 참지 못하고 '지적질'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선의로! 가르쳐 주고 싶은 욕망을 참기 어렵다. 그 오지랖을 정지해야 하는데 가끔은 참을 수 없다. 입을 다물고 맑고 고요한 마음을 먼저 챙겨야 한다. 그려, 스스로 깨닫게 되겠지~~~ 그것이 진짜여~~~누군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때 친절하게 도우면 된다. 먼저 나서서 참견하고 가르치는 것은 오지랖의 옆모습. 그런데 때로는 그런 오지랖이 있어서 세상이 덜 팍팍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대화를 할 때 이상하게 기분 나쁜 사람이 있다. 왜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일까. 하나마나한 말을 했다고 느껴질 때, 서먹한 분위기를 깨자고 말을 한다고 했는데 그 틈에도 지적질을 하고 잘날 척을 하고...ㅋ, 타인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딱딱한 말투 등등의 모습은 내게도 있다. 대화를 해도 대화를 하지 않고 소통을 하여도 소통이 되지 않는 그래서 누군가의 인내치를 올리고 사람에 대한 냉소감이 들게 하는, 그런 사람들은 본인이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도 모를 것이다.

거울을 보며 외쳐보자. 나부터 웃고 친절하고 부드럽게~~~ 나부터 잘하자!

Wednesday, April 10, 2024

그늘 아래 그 나무

 월요일 같은 목요일 아침이다. 날씨님이 봄비를 살짝 내린다고 하니 초록 물감을 뿌린 듯, 작은 새싹들은 더욱 초록을 입어 크기가 커질 것이고 시간을 다한  꽃들은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 벚꽃 잎이 한올 한올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모습은 언제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낭만적이다. 바람이 데리고 간 자리는 길모퉁이 낮은 곳.  핑크빛 연약한 꽃잎들이 조그마한  섬을 군데 군데 이루고 있음을 보았다. 꽃이 지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얼굴이다. 피고 지고 지고 피고~~~

너무 빠르게 가버리는 봄꽃 잔치를 잡고 싶어  차를 끌고 멀리 나가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동네에서 봄날을 자연스럽게(?) 즐기기로 하였다. 충분히 햇빛을 보지 못하고 그늘에 서있던  벚꽃들이 늦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좀 늦으면 어떠리~~~이것 또한 시간을 감추고 거스릴 수 없는 자연의 얼굴이다. 자신의 잠재력을 꽃 피울 그 시간이 있는 것이다. 가난한 햇빛이어도 뿌리를 땅 속 깊이 단단히 박고 온갖 바람을 견디고 서있는 성실한(?) 나무는 언젠가 나름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어찌 그 나무의 깊은 상처를 알 수 있으리요마는, 그늘에서 올린 꽃이 너무 아름답더이다!

Monday, April 08, 2024

질서

 오랜만에 목소리가 변했다. 초등학교 1학년 어린 친구들을 통솔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낸다고 했는데 평소와 다른 환경에 노출된 나의 성대는 일찍 맛이 갔다. ㅠ

금쪽이 어린 친구들은 아직 한 방향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함께 모여 조직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질서'를 지키고 규율을 익히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각자의 관심이 다르고 직면한 고민이 다르다는 것이다. 앞에 친구가 심한 말을 하여 상처를 받고, 뒤에 친구가 어깨를 쳐서 아프게 하고, 새로운 환경은 어리둥절이다. 재잘재잘거리며 친구와 소통을 하다 보니 설명을 듣지 못했고 그래서 의기소침 힘든 것이다. 

'집중'이라는 단어는 참 어렵다. 입을 다물고 두 귀로 경청을 하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분석하고 규칙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데 그 집중이란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때로는 다른 친구로 인해 방해를 받고 알게 모르게 자신 또한 다른 친구에게 방해를 한다. 좌충우돌 우왕좌왕 하면서 배워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였다.

'인사'부터 가르쳐야 한다. 무조건이다! 인성이 제대로 갖추어여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지식을 쌓아서 어디에다 쓰겠는가. '안녕하세요','감사합니다','미안합니다'란 문장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시킬 수 있다면 좋겠다 싶다. '사이좋게'란 단어는 아직도 난 어려운 말이다. 어떻게 사이좋게 상대방과 소통하고 더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선을 넘고 상처를 주는 사람을 어떻게 쉽게 용서할 수 있을까? 억울함을 호소하는 어린 친구에게 쉽게 '용서하라'는 말을 내밀었지만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은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다. 어른인 나는 알고 있다. 자신을 위해서 먼저 잊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름 사정이 있어서 그랬다며 쉽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결국 사이가 헝클어진 두 친구를 멀리 띄어 놓았다. 새로운 환경의 힘을 이용해야 함이다. 

Sunday, April 07, 2024

표현하라, 감사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댓가를 요구하지 않고 '그냥' 해주신다는 말씀은 고맙지만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타인의 '선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감사하면 될 것 같은데 그 '감사'라는 것이 말로만 해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타인의 시간과 기술을 거저 공짜로 취할 순 없는 일 아닌가. 나의 시간과 기술을 줄 수 없으니 뭔가 말보다 구체적인 느낌이 드는 행동을 취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응당 댓가를 요구해야 마땅하거늘 차마 말할 수 없는 그런 사정이 있지 않겠는가. 

멀리 나가 '꽃 구경'을 하러 큰 공원에 갔더니 벚꽃 구경을 나온 많은 사람들이 더 구경거리이다. '그려, 이 환상적인 벚꽃을 보려면 일년을 기다려야 한다!' 

공원에 들어서기를 기다리는 주차 행렬은 어떠 하던가. 두번 다시는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에 차를 끌고 나갈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잊었었다! 꽉 막히는 도로 상황에 질려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와 동네 공원에 가서 나름 봄날을 즐겼던 전날의 슬기로운 '선택'을  잊었다. 다음 날, 큰 공원에 나가 큰 꽃잔치를 보고 싶다는 눌러졌다 튀어나온 부풀어진 작은 소망은 꼼짝달싹도 하지 않는 꽉 막힌 도로에서 소중한 시간을 크게 까먹는 댓가를 치루어야 했다. 

봄이로소이다! 추운 겨울을 인내하고 솟아나온 꽃들이 만발하는 봄이다. 감사하다~~~ 내가 나이를 먹은 것이 분명하다. 젊은 날은 봄이 오고 가는 것도 몰랐다. 이 꽃들을 만나려면 일년이란 시간을 재촉해야 한다. 시간이 빨리 날아가면 안되는데 말이다.


Friday, April 05, 2024

'예'

'에코백'에 빠져 중고 거래 사이트를 맨날 들락거리며 관심을 표시한다. 판단력이 흐려진 구매를 하게 되기도 하다. 유혹의 기술이겠지만 새 상품이라며 장점만 나열하니 현혹되기 쉽다. 막상 물건을 구입하고 나서야 날카롭게 챙기지 못한 면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서야 거절 의사를 할 수도 없고 그리 비싼 가격도 아니니 감사하다며 씁쓸함을 함께 들고 오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싼 명품백을 구입하는 것 아니라며 나름 합리화를 하며 온라인 상에 자신이 저질러 놓은 약속들을 챙기는 것은 '신뢰'에 대한 기본적인 행동을 완성해야 함이다. '문고리'에 물건을 걸어 두거나 내다놓은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집안에 있으면서도 대면하지 않고 문앞에 두고 굳이 힘들게 대문 앞까지 찾아오게 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옷을 챙겨입고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꺼려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리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했다고 해도 문고리 거래는 그렇다. 정이 없고 상품에 대한 불신을 먹고 가는 행위인 것처럼 느껴진다. 토요일 아침, 판매자의 취향대로 계좌에 입금을 하고 출발전후 톡을 하고 상세 주소로 찾아가서야 '불친절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주차 안내도 없어서 문의를 했더니 묵묵부답으로 '방해금지 시간'이라는 문구를 집어 넣고 잠적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기본적인 '예'가 없는 사람들은 씁쓸한 뒷맛을 준다. 그 기본은 어디서 가르치고 어디서 예를 버리고 살아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4월의 아침에 안고 싶지 않은 씁쓸함이었지만 벚꽃이 비현실적으로 위로를 한다. '뭐가 중헌겨~~~ 그런 사람은 그런대로 살다 가게 냅두고 나라도 잘하고 살자~~~'


Thursday, April 04, 2024

꽃과 나비

 '가슴이 두근거려 '사랑'에 빠진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라고 한다.'란 문장을 보며 웃었다. 혹시 요즈음 두근거림이 부정맥? 살짝 의심이 들었다. 새로운 봄날에 두근거림을 느끼는 것이 이상할 것 없을 것 같은데, 이 젊은 빛깔의 두근거림을 의심을 해야하는 것일까.

학교에서 실내화로 신을 '크록스' 신발에 악세서리를 심었다. 꽃과 나비로 장식을 하고 나니 마음이 밝고 즐거워진다. ㅋ  어린 시절 랜드로 시간 여행을 간 것처럼 말이다. 주위의 눈이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기로 한다. 자신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일은 알아서 챙겨야 할 나이이다. 

Wednesday, April 03, 2024

두근거림

  출근 옷단장을 하고 노트북 앞에 앉은 가슴은 두근거린다. 드디어 꿈꾸던 가슴이 두근거리는 삶을 살게 된 것일까. 지난 밤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은 몇십년만에 '수학'이란 책을 들여다 보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기초'가 흔들려 머릿속이 헝클어진 상태를 견뎌야 했던 '어린 나'를 지금이라도 구해내야 한다. 어렵다! 왜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 못했을까. 알려고 '노력'이란 것을 전혀(?) 하지 않았던 '어린' 내가 보인다. 오빠나 친구들에게 물었더라면?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그때나 이때나 항상 자신의 일로 바빴던 것 같다. 그렇고보니 나랑 어울리며 놀았던 친구들은 공부를 별로 그닥 열심히 하지 않아서 나랑 어울려 놀 시간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ㅋ 그때의 어린 우린 분명히 답이 정해진 숫자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루를 쉬고 출근하는 오늘은 목요일인데 월요일 느낌이 드는 날이다. 어제는 벚꽃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팝콘처럼 꽃들을 튀겨 내었다. 별들이 모인 신비한 행성처럼 서 있는 흰 목련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아름다운 '사월'의 모습이다. 점심을 먹고 동네 공원에 나가는 길에 벚꽃 나무 앞에서 스마트 폰을 들이대고 있자니 한 사람이 다가온다. 벚꽃을 향해 주문인지 기도문인지 중얼거린다. 옆에 서있으니 간절한 기도 주문을 내가 듣는다. '태어날 쌍둥이를 잘 지켜주시고....내일은 비가 온다는데 이 이쁜 꽃들을 어쩌나...'

벌써 벚꽃이 떨어지고 있었다. 

맑고 밝은 마음을 주시와요~~~지켜 주시와요~~~~ 난 요렇게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가슴이 살짝 두근거림을 느꼈다. 가슴 두근거리는 숫자와 아리따운 꽃과의 만남은 지난 밤 잠을 쉽게 초대하지 못했다. 


 

Tuesday, April 02, 2024

너 누군겨

 '삶이란 때때로 재미있다'란 문장으로 시작하는 수요일 아침이다.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난 '막막함'이란 단어안에 갖혀 있던 그 오래된 순간을 생생하게 보게 되었다.

 시골에서 자연을 벗삼아 뛰어놀고 소꼽놀이하고 나무하러 다니던 어린 내가 도시로 올라와 손수건을 왼쪽 가슴에 달고 콘크리트 회색빛 학교를 가던 그날이 생각난다. 3월에 입학을 했을 것이고 운동장은 추웠다. 추위에 굽은 손으로 색연필을 쥐고 점선을 따라 그렸던 그 순간은 비틀거리며 서투르고 느렸다. '참 잘했어요'를 부러워하던 그 어린 시절.

수학 포기자, '수포자'의 불길한 기운은 초등학교 4학년 산수 시간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ㅠ 수학이란 과목을 잘했더라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수학을 못해도 살아가는 것에 그다지 어려움은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이 웃픈 상황이기도 하다. 

이번 기회에 평생 한(?)으로 남은 숫자와의 게임을 시작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직 젊은(?) 나이를 고려하여 취미 삼아 포기했던 수학 공부를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 얼른 온라인에서 책을 한권 구입을 하였다. 이번 계기로 인해 수학을 공부하여 '열등감'을 극복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영역을 계발함으로써 치매예방도 하게 될 것 같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학이 뭔지 궁금하긴 하다, 사실~~~


Monday, April 01, 2024

꾸물꾸물과 허둥지둥

'꾸물꾸물'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보고 떠오른 단어이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오히려 이상한 것으로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꾸물꾸물 움직이는 어린 친구들과 함께 했던 첫시간을 경험한 나의 단어는 '허둥지둥'이다. 학교 모양의 종이접기를 못하는 친구들을 도와 주워야 했는데 난감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알고 보면 참으로 쉬운 것인데 머리가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아닌가. '종이학'을 반복해서 접었던 경험이 있긴 하지만, 종이접기형 머리구조가 아닌 것을 본인이 너무 잘 알고 있던 터라 심리적 당황함이 컸던 모양이다. 안내하고 지도해야 했는데 도움을 받았다. ㅠ 다음부턴 종이접기를 미리 연습하고 가면 될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쓰담쓰담 셀프로 내게 말한다.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