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30, 2024

타인의 취향

 버스 안에서 '기사님, 제발 그 라디오 소리를 조금 줄여주세요'라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학창시절 빡빡한 시내 버스에 밀려 밀려 밀착되어 학교를 오가던 시절의 기사님의 라디오는 즐거웠다. 지나간 기억이라 즐거운(?) 추억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교과서에서 나오지 않는 '세상의 소리'가 라디오에서 퍼져 나왔다. 간단한 소식과 함께 곁들여진 아침에 맞는 유행가를 들으며 잠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잊고 오갔던 버스의 기억. 그러나 지금 나는 기사님의 라디오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다행히도  요즈음 버스 기사님은  라디오를 잘 켜지도 그리 크게 켜지 않는 편이긴 하다. 

아침 출근 버스에서 '가다 서기'를 자주하는 버스에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듣지 못한다면 시원하게 달리고 싶은 자체 질주 본능은 곤혹감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종종 버스 안에서 긴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들의 소리에 기분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귀에 좋은 음악'은 보물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버스 승객의 개인적인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라디오 소리를 크게 틀어 놓는 용감한(?) 버스 기사님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사님의 라디오를 함께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견뎌야 한다!

기사님이 버스에 대한 '주인 의식'이 강한 모양이다. 승객에 대한 '배려'가 없는 기사님이다. 그것은 직업 의식이 아니라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혹시 모를 일이다. 지난 밤 잠을 못이루어 라디오라도 켜지 않으면 밀려오는 피곤함을 주체할 수 없는 딱한 사정이 있는지도......뭐라고,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ㅋ 그려, 내가 당면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어폰 볼륨을 더 올리자니 소중한 고막에 부담을 주는 일이고,  견디자니 기사님의 취향과 나의 취향이 불협화음을 이루며 귓속이 시끄럽다. 차라리 내가 이어폰을 빼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하였다. 기사님의 라디오 소리를 정말 듣기 싫다는 것이 문제이다. 할 수 없이 잡음 속에서도 첼로 선율을 추려 들어 보는 것으로 '귀를 단련하기'로 한다. 

교차로의 정지 시간을 이용해 갑자기 버스에서 내려 담배 한 대를 피던 기사님은 라디오는 켜지 않았고, 라디오를 켜는 기사님은 교차로에서 내려 슬기로운 담배 생활을 하지 않는다. 그렇고 보니 오늘 기사님은 급정차 급출발을 하지는 않네...... 무슨 사정이 있나 보다......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저항'하지 않았다. 

Thursday, June 27, 2024

돌돌 말아진 이별

 지난 밤 동네 산책 길에 우리 나라 꽃, '무궁화'를 보았다. 오래전(?)이란 말을 담고 싶지 않다. 하긴 벌써 10년이 지난 기억이니 '오래전 기억'이라고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여기에 있는 난 아직 내 정원에 흙을 파고 나무를 심고 키워냈던  무궁화를 '시들지 않는 기억'으로 붙잡고 싶다. 그때 그곳에서 나의 무궁화가 필 때는  7월이었고 무궁화 꽃잎을 파먹는 '재패니스 비틀스'라는 곤충을 잡아주고 있노라면 대학의 3개월의 긴 여름방학이 다 끝나가는 시간이었다. 일요일 초저녁에 찾아드는 왠지모를 불안과 초조감 그  유사한 느낌이 무궁화가 피는 '7월'이란 시간에 있었다. 

무궁화는 꽃말 그대로 변함없이 '찬란하고 단정하게' 피고졌다.  시든 모습을 보이지 않고 아니 들키지 않고, 해가 지면 무심하게 이별을 감행했던 무궁화. '돌돌' 말아진 이별의 밤을 우수수 땅으로 남기고, 아침이면 찬란하게 피어나던 나의 무궁화를 위해 기꺼이 나는 벌레를 잡아 주었다. 여기 이곳의 동네 공원은 관공서의 '관리의 의지'가 희박한 탓에 무척 '자연'스럽다. ㅋ  '가지치기'라는 호사스러운 관리도 받지 않고서 세월을 머금은 무궁화는 풍성한 꽃잔치를 벌리지는 않지만 산산하니 괜찮다. 다행히 그 이쁘고도 해악한 '재패니스 비틀스'라는 벌레가 보이질 않는다. 

아침 해가 이슬을 말리고 난 '오전 10시쯤' 꽃이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다고 한다. 나도 오전 10시면 상태가 말똥말똥 괜찮은데......ㅋ

Tuesday, June 25, 2024

고등어 조림

촉촉한 흰 쌀밥에 새콤달콤한 촛물을 넣은 김밥은 탄수화물 과다를 초래하는 단점이 있다. '건강'이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만 '멈출 때'를 아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오메가-3 등 불포화 지방산과 비타민과 무기질이 들어있다는 생선, 고등어를 오랜만에 저녁 먹거리로 준비하기로 하였다.  내장을 빼고 짜지 않게 간을 한, 저염 '염장질'이 되어있는 간고등어를 구입해서 집에 있는 감자와 양파 그리고 청양고추를 넣어 요리를 한다면 건사한 요리가 될 것이다. 

제주도로부터 장마가 시작된 탓인지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날은 모든 창문을 열어놓고 생선조림을 하기 적당한 날이다. 냄비에 자작한 물을 조금 넣은 후  감자와 양파를 깔고 양념을 곁들이고 고등어를 넣은 후 다시 양파와 청양고추를 올리고 양념을 곁들이고. 친정 엄마의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을 감싼다. 옛날 '간고등어'는 '정말'이라는 부사를 동반해야 할 정도로 소금을 많이 사용하여 절여진 짜디짠 고등어였다. 마늘, 양파, 대파, 청양고추의 맛이 어우러진 '짭쪼름한' 간 고등어 한 토막의 거부할 수 없었던 맛의 기억이 생생하다. 

별로 짜지 않다는 생선가게 사장님의 말씀따라 요즈음 간고등어는 그닥 짜지 않다. 그럼 어떻게 보관되고 유통되는 것이지하는 의문이 살짝 들기는 하였다. 소금대신 냉장고에서 잘 보관을 하는 모양이다. 혹시 이상한 약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증이 들긴 하였다. 설탕과 소금을 이용한 저장법 말고 또 무엇이 있드라. 냉장 냉동!

고등어와 온갖 양념물에 익혀진 포근포근한 감자는 행복의 맛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나는 배가 부르다. 비가 오지 않은 저녁이니 얼마나 부른 배를 데리고 산책 나가기 좋은 저녁인가. 바람이 태풍전야처럼 부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금계국 꽃은 햇살에 타진 듯 까맣게 시들고 접시꽃은 씨를 야물게 맺으며 6월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벌써 열매들을 맺었구나! 벌써 올해도 반이 흘렀구나. 아니야, 반이나 남았어 ㅋ! 바람이 선선하니 공원에 사람들이 많이 나와 걷는다. 맛있는 고등어 조림 먹은 나는 힘차게 공원을 잘도 걸었다. 허리 펴고 고개 들고 으쌰으쌰. 


Monday, June 24, 2024

버스

 아침 출근을 하기 위해서는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아무리 인터넷 검색이 버스가 오는 시간을 알려준다하여도 미리 나가 버스에 대한 예의를 챙긴다.ㅋ 누군가에겐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지만 버스 정거장에서 서성이며 '10분 정도'는 기다리는 것이 나에게는 편안함이다. 시간을 딱 맞추어 나가는 것이 여유가 없고, 쪼이는 느낌을 받아서이다.  깍쟁이처럼 시간을 재고 출발한다면, 괜시리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재촉하고 바쁜 걸음으로 경보를 하는 것이 평화롭지 못하다. 그려, 여유있게 아침 새소리도 듣고 골목길에 나와있는 이웃들의 화분도 구경하고......

빌라들이 모여있는 골목길을 걷는 일은 꽃이 피는 화분과 야채가 함께 자라나는 것을 보는 일이다. '아름다움과 실용성'이 함께 하는 이웃들의 가든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내게 있다. 노란 코스모스가 한들거려 쳐다보면 들깻잎이 싱싱하게 올라오고 어린 푸른 고추들이 달려있는 화분들이 보인다. 골목길과 닿아있는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심어놓은 것이리라. 야무지게 고추화분과 토마토 화분에 지지대가 설치되어 있다. 

행단보도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릴테면 건너편 담벼락의 도시미술(?)을 바라보게 된다. 누군가의 디자인 속에는 뭔가 메세지를 담고 있을 것인데 이 지역과 돌고래가 무슨 상관일까. 이 지역이 동해안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아마도 돌고래가 담고 있는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도시를 순화(?)시킬 의도였을까. 무난하게~~~

버스 정거장 근처에 유혹적인(?) 카페 포스터가 붙어 있다. 신기하게 쳐다보게 된다. '테스'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먹음직한 '딸기'를 바라보는 묘한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이미지이다. 요즈음은 케잌을 '수저'로 떠먹는다고 하지...... 

정거장에 모인 사람들은 나보다 다들 날씬하다.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사람들을 유선 이어폰을 꽂은 내가 힐끗 바라본다. 부럽지 않다. '귀찮어~~~충전시켜야 하고 귀찮어......' 이리저리 이어폰 선이 어지러운 나는 무선 이어폰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뽀글거리는 파마머리를 한 중년과 노년의 연세인 사람들이 보인다. 파마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왜 자꾸 파마를 하는 것일까.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오랜 시간의 습관을 버리기가 쉽지도 않을 것이고 용기를 낼 시간이 없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이 '줄'을 서지 않는다. 아침 햇살이지만 뜨겁다. 대충 이리저리 서있다가 무식 용감한 사람이 적극적으로 손을 들면 아무 것도 모르는 버스 운전 기사는 버스 문을 그 앞에 멈춘다. 정거장에 모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누가 자신보다 먼저 와 있었는가를. 온 순서대로 버스를 타라고 교육을 시킬 수도 없고 그냥 버스에 올라탄다. 이곳의 문화인가 보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아침부터 불쾌한 말을 내뱉기보다는 그냥 참고 '그러려니'한다.  

눈을 감고 첼로 연주를 듣고 버스에서 흔들리다보면 버스가 텅 비어간다. 그리고 내가 내릴 차례이다. 신기하게 버스 멀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감사할 일이다. 

Sunday, June 23, 2024

주고 싶은 마음

 아들의 댕댕이가 내게로 달려와 '반갑다고' 점프를 한다. 아들의 이쁜 댕댕이와 함께 보낸 주말의 시간은 비가 내렸다. 털로 둘러 쌓여있는 댕댕이는 땀구멍이 없어서 혀를 길게 빼고 배를 헐떡거리며 체온 조절을 한다고 한다. 허덕이며 댕댕이를 위해 서둘러 에어컨을 틀어 주고 맛난 간식을 대령한다. 동그란 눈으로 간절히 쳐다보는 댕댕이에게 자꾸만 음식을 건네주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비가 오는 여름 날은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할 수도 없고, 칼로리를 소비할 마땅한 방법을 구하지 못한 것을 고려한다면  '주고 싶은 마음'을 정지해야 한다. 

 에어컨을 하루 종일 틀어주고, 닭 가슴 살을 삶아 먹이고, 인터넷 검색을 하여 적당한 야채와 과일을 먹인다. 긴 허리에 짧은 다리 그리고 여우같은 얼굴에 사로잡혀, 참지 못하고 이쁜 댕댕이의 털을 쓰담는다. 댕댕이는 귀찮아도 참는 듯 하다. 한없이 빠져 나오는 털! 털을 감당할 자가 '웰시 코기(Welsh Corgi)'를 기른다고 한다. 댕댕이 털과 나의 긴 머리털이 선풍기 바람에 작은 건초더미를 만들어 구석지로 몰려 간다. 

오래된 어린 기억 속에 있는 개들은 일년을 넘지 못하고 사라졌던 것 같다. 사람들이 먹고 남긴 음식을 먹고 살았고 어는 날 개들은 가축처럼 사라졌다.  점차 세월이 흘러 '애완견'도 아니고 '반려견'의 자리에 있는 댕댕이들은 예전의 위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존재가 된 지금. 여우 얼굴을 가진 댕댕이가 젖은 코를 실룩거리며 '먹을 것'만 밝혀도 너무 사랑스럽다.

Wednesday, June 19, 2024

에어컨을 켜야겠어

 '에어컨'을 틀었다. 선풍기 바람으로 견딜 수 없는 밤이 되었다.   잠들 수 없었던 연유는 마저 보지 못한 드라마의 결말에 대한 궁금증과 무더운 밤 기온 때문이었을 것이다.  체온이 내려가지 못함으로 머리는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각성하게 되고 몸은 전전반측 뒤척이며 열을 받는다. 쉽게 잠 들수 없는 밤. 눈을 감고 몇 시간이 흘렀을까. 결국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에어컨을 켜야겠어!'

쾌적한 에어컨 바람에 두시간 정도 잠을 잤을까. 어떻게 하루를 버티지? 오늘따라 오후까지 학교에 있어야 하는 날이다. 커피를 보온병에 챙겨가야 할까? 날도 더운데 탈수현상을 일으키는 커피를 한 잔으로 만족해야 한다. '정신줄 잡고 긴장하면 괜찮을거야~~~'

'소중한' 오늘 하루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본다. 비록 지난 밤, 충분한 잠을 자지 못하였어도 이렇게 일어나 출근 할 곳이 있는 '오늘'이란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리 거창하고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 듯 보이지 않지만, 자꾸만 작아지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모든 어울림을 고려하여 나답게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다. 

 멈칫거리지 말고, 주저앉지 말고 나의 범람, 나의 복잡함을 끌어 안고서......

Tuesday, June 18, 2024

거미

 옷을 갈아 입다가 문득 '꿀벅지'가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점점 팔다리가 가늘어지고 배가 나오는 '거미형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우연히 유튜브에서 알게된 '초간단 오이 김밥'을 몇 일 손수 만들어 먹다 보니 한 줄로 끝나지 않고 두 줄 이상의 김밥을 입속으로 넣고 만다. 건강을 생각해 몸에 좋다는,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잡곡들을 넣은 밥은 흰 쌀밥보다 친근하지 않고 밥맛이 그닥 좋지 않다. 흰쌀에 다시마를 넣고 고화력으로 지어낸 쌀밥은 참 먹음직스럽다. 탄수화물에 대한 공포심은 뒤로 숨고 촛물을 넣고 가늘게 채썬 아삭한 오이가 들어간 오이 김밥은 상큼하며 아삭거린다. 시큰 달콤한 촛물과 촉촉한 흰밥과 상큼한 오이의 조화는 한 줄로 끝날 일이 아니다. 맛있는 것은 무죄! 나이를 먹을수록 음식을 적게 먹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웰에이징', '웰다잉' 뭐 이런 단어들을 생각하면 '관리'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그만 나에게 또 졌다. ㅠ '배불리 먹고' 할 수 있는 관리라는 것은 공원 걷는 것을 평소보다 한 바퀴 더 도는 것으로 마음 편하게 먹고 만다. 반팔 반바지를 입고 힘차게 뛰어가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걷다가 힘을 내어 몇 분이라도 헐떡거리며 뛰어야 한다는 생각은 금세 팔젓기와 발걸음을 더 힘차게 빠르게 하는 것으로 대체되고 만다. 

 꽃답지 않게 여린 연두색 꽃을 주렁주렁 매달은 초록 나무가 인사를 한다. 초록과 연두색의 조화가 특이하여 쳐다보게 된다. 열매가 단단하여 '염주'를 만드는 나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이름이 '무환자나무'이다. 집 근처에 나무를 심으면  환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대단한 나무라고 한다. 우와! 눈 앞에 보이는 무환자나무를 보면서 잠시 배부른 '거미'가 발걸음을 재촉한다.  

한동안 맛있는 오이 김밥 앞에서 멈칫거리면서도 또 오이 김밥을 먹겠지 싶다. ㅋ

Thursday, June 13, 2024

어디서든~~~!

 '걷는 것'을 좋아하면 어느 정도는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내게 적당한 등산화를 신고 여기저기 신고 다녔더니 몇개월도 되지 않아 신발 밑창이 달아진다. 수선을 맡긴 등산화를 찾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뙤약볕이 중천이었다. 검은 양산을 쓰고 걷는다 하여도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건물에서 튕겨져 나오는 복사열로 '그냥 버스를 탈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살짝 들기도 하였다. 

작고 귀여운 분홍 나팔꽃, 알고보니 메꽃이라고 한다. 구별법은 푸른 이파리가 길죽길죽 갈라져 있고나팔꽃의 둥글게 세개로 나누어진 모습과 다르다고 한다. 행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무료한 그 짧은 순간에 해마다 잡초 무성한 곳에서 자라나는 야성적으로 귀여운 메꽃의 강인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길을 건너니 주차장 입구 영양가 하나 없는 땅에서도 뿌리를 심고 피어있는 접시꽃도  땡볕 샤워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쨍쨍한 여름을 피우는 꽃들이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도 난 초여름이 벌써 이미 뜨겁다. 아직 여름이라는 시간은 한참 남았는데......

어! 보도에 덩쿨없는 진분홍의 꽃이 나팔 한개를 불고 있지 않은가! 화분 속에 있어야 할 나팔꽃이 어떻게 사람들이 오가는 길 한 복판에서 그것도 혼자서 꽃을 올렸단 말인가. 누군가 화분에 씨를 심었을 것이고 아마도 씨가 바람을 타고 거리에 떨어진 모양이다. 깜짝 놀랐다.  혼자 사람들의 걸음에 밟히면서도 이 꽃 피울 시간을 기다렸단 말인가! 그렇고보니 모든 것이 단순하고나. 그런데 꽃의 사이즈를 줄이지도 않고 실컷 자신답게 피워냈구나! 넌 너를 믿었니? 고독이 두렵지 않았어? 포기하지 않았구나!

어디서든~~~!


Tuesday, June 11, 2024

앵두

 

먹거리를 구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빠알간 앵두가 알알이 달려있는 풍경을 보고 두 눈이 깜짝 놀라 앵두처럼 동그레졌다.  '이게 뭐야?!' 믿어지지 않아 지나가는 연세 지긋한 할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앵두' 맞지요?' 

초등학교 담장 울타리로 심어져 있는 앵두나무는 '앵두 맛'을 아는 어른 손을 타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요즈음 초등학교는 아무나 들락거릴 수 없는 장소이다. 출입구에 경비실이 있고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공식적으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되어서 아마 달콤한 앵두가 남아있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기도 하지만서도.

 시골 큰 집 마당에 아담하게 있었던 앵두나무!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가마솥에 찐 노란 고구마보다, 쫀득하게 말린 고구마 말랭이보다 더 예쁘고 달콤했던 앵두의 기억은 설탕 맛을 모르던 유년시절의 것으로, 귀엽고 맨들거리며 낭만적이다. 

Monday, June 10, 2024

붉은 립스틱

 '내게 늙었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바로 나다! 아무도 함부러 감히 그 불편한 진실을 말해 주지 않는다.  진실은 내가 내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 앞에서 본다. 달작지근하게 노란 불빛 아래 있는 거울은 오히려 주름을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  눈부신 하얀 조명을 켜서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시간의 흔적 또한 반갑지 않다. 다행히(?) 노안으로 인해 덜 보이는 흔적과 주름은 오늘을 살기에 적당하다. 주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당연한 일이다! 

 거울이 '내가 늙었다'라고 말하기 전에 얼른 도망 나온다.ㅋ 거울 속에 나를 쳐다 보아도 별 수가 없다. 얼굴은 남들이 쳐다 보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ㅋ 세상 밖의 사람들은 생각외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ㅋ 다행이다! 나만을 위해서 오늘도 난 붉은 립스틱을 선택하였다. 살짝 그만 무채색으로 바꿀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였다. 흰머리와 검은 머리가 반반인 상태에 붉은 립스틱이라도 발라 주어야 '진짜 할머니'가 될 것 같지 않은 그런 나만의 느낌을 버리고 싶지 않다. '하이힐'에서 내려와 편한 운동화에 몸을 실긴 하였지만,  아직 붉은 립스틱을 버리고 싶지 않다.

염색을 하지 않은 머리에 붉은 루즈는 즐겁다. 붉은 색이 야하지도 않고 생동감이 있는 것이...아마도 나이가 들면 붉은 색이 생체적으로 당긴다고 하더니 그런 모양이다. 내가 붉은 립스틱을 애용하고 있는 이유다. 

건드리지 마세요


 '엉겅퀴'의 꽃말이 '건드리지 마세요'란다. 만지면 가시에 찔릴 수 있으니 건들지 말라는 꽃말을 지녔다고 하는데 꽃을 지키는 이파리 생김새가 뾰족하여 사납고 무섭다. 아직 가시를 드세게 본색을 세우지 않은 처음 모습이라 어여쁘다. ㅋ 약으로도 쓰이는 보배같은 약초라고 한다.  몰랐다! 건들리 말라니 건들지 말도록 한다.

 '약으로 쓰인다'하면 사람 손을 타서 보기 힘들텐데 동네 공원 가는 길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세인루이스 기차길 옆에 거세고 강한 모습으로 여름을 지내고 있던  모습을 기억한다. 미국집 동네 언덕길에도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엉겅퀴는 약초란다. 귀한 몸이어서 그런지 한국에선 흔하게 보는 것 같지는 않다. 하긴, 미국에선 잔디 밭을 잡아 먹는 미운 잡초이기 쉽지만, 버릴 것 없이 쓰임새가 있는 민들레는 한국에선 위상이 좀 다르다. 엉겅퀴도 그런 모양이다. 귀한 엉겅퀴를 보았다. 

Wednesday, June 05, 2024

마늘 기쁨

 초미세먼지도 극성스럽지 않은  맑고 화창한 날, 창문을 열고 마늘을 빻아 냉동고에 넣기 좋은 날이다~~~마늘 껍질을 벗겨 커터기로 분쇄한 마늘을 냉동실에 넣어 보관하는 일은 간단하지만(?) 마음을 잡고 해야 하는 일이다. 씽크대에 서서 흙을 붙잡고 있는 뿌리와 겉껍질을 벗기고, 흙 묻은 겉옷을 벗은 붉은 빛이 도는 6쪽 마늘을 다시 물을 담은 그릇에 넣어 불리고, 다시 어여쁘고도 단단한 마늘을 각각 분리하여 다시 물에 불려서 속껍질 벗길 준비를 하는 것이다.  

거실 TV 앞에 간이 테이블을 준비하여 겉옷과 속옷을 모두 벗은 하얀 마늘을 담을 그릇과 벗겨낸 껍질을 담을 봉투와 잘 벗겨지지 않을 경우 사용할 작은 칼을 준비하여야 한다. 물을 흡수한 여러겹의 껍질이 잘 벗겨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때때로 달라붙어 손톱을 잘 사용해야 한다. 손톱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ㅋ 물에 오랫동안 불리면 알싸한 마늘의 향과 맛이 달아나는 것을 고려한다면 개인적 취향에 따라 불에 불리는 시간을 조절하면 될 것 같다. 여기저기 마늘 냄새가 진동이다. 

옷을 모두 벗은  하이얀 마늘이 맨들맨들하게 반들거린다. 다시 맑은 물에 씻은 후, 커터기를 이용하여 마늘 커터를 하면 되는 것이다. 냉동고에 넣을 수 있도록 소분을 하고 냉동고 문을 열고 갈아진 마늘을 쟁여 넣고 다시 문을 닫았다. 하루가 다가버린 느낌이 들지만 위장은 뿌듯하다. 이제 뒷처리를 해야 한다. 칼날이 있는 커터기를 씻고 다시 있어야 할 곳, 제자리로 돌려놓고 마늘 껍질을 서둘러 쓰레기통에 내다 버려야 한다. 마늘 냄새 장난 아니다!

얼른 마늘 껍질을 밖으로 내다 버리고 방향제를 뿌려도 손끝에 남아있는 마늘 냄새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배가 고프다. 

마늘을 볶은 기름 넣은 스파게티, 마늘을 넣은 김치, 마늘을 넣은 오드득한 오이지 무침, 마늘을 넣은 오징어채 무침, 마늘을 넣은 미역국, 마늘을 넣은 돼지고기 볶음......마늘을 냉동고에 쟁여 놓았다. 이만하면 족하다~~~

                                            oil painting, 24x24 inches


Tuesday, June 04, 2024

오늘도

 


두 팔을 힘차게 휘젓고 코어 근육을 이용해서 발걸음의 보폭을 넓게 하여 빠른 걸음을 하는 걷기를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걸음 숫자의 '양'보다는 '질'을 향상시키고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생각으로 노력이란 것을 했다.  '휙'하고 옆 사람을 앞질러 지나가면 보통적으로 자신의 걸음이 빠른 것이다. 공원 진입로에 들어서자마자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왜이리 공원이 이쁘지?' '내 마음이 이뻐서 그렇다고?'

 낮엔 햇볕이 쨍쨍한 여름 날씨이지만 일교차가 심해 초저녁엔 푸른 바람이 분다. 댕댕이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초여름 해가 지는 시간, 7시쯤은 활발하다. 이른 저녁을 챙겨먹고 서둘러 나온 사람들, 컴컴한 시간을 피해 나온 사람들, 뜨거운 해를 피해 나온 사람들, 퇴근하고 나온 사람들, 몸이 무거워 나온 사람들, 살 찌려고 나온 사람들, 사람 구경 나오는 사람들, 거실 쇼파를 박차고 나온 사람들, 걷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 땅의 기운을 받으려고 신발 벗고 나오는 사람들......

동네에 공원이 있다는 것이 오늘도 감사하다. 

Monday, June 03, 2024

아, 산에 갔었지

 오랜만에 동네 산에 다녀왔다. 연분홍 진달래가 피는 봄에 둘레길을 걷곤 했는데, 초록이 짙은 6월의 산은 낯설기까지 하다. 산입구에 도착하니 밤나무 꽃 향기가 바람에 날려 코끝에 와닿는다. 노란 금계국 꽃도 반갑다고 한들거린다. 

둘레길을 가기 위해서는 처음 시작하는 가파른 진입로만 잘 견디면 된다며 허벅지에 힘을 실어 잘 올라갔나 보다. 올라가야 할 곳을 올려다 보니 미리 피곤하다. 얼른 눈을 내리깔고 발을 내딛을 곳을 바라보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발걸음을 옮기니 금방 둘레길에 도달하였다. 가끔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ㅋ 못본척~~~

몸을 움직이니 자신을 괴롭히던 감정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별 것 혹은 별 일도 아닌 별 사람도 아닌 것에 사로잡혔던 감정들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특히 푸른 산 속에 있으니 더욱 그러한 것임에 틀림없다. 

한참이나 말 없이 걸었나 보다. 산의 소리가 들린다. 작은 새소리와 멀리 도시의 소리 그러다 뒤따라 오는 사람들의 멈출 것 같지 않는 재잘거림을 내내 듣고 가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얼른 발걸음을 재촉해서 도망가야 한다. '피할 수 있는 내가 피해야 한다~~~'

'침묵'이 지겹고 부담스러웠든지 스마트 폰으로 개인적인 사운드를 켜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경우도 얼른 도망을 가야 하는데... 참교육을 시킨다며 지적질을 할 수도 없고...귀마개를 가지고 가야 하나 생각해 보았다. 산에 대한 예절은 어디서 시키지? 다행히도 타인을 배려하여 조용히 산을 즐기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산에는 역시 모든 것이 있구나~~~

활엽수와 침엽수가 반반인 산이 좋은 숲의 모습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시름시름한 '소나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염려가 들긴 하였다. 푸른 활엽수와 다르게 소나무가 싱싱하지 않고 갈잎을 많이 달고 있는 모습을 여러 곳에서 목격을 하였다. 숲속의 시름시름한 소나무는 그 이상적인 언제나 푸른 소나무가 아니다. 관할 구청에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재정이 열악해서 방치하는 것일까. 

푸른 산은 투박하고 평온하고 자연스러웠다. 자연은 불완전하다~~~그래서 바람이 불고 새가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나를 위한 장미 한 송이

 


Sunday, June 02, 2024

50점

커피를 홀짝거리며 쳐다본 드라마 속 대사가 장난이 아니다. 두 눈을 들여다 보면 타인의 속마음을 알게되어 괴롭다는 초능력 아이에게 '순간 지나가는 바람처럼 이는 마음의 그림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대사가 예사롭지 않다.  진실의 민낯은 때때로 불편한 것으로 약간의 치장이 필요하다는 것,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그냥 넘어가는 것이 훨씬 더 편리하다는 것쯤은 알만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짧은 순간에 만들어진 불편한 모습과 그 말투가 현실 속에서는 잘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벌어진 모든(?) 일은 잘된 일이다?!' 긍정적으로다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기대를 과하게 품지 않도록, 50점 점수만 되어도 나와 같은 점수려니 '그러려니' 잘 넘어가라는 교훈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장미 축제 현수막에 걸린 '시련 속에 피어난 꽃이 가장 아름답다' 말을 보며 시련없이 피어난 꽃도 무지 예쁜데...하는 생각이 장미가시처럼 솟았다. 비와 바람 없이 피는 꽃이 없다하지 않는가. 살다보니 가시가 있는 나는 50점, 살다보니 가시 있는 너도 50점!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