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30, 2024

타인의 취향

 버스 안에서 '기사님, 제발 그 라디오 소리를 조금 줄여주세요'라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학창시절 빡빡한 시내 버스에 밀려 밀려 밀착되어 학교를 오가던 시절의 기사님의 라디오는 즐거웠다. 지나간 기억이라 즐거운(?) 추억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교과서에서 나오지 않는 '세상의 소리'가 라디오에서 퍼져 나왔다. 간단한 소식과 함께 곁들여진 아침에 맞는 유행가를 들으며 잠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잊고 오갔던 버스의 기억. 그러나 지금 나는 기사님의 라디오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다행히도  요즈음 버스 기사님은  라디오를 잘 켜지도 그리 크게 켜지 않는 편이긴 하다. 

아침 출근 버스에서 '가다 서기'를 자주하는 버스에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듣지 못한다면 시원하게 달리고 싶은 자체 질주 본능은 곤혹감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종종 버스 안에서 긴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들의 소리에 기분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귀에 좋은 음악'은 보물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버스 승객의 개인적인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라디오 소리를 크게 틀어 놓는 용감한(?) 버스 기사님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사님의 라디오를 함께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견뎌야 한다!

기사님이 버스에 대한 '주인 의식'이 강한 모양이다. 승객에 대한 '배려'가 없는 기사님이다. 그것은 직업 의식이 아니라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혹시 모를 일이다. 지난 밤 잠을 못이루어 라디오라도 켜지 않으면 밀려오는 피곤함을 주체할 수 없는 딱한 사정이 있는지도......뭐라고,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ㅋ 그려, 내가 당면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어폰 볼륨을 더 올리자니 소중한 고막에 부담을 주는 일이고,  견디자니 기사님의 취향과 나의 취향이 불협화음을 이루며 귓속이 시끄럽다. 차라리 내가 이어폰을 빼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하였다. 기사님의 라디오 소리를 정말 듣기 싫다는 것이 문제이다. 할 수 없이 잡음 속에서도 첼로 선율을 추려 들어 보는 것으로 '귀를 단련하기'로 한다. 

교차로의 정지 시간을 이용해 갑자기 버스에서 내려 담배 한 대를 피던 기사님은 라디오는 켜지 않았고, 라디오를 켜는 기사님은 교차로에서 내려 슬기로운 담배 생활을 하지 않는다. 그렇고 보니 오늘 기사님은 급정차 급출발을 하지는 않네...... 무슨 사정이 있나 보다......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저항'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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