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벙글
동네 공원의 붉은 흙이 깔린 운동장을 천천히 뛰는 마음은 '싱글벙글'이다. 드넓은 하늘을 머리 위로 두고 푹신푹신한 붉은 흙을 밟으며 뛰는 자신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층 아파트 건물로 하늘을 쪼개어 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었는데, 쉽게 누리지 못할 드넓은 하늘이 머리 위에 축복처럼 있지 않는가.
노년의 사람들이 햇빛 샤워를 하며 맨발로 운동장을 걷는다. 몇몇 젊은 남자 사람들은 자신들의 게임 준비를 하느라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나이탓을 하며 두 다리로 뛰는 것을 주저하고 단순하게 '걷기'만 반복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알게된 '슬로우 조깅'을 조심스럽게 실행해 보는 것이다. 천천히 뛰는 저강도 운동을 지난번보다 시간을 더 늘려 하는 것이다. 땀이 살짝나면서 기분이 젊어지는 것을 느끼며 '싱글벙글' 웃는 내 마음의 풍경을 알아챘다.
멈춰섰더니, 두 다리가 묵직하다. 힘찬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나는 싱글벙글 기분이 좋다. 늘상 다니는 길의 건널목엔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과일가게가 있다.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긴 하지만 '그러려니'하며 푸른 빛이 도는 바나나와 귀여운 대추 토마토와 귀엽게 생긴 고구마를 구입한다.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사회에서 '호칭'은 신경쓸 필요가 있다. '고객님' 보다는 친근감이 느껴지는 단어로 선택했던지 아니면 무난하게 남들이 사용하는 그대로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호칭을 사용하는 것인지. 가끔, '저는 사장님의 엄마가 아닌데요' 하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집으로 가려면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먹거리가 들어있는 검은 봉다리를 들고 길거리 노점 앞을 지나가자니 괜시리 눈치가 보인다. 바깥 길거리에서 천막을 치고 찬바람을 맞으며 장사하는 사장님 아저씨의 눈길을 피하며, 손에 들려있는 불투명한 검은 봉다리 안의 물건이 무엇인지 모르기를 바래본다. '아저씨, 푸른 바나나가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허리를 반듯이 세우고 어깨를 활짝 펴고 신호등 불빛이 푸른 색이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불확실성'을 견디는 잘키운 근육을 생각해 본다. '감사'라는 단어는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면서 '고통'을 참고 견디며 만든 '마음 근육의 힘'으로 누릴 수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단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