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February 26, 2025

두부의 맛

  집안에만 있어도 갑갑증을 느끼지 못하는 성향을 바꿀 필요는 있다. 귀찮드라도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가 신선한 시각을 가져 보는 것도 좋다.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밖으로 나가보니 온다는 '봄'은 속도를 내지 않고 조용히 천천히 온다. 아무리 날씨가 풀렸다고 해도 봄을 데리고 오는 바람이 차가울 것을 알기에, 어제와 같은 옷으로 무장을 하고 밖으로 나온 것은 잘한 일이다. 하늘에서 봄햇살이 축복처럼 내려온다. 두 팔을 흔들고 발 뒷꿈치로 걷자니 온 몸이 자체발열을 한다. 목도리를 느슨하게 풀고 오리털 잠바의 지퍼를 열어 젖힌다. '응, 날이 어제보다는 포근하군^^'

동네 텃밭에 당첨되지 않은 오늘의 나는 조금 기분이 좋지 않다. 인구의 20프로가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들어선 지금, 게다가 시국이 어지럽고 물가가 좀처럼 내려갈 것 같지 않은 난세(?)에 '텃밭 가꾸기'는 어떤 필요를 채워주고 치유를 줄 수 있는 것으로 나처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아직은 아무런 씨앗이 심어져 있지 않은 공원의 빈 텃밭을 바라보며 걷다보니 아쉬움과 부러움이 더 쑥쑥 자라고 만다. '그려, 허리 아플 것 같아, 모기에게도 물릴 것이고......' 한참이나 자신을 다둑거렸지 싶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나서 차디찬 흙을 밟고 걷는 사람들이 있는 공원 운동장으로 향해 본다.  푹신푹신한 황토의 흙이 아닌 것 같은데 사람들은 어떤 효험이라도 본 사람들처럼 성실하게 운동장을 돈다. 무슨 사정이 있어서 저 차디차고 까끌거리는 표면을 온 발바닥으로 견디는 것인지 나름의 근거와 이유가 궁금하긴 하다. '공원을 관리하는 시가 맨발로 걸을 수 있도록 질좋고 촉촉한 황토로 길을 만들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맨발로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 앞꿈치를 이용한 '슬로우 조깅'을 혼자서 과감하게 시행하고 본다. 얼굴 턱을 떨어뜨리지 않고 앞을 보며 좁은 보폭으로 하나둘하나둘 천천히 뛰다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등 뒤에서 뜨근하고도 자잘한 땀이 난다. 무리하지 않고 운동장을 돌고 집으로 걸어 돌아오는 나는 친구가 알려준 가성비 좋고 착한 '두부'를 사러 간다.

'무농약'과 '국산 콩'이란 단어 사이에서 한참이나 망설이고 있는 나의 모습(ㅋ). 무농약이며 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를 사려면 댓가를 더 치루어야 한다. '무농약'이란 단어는 항상 긴장감과 불안감을 준다. 그러면 그동안 내가 먹은 두부들은 '농약 범벅(?)이었단 것인지. 상쾌했던 기분이 불안해진다. 

'국산콩'이란 단어를 굵게 표시한 두부를 사와서 먼저 먹어보기로 한다. 두부의 처음 맛은 '큰엄마의 맛'으로 어릴 적( 아주 옛날) 시골 큰 집에서 불린 콩을 갈던 맷돌의 모습이 생각난다. 큰 엄마 옆에 쪼그리고 앉아 돌아가는 맷돌의 구멍에 물을 부어주는역할을 하던 어린 나. 콩비지를 걸러낸 콩물을 장작불로 끓인 다음, 간수를 넣어 천천히 저어 순두부처럼 뭉글뭉글 뭉쳐지면, 물기를 뺀 뭉글뭉글한 순두부를 두부 모양으로 굳히던 큰 엄마의 모습이 퍼즐 조각처럼 부분 부분 기억난다. 

물렁물렁하고 슴슴한 두부는 물에 퉁퉁 불려지고, 예리한 칼날에 알알이 갈아지고, 뜨거운 열을 통과했을 것이다. 짜디짠 간수에 응고되어 누름돌의 무게를 견디며 품고있는 물기를 쏟아내고 굳혀져 내게 온 하얀 두부.  아무맛 없는 두부가 이제는 부드럽고 슴슴하고 나름 고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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