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utalist
영화 '더 부르탈리스트(The Brutalist)'를 이해하기 위해서 '부르탈리즘'의 건축 개념을 알아보니, 단순한 형태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특징( 1950년~1970년)을 가지고 있고, 기능성과 효율성을 극대화 시킨 건축양식으로 '장식적인' 외장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 건축물'이란 느낌을 갖게 하기도 하고, 최소화된 창문 노출, 절제된 장식, 단순한 기하학적인 건물 구조의 특징은 '삭막한'이란 단어를 충분히 떠오르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 미국 유학시절, 영어 언어 연수를 받던 건물이 바로 부르탈리즘적 건물이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콘크리트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글리'란 말을 사용하며 거친 콘크리트 건물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말하곤 했던 것이 기억난다. 군데 군데 적절한 장소에 푸른 화분과 이쁜 꽃이라도 놓여있지 않았더라면, 바로 근처에 사슴이 노니는 숲이 있지 않았더라면 등등의 만약의 경우들을 생각해 본다.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영화에서 나온 대사처럼 눈을 들어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게 만드는 기능도 갖고 있는 듯.
영화의 주인공, 라즐로 토스(에이드리언 브로디)는 유대계 헝가리인 천재 건축가로 홀로코스트(유태인 학살)에서 살아 남아 겨우 낯선 미국땅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각박한 생활고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어찌저찌하여 자신을 알아본 부유한 자산가를 만나 자신의 철학이 담긴 부르탈리즘적인 건축물을 짓는 과정이 담긴 영화이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항상 그렇듯이 '예술'은 서포트를 할 수 있는 부유한 사람들이 있어야 더 빛나는(?) 것으로, 사업가 해리슨의 제안으로 지역사회에 남길 기념비적인 건축물인 컴뮤니센터(도서관, 극장, 체육관, 예배당)를 짓기로 하지만, 늘상 돈 줄을 잡고 있는 '물주'는 투자자로서 현실적인 껄끄러운 소리를 내고 때로는 슬그머니 무례하고, 무시하고, 얼굴이 없는 짓을 한다는 것이다. 천재 건축가의 앞서가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건축 설계는 주위의 일반적인 사람들과 불협 화음으로 삐걱거린다. '창의적'이란 기존의 것을 부수는 나오는 새로운 것이기에 치루어야 할 댓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고통'과 '심리적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마약'을 하고야 마는 우리의 천재 건축가님!
영화 상영 시간이 무려 215분으로, 중간에 15분 '인터미션'이 있었던 영화로 기억 남을 것 같다. 감독님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조금 어려웠다. 건축 양식으로서 영화 제목 보다는 ' 누가 부르털리스트인가' 하는 물음을 'brutal'(잔인한, 야만적, 동물을 닮은)이란 단어와 함께 생각해 보았다.
영화가 주인공의 삶을 전기적인 전개로 하다보니 '실화'인가 싶었는데 '허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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