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anuary 31, 2024

죽밥 화이팅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선택한 것에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라는 말을 쓰자니 과연 '최선'이란 말이 물음표를 만든다. 결과는 '죽밥'을 쓰고 말았다. ㅋ 1월의 마지막 날에 '불합격'이란 단어를 보게될 줄은 '설마설마'했다. 

일찍 시험을 쉽게(?) 끝내고 수험장을 벗어난 나의 결과는 참담하다. ㅠ 

고등학교 학력고사 시험 일에 하필 집 보일러가 터진 것은 불길한 징조였다. 평소대로 영발을 모아 수학 답안 번호를 잘 찍었어야 하는데 하늘은 날 돕지 않았었다. 지금 여기, 윗집 누수로 인한 거실 천정이 벽지가 울고 전기 누전이 되는 일은 시험이 끝나고 일어나야 할 일이었다. 

그동안 힘들게(?)공부한 것이 아까워서 그만두지 못하고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며, 책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밑으로 눌러지는 것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나의 거대한 '무의식'이 이미 누수 누전으로 침범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불길하다~~~ 눈을 감으면 공부한 내용이 떠올라야 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누수와 누전이란 단어들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안과 공포로 잠들지 못하며 '공부 모드'를 제대로 켤 수 없던 것이다. 

'죽밥'을 만들고 나니 내가 내린 선택과 도전이 '과욕'으로 결론나고 만다.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맛보는 '부정'과 '거절'의 쓴맛은 마땅하거늘 지금 난 물러서고 싶다. 밑줄 긋고 분홍 야광펜으로 색칠해 놓은 무거운 종이들을 저쪽 한편으로 밀어 버린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욕심을 낸 것은 아닐까.' '잘할 수 있는 것을 하기에도 시간이 없는데 굳이 못하는 것을 잘해 보겠다고 덤비기엔 내가 먹은 나이 숫자가 많은 것은 아닐까.'

못하는 것을 해보겠다고 했으니 죽밥이 된 것은 당연하다. 긍정적으로는 다시 공부해서 '시험 보기 좋은 날' 다시 한번 보면 되는 것이거늘......난 때때로 무모하고 어리석다. 그냥 그렇게 쭈욱 나답게 살다 가면 되는 것이다. '죽밥 화이팅!'


Monday, January 29, 2024

시험

 돋보기 안경을 쓰고 작은 글씨를 읽으며 공부를 하는 것은 눈이 피곤한 일로 잊고 있었던 인공 눈물을 눈에 집어 넣어야 하는 일이다. 게다가 오랜 시간을 의자에 앉아 눈으로 들어오는 작은 글자들의 지식을 이해하고 암기하고 적용하는 일은  미간 사이에 골이 더 깊어지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스트레스로 인해 살이 빠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무능함에 놀라 밥맛이 떨어져서 그런 것인지 몸무게가 살짝 가벼워지기도 하였다는 점은 특이하다. 아무래도 평소 하던 '걷기'가 없었음에도 살이 빠진 것은 근육 손질로 인한 손실이 아닐까 짐작이 되기도 한다. 잘 먹으면 금방 차오를 믿지 못할 숫자이다. 

드디어, 오늘 난 그 동안 밑줄 치고 공부한 것을 가지고 시험장에 가서 문제지를 읽고 답을 선택하는 일을 해냈다. 이런 저런 집안 일로 머리와 마음이 바쁘고 시끌거렸고, 당일 아침에도 그동안 준비했던 시험을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신경을 나누어 써야하는 일들이 나의 사정과 상관없이 발생하며 집중을 방해하였다. 

'그래도 준비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무리를 해야 한다.'

시험장에 일찍 가서 '시험 모드'를 유지하려고 했던 의도와 선택은 잘한 것 같다. 이런 저런 스트레스를 잠시 집안에 두고 얼른 집밖으로 나간 것은 잘한 일이다. 신기하게도 밖으로 나오니 시험 생각만 하게 되어서 좋았다. 텅빈 대기실에서 혼자 시험 공부를 하고 있자니 맑은 얼굴을 가진 분이 나를 위해  뜨거운 생강차를 건네 주신다. 아마도 검은 머리 가득한 곳에서 흰머리를 가진 나이든 수험생에 대한 '화이팅' 정신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다! 생강차는 뜨겁고 달콤한 위로였다. 신기하게도 시험에 대한 차디찬 긴장감과 불안이 사라지고 '따뜻함'이 온 몸으로 퍼지는 기적을 느꼈다. 그 순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다짐이 야무지게 일어났다. 최선을 다해 작은 글씨들을 들여다 보았다. '결과는 할 수 없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보는 것이다.'

무서운 집중력으로 책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흰머리 수험생 한 분이 오셔서 반갑다고 나이를 묻는다. 늦은 나이지만, 치매 예방으로 공부하고 한자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고 있다는 분은 알고 보니 나와 동갑이다. '나와 같이 무모함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시험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눈들이 살아있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어떤 결심을 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 결심대로 공부하고 인내하고 정진하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많은 나이의 숫자를 품은 몸을 끌고서 도전한 나의 시험은 작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부수적으로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와 고통이 힘들긴 하여서 '과욕'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시험'을 보러 갔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제발 시험에 들게 하소서! 무리한(?) 기도를 해본다. 



Tuesday, January 23, 2024

만만한 TV

 뭔가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은 지금 내게 유익한 일이고 감사 할 일이다. 쇼파에 눌러 앉아 TV 리모컨을 눌러대고 있다 보면 때때로 '한심한'이란 단어를 떨쳐내기 쉽지 않다. TV 시청을 거의 하지 않는 지금의 생활은 훨씬 더 주체적이고 생동적이고 생산적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과의 거리가 필요했던 코로나 시대엔  TV란 집 안에서 쉽게 삶의 다양한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는 고마운 사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좀 더 좋은 드라마와 영화를 신중하게 골라 제한된 시간에 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래도 만사가 귀찮고 시들해지면 만만한 TV 리모컨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Monday, January 22, 2024

그녀의 황금 색

 아침 커피를 마시면서  물끄러미 바라 본  TV 홈쇼핑 호스트는 피부가 윤이 나며 반질반질하다. 윤이 나며 반질반질한 화장을 유난히도 좋아 한다는 한국적인 화장의 일반적인 기준에 따르면 당연히 얼굴에 '광'이 나게 시연을 하는 방송이 마땅하다. 

반들반들한 광채가 번쩍거리는 얼굴을 가진 호스트가 판매하고자 하는 '갈색' 마술(?)이 들어있는 화장품을 소개하며 '어쩌면 이리 황금 빛으로 만들어졌을까요!'라며 아름다운 연상을 집어 넣는다. 아직 호스트의 설명에도 유혹되지 않은 나의 눈은 황금빛이라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고 내가 가져 본 화장품에서 흔하게 볼 수 없었던 갈색이라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한방 화장품은 아닌 것 같은데......'

화장품 용액의 색이 보통 자연의 추출물을 강조해서 연한 초록 계열 이든지 아니면 조금의 판타지를 넣은 아주 연한 핑크계 혹은 어떤 청량한 파스텔 톤이었던 것을 기억하자면 과감한 색이었다.아마도 화장품의 원료가 최첨단 발효 효소에서 추출되었다는 점에서 색의 선택이 정해진 것으로 추측해 본다.

그런데 '황금색'이라고 하여도 황금색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광채 나는 얼굴을 가진 호스트가 야무지게 '진짜 진짜'를 남발하여도 홈쇼핑의 주문에 말려 들지 않았다. 오늘 아침은. 화장품 하나로 삶이 황금 색으로 반짝거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닌 모양이로다. 지금 나를 반짝거리게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Sunday, January 21, 2024

나의 것

 아직도 난 때때로 의심을 한다. 엉덩이를 의자에 앉히고 돋보기를 쓰고 작은 글씨들을 들여다 보았지만 그것이 '나의 것'이 되었다는 확신이 없다. '확신'이란 말을 입에 담을 수 없는 지금이란 시간은 그야말로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나의 것'이 아닌 것을 견디고 있는 면도 있다. 영민한 판단력이 흐려진 탓으로, 끈기와 인내로 붙들고 있으면 '나의 것'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혹은 욕심에 '휙'소리 내며 저리 치워 집어 던지지 못한다. 

축복일까 아니면 괜한 욕심으로 인한 '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뒤돌아 바라보니 어쩌면 '작은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또한 든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을 품는 것도 어려운 사실일진데, 시작을 하였고 그리고 숱한 좌절의 순간이 왔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금 여기까지 이끌고 온 그 자체가 내게 일어난 작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싶다. 

막막한 두려움으로 처음을 시작하지 못했던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내가 어떤 부분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제대로 기억할 수 없고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이 불안하고 만족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나 '두려움'에 정복 당하지 않고 다시 또 다시 도전했다는 그 자체가 훌륭하다는 생각으로 셀프로 칭찬해 주고 싶다. 

조금만 더 참고 '마무리'를 야무지게 잘 해 보자고. 항상 마지막이 중요하잖아. 

Friday, January 19, 2024

옛날 사람

 수험표와 시험 장소를 체크한 아침은 공부를 하지 않고도 '조바심'이 나고 바쁘다.  '모바일 수험표를 제시할 수 있다'란 말은 부담스러워 시험일이 다가올 때까지 그 숙제 같은 궁금증을 밀어 놓았었다. 옛날 사람답게 모바일 수험표를 제시하는 행위가 부담스럽다. 할 수는 있지만 굳이 시험 일에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일단 '앱'을 다운 받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가 수험표를 누를 수는 있게 해 보았다. 로그인을 하고 들어가는 일이 그리 어려울 일인가. 하지만 나이든 난 긴장되는 시험일에 굳이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들어가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다.

안전을 위한 필수 인증을 하고 들어가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우왕좌왕, 좌충우돌 머리가 지끈거리며 '분노'가 치밀라고 한다. '왜?' 돋보기를 쓰고 크고 무거운 머리를 숙여 들여다 봤던 시간이 아까워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해결해 볼려고 노력하니, 보기 싫은 열등감과 눌러 놓았던 인내와 지불했던 시간만큼 곱해진 열이 발생한다. '이것도 못해?' 

마침내 원했던 '종이 수험표'를 출력 받으니 '옛날 사람'답게 마음이 놓인다. 


Wednesday, January 17, 2024

아직도 난

 돋보기 안경을 쓰고 들여다 본 작은 글씨들이 주는 긴장감이 어느 정도 완화가 된 탓인지 집중력이 떨어진다. 거기다가 종이의 작은 글씨에 보탠 나의 공부 흔적들의 복잡한 집합체를 다시 들여다 보려니 처음 마음의 '초심 각성'이 약화되고 메모리 용량이 부족한  머리가 지끈거린다. 

개인적인 현란한 야광  표시까지 칠해진 종이는 복잡하고 부담스럽다. 표시라도 남기지 않으면 그만 둘 것 같아 흔적을 남긴다. 표시만큼 다 이해되고 외워진 것도 아니지만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절차이기도 하다. 형형색색의 덧칠의 부담감을 이겨내는 일은 나의 몫. 새로운 전략이 필요할 때이기도 하다. 인터넷에서 여기 저기 정보를 수집하노라니 더 긴장감과 불안감이 든다. '괜한 짓을 하고 있어!'

벌떡 일어나 왔다갔다 굽어진 마음과 어깨를 펴고 있노라니, 갑자기 식탁 전등 위의 비밀리 쌓인 거무죽죽한 찌든 먼지들이 보였다. '공부 모드 중에 굳이?' 부엌과 가깝다 보니 습기와 먼지가 연합을 하여 찐덕한 먼지들이 눌러 붙은 것이다. 모른 척 눈 감고 '휙' 통과할까 말까 망설였다. 공부하려고 집안 청소부터 하다가 지쳐서 막상 해야하는 공부를 하지 못했다고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 '공부 모드' 중인데......

'안되겄어.' '집안 일부터 해야겠어.' 잠깐 '주부 모드'를 켜야겠어.

어려운 공부를 덮어 버리고 사소하지만 위대한 집안 일을 하게 되면 느껴지는 이상한 안도감과 기쁨이 있다. 평상시 생활의 리듬을 어느 정도 파괴하고 감행한 어려운 도전은 친숙하고 단순하고 기본 적인 일에 대한 '새로운 다시 보기'를 주는 것과 함께 어떤 기쁨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쌀을 꺼내어 씻을 때도, 창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릴 때도, 세탁물을 세탁기에 집어 넣고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에도, 청소기가 먼지를 잡아 먹을 때도......

스트레스 쌓인 김에, 시간이 입혀놓은 검은 때를 벗겨내는 거사를 능수능란하게 순식간에 해치운다. 반짝반짝 깨끗한 등갓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앉히고 새로 작은 글씨들을 들여다 본다. 기분 전환으로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공부하다가 또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평소 무기력하고 게을러서 미루어 놓았던 것 하나를 골라 정리해 볼 생각이다. '난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Tuesday, January 16, 2024

오늘이 몇 일이지?

 오늘이 몇 일이지? '벌써'와 '아직'이란 상반되는 단어가 함께 떠오른다. 다가오는 시험 날짜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해진 마음에 하루의 시간이 빨리 흐르고, 한편으로는 시간을 촘촘히 천천히 사용하다 보니 여행지에서 보낸 하루처럼 시간이 새롭고 알차게 가는 느낌을 받는다. 



아직은 젊은 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냥저냥 살아도 괜찮을까 의문이 드는 '아직은 젊은 날'이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현실은 나이에 따라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몸이 노쇠해 간다. 나이듦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수용하고 저항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은 젊다는 생각으로 '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고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 

아직 새롭게 시작한 2024년 1월의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실 하루에도 여러번 집어치울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더 힘들긴 하다! 괜한 욕심으로 나이든 몸과 정신을 혹사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수시로 찾아 들어와 순수 몰입을 방해를 한다. 어렵고 이해할 수 없어 좌절하고 방황하는 틈을 타서 부정적인(?) 생각이 냉큼 들어와 '그만 내려 놓으시게' 한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한다나. 

 내 안의 시끄러운 싸움에 지칠 때, 때로는 뒤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다.

오랫 동안 의자에 앉아 있으니, 등이 굽고 아프다고, 필기 도구를 붙잡은 손가락도 아프다고  여기 저기서 아프다고 신호를 보낸다. 아무런 도전 없이 평안하고 심심하고 쉽게 지루해지던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던 날은 분명히 피곤했는데......

새해 첫달은 새로운 다짐을 딛고 조금 어려운 도전을 시도해 볼 만하다. 어려운 책을 한권 '정독'한다는 생각으로 읽고 이해하면 되는 것이고, 한 만큼 내 것이 되는 것이라며 쉽게 부정적인 생각에 물러나지 않고 있다. 평상시 사용하지 않던 뇌를 활용하는 것은 '치매' 예방 차원에서라도 괜찮고, 어떤 것에 강도 높은 몰입을 할 수 있는 것은 무기력하고 불안하고 우울한 기운이 침범해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내 안의 열등한 느낌을 드러내는 어질어질한 공부를 잠시 내려놓고 밤 산책을 나가 도전 극복 후의 만끽할 즐거움을 떠올려 본다. 공부하느라 굽어진 등을 곱게 펴고 두 다리로 걷는 공원 산책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충전시켜 줄뿐 아니라 내게 줄 수 있는 작지 않은 즐거움이다. 지금 여기서 내가 처한 환경에 맞게 나답게 살다 가면 되는 것이다.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다. 오늘은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내일 포기해도 늦지 않았다. '희망 고문' 중이어도 할 수 없다. 1월이니까!

Saturday, January 13, 2024

잠은 보약

콧물이 줄줄 흘러서 찾아간 동네 병원에서 '알러지' 약을 처방 받았다. 웬만하면 병원엘 가지 않는데  흐르는 콧물 때문에 책을 들여다 볼 수 없어서 병원엘 갔다. '알러지'란 말은 뭐랄까 막막한 표정을 짓게 만든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개인적인 상황을 모르지 않는가. 설마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공부 말고 딱히 알러지라 짐작할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아 뜨악하게 쳐다보니, 특히 요즘 같은 날씨의 바깥 찬바람과 건조하고 따뜻한 실내 공기로 인한 온도 차이가 요인일 수 있다고 하신다. 

의사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과 안내가 다 끝나기도 전에 '의자에서 일어날게요'라며 의사와 환자간의 5분도 되지 않는 짧은 진료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못된 간호 조무사는 도대체 어디에서 구하시는 것일까. (환자 대기실에 환자 1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못된 간호 조무사에 대한 불쾌한 '알러지'가 일어난다.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행동은 고유한 환경에서 길러진 것이고 내가 알 수 없는 여러 핑계거리들이 있을 것이다. 능력있고 자상한 의사 선생님의 진료 시간을 조절하는 임무를 맡은 모양이로다. 환자가 간호 조무사의  인성 교육까지 시켜줄 수 없으니 그냥 환자인 내가 아프지 않고 병원을 가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렇고, 난 나의 콧물 '알러지 요인'을 알고 있다. 기온의 온도차를 극복하지 못했던 이유는 '면역력'이 떨어진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면역력'이란 말도 어려운 단어임에 틀림없다. 무엇이 면역력이지?) 개인적으로 웬만하며 피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숫자가 나오는 것들은 참 싫다. 숫자가 나오면 몸이 이상 반응을 하는 것 같다. 정말이다!  온 몸이 힘드니 힘들다고 표시를 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공부 모드로 각성하여 충분한 휴식과 기본적인 잠이 부족하니 당연히 셀프 보호 차원에서 내 몸이 이상 반응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알러지 약의 졸림 증상때문이지 아니면 커피를 줄인 탓인지 지난 밤은 잠이 들었다. 충분한 잠은 역시 보약이다. 알러지 증상이 완화되었음은 물론이다. 오늘 밤을 잠들기 위해 아침 커피만 마시는 노력을 하였음은 셀프로 칭찬할 만하다. 알러지 반응이 생겨도 새로운 도전을 포기 하지 않았음도 칭찬해 본다. 중요한 것은 꺽이지 않는 마음!!

Thursday, January 11, 2024

순한 밍밍함

 아침을 벌떡 일어나지 못함으로 모든 것이 엉망이다. 과도한 신경 각성으로 인한 수면 부족을 이제 감당할 수 없는 나이가 된 모양이다. 나의 '나약함'을 받아 들이고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카페인 섭취를 줄여야 하는 것 잘 알면서도, 오후 시간의 희멀거림을 감당할 수 없어 아침과 점심 식사후에 커피를 마시는 습관을 내려 놓지 못한다. 늘 반 발짝 늦게, 어리석게도 아프고 나서야 깨닫는다. 

아픈 나를 위해 특별히 밍밍한 '누릉지'를 아침으로 먹고 있는 중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는 자극적이지 않은 누릉지의 순한 밍밍함이다. 그래, 때때로 아플 수도 있지~~~ 지난  밤에도 나를 햇살처럼 비춰주는 좋은 의지에 대한 의심을 품었다. 그리고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괜한 짓을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오늘 아침 난 아프다ㅠㅠㅠ 일단, 누릉지라도 먹어야겠어~~~

Wednesday, January 10, 2024

공부 모드

 여러 잡다한 생각들을 뒤로 하고 그냥 앉아서 '공부 모드' 켜고 달라들어 몰입하면 되는데... 그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냥 시작하면 되는 것'이라는 말은 내게 있어 거의 맞는 말이지만,  현실의 나는 수시로 사로 잡힌 잡생각을 제거 하느라 쉽게 시작도 못하더라는 것이다. 

마음 밭의 양지에 씨앗을 심고, 

처음이라 느리고 때로는 비바람에 잠시 흔들리고 멈추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내 정원의 꽃처럼 피어 날 것이다. 

어둠 속에 있는 막막했던 것들의 형태를 점차 파악함에 따라 무지로 오는 두려움이 안정되고 이제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어서고 있다.  마음 밭에 씨앗을 심고 시간과 인내를 쏟아 부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내게 일어날 작은 기적이다. 

'이 나이에 무슨' '무슨 도움이 될 수 있겠어'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로 씨앗 뿌리기도 주저하던 내가 '더 나은 나'를 위한 도전적인(?) 선택을 한 것은 셀프로 다둑거릴 일이다. 화이팅~~~


Tuesday, January 09, 2024

문제

 지난 밤은 쉽게 잠들었으나 너무 일찍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며칠 동안 열심히(?) 공부했던 내용은 전혀 생각나지 않고, 해결해야 할 혹은 해결하지 못한 생활 속 문제들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운 듯 하다. 아마도 공부를 우선 순위를 두고 일상 생활의 루틴을 깨뜨린 결과로 스스로가 자초한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모양이다. '상당한', 아니 아주 많은 양의 인내와 시간을 사용해야, 배우고 익히는 것이 즐겁고 머리가 맑아지며 더불어 삶에서 윤기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해결 방법을 찾아 내기 위해서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은 시험이나 생활 속에서나 중요하다. 부풀려진 불안감의 거품을 빼기 위해 일단 '메모'하고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최선을 다해 '몰입'해 보는 것이다. 그려, 난 할 수 있어~~~

 

Monday, January 08, 2024

내 것이 아닌 양

 일단 블러그에 '몇자'라도 적고 하루를 시작할 일이다. 그동안 '내 것이 아닌 양' 심히 부담스러웠던 공부를 시작하였다. 노후되고 용량이 딸리는 머리에서 '과부하'가 일어나 '오작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쉽게 예상했었고 실제로 온갖 번뇌로 심신이 괴롭고 피곤하고 아플 것 같은 증상이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이러다 아프면 어떡하지'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온몸에 식은 땀이 나는 그런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댓가로 치루고 통과해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머리와 가슴을 붙들 무거운 엉덩이가 아직 내게 있다는 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순 없다. 

Sunday, January 07, 2024

오랜만에 김치찌개

 오랜만에 김치찌개를 끓였더니 배가 고르륵거리며 온 집안에 퍼져있는 맛있는 냄새에 반응을 한다. 모처럼 뇌를 움직여 공부(?)라는 것을 하고 있자니 몸의 각성과 긴장 상태로 먹지 않아도 배가 찬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뇌를 움직이면 원래 배가 고픈 것 아닌가. 아무래도 자신의 무지에 놀란 모양이다. 하지만 좀 더 '슬기로운 생활'을 위해선  '몸'부터 우선 챙기고 봐야한다. 

그 옛날 친정엄마의 기름이 둥둥 떠있던 돼지 비지 김치찌개는 지금 이 나이에 더 이상 허락할 수 없다. 대신에 '적당한 기름기'를 함유한 찌개용 부위를 넣어 만들었다. 김치찌개는 '밥'을 부르는 음식 중 하나로 삼가해야 할 '치명적인(?)' 음식이다. '치명적인'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이 과한 표현이었지만, 너무 맛있어서 밥을 많이 먹으면 내장 지방이 쌓일 것이고, 그로인해 혈관에 문제가 생기고, 당 조절도 혼란스러워 무리가 갈 것이고, 비만으로 인해 유발되는 관절 이상......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오늘 맛있는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하얀 '두부'를 올려 식물성 단백질 섭취를 위한 노력은 했지만, 맛있고 자극적인 신김치의 익은 맛은 언제나 '저항'하기 어렵다. 슬기로운 중년에게 권장되는 저염식과 저탄수화물 식습관에 반한 것으로 자주 섭취할 음식은 아니라고 주의와 경계를 하고 있지만  오늘 난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는 것이다.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적당하게'란 말은 언제나 어렵다.

Friday, January 05, 2024

목소리 듣기

 벌써 6일, 2024년 첫 토요일이 되었다. 고속버스 티켓을 온라인에서 구입하고 지하철을 타고 고속버스 터미날에 도착하여 '우등버스'라는 것을 이용하게 되었다. 고속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이 줄어 들어 고속버스 터미날이 여기 저기서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나마 강남 고속버스 터미날에서 남쪽 끄트머리 시골로 하루 세번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스마트 폰으로 티켓을 다운 받아 '큐알'로 인식을 하여 버스에 올라탔다.  세상은 디지털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을 실감하였지 싶다.  스마트 폰을 활용한다 할지라도 5시간의 장거리 버스 여행은 잠을 청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지루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다행히 흔들리는 버스에서 잠이 들었다. 버스 여행은 기차 여행보다 확실히 힘든 이유는 내 의지대로 일어나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잠깐이나마 두번의 휴게실 시간이 있었지만 비행기 여행을 하는 것 만큼 다리가 경직되고 온 몸이 피곤함을 느꼈다. 의자를 제치고 다리를 쭉 뻗는 비행기 비지니스 좌석 폼이었지만, 버스에서 흔들리는 것은 아직도 이겨낼 수 없는 '멀미'인 모양이다. 

시골에 계시는 연세 87세 나의 아버지는 지금도 '자가 운전'을 하시지만 '카톡' 사용을 못하신다. 카톡 사용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참으로 쉽지만,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자체가  나이드신 어르신들에겐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대화창에 문자 주고 받고, 사진을 주고 받으면 되는 것인데 그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아주 쉽게 적절히 제대로 설명한다고 했는데도 아버지는 쉽게 포기를 하신다.

'금방 돌아서면 잊어버려.'

'그래요, 목소리 들으면서 전화로 이야기 나누는 것이 최고예요^^'

난청이 있으신 아버지께서는 카톡으로 메세지를 주고 받으시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인 것을 알지만 그만 나의 붉은 의지를 멈추고 만다. 아무리 급변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 평생 교육을 통해 적응하고 살아야 하는 시대라고 이라고 하지만 '뭣이 중한가'하는 생각을 하였다. 새로운 소통 방법을 알게 되면 더 좋겠지만 '스트레스'까지 받아 가며 배우고 익히는 것을 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전화를 걸면 되는 것이다. 

Thursday, January 04, 2024

살아 있구나

 잠 못이루며 떠올린 어린 시절의 얼굴이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까르륵거리며  순수했던(?) 오래 묵은 목소리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 '살아 있구나' ㅋㅋ '생각하면 정말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일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어 아니 품을 수 없어 '거기까지'라며  질척거리지 않고 보냈는데...... 지난 밤 질척거림의 응답을 받는 듯한, 전화 한통에 형언할 수 없는 감격의 눈물로 눈가가 촉촉히 젖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를 내어 먼저 전화한 친구가 내게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친구의 용기에 힘입어 오랫 동안 연락하지 않은 무심한 친구에게 전화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긴 하였다. '마음이 번잡하다......' 어린 시절 우정은 오래된 앨범의 사진들처럼 거기에 그렇게 희미하게 기억되는 것이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무엇보다 나에겐 색바랜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채색할 넉넉함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만다. 우린 그때 서로 친구였다. 그것으로 족하다. 

Monday, January 01, 2024

새해 첫밤

 새해 첫밤을 뒤척거렸다. ㅠ 하루 한잔의 아침 커피로 카페인을 제한하고 밤늦은 운동과 스마트 폰으로 몸과 마음을 각성시키지 않겠다고 조심했지만 새해 첫밤은 '한참이나' 뒤척거렸다. 잠들지 않은 어두움은 달콤하지 않다. 잠이 쉽게 들지 못한다면 벌떡 일어나 침실 밖으로 나와 책을 본다던지, 스마트폰을 켜놓고 지루한 동영상 교육을 들으며 잠을 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끝끝내 드러누워 있었다. 

나를 위한다며 꾹꾹 눌러 놓았던 슬픔이 기어 나오고, 서로를 위한다며 모른 척 넘어갔던 억울함이 시간을 지났어도 화가 치밀고, 나를 위해 숨겨 놓았던 부끄러웠던 순간들이 쥐구멍 속에 남아 나를 아직도 붉어지게 한다. 나의 타임라인에서 '여기까지' 혹은 '거기까지' 함께 하고 사라진 인연들과의 색 바랜 기억들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어두움 속에  깨어있다. 어쩔 수 없어 머뭇거리고 체념했던 소중한 인연들과의 기억이 앞뒤 순서 없이 뒤죽박죽 펼쳐지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못난 모습들로 잠들지 않는 어두움 속에 한참이나 뒤척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