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anuary 17, 2024

아직도 난

 돋보기 안경을 쓰고 들여다 본 작은 글씨들이 주는 긴장감이 어느 정도 완화가 된 탓인지 집중력이 떨어진다. 거기다가 종이의 작은 글씨에 보탠 나의 공부 흔적들의 복잡한 집합체를 다시 들여다 보려니 처음 마음의 '초심 각성'이 약화되고 메모리 용량이 부족한  머리가 지끈거린다. 

개인적인 현란한 야광  표시까지 칠해진 종이는 복잡하고 부담스럽다. 표시라도 남기지 않으면 그만 둘 것 같아 흔적을 남긴다. 표시만큼 다 이해되고 외워진 것도 아니지만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절차이기도 하다. 형형색색의 덧칠의 부담감을 이겨내는 일은 나의 몫. 새로운 전략이 필요할 때이기도 하다. 인터넷에서 여기 저기 정보를 수집하노라니 더 긴장감과 불안감이 든다. '괜한 짓을 하고 있어!'

벌떡 일어나 왔다갔다 굽어진 마음과 어깨를 펴고 있노라니, 갑자기 식탁 전등 위의 비밀리 쌓인 거무죽죽한 찌든 먼지들이 보였다. '공부 모드 중에 굳이?' 부엌과 가깝다 보니 습기와 먼지가 연합을 하여 찐덕한 먼지들이 눌러 붙은 것이다. 모른 척 눈 감고 '휙' 통과할까 말까 망설였다. 공부하려고 집안 청소부터 하다가 지쳐서 막상 해야하는 공부를 하지 못했다고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 '공부 모드' 중인데......

'안되겄어.' '집안 일부터 해야겠어.' 잠깐 '주부 모드'를 켜야겠어.

어려운 공부를 덮어 버리고 사소하지만 위대한 집안 일을 하게 되면 느껴지는 이상한 안도감과 기쁨이 있다. 평상시 생활의 리듬을 어느 정도 파괴하고 감행한 어려운 도전은 친숙하고 단순하고 기본 적인 일에 대한 '새로운 다시 보기'를 주는 것과 함께 어떤 기쁨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쌀을 꺼내어 씻을 때도, 창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릴 때도, 세탁물을 세탁기에 집어 넣고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에도, 청소기가 먼지를 잡아 먹을 때도......

스트레스 쌓인 김에, 시간이 입혀놓은 검은 때를 벗겨내는 거사를 능수능란하게 순식간에 해치운다. 반짝반짝 깨끗한 등갓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앉히고 새로 작은 글씨들을 들여다 본다. 기분 전환으로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공부하다가 또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평소 무기력하고 게을러서 미루어 놓았던 것 하나를 골라 정리해 볼 생각이다. '난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0 Comments:

Post a Comment

<<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