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Something beyond Oneself!
나른한 점심을 커피로 마무리 하면서 '니체'님을 만났다.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가지 형태로 문제가 들어있는 삶의 과정을 지나며 내려가기도 하고 올라가기도 하면서 스스로에게 주어진 답을 창조적으로 때로는 긍정적으로 찾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해석을 해보았다.
물가에 가는 일이 즐거운 일이지만 때로는 그 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일련의 사건들은 스스로를 넘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이 싫다면 물가에 갈 수 없는 일이고 집에만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 성숙해 지기 위한 기회들이라 여기면 마음이 훨씬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여유로운 자의 것이라는 것을 조금 깨닫는 날이기도 했다. 심장이 다친 사람처럼 머리로만 생각하여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나 막상 그런 일을 당하게 되면 그 어떤 심장이 뛸 수 있는 비어있는 여유가 없는 것이 팍팍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거울처럼 보게 되었나보다.
루소님이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자유의지를 분명히 밝힌 젊은 그녀의 의사표현은 칼날처럼 시퍼렇지만 인정하기로 한다.
물가에서 어느 젊은 여인의 싱그러운 미소를 보며 지난 젊었던 시간들 생각이 났다. 밝게 웃는 젊은 여인의 꽃같은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즐거운 것이 늘어나는 남성 호르몬 탓이 아니길 바래본다. 타인의 얼굴을 보고 기뻐하다니 아무래도 늙어서 생긴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니체님이 묻는다면?
젊은 여인들을 시기 질투 하지 않은 것, 듣기 싫은 말을 듣고서도 그냥 꿀꺽 넘긴 것,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어준 것, 타인을 칭찬해 준 것, 타인의 달갑지 않은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을 적극적으로 밀고 나간 것, 미운 짓 한 사람의 행동 참아주고 넘겨주고 말 받아주며 웃어준 것, 이상한 해석을 하며 자신의 생각에 갇혀있는 시건방진 사람의 쓰레기 같은 말을 얼른 통과시켜 버린 것, 포기하지 않고 못하는 평영 연습한 것 등등을 하며 오버고잉과 다운 고잉을 하지 않았나 싶다. 확실히 평영할 때 오버와 다운을 했다.ㅋㅋ물론 온몸 늘려 수면 가까이서 말이다.
그렇고보니, 하늘을 우러러 별을 보는 것을 포기했지 싶다. 그렇다! 별을 찾지도 않고 살고 있구나~~~ 수 많은 별들이 반짝이던 큰 하늘이 있던 그곳에서의 시간이 지금은 사람들의 불빛으로 빛나는 시간으로 와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어찌 극복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