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21, 2017

under the Sun

아침 물가로 걸어가는 길에 내리쬐는 햇살이 두려워 양산을 들었다. 잡티 없는 하얗고 뽀얀 피부를 위해 관리하는 여인들에 비해 자연스럽게 타고난 피부의 잡티를 를 갖고 살아가는 여인의 피부가 '없어보인다'라는 혹은 '저렴해 보인다'라는 평가를 노골적으로 하는 것이 불쾌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때때로 그 강력하여 폭력적이기도한 생각에 점령당해 거울에 보이는 잡티 얼굴이 무지 불쌍해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손끝이 시러워 장갑을 끼고 두꺼운 겨울 속옷을 아직 벗지 않은 꽃샘추위를 보내고 있는 차림에도 여름같은 양산을 들 수 밖에 없었지 싶다. 자동차로 움직인다면 아마 양산이 필요치 않았겠지만 아침물가를 걸어가는 기쁨을 포기하고는 싶지 않다. 주위의 눈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을 관리하는 용감한 여인들도 있다는 생각에 이른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차양 넓은 모자 대신 차라리 양산을 들고 걸었다. 아파트 입구에 노오란 산수유 꽃이 봄이라며 바람에 흔들거린다. 바람이 불지 않았던 막 떠난 자리가 서늘한 겨울 생각을 잠시 하였다. 옷깃이 바람에 날릴 때, 바람은 봄에 불어온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아~ 봄바람~~~

아침길 시냇물 속엔 작은 물고기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 겨울 동안 찾았던 그 물고기들은 그 동안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 고운 흙들이 앉아 모여 있는 움푹한 곳, 있을 만한 곳에 가만히 가던 걸음 멈추고 서있으면 작은 물고기들이 오여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오리들이 머리를 박고 꽃같은 궁둥이를 올리고, 길다란 목과 다리를 지닌 흰 두루미 두 마리가 침묵하며 서성이는  익숙한 그림을 보면서 내가 노는 물가로 양산을 들고 걸어갔다.

도시의 농부가 가꾸는 땅에도 봄을 맞이하여 움직였다는 흔적을 남겨 놓고 있었다. 부석거리는 겨울의 흔적들을 거둬내고, 밭고랑이 분명하고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여름을 기다리는 땅은 아직 조용하다. 땅속에 씨앗들이 소리없이 뿌리를 내리고 올라 오고 있는 것 확실하다. 봄비가 더 내리고 바람이 불고 햇살이 더 뜨거워지면 왕성한 푸르름으로 일어 날 것이라는 것 알고는 있다. 조용하지만 분주한 도시 농부의 땅을 지나 재즈 음악이 흐르는 커피숍 앞을 지나 내가 움직이는 물가로 걸어갔다.

이름 모를 고향언니가 손을 잡으며 밥을 먹고 가라며 붙잡는다. 고향 사투리를 사용하는 부드럽고 따스한 언니의 손을 잡고 따뜻한 점심 함께 하고 싶었지만 두려운(?) 마음에 집으로 들어왔다. 새로운 친구를 얻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동안의 상처(?) 때문인지 쉽게 밥먹고 차마시고 그런 일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그런 느낌? 그냥 웃고 인사하는 그런 사이로로 만족할 수 있다는 생각이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좋은 님이  나의 그림을 벽에 걸어두고 내생각을 한다며 페이스북 담벼락에 안부를 물었던 이른 아침의 안녕이 생각난다. 그곳 시간 오후3시! 커피 마시며 내 생각을 했을까? 잠이 와서? ㅋㅋㅋ 만화를 좋아하며 만화책을 수집하던 영문학 박사님이 이제 교수님이 되셔 연구실이 생겼단다. 연구실 벽에 내 그림과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포스터를 붙여놓고 내게 안부를 물었다.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고 기억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물가에서 만난 여인의 전화번호를 새로 첨가한 날이기도 하다.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는 그런 이야기로 시작해서 마무리도 그렇게 하였지 싶다. ㅋㅋㅋ 나이가 든다는 것은 병이야기를 하며 대화를 꾸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오래묵은 친구생각이 간절한 것인지?  한동안 연락이 없는 오래묵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학창시절처럼 '막수다'를 무식하고 예의없이 떨어놓고,  끊고나서 후회했다. 더 잘할 걸~~~더 칭찬해 주고 더 박수쳐줄 걸~~~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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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묵은 친구가 전화끊고 나서 보낸 글을 옮겨본다.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 나게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내가 가진 크나큰 지혜를 다 쓰지 못하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줄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내  팔 다리 머리 그리고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주소서.
내 몸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가고 그것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 줄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마는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 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저의 기억력을 좋게 해 주소서 하고 감히 청할 순 없사오나, 제게 겸손한 마음을 주시어 저의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때론 그 사람이 옳다고 행각하는 나도 가끔은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줄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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