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남쪽으로 향한 넒은 창문으로 쏟아져내리는 광경은 행복하다. 조그만 흙덩이에 뿌리를 내린 '제라늄은 지칠 줄 모르고 붉은 꽃을 들어 올린다. 몇줌의 흙으로도 생명력을 유지하며 환경을 탓하지 않고 열심히 자신의 꽃을 내뿜는다. 겸손한 척 할 필요없이 빛을 향해 두팔 들어 올리고 날마다 새롭게 피고지는 제라늄이 나의 공간에 벌써 3년이 넘어간 시간을 함께 하고 있나 보다.
불혹의 시대를 지냈던 그곳 가라지 문앞 좌우로 큰화분에 제라늄을 심었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어느 추수감사절에 겨울이 오기전 마지막으로 붉은 그 꽃들을 그린 그날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향기로운 내음을 가지진 않았지만 강인해서 아름다운 붉은 제라늄의 꽃말은 '그대의 행복' 이라고 한다는데 바라만 보아도 행복한 내게는 마땅한 의미임에 틀림없다.
일요일 오후 뒷산에 오르며 귀한 보물을 방치한 것 같은 후회스러움이 욕심사납게 찾아오긴 했지만 산은 포근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왔다. 산에서 사람을 혼자 만나는 것이 두려워 뒷산이라도 오가는 것을 정지하고 있었더니만 작년 진달래가 피었을 봄풍경도 보지 못했고 아름다운 가을의 모습도 챙기질 못했고 눈이 내린 모습도 눈에 담지 못했다는 것을 새삼 인지하였다.
훨씬 주름진 사람들이 산길에 있었다. 네모난 아파트 숲을 앞뒤로 바람 한점 없는 한겨울의 뒷산에 오르는 것은 연골이 아직 남아 있는 축복이요, 두 다리 성성할 때 기를 쓰고 산을 올라야 할 얼마남지 않은 젊음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른다는 과격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페타이어가 깔린 인공적인 길이 아닌 붉은 살을 떨어진 솔잎과 낙옆으로 덮고 있는 산길을 걷는 것은 부드럽고 포근한 행복감이다.
한시간 동안의 산길속에서 침묵은 화학적이고 인위적인 것들을 멀리 하고 싶은 평화로운 마음을 선물로 안겨주는 듯해서 예약했던 영화까지 취소하는 결과까지 초래하였지 싶다. 그것으로도 족하다는 그런 배부른 느낌 같은 것을 오랜만에 누릴 수 있었지 싶다.
겨울 하루의 긴밤을 붙잡고 '스피릿'이란 볼링 영화를 보았는데 왜 흥행에 실패했는지 알 것 같았다. ㅋㅋㅋ 따뜻한 영화인데 뭔가 새롭지 못하고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그냥 인간애에 호소한 스피릿난 영화를 보면서 그래도 돈이 덜 아까웠던 것은 볼링에 대한 잊혀지지 않는 추억의 그림속에 함께 등장했던 볼링사람들을 기억나게 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왼쪽 무릎과 허리가 좋지 않아 피해야 할 운동이 되어 버린 볼링을 생각하니 아직도 팍! 하고 쓰러지던 핀들의 환호 소리가 바로 귓전에 들리는 듯 하다.
그리고 오늘의 난 '백 플립 턴'을 물가에서 접수하였다. 간절히 원하니 몸이 알아서 뒤집어지는 그런 작은 기적을 맛보아서 행복하기도 하다. 낼 물가에 가게되면 무호흡 25미터 접영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이상하게 무호흡 접영에 대한 두려움이 내게 있다. 물론 해보지 않아 요령도 없고 불편해서 생긴 현상이긴 하겠지만 팔이 잘 물속에서 올라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말았다. 무슨 차이로 무호흡시 단순 접영과 다른 팔동작 현상을 당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ㅋㅋㅋ 난 아무래도 수영장 락스 물에 중독이 심한 것 같다. )
기본적인 운동 이야기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너 뭐하는 사람이야요?'하고 정체감을 묻고 그러면 안되는데 작품활동 하느라 정신없이 바쁠 멋진 님들을 생각하니 정신차려야겠다는 생각이 좀 들긴한다. 이제 봄이 되면 그룹 전시회도 할터인디...
누군가에게 뭘 보여줄려고 작품을 했던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일이 즐거웠고 괴로움이었고 전부였던 시절이었고 집중과 몰입으로 나만의 감각이 깨어나 캔버스로 옮겨지던 붉은 시절이었지 싶다. 지금 통과하고 있는 이 방향을 잃은 일상적이고도 지루한 시간들을 난 즐길 것이다. (먼말인지?ㅋㅋㅋ) 하늘이 내게 준 운명의 뜻을 안다는 시간대는 아직 푸른 에너지로 왕성한 시절로 포기하기엔 넘 이르다는 것 아직 난 알고있다.
Chet Baker,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