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드라?
가우디(ing)
바르셀로나 가우디의 성가족성당
옛것과 새것이 아직도 진행중인 독특한 모습을 지닌
성가족 성당은 가우디가 설계 건축 감독한 성당이며, 1882년 3월19일 (성요셉 축일) 공사를 시작해 1926년 6월 그의 죽음까지 교회의 일부만 완성했으며, 현재까지도 작업중이라 '느린 건축'으로 가우디의 특성이 가장 종합된 건축 조각물이라 할 수 있다한다.
중심부 천정의 모습으로 창문에서 내려온 빛이 드높은(40 미터?) 대리석 다발적 기둥 사이를 비집다.
Jesus in Gaudi
스페인의 현대 조각가
수라비치가 진행중인
수난의 문의 한 모습
오렌지 향기가 있는 세비아성당(히랄다 탑에서 내려다 보다)
12세기에 이슬람 칼리프에 의해 건설된 첨탑,
히랄타 탑은 가장 기하학적인 장식이 많이 보이는 이슬람적인 건축물이라고 한다. 벽돌로 쌓아 올린 첨탑을 말대신 두 발을 이용하여 34층을 올라가 보았다. 중간 중간 창문이 있어 세비야 시가지를 감상할 수 있게 해놓았더이다. 세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 산타크루즈 거리, 세비아 투우장, 왕궁이자 요새인 알카사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세비아 성당은유럽의 3대 성당중의 하나라고 한다. 역시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으며, 1401년 착공하여 125년 뒤에 완공되었으며 고딕과 신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섞여 있다고 한다. 무리요의 성모수태, 고야와 수르바란의 그림이 성배실에 있고 성령감림을 나타내는 스테인드 글라스, 황금색 목재 제단, 15세기의 합창대 등등을 볼 수 있다. 콜롬보스가 잠들어 있기도 한다.
세비아 전경
세비아 성당의 하늘
황금의 탑
과달키비르 강 근처에 항구를 방위하고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워진 12각형으로된 황금의 탑은 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1220년 이슬람 교도가 건설한 탑으로 당시에는 탑 상위가 황금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었다는 설과 혹은 신대륙으로 부터 가져온 황금을 보관하는 장소로 쓰였기때문이란 설이 있는데 확실치 않다고 한다. 현재는 마젤란이 세계일주 항해 기념한 해양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강건너편 8각형의 은색 탑과의 사이에 쇠줄을 매어놓고 배를 검문하였다 한다.
황금의 탑 앞에서 보따리 장사하는 님은 촬영비를 받는다. 얼굴을 얹어 찍을까 말까하다가 말았다.
나뉘어진 산(몬세라트)
톱으로 깍아지는 듯한 기암절벽의 경치와 그 자연환경 속에 수도원을 건설한 까딸루냐인들의 대단함에 놀랐다. 사실 둥글둥글한 바위들은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어 다정하기도 하였다.
다양한 동물들을 나름 상상할 수 있는 돌산이 설악산 같다나?.
구엘공원
구엘공원은 바르셀로나 북서쪽 페라다산의 남쪽 언덕비탈에 자리잡고 있는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공원이라고 한다. 바르셀로나의 부호였던 구엘백작과 건축가 가우디가 영국식 정원이 있는 이상적인 전원도시를 목적으로 계획된 것이라 한다.
가우디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로 여겨졌다. 헨델과 그레텔의 동화를 영감으로 삼아 만들어진 구엘공원에 있는 가우디의 버섯 모양이 독특한 그의 사무실 지붕이 왼쪽으로 보인다.
모자이크 타일 사진은 있는데...바르셀로나 북쪽에 위치한 구웰공원은 가우디의 동화적인 독특한 디자인이 돋보였다. 모자이크 타일로 만들어진 도롱뇽이 있는데 왜 사진을 안찍었지?
가우디의 깨어진 타일
트렌카디스, 불규칙적 조각 이용기법을 보여주는 모자이크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그라나다의 상징인 알함브라 궁전은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에 이슬람 사원으로 있다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을 일으킨다. 스페인의 기독교 세력에게 쫓겨 최후의 보루로 세운 이 궁전은 기하학적 패턴과 미스테리한 정교함을 지니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UCJkwBNtTE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베르셀로나 보케리아 시장의 먹거리- 하몽
바르셀로나이 람블라스 거리엔 많은 카페와 상점들이 몰려있었다. 보케리아 시장구경은 아주 빛의 속도로 달렸기에 그 유명한 소매치기가 날 잡을 수 없었지비...
닭인가 오리인가?
어느 스페인의 아침
그라나다 알함브라 아이리스
그라나다 집시는 노래를 부르고
코르도바 유대인 꽃길 거리?
유대인 거리는 하얀색으로 칠해진 골목사이로 저마다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쁘게 꾸며져 꽃 길 이라고 불리며 시에서 가장 이쁘게 꾸민 집을 선정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한다고 한다.
메스키타 서원
이미지?
메스키타 사원은 스페인을 지배한 이슬람 문화가 남긴 독특한 유산을 보여준다. 메스키타는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이 번갈아 가며 점령한 탓에 두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모습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사원내부에는 줄무늬 석영, 벽옥, 대리석 화강함 등으로 만들어진 850개에 이르는 둥근 기둥이 아치를 이루며 사있어 미궁 속을 연상하게 한다. 천장의 정교한 모자이크는 비잔틴 제국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쓰러지던 플라밍고의 밤
올레~~~올레~~~가장 즐거운 소리를 지르 수 밖에 없었던 '플라밍고'의 열정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쇼를 펼치는 신들린 춤사위와 노랫가락도 중년의 아짐을 열광의 도가니로 이끌 수 밖에 없었지만, 쓰러질 준비가 되어있던 한국 열열 아짐들의 물개박수와 나이든 어르신들의 울부짖는(?) 감탄사에 눈물이 나올 정도로 즐거웠나 보다. 교양있고 점잖아 보이는 어르신들이 어쩜 멋지게 망가지며 괴성을 지를 수 있단 말인가! 멋지셨다 우리 나이든 어르신들~~~ 그리하여 쇼는 흥겹고 즐거웠으며, 박수치며 괴성지르는 우리는 행복했다. 돈이 아깝지 않았던 플라밍고의 밤이었다. 나이들었지만 연륜만큼 깊은 춤사위를 보여 주었던 님의 얼굴사진이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리스본의 중심지 로시우 광장, 16세기 베렘탑, 제르니모스 수도원 파티마
-리스본의 중심지 로시우 광장의 비둘기
포르투갈의 제르니모스 수도원
석회암으로 된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한변의 길이가 약 300m에 이르며 웅장하고 화려한 노르만 고딕양식을 띠고 있다. 대항해시대의 선구자 앤리케 항해 왕자가 세운 예배당에 미누엘 1세가 제로니모스 파 수도사들을 위해 수도원으로 건립하였으며 마치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과도 같다한다.
포르투갈 리스본 16세기 벨렘탑
-군밤이 불타고있던 벨렘탑?
벨렘탑 근처엔 군밤이 불타고 있었다.
타호강 근처에 있는
벨렘 탑은 4층의 등대로서, 1515-1521년 프란시스코 데알다가 가마의 업적을 추모하여 건물 모퉁이마다 감시탑을 세우는 형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총 3츠 구조로 되어있는데 만조 때 물에 잠기는 1층은 19세기까지 정치범 수용소로 사용되었으며, 2층은 포대, 3츠은 망루 및 세관 역할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포르투갈 특유의
마누엘 양식을 띠고 있으며, 198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단다.
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를 인정하며 문화로 키우다
포르투갈 까보다로까 서쪽 땅끝 바다처음
파티마
-어떤 벽으로 부터
천년고도의 도시 톨레도
스페인 카톨릭 총본산인 톨레도 대성당, 엘리코의 걸작이 전시된 산토토매 교회
톨레도는 관광도시로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약 70 Km 떨어진 곳이다. 톨레도 대성당은 프랑스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페르난도 3세가 1227년 건설을 시작하여 266년이 지난 1493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본당 우측의 보물실(Sala del Tesoro)에 있는 성체현시대 (Custodia)는 전체가 금과 은으로 만들어졌고 5000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며 무게는 180kg이나 된다. 이밖에 프랑스 왕 생 루이가 기증한 <황금의 성서>도 보관되어 있단다. 본당 중앙에 있는 성가대실의 의자 하나하나에 새겨진 정교한 목각 역시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니며, 대사원의 성가대실은 미술관으로 되어 있어
엘 그레코와
고야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톨레도 대성당에서
-악마를 깔고 앉다
-인간 마리아와 신의 아들 예수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 극도로 섬세한 금속공예남을 보다
엘그레코이 걸작이 있는 산토토매 교회
사진을 허락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엘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그런 것이었는지 아니면 엘크레코의 그림에서 발산되는 신비한 힘에 걸린 것인지 그림앞을 떠나지 못해, 결국 여행 일행을 잃고 홀로 남은 황당한 느낌에서 쉽게 빠져 나올 수 없었던, 개인적으로는 기록적인 눈물이 핑도는 당황스런 추억을 안겨 주었다. 그래서 이 그림을 잊을 수 가 없을 것 같다. 시간을 서둘러 지키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은 수취스러운 실수였다. 그러나, 여행일행이 나의 존재감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사라진 것에 대한 약간의 노여움?과 씁쓸함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깃털처럼 가벼운 이 존재감을 어쩌지? 얼음처럼 움직이지 않고 한참이나 그 쩔쩔매는 황당함속에 서있어도 그들은 길잃은 양이 연락을 취할 때까지 나의 실종을 알아채지 못했다. 사진찍고 구경하느라 나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믿을 녀 하나도 없는 그런 기분을 안겨 주었지 싶다. 날 위해 누군가가 기다려 주었다면 더 행복했을 것인데...누가 길 잃나 했더니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었다 엘크레코 땜시...
톨레도의 슬픔(?)
이 풍경을 앞으로 보고 있을 때, 내 얼굴은 붉어져 있었고, 심장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ㅋㅋ나와 다른 아니 닮은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침묵할수록 편안하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수다떨고 쓰잘데기 없는 말도 부담없이 떠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익숙한 외로움으로 더욱 단단히 바로 서야겠다는 각박한 생각을 했지 싶다.
'태양의 문'이라 불리는 푸에르타 델 솔, 세르반텐스 기념사, 마요르 광장,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솔광장(?)
비오는 마드리드
푸에르타 델 술
스페인 광장
마요르 광장
프라도 미술관은 에스파냐 왕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1819년 페르난도 7세때 건림되어 왕림 프라도 미술관이 되었고, 1868년 혁명 후에 국유화되어 프라도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건물은 카를로스 3세 때 비란에바의 설계로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자연과학박물관을 만들 예정이었으나 뒤에 미술관으로 자리를 굳혔습니다. 수집품은 중세부터 18세기에 이르는 에스파냐 및 유럽 여러나라의 회화에 중점을 두고, 그 중에서도
그레코,
벨라스케스,
고야 등 3대 거장에 관해서는 질과 양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또
루벤스,
반다이크를 중심으로 하는 플랑드르 회화,
리베라,
무리요,
수르바란 등 에스파냐 화가의 작품 수집도 뛰어나다고 한다.
참고로, 프라도는 사진불허하여 할 수 없이 다운받아 님들을 기념해 본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벨라스케스의 '카르소스4세 가족그림'
-고야의 옷입은 마하부인
-고야의 '180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