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26

입을 다물 수 있다면

 그 입을 다물면 좋으련만 훨씬 먼저 주름지며 자신의 틀로 단단해진  '어르신'이 입을 열어 지적질과 가르침을 주신다.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면 좋으련만 옛날 사람답게 굳혀진 틀이 정답인양, 다른 사람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훈수를 두며 강요를 한다. '참아야 한다, 그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자신의 생각의 틀에 갇힌 사람과 말을 섞어야 할까. 똑같이 나의 생각을 입밖으로 표현한다면 전혀 원하지 않는 질퍽거리는 추한 그림을 만들고 말 것이다.'그려, 그러려니~~~'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하여 못마땅할 수 있겠지만, '존중''배려'가 결여된 생각으로 함부러 말씀을 하시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입 다물고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침묵의 때와 입을 열때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나의 미래가 이와 같다면 슬픈 일이다.  오래 살아서 세상 모든 일을 다 아는 듯, 우매한 사람들을 꾸짖듯 자신의 생각을 내뱉는 그 입을 다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흉 보면서 배우지 말고 반면교사 삼아서 입을 조심하고 경거망동을 경계해야 한다. 



Thursday, January 29, 2026

어쩔 수 없다

갑갑하고 열 받는 상황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혹시 갑질에서 나오는 갑갑?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라고, 맞닥뜨린 상황에 대한 나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기엔 억울한 면이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갖고 일을 진행했을 것이고 효능감 있는 해결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존중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발생되는 여러 문제점이 있을 것이라는 것 또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대안이 있는 것인가? 그 과정에서 야기되는 문제들을 경청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찾고 문제점을 최소화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막상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참으로 구태의연하다. 절차를 따르고 예전의 낡은 방식을 안이하게 따르는 것에 처음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 어찌 감히 어떤 저항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쩔 수 없으니, 폭력처럼 다가오는 불합리함을 내밀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쯤은......결국 무능함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문제라며 자신을 탓하고 있자니 갑갑하기 그지 없다. 결국 감내하고 받아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어떤 해결점이 있을것이라고 기대하며 기다렸던 나는 농락당하여 점차 불쾌감과 무력감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 한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인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정성과 시간을 들여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며, 왜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은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주름져가지만 더 단단한 사람이 될 기회를 이렇게 마주하는 것인가.

Wednesday, January 28, 2026

인정사정 없이

 언젠가부터 소설이 현실보다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 있어 점차 소설은 넷플렉스 드라마와 영화에 밀리고, 유튜브의 따끈한 생활정보에 밀리고,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심리적인 책과 실용서적에 자리를 뺏겨 좀처럼 가까이 할 수 없게 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주름시는 시간에 필요한 명상까지 할 수 있는 성경이나 불경같은 곱씹고 음미할 수 있는 책이 더 나을 수 있기에 소설이란 책은 지금 내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탈리아 태생인 '디노 부차티'의 소설, '60개의 이야기'를 아주 느리게 읽고 있는 중이다. '느리게'란 말보다 정독, 대충 설렁설렁 읽지 않고 꼼꼼이 글자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읽고 있노라니 단편의 이야기에 오는 '재미'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화가이기도 한 작가의 표현력은 신선하고 흥미로운 구석이 있어 매력적이다. 

 책은 60개의 짧은 이야기로 되어 있는 것으로, '7층'이란 단편을 읽고나서의 감정은 멍멍했다. 인정사정 없이 '시간'이 데리고 오는 종점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희망을 품고서 삶은 그렇게 진행되고 그리고 각자의 종점에 도착하는 것이다. 결국엔 우리 모두가 다다를 종점을 향하는 동안 마주하는 아이러니가 때때로 모순과 부조리의 쓴맛을 느끼게 하지만,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지혜와 유머 그리고 수용하는 힘으로 삶을 즐길 필요가 있다. 인생은 짧다!



Tuesday, January 27, 2026

그 자리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가득차지 않으려고 밖으로 나갔더니 타인이 던진 말 한 마디에 감정이 흔들린다. 불안을 자극하는 서열의 언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부지부식간에 사람들은 비교를 한다. 민감성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그러려니'했지만, 감정의 휩쓸림으로 인한 조각난 생각들을 붙잡고 잠 못들고 있는 모습은 한심스럽기도 하다. 

그 동안 살아온 시간이 이끌고 온 지금의 상황에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사회생활을 하며 관계를 만들다보면 이런 저런 대화를 하게 되는데 적절한 대화의 기술이 필요한 것을 느꼈다. 칭찬과 배려가 담긴 좋은 말을 주고 받아야 하는데......

어떤 조건에서 내 삶이 지속되고 있는 것인가.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은 같을 수 없고,  존중 받아야 하고  서로가 응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왜 우리는 쉽게 비교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내 삶에 대한 불안함을 자극시키는 일을 정지해야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꽃자리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 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 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 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Monday, January 26, 2026

때때로 슬픈 일

 나름의 '업그레이드'를 마치고 난 후,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지만 오른 쪽 손가락의 통증을 갖게 되고 말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때때로 슬픈 일이다! 아뿔싸, 손가락 스트레칭을 찾아보면서 새롭게 등장한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예방'의 중요성이다. 미리 겸손하게 적지 않은 나이를 고려하여, 특정 동작을 오랜 동안 유지함으로 초래되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초집중을 한다며, 뻑뻑거리는 뇌에 신경을 곤두세운다는 것이 덩달아 손가락에 너무 과도하게 손에 힘을 준 것이다.  돌이켜보면 손이 아리다며 신호를 보냈는데 '그러려니'하며 괜찮겠지 했다. 아프고 나서야 깨닫는다, 너의 손가락은 관리가 필요해!

남자보다 여자의 손이 더 민감하고 취약하다고 한다. 집안 일을 해야 하는 손이 그동안 사용를 많이 했을 것이고, 나이가 들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급격하게 약해진다고 하는 정보를 접하고 나니 후회가 밀려온다. 미리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부터라도 특정 동작을 오래 하지 않도록, 하게되면 스트레칭과 운동으로 유연성과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음은 감사할 일이다. 때때로 늙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을. 

Saturday, January 24, 2026

이기거나 배우거나

어릴 적 온 식구가 큰 방에 모여 친정 아버지의 고향 출신인 세계 챔피언의 경기를 응원하던 밤들을 난 기억한다. 아주 오래된 기억으로 텔레비젼이 귀하고 칼라 텔레비젼이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경기를 해설하는 사람들의 흥분된 목소리, 매 경기의 숫자를 알리던 짧은 옷차림의 아가씨, '땡'소리의 휴식과 시작, 얻어 맞은 얼굴의 붓기와 상처.....

시간이 흘러 언젠가부터 상대방에게 직접적인 '신체적 가해'를 끼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  '야만적인 스포츠'라는 생각에 이르러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사람을 때려서 승부를 가리다니! 상대방의 주먹을 피하지 못해  맞은 사람은 피가 나고 얼굴이 붓고 몸은 휘청거린다~~~ 맞기 전에 먼저 때려야 하고, 아파도 참고 안 아픈 척도 하고, 흥분해서 이성을 잃고 실수를 하게끔 약을 올리기도 하며......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쏠 수 있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리듬을 타면서 요리조리 상대를 피하며 재빨리 유효한 치기를 툭툭치다 때를 만들어 큰 거 한방을 날려 상대방을 다운시키는 운동, 권투는 야만적이다. 

나는 맞지 않고 상대방을 때리면 되는 것으로, 상대의 스타일을 간파하고 있어야 하며 갑작스런 변칙에도 당황하지 않고 최적화된 움직임을 해야 할 것이다. 리듬을 타는 가벼운 발걸음과 앞으로 밀고 들어오는 위압적이거나 도전적인 발걸음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절대적으로 강력한 주먹, 한방이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튼튼한 체력뿐만 아니라 상대의 스타일을 파악하여 약점을 노리는 영리함이 있어야 하는 운동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멘탈 게임이기도 하다. '기세'에 밀리는 순간 상대방의 스타일에 끌려들어가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잘 풀리지 않는 힘든 경기를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야만적이지만 스포츠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체력, 심폐 지구력, 기술, 민첩성, 유연성, 균형감 등의 여러 좋은 점이 있고 더구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자신감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좋은 점이 많은 스포츠라고 보여진다. 권투를 하면서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어느 선수의 인터뷰를 보면서 스포츠의 순기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경기를 앞둔 아들에게 해준 엄마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이기거나 배우거나'  둘 중의 하나이니 승부를 떠나 열심히 하라는 격려이다. 이기거나 지는 경기가 아니라 이기면 좋고, 혹시라도 지더라도 그것은 패배로 좌절하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큰 배움을 깨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걸음으로 삼으라는 뜻일 게다. 

하지만 사람에게 신체적 가해를 하는 행위는 '야만적'이다. 야만적이라고 말 하면서, 최후 승자가 나올 때까지 권투 방송 매회를 다 챙겨보고 있는 나는 야만적인가 하노라^^



Wednesday, January 21, 2026

나이들수록, 꿈~~~


며칠 책상 앞에 앉아 집중하여 모르는 것을 깨우치고 있자니,  그 동안 무기력하게  흘려 보냈던 소중했던 시간들이 아깝다. 뭔가 집중할 수 있는 일이나 취미가 있다는 것은 '지금 나'에게 절실한 것이기도 해서 감사하고 싶다.  

'무기력'으로 인한 '우울감'이 차오르던 시간을 돌이켜보면, 살면서 견뎌왔던 부정적인 일들의 기억이 축적된 것도 있을 것이고, 긍정적인 의미로 전환이나 해석하지 못하여 결국 부정적 에너지를 끌어당김으로 온 저항할 수 없었던 무기력이었던 것 같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무기력을 떨쳐내는 방법을 여러 가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몸과 마음을 움직이며 기분전환을 시키며 활력을 되찾아야 하며, 무엇인가에 집중하며 긍정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쉽지, 그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나이들수록 '꿈'이 있어야 한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문장이다. 

바깥으로 나가 타인들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공헌할 수 있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성실함으로 일을 하다보면 몸과 마음의 근육이 생길 것이며,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전진하다보면 더 나은 자신이 될 것이라고 꿈을 꾸어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은 언제나 어려운 일임을 인지하며 겸손한 자세로, 열린 마음으로, 역지사지하여 더 들어주고, 더 믿어주고, 더 기다려주는 그런 안내자가 될 것을 다짐한다.

가지치기를 하였던 반려식물, '드라세나'가 꺽여서 아픈 자리에서 귀한 작은 푸른 기운을  쫑긋 올리고 있는 모습을 마침내 발견하였다.  불편함을 이겨내고 좌절하지 않고 성실함으로 솟아나온 '드라세나'가 내게 말을 건다. '두려움은 성실함으로 이겨낼 수 있어!'

푸른 기운을 얻어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자니 등이 휘고 허리가 이상 신호를 보낸다. 잊지 말자, '건강이 최고!' 건강이 있어야 꿈이 생긴다!

Friday, January 16, 2026

그럴 수도 있지^^

 '훅' 들어간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며 '거절'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될 초보자로서 경험자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더군다나 처음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맞춤형 오리엔테이션은 없는 것을 알고 나니 정보가 아쉽고 필요한 쪽은 나였다.

단체 교육이 시작되기 전,  용기를 내어 이리저리 질문을 하고 본다. 웃으며 친절하게 여러 상황을 이야기 해주는 사람도 있고, 웃어 주지만 대답이 무심하게 짧은 사람도 있다. 이야기 끝에 '전공'이 무엇인지요'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이가 들면 대학 '전공'을 묻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는 알지만, 전문가의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고려하면 무례한 질문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다년간의 경험과 전문적인 내공이 느껴진 바, 나의 질문이 거절을 당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전공은 말하지 않고 싶은데...'하며 거절을 하며 이어지는 침묵은 당황스럽다. 

불편감을 준 것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난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떤 개인적인 사정이나 생각에 따라서 내 질문에 대한 '거절'을 용감하게 한 것이다. 상대의 거절은 응당 당연한 것이고 내가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이성적으로는 받아들였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복잡해지고 만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나를 싫어하나? 왜?......

'그럴 수도 있지!'하며 넘겼지만 한참이나 마음 속에 쟁여두고 킁킁거리느라 밤은 잠들지 못했다. 


Tuesday, January 13, 2026

끝내 앞으로~~~

 가슴 두근거리는 '설레임'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나이 숫자와 상관없이 늙은 것이다. 흥미와 호기심을 갖지 못하고 사는 삶은 언젠부터 시작된 것일까. 

무덤덤한 사람들이 불편하고 두렵게 다가왔던 젊은 시간이 있었다.  나이가 든 지금, 난 무덤덤한 사람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다가 '무덤덤'을 선택하게 된 것일까. 그렇다고 '두려움'에 대해 그리 무덤덤하지도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다. 

삶에 '자신감'을 잃은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요며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다보니 피곤했던 모양이다. 갑자기 눈에 다랫기가 올라와서 동네 안과에 다녀왔다. 음주도 하지 않고 나름 관리라는 것을 한다고 했는데 왜 다랫기가 생긴 것인지 원인을 파악하려고 했지만 더 피곤해지고 말았다. 그냥 병원에 가면 될 것을~~~다들 아프고 살아요^^

엊그제 내린 눈으로 인해 미끌미끌 얼어있는 상태의 빙판 길을 걸으면서 스트레스를 받긴 하였다. 어찌 도시 살림이 사람이 다니는 인도에 제설작업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인가. 돌아다니지 말고 집안에 있으라는 안전문자를 보내는 것이 최선인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외출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안전'은 각자가 알아서 챙겨야 하는 것인지라. 두 눈 부릅뜨고 발에 힘주며 내딛는 발걸음 뒷꿈치가 먼저 길바닥에 다을 수 있도록 팔자 걸음으로 한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드디어 찬바람이 불지 않은 실내에 들어가자 알러지 비염으로 인한 콧물이 훌쩍훌쩍. 늙는다는 것은 때때로 슬픈 일이다. 

아무리 찾아도 가방 안에 휴지가 보이질 않는다. 아마도 콧물 이리저리 훔치다 바이러스 세균이 눈에 들어갔을까? 사과를 자르다 튀긴 사과 액기스 한 방울을 서둘러 씻어내지 않은 결과로? 유통기한이 남았지만 개봉한 후 6개월이 지난 자외선 차단제의 세균이 들어간 것일까? 완벽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인가 슬픔인가?? 눈을 피곤하지 않게 얼른 자야하는데 난 쉽게 잠들지 못했다. 

아침이 되어 서둘러 동네 안과에 다녀왔다. 지금 나에게 적응해야 한다. 시간을 통과하며 붉은 열정이 휘발되어 빛바랬을지라도, 자꾸만 과거로 밀려날지라도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허옇게 반짝거리는 빙판길을 어린 아이들은 걸음걸음 더 반짝반짝 윤을 내면서 미끄럼을 타며 앞으로 가고,  나이든 이는 낙상의 두려움으로 천천히 그렇게 각자 끝내 앞으로~~~ 간다. 


Monday, January 12, 2026

어르신~~~

 붉은 립스틱 바르고, 오늘은 '고령사회조직'에 막 입학을 했다. 그리고 '어르신'이란 말을 들었다.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어르신'이란 호칭을 듣고서 조금은 당황했지 싶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젊은 에너지가 있는 나이 많은 사람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지?  존칭으로 '어르신'이란 말을 사용한 것은 알겠는데, 내가 벌써 '어르신'이란 말을 들을 나이가 된 것인가. 집콕하다가 어느 높은, 주름진 경지(?)에 이른 것을 바깥 세상 사람들에게 들키고 만 것인가 하여 깜짝 놀랐다. ㅋ

보통 '어르신'이라고 하면 75세 이상의 고령의 노인에게 사용해도 무난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던 바, 아직 팽팽한 나, 고령 사회에서 막 입문한, 아직 신참인 나에게 걸맞는 호칭으로서는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호칭을 부르는 사람은 훨씬 젊어서 그 호칭의 난감함과 민감함을 모를 나이니 그냥 넘기기로 했다. 

어른을 '어르신'이라고 존칭을 해줬는데 왜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인지?  일반적으로 통용되길  '어르신'이란 나이 숫자가 많은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자신의 부모님 나이와 비슷한 나이로 가늠을 하고, 인격이 성숙하고 덕이 높고 훌륭한 어른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인격이 성숙하여 경지에 이른 존재라는 의미도 담겨있다고 한다. ㅋ 지금 내게는 사회적으로 퉁치고 들어갈 수 없는 부담스러운 호칭이다! '아직은 아녀~~~아직 젊고 인격도 아녀 아녀~~~'

함께 모인 고령자 분들이 '어르신'이란 호칭에 대한 부담감이 들었는지 '어르신' 대신에 '선생님'이라고 호칭을 불러달라 요청을 해서 '누구누구 선생님'으로 호칭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앞으로 자주 듣게 될 것이라고 담담한 준비를 하고 본다. 

Tuesday, January 06, 2026

세우기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은 나는 다행히 허리도 아프지 않고 아직은 그리 심하게 근육을 잃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작심삼일'의 저주에 걸리지 않고, 그 흔들리기 쉬운 셋째 날인 오늘 하루의 과업을 마치고 다음 날의 '계획'도 세워 놓았다. 첫날의 굳은 결심과 둘쨋 날의 흐트러지지 않는 긴장감 그리고 셋째 날의 성실함으로 무사히 삼일을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 맞는 '계획'이 생긴 것이다! 무기력해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고 싶지 않았던 최근의 날들을 떠올리자면 '개과천선'한 것이다.  

'인생은 때때로 아이러니다.' 관심도 없고 피하고 싶었던 것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되어 시간을 내어 '공부'라는 것을 해야한다.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 생길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성실하게 쏟아부어야 할 것인가. 

책상에 앉으니 허리가 굽고 얼마 남아있지 않은 근육이 달아날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뭔가에 집중을 하는 성실함은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하고 생활의 리듬을 준다. 억지로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하니 재미도 생기고 추진력도 생기는 것 같다. 최선을 다해 나답게 누군가의 필요을 알아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하는 시간이다. 덕분에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감사할 일이다. 

Monday, January 05, 2026

털털~~~

 아들의 댕댕이는 하얀 여우의 작은 얼굴로 신비스럽고 예쁘다. 검은 아이라인이 짙은 동그란 눈동자는 매력적이며 높이 솟은 쫑긋한 귀는 예민하고 차디찬 검은 콧망울은 귀엽기 그지없다. 

따뜻한 댕댕이를 끌어안고 가만히 있으면 강아지의 작은 심장이 함께 뛰는 것이 느껴진다. 하얀 털이 여기저기 온 집안을 덮어도 댓가를 치룰만한 일이다. 따뜻함이 그리 싫지는 않다. 아침 저녁으로 바깥에 나가 냄새 활동도 하고 대소변도 한 후,  집으로 돌아와 발을 닦아야한다. 발을 물휴지로 닦는 행위를 평소 그리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러려니하며 발을 닦고 있자니 점점 으르렁 소리가 커진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이쁜 댕댕이가 잇몸까지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며 불쾌함을 드러내더니 급기야는 손가락에 입질을 하였다. 믿었던 댕댕이에게 입질을 당하고 보니 당황스럽고 놀랍고 근심이 가시질 않는다. 무엇이 불편하게 한 것일까,  혹시라도 발이 아플까, 아니면 더 부드럽게 닦아줘야 했을까, 너무 껴안아서 갑갑하고 공포스러웠을까??? 

손가락 위의 작은 붉은 핏방울을 보면서 그동안 보살피고 이뻐했던 행위들에 대한 배신감이 들면서 괘씸함도 들었다. 밥주고 똥 치워주고 놀아주고 그랬는데 뭐가 서운해 잇몸까지 드러내며 화가 난 것인지? 잇몸까지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던 얼굴은 좀처럼 잊혀지질 않을 것 같다.

옛날 사람답게  댕댕이에게 입질을 당하고 보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어디 감히 댕댕이가 사람에게 대들지?'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댕댕이의 사정을 들여다 볼 틈이 나지 않았기도 했다. 전전반측 잠을 설치며 생각을 했다. '걱정이나 절망은 돌멩이 하나 옮기지 못한다.'  할 수 없이 스마트 폰을 붙잡고 AI의 도움을 요청했다.  

어딘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댕댕이의 발바닥은 생존과 관련된 민감한 부분이기도 하고, 너무 껴안고 닦아서 자유롭지 못한 불쾌감을 받았을 것 같기도 하다. 발을 닦는 행위가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간식을 주며 좀 더 부드럽게 발을 닦아보는 시도를 해 보기로 한다. 

발을 닦기전 간식을 주며 꼬신 결과 두려웠던 첫번째는 성공, 두번째는 먹이 약발이 얼마가지 않고 으르르렁 표현을 한다. 포기하고 싶다!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정말 싫다!! 진짜 발이 아픈가? 

자꾸 신경쓰이게 만드는  댕댕이가 마침내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온 집안에 하얀 털만 남기고. 댕댕이가 없는 집안은 조용하고 깨끗하다. 가만히 있노라면 구석구석에 아직도 댕댕이의 털이 보인다.  텅빈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Thursday, January 01, 2026

최종합격~~~

 우연히 길거리 현수막에서 구인광고를 보았다. 한 해가 저무는 길이기도 하였고 차디찬 겨울이 들이닥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미 한 겨울의 바람이 일고 있는 마음을 두꺼운 옷으로 꽁꽁 감싸고 동네 공원으로 향하던 길에 구인광고 현수막을 본 것이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생각외로 무덤덤했다. 그럼에도 그 기다림은 무기력을 털어낼 수 있는, 생동하는 기운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희망'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혹시라도 합격이 된다면 내 삶을  성장시킬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난 주저앉아 늙지 않고 성장하며 성숙할 것이다. 아직 '세상에서 필요한  쓸모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꼭 잡고 싶었지만 덤덤하게 시간을 보냈나 보다. '되면 좋고 안되어도 괜찮고~~~'

마침내 '최종합격'이란 문자가 스마트 폰으로 날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지원한 것을 고려한다면 최종합격의 문자에 가슴이 날뛰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새로운 일에 대한 낯선 두려움이 앞선 탓인지 아니면 한 살을 더 먹게 된 탓인지 가슴은 담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