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24, 2026

이기거나 배우거나

어릴 적 온 식구가 큰 방에 모여 친정 아버지의 고향 출신인 세계 챔피언의 경기를 응원하던 밤들을 난 기억한다. 아주 오래된 기억으로 텔레비젼이 귀하고 칼라 텔레비젼이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경기를 해설하는 사람들의 흥분된 목소리, 매 경기의 숫자를 알리던 짧은 옷차림의 아가씨, '땡'소리의 휴식과 시작, 얻어 맞은 얼굴의 붓기와 상처.....

시간이 흘러 언젠가부터 상대방에게 직접적인 '신체적 가해'를 끼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  '야만적인 스포츠'라는 생각에 이르러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사람을 때려서 승부를 가리다니! 상대방의 주먹을 피하지 못해  맞은 사람은 피가 나고 얼굴이 붓고 몸은 휘청거린다~~~ 맞기 전에 먼저 때려야 하고, 아파도 참고 안 아픈 척도 하고, 흥분해서 이성을 잃고 실수를 하게끔 약을 올리기도 하며......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쏠 수 있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리듬을 타면서 요리조리 상대를 피하며 재빨리 유효한 치기를 툭툭치다 때를 만들어 큰 거 한방을 날려 상대방을 다운시키는 운동, 권투는 야만적이다. 

나는 맞지 않고 상대방을 때리면 되는 것으로, 상대의 스타일을 간파하고 있어야 하며 갑작스런 변칙에도 당황하지 않고 최적화된 움직임을 해야 할 것이다. 리듬을 타는 가벼운 발걸음과 앞으로 밀고 들어오는 위압적이거나 도전적인 발걸음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절대적으로 강력한 주먹, 한방이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튼튼한 체력뿐만 아니라 상대의 스타일을 파악하여 약점을 노리는 영리함이 있어야 하는 운동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멘탈 게임이기도 하다. '기세'에 밀리는 순간 상대방의 스타일에 끌려들어가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잘 풀리지 않는 힘든 경기를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야만적이지만 스포츠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체력, 심폐 지구력, 기술, 민첩성, 유연성, 균형감 등의 여러 좋은 점이 있고 더구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자신감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좋은 점이 많은 스포츠라고 보여진다. 권투를 하면서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어느 선수의 인터뷰를 보면서 스포츠의 순기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경기를 앞둔 아들에게 해준 엄마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이기거나 배우거나'  둘 중의 하나이니 승부를 떠나 열심히 하라는 격려이다. 이기거나 지는 경기가 아니라 이기면 좋고, 혹시라도 지더라도 그것은 패배로 좌절하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큰 배움을 깨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걸음으로 삼으라는 뜻일 게다. 

하지만 사람에게 신체적 가해를 하는 행위는 '야만적'이다. 야만적이라고 말 하면서, 최후 승자가 나올 때까지 권투 방송 매회를 다 챙겨보고 있는 나는 야만적인가 하노라^^



0 Comments:

Post a Comment

<<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