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새기기
내 이름 석자가 새겨진 오래묵은 도장이 보이질 않는다. 있을만한 자리를 뒤집고 이리저리 한참이나 뒤졌지만 끝내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도장을 사용할 일이 어디 흔한 일인가, 서명으로 도장을 대신하는 세상에. 그래도 내 이름 석자가 새겨진 오래된 그것을 소중하게 보관해야 할 물건이었다. 일상에서 사용할 일이 자주 있을리 없으니 존재의 유무를 쉽게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도장이 없이도 개인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지금 당장 필요하지도 않음에도, 굳이 도장을 파러 가야 할까 조금은 망설였다. 여기저기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다행히 집에서 운동겸 걸어갈 수 있는 도장 가게를 간신히 발견하였다.
사람 손으로 연장을 들고 직접 파는 것이 아니라, 이름 석자와 글자 스타일을 컴퓨터에 입력하니 연동된 기계가 지지직지지직 글자를 새기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어라, 그럼 이름과 글자 스타일만 입력하면 도장은 쉽게 복사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네, 무엇이든 그대로 복사할 수 있는 시대죠!'
도장가게 사장님과의 짧은 대화는 공포스럽고 허무했다.
'개인인증'을 통한 절차가 중요한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도장 없이도 개인 서명 증명을 할 수 있는 세상에 굳이 도장을 다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그럼에도 난 모질하게 오늘 헛된 사치를 부린 모양이다. 도장에 내 이름 석자를 새기고 난 후 마음이 놓이고 편안한 것을 보면, 난 옛날 습성을 버리지 못한 '오래된 사람'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0 Comments:
Post a Comment
<<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