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는 중
겨울이 모든 것을 얼려 버리기 전에, 맑은 햇살과 선선한 바람으로 여물어진 가을 무를 데려와 깍뚝이라도 후딱 담아야겠다. 가을 무 한 다발을 들고 집까지 오려면 어깨가 힘들 것이고, 집앞까지 배달을 고려하면 몇 다발을 더 구입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급시들해진 주부본능으론 그 엑스트라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문제를 간과할 순 없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 지금은 새콤한 '깍뚝이'나 슴슴한 '동치미'라도 담아야 할 것이라고 늘어지는 게으름을 후딱 일어나 떨쳐내고 볼 일이다.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한다.
눈이 내리는 날처럼 고요하고 흐린 날이 오늘이다. 시기적으로 입동이 지나갔지만 이번 겨울은 작년에 비해 늑장을 부리는 모양이다. 길가 가로수들이 뜻밖의 '선물'처럼 노랗고 붉게 물들어있는 모습을 보았다. 푸른 가을이 떨어졌던 작년의 풍경이 아니다, 내 마음의 겨울 풍경과 달리.
한동안 친밀했던 젊었던 옷들을 마침내 헌옷박스에 집어 넣었다. 나의 청춘을 헌옷 박스에 함께 정리한 것은 아니지만 왠지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컴컴함 박스 속으로 들어가는, 벗겨진 친밀함을 보지 않으려고 후딱 밀어 넣었다. 새삼스럽게!
미그적거리는 자신을 한참이나 꾸짖는 중에도 겨울이 성큼성큼 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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