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유통기한이 한참이나 지난 인공 눈물 박스에 찍힌 숫자를 보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지금이라도 발견을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며 일단 쓰레기 처리 박스에 집어넣고 볼 일이다. 사용하지 않은 텀블러 하나와 가방 하나 그리고 흰 블라우스 하나를 어렵게 찾아 내어 결정을 한다. 버리자! 매번 느끼지만 취하고 버리는 일이 단순명료하지 않고 심란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청명한 가을 날이 집안으로 들어오게 창문을 열어 젖히고 못난 마음을 다스려 본다. 쉽게 버리지 못하는 자신을 용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언젠가 쓸 데가 있을 것이라며 곳곳에 물건들이 쌓여있다. 아무런 그적임 없는 작은 스케치북이 여기저기 꽂혀있다. 버릴 수 없다, 아직은. 아직도 미련이 남아 흔쾌히 처분을 하지 못한다.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나의 역사를 다 버려버리고 자신을 부정하는 것처럼 힘들다. 그냥 모른 척, 문을 아직도 활짝 열지 않는 슬픈 방이 내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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