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September 17, 2025

꼬들꼬들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내리고 있다. 몸과 마음이 아직 무덥기에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TV 홈쇼핑에 시선이 전혀 멈추질 않는다. 쉽게 가을이 올 리 없는데,  선선한 가을 날씨님을 데리고 올 것이라는 비가 내리고 있는 중이다. 앞뒤 온갖 창문을 닫고 있자니 급급하기 그지없다. 할 수 없이 에어컨을 켜고 선풍기를 돌리고 본다. 

에어컨도 켜고 선풍기도 돌리고 있자니 뭔가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양심이 든다. 무더운 여름탓을 하며 미뤄두었던 일을 한 가지를 하면 덜 불안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늦가을 김장 프로젝트로 담았던 무 장아찌 생각이 났다. 미리 구입해 놓은 '쪽파'가 시들해지기 전에 지난 겨울에 품었던 꼬들꼬들 무 장아찌 무침 그림을 완성해야 할 적당한 날이 오늘이다. 이중삼중으로 단단하게 밀폐된 장아찌 통을 열었더니 고추씨 매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어쩌면 삶은 '기억'으로 펼쳐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점심 도시락 무 장아찌 생각이 난다.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만들어주신 전통 무장아찌의 귀한 맛을 모르고 친구의 사각거리는 노란 단무지를 부러워했던 그 어린 시절. 그땐 엄마의 것은 흔하고 친구의 것은 귀한 것이었다.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검은 항아리에서 꺼낸 엄마의 무장아찌는 쌀겨 속에서 시간과 수고가  발효된 것인 것을 알았다. 지금은 맛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지난 늦가을, 엄마처럼 할 수 없기에 난 스마트 폰을 보고 간단하게 무 장아찌를 담궜다.  겨울과 봄 그리고 여름을 품은 짜디짠 무를 송송 썰어서 물 속에 담궈 두었다. 짠맛을 없애려고 맛을 보았더니 깊은 짠맛과 고추씨앗의 매콤한 맛이 위장에 길게 남는다.   나의 것은 짜고 맵콤하여 시간의 짠기를 더 빼야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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