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23, 2025

어라, 늦가을

 어라, 아직 가을이다. '늦가을'이란 단어로 부르고 '초겨울'로 불러도 될 것 같은 날이다. 추위를 타게 된 난 두꺼운 오리털 잠바를 껴입고 밖으로 나갔다왔다. 땀이 살짝 나며 기운이 돌며 좀 살 것 같기도 하다. 집안에 있으면 마음 속에 꽈리를 틀고 고개를 쳐드는 부정적인 생각과의 전투에 쉽게 질 수 있다는 생각을 무기력한 긴 터널을 한참이나 지나서야 깨닫는다, 어리석게도. 

선물처럼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그리고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바람을 타고 하늘에서 선물처럼 떨어진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영화같은 풍경에 위로를 받는다.  가을 없이 겨울이 들이닥친 작년엔 푸른 낙엽을 밟으며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았던 그 풍경에 얼마나 놀라고 속상했던가. 

붉은 단풍나무 아래에서, '어쩌면 이리 예쁘찌!'  나이 지긋한 여인의 혼잣말이 들린다. 햇살에 반짝이는 붉은 별들을  자신의 스마트폰에 기억하며 저장한다. 좀처럼 사진을 찍지 않던, 무기력했던 나도 스마트폰을 꺼내고 말았다. 어찌나 붉고 아리땁던지. 선물이다!

밖으로 나와 두 팔을 흔들고 두 다리로 성성한 걸음을 누리는 것이 커다란 치유였던 것을 잊고 살았다. 더 힘든 시간속에서도 걸으며 잘 견뎌냈던 나를 잠시 잊어버렸던 것이다. 

 동네 공원엔 지난밤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 걷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초저녁엔 보이지 않던 산수유 붉은 열매들이 보였다. 허리 굽은 할머니가  노란 은행나무 아래에서  은행알을 줍는 모습,  혼자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할아버지 모습, 아픈 사람을 부축해 함께 걷는 모습,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아줌마......그리고 늦가을 햇살에 피워낸  붉은 장미 몇 송이와 분홍 철쭉꽃 몇 송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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