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ly 28, 2024

인간을 바꾸는 방법

 '찜통 더위'란 말이 생각난다. 찜통 속에 들어가 본 적은 없으니, 습식 사우나에 옷을 입고 앉아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더 이상 감지되지 않는 열린 창문의 바람과 선풍기의 바람으로는 아침 출근을 위한 단장을 지킬 수 없어 창문을 닫고 에어컨 리모컨을 누르고 만다. 

부채 바람과 선풍기 바람으로 여름을 지냈던 그 시절이 옛날이 되고 말았다. 그 때도 장마가 있었고 무더운 여름이 있었는데 지금처럼 덥지 않았던 것은 시간이란 필터를 지난 기억때문일 수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환경 오염도 심해지고 그에 따라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믿지 않지만 난 믿는다. 

오늘이 올해 들어서 가장 더운 날이 될 것 같다는 아침 뉴스이다.  난 에어컨 찬 바람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병원에 가지 않고 일 주일을 지나는 동안 외출시 마스크를 쓰고 따뜻한 물을 마시고 목을 감싸고 잠드는 등등의 노력을 하였지만 끝나지 않은 잔기침에 조바심이 든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 받아야 할 것 같다. 

학교가 방학이면 버스 운영을 조정하기에 평소와 다른 버스 시간을 체크하고 집을 나서야 한다. 정거장엔 선풍기가 없기에 정거장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오마이 겐이치의 '난문쾌담'에서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어떤 단단한 결심보다는 환경을 바꿔보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일은 분명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라 공감한다. 

날이 더워서 몸을 움직이지 않고 그냥 있었더니 이상한 방향으로 사람이 바뀌는 것 같아 '불안'하다. 팔다리가 가늘어지고 배가 나오고 뇌가 쪼그라드는 그런 느낌은 몸과 마음을 움직여만 극복할 수 있다는 것 알고는 있지만 모든 것이 축축 늘어진다. 뿌리가 제대로 박히지 않은 것들이 늘어지며 떨어진다. 

Wednesday, July 24, 2024

오래된 나무

 TV 방송에서 옛날 '한옥'을 철거하는 과정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집을 짓는 것과 달리 해체하는 단계는 지붕위에서부터 시작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구하기 힘든 오래된 기와를 보물처럼 귀하게 얻고, 다음은 지붕으로 얹혀있는 황토를 털어내고, 그리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있는 벽들을 부수고...귀한 오래된 목재들을 구하는 일은 건강을 위협하는 먼지가 이는 일이고 추락의 위험이 도사리는 어렵고도 고단한 과정이다.

나무가 제일 중요한 목수에겐 지나간 세월만큼 뒤틀리고 말라 단단해진 오래된 원목은 보물처럼 가치가 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을 통과한 나무!  오래묵은 먼지와 때를 벗겨내고 수고롭게 다듬고 다듬어 목수가 흡족할 만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 보면서 '깊은 맛'이 나는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목수는 작업장의 온갖 먼지를 털어내며 집에 돌아가 막걸리 한 잔에 저녁을 먹고 자고 일어나 일터로 다시 나오려고 한다며 착한 미소를 짓는다.  지켜보며 홀짝거리던 아침 커피도 끝이 났다. 얼른 리모컨을 들고 텔비를 끄고서 '오래된 나'를 잘 챙겨야 한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을 모양이다. 창문을 이쪽저쪽 다 열어 젖히고 선풍기를 틀고 나니 매미 떼창이 들려 온다. 맑은 햇살에 젖은 땅이 마르겠다~~~


Tuesday, July 23, 2024

불안함을 돌리다

 하루 종일 날이 흐리고 비가 올 것 같다는 날씨 예보를 들었지만 창문 밖의 날은 날씨 예보를 빗나갈 것 같다. 빨래 바구니에 세탁물이 쌓여가는 것을 보고 어제부터 망설이다 결국 오늘 세탁기를 돌리는 것을 선택했다. 빨래를 모았다가 한번에 하는 것은 전기를 아끼는 방법이 되겠지만 요즘처럼 비가 오는 계절은 조금씩이라도 빨래를 해서 신속하게 말리는 것이 세균 번식을 막기 위한 위생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빨래 바구니에 차오르는 '불안함의 번식'을 얼른 세탁기에 털어 넣었다. 부지런히 창문을 열고 닫으며 젖은 빨래를 말리는 오랜 '알뜰 정신'을 뒤로 물리고 그냥 '건조기'로 빨래를 말리는 것을 선택하고 대신 에어컨을 켜지 않고 선풍기 바람에 낮 시간을 견뎌 보는 것으로 나름의 슬기로움(?)을 만든 것이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건조기를 사용하여 빨래를 말리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건조기를 활용하는 생활은 왠지 부담스러워 쉽게 건조기를 사용하지 않은 편이다. 화창한 날을 골라 세탁을 하고 번거롭지만 베란다에 세탁한 빨래를 널고 베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과 햇살로 무거운 수분기를 날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건조기에 넣어 먼지를 제거하고 뽀송하게 처리를 하는 것이 나의 슬기로운 건조기 사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신중한 결단이 무색하게 창밖이 맑아 오며 매미들의 합창 소리가 들려온다. 고민하기도 귀찮은 눅눅한 여름날이다. 건조기는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다. 건조기 안에서 축축한 불안함이 뱅글뱅글 돌면서 털어지고 있다.

Monday, July 22, 2024

아부지의 옥수수

 연일 비가 내리는 여름 날이 당황스럽다. '물'이 많은 여름은 심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야채값과 과일값도 오르고... 잠시 비가 멈추긴 하였지만  머금은 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하늘은 푸른기가 없는 회색 빛이다. 

주름진 아버지의 고독과 외로움을 심은 텃밭에서 열매를 맻은 찰옥수수가 올라왔다. 아직도 아부지의 맛난 찰옥수수를 먹을 수 있는 사실은 행운이며 감사할 일이다. 아무리 날이 후덥지근해도 울 아버지가 보내주신 옥수수를 쪄야 한다. 마침 비가 멈추었으니 창문을 열고, 커다란 냄비를 찾아 옥수수를 넣고 소금과 신화당을 넣어 삶으면 되는 것이다. 

후덥지근한 날에 주방에서 더해지는 열기와 습기가 더해지니 입고 있는 늘어진 티셔츠가 땀에 쩍쩍 달라 붙는다. 일부러라도 찜질방에 가서 땀도 빼고 그러는데...... 온 집안에 옥수수 익는 냄새가 가득하다. 난 옥수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길거리에서 가던 걸음 멈춰서 일부러 옥수수를 사먹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울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옥수수만 좋아한다. ㅋ 일년에 한번 아버지의 옥수수를 먹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쫄깃쫄깃한 옥수수를 먹은 나는 충분히 단짠단짠으로 족하다!

Monday, July 15, 2024

그 수고로움과 번거로움

편리함을 갖춘 공동주택인 아파트가 아닌 단독 주택은 독립적이지만 '관리'라는 것을 해야하고 피곤할 수 있을 정도로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고려해 신중하게 내릴 선택인 것을 알면서도, '그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을 자꾸만 잊어 버리고서 난 타인의 시골살이를 가끔 스마트 폰으로 들여다 본다.

누군가의 '가원'에서 꽃이 피고 푸른 나무가 자라고 야채가 자란다.  꽃이 피는 정원이 부럽고 싱싱한 제철 야채를 '자급자족'하는 삶이 좋아 보인다. 시골 조용한 곳에 터를 잡아 소박하고 아담한 작은 집을 짓고, 자신의 정원을 만들어 좋아하는 나무와 꽃을 심고, 푸른 야채밭도 만들고, 달걀을 공급할 닭도 드넓은 터에 풀어 놓고 키우고, 댕댕이가 뛰어 노는 .....그런데 모든 것이 '물질'과 '시간' 그리고 중요한 '건강'이 허락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시골이야말로 자동차를 운전해야 할 것이고, 동네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잘 지내야 할 사회성(?)이 필요로 한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시골살이를 주저하는 것은 어쩌면 건강한 노년의 삶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 편리하게 찾아갈 수 있는 '병원'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곳에 산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불편을 동반하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다 보니 마음 속에 지었던 소박한 시골집은 그저 멀리 있는 낭만적인 생각이다. 

무엇보다 간절히 원하지 않기에 실현 불가능한 일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Tuesday, July 09, 2024

백일을 밝히다

 


한국어로 '백일홍'이라고 명명하는 너의 이름은, 아직도 내게는 처음 너의 이름을 알게된 그 순간부터 넌 '지니아(zinnia)'이다. 나의 정원에서 여름을 내내 푸른 도화지 위의 어린 크레파스 꽃처럼 지켰던 넌 '백일 동안 피는 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석달하고도 열흘이나 피어있었던 것을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햇살 아래 쨍쨍하게 피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저녁 산책길에 백만송이(?) 지니아를 만났다. 그리움만큼이나 반가운 지니아들이 원없이 실컷 보란듯이 나를 향한 '선물'처럼 피어있다. 나의 정원에서 피었던 그 지니아들은 아니지만, 지역 파머스 마켓에서 구입하여 나의 정원에 뿌리를 심고 물을 주고 '지켜 보았던' 그 지니아이다.  

즐겁고 명랑한 지니아!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타지지도 않고 여름을 즐기는구나~~~ 화이팅이다, 지니아!

 

천 일 동안

 


몰입의 방법

 

'반 고흐' 체험형 전시회(광명역 GIDC)를 다녀왔다. 360도 디지털 미디어로 행해지는 아트 전시로, 반 고흐의 작품을 '몰입형 체험'을 통해 함께 할 수 있다.  '몰입형' 전시라는 것은 작품이 투영된 전시된, 대부분 시각적으로 '확대된 공간'에 투사된 작품과 그에 어울리는 오디오가 연출하는 '극대화'된 체험에 노출되고, 관람자들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끔 전시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오리지날 진품을 마주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으랴! 디지털이란 미디어를 이용한  거대함과 웅장함을 이용하여 반 고흐의 작품을 '새롭게' 마주할 수 있다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지 싶다. 


Monday, July 08, 2024

웃음 소리

 시끄러운(?) 학교를 응원할 수 있을까? 떠드는 아이들과 어떻게 주어진 교과 과정을 무사히(?) 끝낼 수가 있지? 새들이 날고 물고기가 수영하는 것처럼 어린 아이들이 떠들고 웃고 싸우고 징징대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 당연함을 의자에 바르게 앉혀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화의 기초를 익히고 있는 친구들은 먼저 바른 자세로 앉아 제대로 잘 들어야 하고, 단체 생활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규율'을 잘 지켜야 한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잘 듣고 잘 따라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배우고 익히고 있는 귀한 어린 친구들. 

가끔 참 어렵고 힘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교과 내용을 알고 있어서 지루한 친구들, 어느 순간 수업의 속도가 버거운 친구들이 공존하는 교실. 

친구의 부족함과 실수에 대한 '배려'하고 '이해'하는 인성 교육과 단체 생활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자니 주어진 수업의 진도를 고려해야 한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 친구의 잘못된 행동에 신경 끄고 자신의 일만 잘하면 된다'며 이미 들썩거리는 흥분한 어깨를 다둑거리지만, 불의(?)를 못참고 잘못을 일러 바치는 친구들 마음 속에 일어나는 그 뾰족한 마음은 어디로 갔을지 궁금하긴 하다. 그 불편한 상황도 잠시 또 다시 일어나는 자잘한 부딪힘과 웃음 소리.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느릿한 기다림

  '집중력'이 떨어지면 '이해력'이 부족하고 '이해력'이 부족하면 '무기력이 찾아들 것이다...... 포기하고 책상에 엎드리는 친구를 바라보는 일은 가슴 아픈 일이다. 무엇이 그 넘어지는 마음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말을 걸어 보아도 이미 닫힌 마음은 귀가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문제는 딱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인지 아직 모를 때 아니던가. 

아침은 챙겨 먹고 온 것일까. 집에서 부모님께서 아이와 대화를 하는 것일까. 사랑과 관심으로 아이들을 안내하고 가르치는 일은 '느릿한 기다림'이 동반되어야 하는 일임은 틀림없다.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닌데...어느 날 자세를 바로 잡고 마음 속에 무수히 뿌려진 하나의 씨앗을 틔어 꽃을 피울 수도 있다는 것을 포기하면 안된다.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다. 


 


Sunday, July 07, 2024

아등바등

 토요일과 일요일이 이어지는 금요일이다. 늦잠을 자서 아침이 평소보다 더 빨리 달리고 있지만 '금요일' 그 자체로 괜찮다. 

구석진 곳에 피다 지는 이름 없는 들꽃처럼?!

 생각해보니, 난 더 이상 향기 진한 붉은 장미가 아닌 것 같아 매혹적인 '장미'로부터 거리감이 생긴다. ㅋ 사람의 눈길도 받지 못하는 작은 들꽃에게 예전과 달리 '어떤 느낌'이 생긴다. (아무래도 나이가 든 모양) 어쩌면 쇼펜 하우어가 '고독한 행복'에서 언급한 '자신을 위한 즐거움으로 혹은 기쁨'으로 피고 살다 가는 들꽃의 의미를 알 것 같다. 

그렇고보니, 나의 존재의 의미란 거창하지도 않고 소박하다. 결혼을 해서 자식들을 키워내고 나이를 먹은 평범한 삶이 지금 시대에는 고급진 선택이 되어버린 것 같지만, '아등바등', '지지고 볶고' 살았던 평범함이 돌아보니 그리 남루하지 않다.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 때론 꽃처럼.



Wednesday, July 03, 2024

넌 무엇으로 사니

 7월하고도 4일이고나. 괜시리 모든 것이 시큰둥한 요 며칠을 보내고 있었나 보다. 아무래도 급급한 날씨탓을 해야 할 것 같다. 웃음 가득한 햇님의 기운이 부족한 현실의 풍경화를 자꾸 그리고 있다. 비를 머금은 구름이 내려앉은 그림 속의 나는 그닥 읽고 싶은 책도 없고, 가슴 뛰는 음악도 없고, 하고 싶은 운동도 없고, 전화를 들고 수다를 떨고 싶지도 않고, 새로 뭔가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은 더욱 없다. 밥맛도 없어야 하는데, 사실 밥맛은 없지만 대체할 음식을 잘도 찾아 성실하게 열심히 잘도 챙겨 먹는다. 그래서 아직 살아있는 것인가. '넌 무엇으로 사니?'라고 갑자기 스스로에게 묻는다.